못사는 나라 돕는 건 ‘윈-윈게임’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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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사는 나라 돕는 건 ‘윈-윈게임’
| 윤석원 중앙대 교수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미국, 영국 등 현재 ‘잘사는 나라(선진국)’들은 그들이 ‘못사는 나 라(빈곤 개도국)’이었을 때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엄청난 보호무역을 추진했고, 경쟁력은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또 그들은 잘사는 나라가 되고 나서 미처 잘사는 나라가 되지 못한 나라들이 보호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들 잘사는 나라들을 ‘나쁜 사람들(사마리아인)’이라고 몰아 부친다.
자유무역 외치는 사이 빈곤 심화
지금 이들 잘사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로 온 세계가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의 유수 은행이 국유화 되고 자동차 회사가 파산하는가 하면 취업이 안 되어 실업률이 10%를 육박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 잘사는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소위 ‘나쁜 사람들’이 겪는 조그만 아픔일 뿐이다.
이들 잘사는 나라들이 겪는 경기침체와 고통만을 볼 것이 아니라 못사는 나라들의 아픔과 고통도 차제에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못사는 나라에서 은행이 넘어가거나 기업이 파산했다는 얘기를 우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넘어가거나 파산할 은행이나 기업조차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 즉, 식량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 그리고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그들이다. 세계 60억 인구 중 약 80%인 48억명이 이들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들은 선진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조차 부러울 뿐이다.
우리를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자국 국민의 편익만을 생각하며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사이,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성장은 커녕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체 기아선상에서 신음하고 있다. 잘사는 나라들은 이러한 가난한 나라들의 기아와 빈곤의 문제 해결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금융이나 서비스 산업, 그리고 상품의 산업내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에만 몰입하는 사이, 대다수의 인류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못사는 나라들의 고통을 잘사는 나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수십년 내지 수백년 동안 식민지로 거느리면서 단물을 다 빼 먹은 지금의 잘사는 나라들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정치적 목적에 의해 몇 푼 원조해 주고 지원해 주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이제 막 가난 벗은 우리가 도와야
잘사는 나라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는 어떤가를 돌아보자는 의미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여기까지 온 나라이다. 뼈저린 가난과 빈곤을 체험한 나라이다. 주식인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기는 5000년 역사 중 불과 20여년 전에 불과하다. 그러한 아픔을 몸소 겪은 우리가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가난한 나라, 못사는 나라들을 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잘사는 나라들처럼 식민지를 가져 본적이 없고, 오히려 피식민지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난과 빈곤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나라이고, 그들의 고통을 누구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는 나라이며, 저들도 우리를 부러워하며 경외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자로부터의 도움이나 지원은 지원을 받는 나라 입장에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있고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잘사는 나라들과 똑같이 자유무역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면서 못사는 나라에게까지 시장을 열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또 하나의 ‘나쁜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과의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원조액을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도 더욱 잘 살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 국민들 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류를 향한 좀 더 적극적인 지원과 기아와 빈곤을 덜어 주기 위한 노력은 지금 부터라도 강화되는 것이 옳다. 부자가 되어야만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업·농촌관련 기술 지원 모색을
이를 위해서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기술, 즉 농업 생산기술과 농촌기반조성기술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농업·농촌 관련 기술의 이전과 지원이 시급하다. 적은 지원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박애정신을 펼친다는 거창한 명분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못사는 나라들이 잘살게 되어야만 우리의 시장도 넓어 질 수 있다. 서로가 승리하는 윈윈게임이다.
*2009년 글
| 윤석원 중앙대 교수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미국, 영국 등 현재 ‘잘사는 나라(선진국)’들은 그들이 ‘못사는 나 라(빈곤 개도국)’이었을 때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 엄청난 보호무역을 추진했고, 경쟁력은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유치산업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또 그들은 잘사는 나라가 되고 나서 미처 잘사는 나라가 되지 못한 나라들이 보호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들 잘사는 나라들을 ‘나쁜 사람들(사마리아인)’이라고 몰아 부친다.
자유무역 외치는 사이 빈곤 심화
지금 이들 잘사는 나라 중 하나인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로 온 세계가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의 유수 은행이 국유화 되고 자동차 회사가 파산하는가 하면 취업이 안 되어 실업률이 10%를 육박하고 있다. 유럽, 일본 등 잘사는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소위 ‘나쁜 사람들’이 겪는 조그만 아픔일 뿐이다.
이들 잘사는 나라들이 겪는 경기침체와 고통만을 볼 것이 아니라 못사는 나라들의 아픔과 고통도 차제에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못사는 나라에서 은행이 넘어가거나 기업이 파산했다는 얘기를 우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넘어가거나 파산할 은행이나 기업조차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들은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 즉, 식량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 그리고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그들이다. 세계 60억 인구 중 약 80%인 48억명이 이들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들은 선진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조차 부러울 뿐이다.
우리를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자국 국민의 편익만을 생각하며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사이,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성장은 커녕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체 기아선상에서 신음하고 있다. 잘사는 나라들은 이러한 가난한 나라들의 기아와 빈곤의 문제 해결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금융이나 서비스 산업, 그리고 상품의 산업내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성장에만 몰입하는 사이, 대다수의 인류는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못사는 나라들의 고통을 잘사는 나라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수십년 내지 수백년 동안 식민지로 거느리면서 단물을 다 빼 먹은 지금의 잘사는 나라들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정치적 목적에 의해 몇 푼 원조해 주고 지원해 주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이제 막 가난 벗은 우리가 도와야
잘사는 나라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는 어떤가를 돌아보자는 의미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여기까지 온 나라이다. 뼈저린 가난과 빈곤을 체험한 나라이다. 주식인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시기는 5000년 역사 중 불과 20여년 전에 불과하다. 그러한 아픔을 몸소 겪은 우리가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가난한 나라, 못사는 나라들을 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잘사는 나라들처럼 식민지를 가져 본적이 없고, 오히려 피식민지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난과 빈곤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나라이고, 그들의 고통을 누구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는 나라이며, 저들도 우리를 부러워하며 경외의 대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자로부터의 도움이나 지원은 지원을 받는 나라 입장에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있고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잘사는 나라들과 똑같이 자유무역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면서 못사는 나라에게까지 시장을 열라고 아우성치는 것은 또 하나의 ‘나쁜 사람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과의 정상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원조액을 늘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우리도 더욱 잘 살아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우리 국민들 중에서도 어려운 이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류를 향한 좀 더 적극적인 지원과 기아와 빈곤을 덜어 주기 위한 노력은 지금 부터라도 강화되는 것이 옳다. 부자가 되어야만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업·농촌관련 기술 지원 모색을
이를 위해서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기술, 즉 농업 생산기술과 농촌기반조성기술 등 우리가 가지고 있는 농업·농촌 관련 기술의 이전과 지원이 시급하다. 적은 지원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박애정신을 펼친다는 거창한 명분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가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못사는 나라들이 잘살게 되어야만 우리의 시장도 넓어 질 수 있다. 서로가 승리하는 윈윈게임이다.
*2009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