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고시‘는 어떻게 검역 주권을 포기했는가? | 송기호 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 작성일2020/03/0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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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고시‘는 어떻게 검역 주권을 포기했는가?
송기호/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촛불은 10대의 감수성이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최소한의 믿음과 안전이 보장되는 내일을 원한다. 그러나 타락한 기성세대들은 29일 촛불을 처참히 짓밟아버렸다.
29일 공고된 고시대로, 만일 촛불이 이대로 꺼진다면, 한국에서는 ‘공동선‘이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낱말이 될 것이다. 이제 가장 비참하고 값어치 없는 것의 하나가, ‘타인을 위한 마음‘이 될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이런 사회 안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것인가?
국민은 밥상의 안전을 요구했건만, 29일 공고된 광우병 고시는 국민을 깡그리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
광우병 검역 주권은 사료 조치-광우병 위험 부위 제거-미국 정부의 수출 검역-한국 정부의 수입 검역-소비자의 선택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앞 단계에서의 검역 조치일수록 더 중요하다. 공고된 고시는 다섯 단계의 검역 주권의 포기요, 좌절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공고된 고시는 30개월 초과 쇠고기 수입이라는 본질에 대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리고 첫 단계인 사료 조치에서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국민의 걱정은 30개월이 넘은 늙은 소들의 내장과 부산물이 마구 수입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지금까지 광우병이 발생한 소들의 99%가 30개월이 넘는 소라는 과학적 근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일본, 멕시코, 한국 등 미국산 쇠고기의 대표적 시장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30개월 넘는 소를 수입하게 되었다는 현실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정부라면, 29일 공고된 고시에서 30개월이 넘는 쇠고기 수입 문제를 명확히 밝혀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 놀랍게도 공고된 고시 1(1)항은 여전히 "30개월 미만 소"의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부칙 2항에는 여전히 이렇게 되어 있다.
미국이 강화사료금지조치를 공포할 시 (…) 쇠고기는 소의 모든 식용부위를 포함한다.
이처럼 30개월 제한이 풀어졌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국이 강화사료금지조치를 공포할 시"라는 미래형으로 고시되었다. 정상적인 법률가라면, 이러한 고시를 읽으면서, 30개월 제한이 이미 해제되었다고는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공고된 고시에 따르면, 30개월 해제의 미래형 전제조건은 미국의 이른바 강화사료금지조치이다. 그렇다면 강화사료금지조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29일, 농림부는 이른바 미국의 강화된 사료조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양국이 이해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의 본질적인 내용은 미국의 현행 사료금지조치보다 강화된 것으로서 30개월 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모든 동물에 사료로 사용하는 것 등을 금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추가한 것이었음(농림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 및 주요 제출의견 검토결과> 31쪽)
아! 우리는 얼마나 더 거짓말에 익숙해야 하는가? 진실로, 이렇게 30개월 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동물사료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면, 농림부는 협상 타결 후인, 지난 2일, 왜 다음과 같이 국민에게 미국의 사료조치를 발표하였는가?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 2쪽).
<연합뉴스>에 의하면, 한미 쇠고기 협상 한국측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은 지난 4월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2005년도 입법 예고안을 머리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2005년 입법예고안은 명백히 모든 연령의 소의 뇌와 척수를 동물사료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2008년 4월에 실제로 공포한 사료조치는 죽은 소, 죽어가는 소, 병든 소, 주저앉는 소("4D")의 뇌와 척수라도 단지 30개월 미만이라는 이유로 동물사료로 줄 수 있도록 훨씬 완화되었다. 이러한 소들이 광우병 고위험군의 소이며,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의 90% 정도는 30개월 미만이며, 뇌와 척수야말로 광우병 원인 물질이 90%이상 쌓이는 곳임을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고위험군 소의 뇌와 척수를 여전히 동물에게 먹이는 한, 이래가지곤 이른바 교차오염을 막을 수 없다. 이를 사료조치라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정부는 공고된 고시에서는 여전히 위와 같이 미래형으로 서술해 놓은 채, 30개월이 넘는 쇠고기가 수입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30개월 제한이라는 광우병 안전성 조치의 핵심적 내용은 이렇게 공고되는 순간까지도 한 구석에 비참하게 처박혔다. 그리고 검역 주권의 출발인 사료조치 요구권은 포기되었다.
둘째, 검역 주권의 두 번째 단계인 광우병 위험부위 제거 범위를 자주적으로 정하는 권한은 부칙 5항에서 포기되었다. 공고된 고시 부칙 5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수출용 또는 내수용을 불문한다)로부터 미국 규정(9CFR310.22(a))에 정의된 특정위험부위를 제거한다.
광우병 위험 부위의 원천적 제거야말로, 광우병 검역의 핵심적 내용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에 유입되어서는 안 될 광우병 위험부위를 스스로 정할 검역주권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30개월이 넘는 미국 산 쇠고기 척주 전부를 광우병 위험 부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 부칙은, 위와 같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소에서 제거해야 할 광우병 위험부위의 범위를 미국의 규정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미국 농무부와 식약청이 특정위험부위 규정을 정하면 한국은 이에 따라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서는 광우병 위험부위로 규정된 경추의 횡돌기, 극돌기, 흉추 ㆍ 요추의 극돌기, 천추의 ‘정중천골능선‘마저도 수입하기로 합의를 해 주었다. 놀랍게도 이 합의는 공고된 고시 1(9)항에 단 한 점의 다름없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놓고선, 미국에게 미국의 광우병 위험 부위 규정대로 제거해도 좋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정녕 검역주권을 가진 나라인가?
셋째, 검역 주권의 셋째 단계로서, 미국 현지에서의 마지막 검역 단계인 미국 정부 수출검역 증명 절차에서도 한국은 검역 주권의 본질을 포기했다. 검역에선 언제나 최전방이 더 중요하다. 광우병 원인 물질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선적되지 못하도록 미국에서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마지막 단계가 바로 미국 정부의 수출검역 절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 정부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서 도축된 소가 광우병 의심소가 아님을 별도로 증명해야 했다(19(1)항, 10항). 최근에 미국과 협상을 마친 필리핀의 검역 조건에서도 주저앉는 소를 도축한 고기가 아님을 미국정부가 증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29일 공고된 고시에서는 이는 삭제되었다.(22항)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 정부는 도축장들이 30개월령을 잘 구분해서 도축하고 있음을 검역증명서를 통해 보장해야 했다.(19(1)항, 11항) 그러나 29일 공고된 고시에서는 삭제되었다.(22항)
넷째, 검역의 최후 보루인 한국 현지에서의 검역 주권 행사는 더욱 비참하다.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자격이 있는 도축장 승인권은 미국에게 넘어갔다.(부칙 3항) 그리고 미국 도축장에 대한 현지 점검에 대한 전면적 전수 검사는 불가능하다. (7항)
한국에 도착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전수검사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심지어 광우병 위험부위가 발견되는 경우에도 한국은 동일 제품의 5개 컨테이너 검사를 해 보고 이상이 없으면 정상검사 비율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하물며 보통의 경우에 전수검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23항)
이는 현행 <지정검역물의 검역방법 및 기준>이라는 검역 고시에 의해 검역관이 가지고 있는 재량권을 침해한 조항이다. 위 고시는 검사물량에 대해 검역관이 대상검역물의 특성을 감안,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물량을 기준이상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별표 8 육류 등에 대한 현물검사 요령) 그러므로 검역관은 필요하면 전수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전수검사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더 문제는 광우병 위험부위를 실제로 적발하는 단계이다. 공고된 고시에는 쇠고기 제품의 월령 표시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뇌, 눈, 척수, 머리뼈, 척주 등 월령에 따라 광우병 위험부위 여부가 달라지는 부위에 대해 한국에서 그 월령을 파악하여 광우병 위험부위 여부를 판별해낼 길이 없다. 정부는 말로는 위 부위에 대해 월령 표시가 되지 않아 객관적인 월령 확인이 불가능하면 해당 로트를 전량 반송 또는 폐기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 그 어디에도 월령 표시의무는 없다. 그리고 미국을 다녀온 점검단도 미국에서는 쇠고기 30개월 표시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하였다.(<미국 쇠고기 수출작업장 현지점검 결과> 2쪽)
그러니 농림부는 이제라도 광우병 위험부위에 월령 표시를 도대체 어떻게 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내어 놓기 바란다.
설령 한국에서 광우병 위험부위를 찾아낸들, 문제의 광우병 위험부위를 실어 보낸 도축장 제품에 대해서도 수입중단을 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한국에 상륙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부위가 발견될 경우 일체의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당 도축장의 제품마저도 변함없이 한국의 수입검역을 받을 자격이 있다.(23항) 한국이 해당 도축장 제품에 대해 수입중단을 하려면 그 도축장은 최소한 2차례 광우병 위험부위를 한국에 실어 보내야 한다. 그것도 별개의 컨테이너에서 2차례가 나와야 한다!(24항) 이 얼마나 놀라운 극적 반전인가!
더 극적인 역전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는 중대한 사태에 일어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에서는 한국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
29일 공고된 아래의 문제의 5항은 애초 입안예고 되었던 것보다 더 뚜렷이 악화되었다.
입안예고 5항 내용 공고된 5항 내용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이처럼 공고된 고시는 애초 입안예고와는 달리,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한국의 조치를 국제수역사무국의 의사결정에 명백히 연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공고된 고시의 다음의 부칙 6항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5항의 적용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가트 20조 및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정부는 위 부칙 6항이 한국의 검역주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눈으로 보라! 부칙 6항은 어디까지나 본문 5항의 유효성을 전제하고, 단지 그 적용에 대해 단서를 달고 있을 뿐이다. 이는 결코 본문 5항의 의미와 해석에 관한 조항이 아니다. 본문 5항이 살아 있는 한, 부칙 6항은 본문 5항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못하는 선언적 규정이다.
설령 아무리 부칙 6항의 독자적 의미를 최대한 살려 해석한다 하더라도,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그 심각성의 정도가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 광우병 등급 판정을 변경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경우에만 한국은 가트와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에 따라 수입중단을 할 수 있다고 밖에 달리 새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본문 5항을 스스로 공고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본문 5항을 공고함으로써,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의 조치를 국제수역사무국의 등급 변경과 연동하겠다는 내용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 본문 5항이 살아있는 한, 이를 의미없게 하는 해석은 불가능하고, 부칙 6항은 그 의미에서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더욱이 부칙 6항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지난달 18일, 사실상 이미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내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 한국 측이 즉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것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의거 ‘광우병 위험통제국‘의 경우 국내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신고 및 도축 검사 과정을 통해 광우병 감염소가 도축되지 않도록 통제가 가능하고, 설사 도축된다 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의한 광우병 위험부위가 제거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임. (보도자료 제3면, 제4면)
이처럼, 본문 5항이 살아 있는 한, 부칙 6항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만 가지고도 한국이 수입중단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섯째, 검역 주권의 마지막 단계로서, 최종 소비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조차 내팽겨쳤다. 책임있는 정부라면, 30개월령이라는 방화벽을 해제하면서, 최소한 소비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30개월령 표시이다. 정부의 검역 조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소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30개월령 초과 고기인지 여부를 알고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는 전혀 소비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등뼈가 함유되어, 월령 판별 착오시 광우병 위험부위가 혼입될 염려가 높은 ‘티본 스테이크‘에 대해서도 180일이 지나면 30개월 초과 여부를 표시할 의무가 없다.
보통의 시민들에게 사회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돈도 권력도 없다. 그들은 부자들처럼 사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단이 없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군대에 보내야 하는 국민들에게는 정부의 안전 기준이야말로 유일한 필수적 안전장치이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 촛불집회의 자유발언자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서민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29일 국가는 대다수 국민을 버렸다. 나는 변호사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아이들을 위해, 비록 작지만, 책임성 있게 행동하려고 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의 밥상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원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우리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김철수 교수가 썼듯이, 국민이야말로 헌법의 수호자 중의 수호자이다.(헌법학 개론, 1439쪽)
*2008년 글입니다.
[출 처 : 프레시안]
송기호/변호사·조선대법대 겸임교수
촛불은 10대의 감수성이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최소한의 믿음과 안전이 보장되는 내일을 원한다. 그러나 타락한 기성세대들은 29일 촛불을 처참히 짓밟아버렸다.
29일 공고된 고시대로, 만일 촛불이 이대로 꺼진다면, 한국에서는 ‘공동선‘이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낱말이 될 것이다. 이제 가장 비참하고 값어치 없는 것의 하나가, ‘타인을 위한 마음‘이 될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칠 것이며, 어떻게 이런 사회 안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것인가?
국민은 밥상의 안전을 요구했건만, 29일 공고된 광우병 고시는 국민을 깡그리 짓밟아 버렸다. 그리고 검역 주권을 포기했다.
광우병 검역 주권은 사료 조치-광우병 위험 부위 제거-미국 정부의 수출 검역-한국 정부의 수입 검역-소비자의 선택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 앞 단계에서의 검역 조치일수록 더 중요하다. 공고된 고시는 다섯 단계의 검역 주권의 포기요, 좌절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공고된 고시는 30개월 초과 쇠고기 수입이라는 본질에 대해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리고 첫 단계인 사료 조치에서 검역 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국민의 걱정은 30개월이 넘은 늙은 소들의 내장과 부산물이 마구 수입된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지금까지 광우병이 발생한 소들의 99%가 30개월이 넘는 소라는 과학적 근거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일본, 멕시코, 한국 등 미국산 쇠고기의 대표적 시장 가운데, 한국만이 유일하게 30개월 넘는 소를 수입하게 되었다는 현실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정부라면, 29일 공고된 고시에서 30개월이 넘는 쇠고기 수입 문제를 명확히 밝혀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 놀랍게도 공고된 고시 1(1)항은 여전히 "30개월 미만 소"의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게다가 부칙 2항에는 여전히 이렇게 되어 있다.
미국이 강화사료금지조치를 공포할 시 (…) 쇠고기는 소의 모든 식용부위를 포함한다.
이처럼 30개월 제한이 풀어졌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국이 강화사료금지조치를 공포할 시"라는 미래형으로 고시되었다. 정상적인 법률가라면, 이러한 고시를 읽으면서, 30개월 제한이 이미 해제되었다고는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공고된 고시에 따르면, 30개월 해제의 미래형 전제조건은 미국의 이른바 강화사료금지조치이다. 그렇다면 강화사료금지조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29일, 농림부는 이른바 미국의 강화된 사료조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양국이 이해한 강화된 사료금지조치의 본질적인 내용은 미국의 현행 사료금지조치보다 강화된 것으로서 30개월 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모든 동물에 사료로 사용하는 것 등을 금지하도록 하는 조치를 추가한 것이었음(농림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 및 주요 제출의견 검토결과> 31쪽)
아! 우리는 얼마나 더 거짓말에 익숙해야 하는가? 진실로, 이렇게 30개월 이상 소의 뇌와 척수를 동물사료에서 제거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면, 농림부는 협상 타결 후인, 지난 2일, 왜 다음과 같이 국민에게 미국의 사료조치를 발표하였는가?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사료로 인한 광우병 추가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임(‘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 자료‘ 2쪽).
<연합뉴스>에 의하면, 한미 쇠고기 협상 한국측 수석대표인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은 지난 4월 14일, 국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2005년도 입법 예고안을 머리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2005년 입법예고안은 명백히 모든 연령의 소의 뇌와 척수를 동물사료로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2008년 4월에 실제로 공포한 사료조치는 죽은 소, 죽어가는 소, 병든 소, 주저앉는 소("4D")의 뇌와 척수라도 단지 30개월 미만이라는 이유로 동물사료로 줄 수 있도록 훨씬 완화되었다. 이러한 소들이 광우병 고위험군의 소이며, 미국에서 도축되는 소의 90% 정도는 30개월 미만이며, 뇌와 척수야말로 광우병 원인 물질이 90%이상 쌓이는 곳임을 정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한 고위험군 소의 뇌와 척수를 여전히 동물에게 먹이는 한, 이래가지곤 이른바 교차오염을 막을 수 없다. 이를 사료조치라 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정부는 공고된 고시에서는 여전히 위와 같이 미래형으로 서술해 놓은 채, 30개월이 넘는 쇠고기가 수입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30개월 제한이라는 광우병 안전성 조치의 핵심적 내용은 이렇게 공고되는 순간까지도 한 구석에 비참하게 처박혔다. 그리고 검역 주권의 출발인 사료조치 요구권은 포기되었다.
둘째, 검역 주권의 두 번째 단계인 광우병 위험부위 제거 범위를 자주적으로 정하는 권한은 부칙 5항에서 포기되었다. 공고된 고시 부칙 5항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에서 도축되는 모든 소(수출용 또는 내수용을 불문한다)로부터 미국 규정(9CFR310.22(a))에 정의된 특정위험부위를 제거한다.
광우병 위험 부위의 원천적 제거야말로, 광우병 검역의 핵심적 내용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에 유입되어서는 안 될 광우병 위험부위를 스스로 정할 검역주권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30개월이 넘는 미국 산 쇠고기 척주 전부를 광우병 위험 부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 부칙은, 위와 같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소에서 제거해야 할 광우병 위험부위의 범위를 미국의 규정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미국 농무부와 식약청이 특정위험부위 규정을 정하면 한국은 이에 따라야 한다.
한국은 미국에서는 광우병 위험부위로 규정된 경추의 횡돌기, 극돌기, 흉추 ㆍ 요추의 극돌기, 천추의 ‘정중천골능선‘마저도 수입하기로 합의를 해 주었다. 놀랍게도 이 합의는 공고된 고시 1(9)항에 단 한 점의 다름없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놓고선, 미국에게 미국의 광우병 위험 부위 규정대로 제거해도 좋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정녕 검역주권을 가진 나라인가?
셋째, 검역 주권의 셋째 단계로서, 미국 현지에서의 마지막 검역 단계인 미국 정부 수출검역 증명 절차에서도 한국은 검역 주권의 본질을 포기했다. 검역에선 언제나 최전방이 더 중요하다. 광우병 원인 물질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선적되지 못하도록 미국에서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마지막 단계가 바로 미국 정부의 수출검역 절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 정부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서 도축된 소가 광우병 의심소가 아님을 별도로 증명해야 했다(19(1)항, 10항). 최근에 미국과 협상을 마친 필리핀의 검역 조건에서도 주저앉는 소를 도축한 고기가 아님을 미국정부가 증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29일 공고된 고시에서는 이는 삭제되었다.(22항)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 정부는 도축장들이 30개월령을 잘 구분해서 도축하고 있음을 검역증명서를 통해 보장해야 했다.(19(1)항, 11항) 그러나 29일 공고된 고시에서는 삭제되었다.(22항)
넷째, 검역의 최후 보루인 한국 현지에서의 검역 주권 행사는 더욱 비참하다. 한국으로 쇠고기를 수출할 자격이 있는 도축장 승인권은 미국에게 넘어갔다.(부칙 3항) 그리고 미국 도축장에 대한 현지 점검에 대한 전면적 전수 검사는 불가능하다. (7항)
한국에 도착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전수검사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심지어 광우병 위험부위가 발견되는 경우에도 한국은 동일 제품의 5개 컨테이너 검사를 해 보고 이상이 없으면 정상검사 비율을 적용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하물며 보통의 경우에 전수검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23항)
이는 현행 <지정검역물의 검역방법 및 기준>이라는 검역 고시에 의해 검역관이 가지고 있는 재량권을 침해한 조항이다. 위 고시는 검사물량에 대해 검역관이 대상검역물의 특성을 감안,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물량을 기준이상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별표 8 육류 등에 대한 현물검사 요령) 그러므로 검역관은 필요하면 전수검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럴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전수검사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더 문제는 광우병 위험부위를 실제로 적발하는 단계이다. 공고된 고시에는 쇠고기 제품의 월령 표시 내용이 없다. 그러므로 뇌, 눈, 척수, 머리뼈, 척주 등 월령에 따라 광우병 위험부위 여부가 달라지는 부위에 대해 한국에서 그 월령을 파악하여 광우병 위험부위 여부를 판별해낼 길이 없다. 정부는 말로는 위 부위에 대해 월령 표시가 되지 않아 객관적인 월령 확인이 불가능하면 해당 로트를 전량 반송 또는 폐기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 그 어디에도 월령 표시의무는 없다. 그리고 미국을 다녀온 점검단도 미국에서는 쇠고기 30개월 표시를 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하였다.(<미국 쇠고기 수출작업장 현지점검 결과> 2쪽)
그러니 농림부는 이제라도 광우병 위험부위에 월령 표시를 도대체 어떻게 하도록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내어 놓기 바란다.
설령 한국에서 광우병 위험부위를 찾아낸들, 문제의 광우병 위험부위를 실어 보낸 도축장 제품에 대해서도 수입중단을 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한국에 상륙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부위가 발견될 경우 일체의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당 도축장의 제품마저도 변함없이 한국의 수입검역을 받을 자격이 있다.(23항) 한국이 해당 도축장 제품에 대해 수입중단을 하려면 그 도축장은 최소한 2차례 광우병 위험부위를 한국에 실어 보내야 한다. 그것도 별개의 컨테이너에서 2차례가 나와야 한다!(24항) 이 얼마나 놀라운 극적 반전인가!
더 극적인 역전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는 중대한 사태에 일어난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에서는 한국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없다.
29일 공고된 아래의 문제의 5항은 애초 입안예고 되었던 것보다 더 뚜렷이 악화되었다.
입안예고 5항 내용 공고된 5항 내용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미국에서 광우병)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이처럼 공고된 고시는 애초 입안예고와는 달리,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한국의 조치를 국제수역사무국의 의사결정에 명백히 연동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공고된 고시의 다음의 부칙 6항에 의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5항의 적용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가트 20조 및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정부는 위 부칙 6항이 한국의 검역주권을 보장한 것이라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눈으로 보라! 부칙 6항은 어디까지나 본문 5항의 유효성을 전제하고, 단지 그 적용에 대해 단서를 달고 있을 뿐이다. 이는 결코 본문 5항의 의미와 해석에 관한 조항이 아니다. 본문 5항이 살아 있는 한, 부칙 6항은 본문 5항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못하는 선언적 규정이다.
설령 아무리 부칙 6항의 독자적 의미를 최대한 살려 해석한다 하더라도,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 그 심각성의 정도가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 광우병 등급 판정을 변경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경우에만 한국은 가트와 세계무역기구 위생검역협정에 따라 수입중단을 할 수 있다고 밖에 달리 새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본문 5항을 스스로 공고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본문 5항을 공고함으로써,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 시의 조치를 국제수역사무국의 등급 변경과 연동하겠다는 내용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 본문 5항이 살아있는 한, 이를 의미없게 하는 해석은 불가능하고, 부칙 6항은 그 의미에서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더욱이 부칙 6항의 의미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지난달 18일, 사실상 이미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내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 한국 측이 즉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것은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의거 ‘광우병 위험통제국‘의 경우 국내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신고 및 도축 검사 과정을 통해 광우병 감염소가 도축되지 않도록 통제가 가능하고, 설사 도축된다 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의한 광우병 위험부위가 제거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임. (보도자료 제3면, 제4면)
이처럼, 본문 5항이 살아 있는 한, 부칙 6항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는 것만 가지고도 한국이 수입중단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섯째, 검역 주권의 마지막 단계로서, 최종 소비자들을 위한 정보제공조차 내팽겨쳤다. 책임있는 정부라면, 30개월령이라는 방화벽을 해제하면서, 최소한 소비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30개월령 표시이다. 정부의 검역 조치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소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30개월령 초과 고기인지 여부를 알고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고된 고시는 전혀 소비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등뼈가 함유되어, 월령 판별 착오시 광우병 위험부위가 혼입될 염려가 높은 ‘티본 스테이크‘에 대해서도 180일이 지나면 30개월 초과 여부를 표시할 의무가 없다.
보통의 시민들에게 사회는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돈도 권력도 없다. 그들은 부자들처럼 사적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할 수단이 없다.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고, 군대에 보내야 하는 국민들에게는 정부의 안전 기준이야말로 유일한 필수적 안전장치이다.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 촛불집회의 자유발언자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서민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29일 국가는 대다수 국민을 버렸다. 나는 변호사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아이들을 위해, 비록 작지만, 책임성 있게 행동하려고 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의 밥상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원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우리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김철수 교수가 썼듯이, 국민이야말로 헌법의 수호자 중의 수호자이다.(헌법학 개론, 1439쪽)
*2008년 글입니다.
[출 처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