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대표가 없는 농촌 l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3/12/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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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타나고 있는 ‘농촌지역의 정치적 대표성 상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가 큰 틀에서 바뀌어야 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이 문제가 되는 면(面) 지역을 다니다 보면, 주민들의 의견이 행정이나 정치에 의해 무시되는 경우를 본다. 그럴 때면 ‘이 면에서 선출된 군의원은 없나요?’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면 많은 면 지역에서 ‘우리 면은 인구가 적어서 우리 면에 기반을 둔 군의원이 없다. 인구가 많은 이웃 읍ㆍ면에 기반을 둔 사람이 늘 군의원으로 선출된다’는 답을 듣게 된다.
기초지방의원을 중선거구제로 선출하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2006년 이전에는 면별로 1명의 군의원을 선출했지만, 2006년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기초지방의원 선거구가 몇 개의 읍ㆍ면을 합쳐서 구획되게 되었다. 그 후 정당들은 선거에 유리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읍ㆍ면 출신을 공천하게 되었고, 인구가 적은 면은 자기 면을 대표할 군의원 한 명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 대표를 상실하게 된 것이 농촌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합리한 난개발과 환경오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면 주민들을 대표할 군의원 한 명 없으니, 주민들의 목소리가 행정이나 정치에 잘 전달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국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은 여러 개의 시ㆍ군을 합쳐서 지역구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게 된다. 그러면 국회의원도 인구가 많은 지역 출신이 당선되기 쉽다.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농촌지역에서는 국회에 자신의 정치적 대표자를 보내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거대정당이 이런 지역에 공천을 할 때에, 농촌이나 농사에 관한 식견을 갖춘 후보자를 공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농촌지역 선거구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표를 얻기 위해서만 지역에 올 뿐, 자신의 정신적 준거는 서울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현재 농촌 주민들과 농민들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현재 농촌지역과 농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한 원인이다.
그런데 지난 5일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의 획정안이 발표되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 총선 당시보다 농촌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문제가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의 경우에는 속초ㆍ철원ㆍ화천ㆍ양구ㆍ인제ㆍ고성의 6개 시ㆍ군을 합쳐서 1개 선거구가 된다고 한다. 전라남도의 경우에는 신안군ㆍ무안군ㆍ영암군이 1개 선거구였는데, 완전히 공중분해가 된다고 한다. 신안군은 목포시에 붙이고, 무안군은 나주시ㆍ화순군에 붙이는 식이다.
이렇게 농촌지역의 군들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보다 인구가 많은 지방자치단체에 이렇게 갖다 붙여지고, 저렇게 갖다 붙여지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농촌주민, 농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도 고충이 심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대로 지역구간 인구편차를 2 : 1 이내로 잡고 조정하다 보니 선거구 획정이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또한 국회의원이 지역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농촌주민이나 농민 입장에서 절실한 것은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보다 농촌주민과 농민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나타나고 있는 ‘농촌지역의 정치적 대표성 상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거제도가 큰 틀에서 바뀌어야 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를 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다.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실시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는 다당제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농촌주민들과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도 국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선거 때가 되면, 농촌주민들과 농민들도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면 된다.
유럽 국가들은 이런 방식의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원 선거에도 적용한다. 그렇게 되면 농촌지역에서는 농촌주민들, 농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는 정당이라야 많은 의석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비례대표 투표용지에서 정당만이 아니라 후보까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개방형 명부’ 제도를 채택하게 되면, 유권자들의 선택권도 확대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선거제도로는 농촌의 정치적 대표성 확보가 불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도 정치제도의 전면 개혁을 다시 논의할 수밖에 없는 만큼,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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