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 법안 탄생 유감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박진도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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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법안 탄생 유감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박진도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얼마 전 희한한 명칭의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름하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이다. 이 법의 탄생(?) 경위는 이렇다. 현행 농업·농촌기본법(1999년 제정)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기본법의 개정 혹은 새로운 제정 논의가 꾸준히 있었고, 2005년 6월부터 대통령자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주관하여 농업인, 소비자, 학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6년 8월에 개정 방향을 건의하였다. 농림부는 이 개정방향 건의를 참작하여 ‘식품·농업·농촌기본법’을 마련하고 입법 예고하였다. 그런데 이 ‘식품·농업·농촌기본법’이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으로 바뀐 것이다.
농림부, 식품 관할 ‘세계적 추세’
그 이유는 식품을 둘러싼 농림부와 보건복지부의 해 묵은 싸움이 ‘기본법’ 개정을 놓고 재현되자, 식품안전은 복지부가 관할하고 식품산업은 농림부가 관할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되었고, 그에 따라 기본법의 명칭도 바뀌게 된 것이다.
농특위나 농림부가 식품을 포함하여 기본법을 개정하려고 한 문제의식은 정당하고, 오늘날 농정의 수비범위가 농업으로부터 농촌, 식품으로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왜 식품기본법이 아니고, 식품산업기본법인가이다. 법의 명칭이 바뀌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안전과 식품’이란 말이 빠진 것이다. 예를 들면 농림부 원안의 제8조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은 개정 법률안에서는 제7조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으로 안전이 빠지고, 농림부 안의 제19조 ‘농산물 생산단계 등의 식품 안전성 관리’는 개정 법률안에서는 제19조 ‘생산단계의 농산물 안전성 관리’로 식품이 빠졌다. 뿐만 아니라 농림부 안의 제2절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은 개정 법률안에서 제2절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의 안정적 공급’으로 바뀌었다.
참으로 옹색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가 식품기본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민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권리(먹을거리 기본권)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따라서 기본법을 개정하기 이전에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끝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기본권은 외면한 채, 부처간 밥 그릇 싸움만 하다 보니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라는 절름발이 법률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돼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농업계의 반응이다. 농림부는 ‘농업정책의 범위에 식품산업과 농업자재산업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농업·농촌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였다고 하면서 농림부의 수비범위가 확대된 것에 내심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농민단체도 없고, 농업계 언론도 농림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농업계가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사명을 포기한 채 제 밥그릇 키우기에만 급급 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피할 수 없다.
개정 법률안은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를 5년마다 설정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에 반영하고 농정의 중장기 정책 지표로 활용하도록 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시책을 별도의 절을 두어 규정한 것 등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농업기본법’이나 ‘농업·농촌기본법’의 전례에서 보듯이 많은 기본법들이 사문화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농업·농촌의 운명을 좌우할 대단히 중요한 기본법이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충분한 국민적 공론 없이 농림부 관료와 소수 농민단체 및 농업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론 모아 다시 개정을
이번의 개정 과정도 보건복지부가 개입하면서 일이 복잡해진 것뿐이지, 그들만의 잔치라는 점에서는 과거와 차이가 없다. 국회는 절름발이 법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을 폐기하고, 국민적 공론에 기초하여 제대로 된 ‘농업겞纂?식품기본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즉 새로운 기본법의 개정(혹은 제정)에는 농정 이념부터 구체적 시책에 이르기까지 농업인과 농촌주민, 소비자, 학계 및 전문가 뿐 아니라 재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 국민 모두의 논의와 동의 과정을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법 개정으로 정부와 국민의 부담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명확히 하고 동의를 구하여, 새로운 법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글은 2007년 11월 0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등재된 것입니다.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박진도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얼마 전 희한한 명칭의 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름하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이다. 이 법의 탄생(?) 경위는 이렇다. 현행 농업·농촌기본법(1999년 제정)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기본법의 개정 혹은 새로운 제정 논의가 꾸준히 있었고, 2005년 6월부터 대통령자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주관하여 농업인, 소비자, 학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6년 8월에 개정 방향을 건의하였다. 농림부는 이 개정방향 건의를 참작하여 ‘식품·농업·농촌기본법’을 마련하고 입법 예고하였다. 그런데 이 ‘식품·농업·농촌기본법’이 국무회의 심의과정에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으로 바뀐 것이다.
농림부, 식품 관할 ‘세계적 추세’
그 이유는 식품을 둘러싼 농림부와 보건복지부의 해 묵은 싸움이 ‘기본법’ 개정을 놓고 재현되자, 식품안전은 복지부가 관할하고 식품산업은 농림부가 관할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되었고, 그에 따라 기본법의 명칭도 바뀌게 된 것이다.
농특위나 농림부가 식품을 포함하여 기본법을 개정하려고 한 문제의식은 정당하고, 오늘날 농정의 수비범위가 농업으로부터 농촌, 식품으로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 추세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왜 식품기본법이 아니고, 식품산업기본법인가이다. 법의 명칭이 바뀌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안전과 식품’이란 말이 빠진 것이다. 예를 들면 농림부 원안의 제8조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은 개정 법률안에서는 제7조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으로 안전이 빠지고, 농림부 안의 제19조 ‘농산물 생산단계 등의 식품 안전성 관리’는 개정 법률안에서는 제19조 ‘생산단계의 농산물 안전성 관리’로 식품이 빠졌다. 뿐만 아니라 농림부 안의 제2절 ‘안전하고 품질 좋은 농산물과 식품의 안정적 공급’은 개정 법률안에서 제2절 ‘안전한 농산물과 품질 좋은 식품의 안정적 공급’으로 바뀌었다.
참으로 옹색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가 식품기본법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국민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소비할 권리(먹을거리 기본권)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따라서 기본법을 개정하기 이전에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끝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기본권은 외면한 채, 부처간 밥 그릇 싸움만 하다 보니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라는 절름발이 법률안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돼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농업계의 반응이다. 농림부는 ‘농업정책의 범위에 식품산업과 농업자재산업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 농업·농촌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였다고 하면서 농림부의 수비범위가 확대된 것에 내심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농민단체도 없고, 농업계 언론도 농림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농업계가 ‘국민의 먹을거리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사명을 포기한 채 제 밥그릇 키우기에만 급급 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피할 수 없다.
개정 법률안은 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를 5년마다 설정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에 반영하고 농정의 중장기 정책 지표로 활용하도록 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시책을 별도의 절을 두어 규정한 것 등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농업기본법’이나 ‘농업·농촌기본법’의 전례에서 보듯이 많은 기본법들이 사문화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농업·농촌의 운명을 좌우할 대단히 중요한 기본법이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충분한 국민적 공론 없이 농림부 관료와 소수 농민단체 및 농업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적 공론 모아 다시 개정을
이번의 개정 과정도 보건복지부가 개입하면서 일이 복잡해진 것뿐이지, 그들만의 잔치라는 점에서는 과거와 차이가 없다. 국회는 절름발이 법인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을 폐기하고, 국민적 공론에 기초하여 제대로 된 ‘농업겞纂?식품기본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즉 새로운 기본법의 개정(혹은 제정)에는 농정 이념부터 구체적 시책에 이르기까지 농업인과 농촌주민, 소비자, 학계 및 전문가 뿐 아니라 재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 국민 모두의 논의와 동의 과정을 거치는 절차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반드시 법 개정으로 정부와 국민의 부담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명확히 하고 동의를 구하여, 새로운 법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글은 2007년 11월 0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등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