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제와 우리 농촌 | 임경수 「이장」대표, 공학박사,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0/03/04 15:48
- 조회 426
지방의제와 우리 농촌
|임경수 「이장」대표, 공학박사, 지역재단 자문위원
예전에 『이래서 나는 농사를 선택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전국귀농본부의 제1기 귀농학교를 다녔고, 박사학위 공부를 끝내고 보니 귀농학교의 동기와 후배들이 이미 귀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묶어 보았습니다. 1999년에 쓴 그 책의 서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이 앞으로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농사짓는 일을 선택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기 바라고 치열하게 농촌에 적응하고 있는 선배 귀농인의 이야기가 농사를 시작하는 데, 시골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나는 사회운동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귀농운동이 당당하게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귀농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다양하고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특히 환경운동가들은 귀농이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인식해 주기를 소망한다.
환경문제를 공부하다가 농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전공을 바꾼 나로서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농업·농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책의 서문에 그런 이야기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에게 있어서 농업과 농촌문제는 그다지 관심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했던 많은 문제들의 근원에는 농업·농촌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와 생태계 훼손을 자행하는 개발 행위의 근저에는 ‘농업으로는 더 이상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뒤떨어진 곳이다’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만금 갯벌을 잃었고 천성산에 터널을 뚫어야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서천의 장항 갯벌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농업에서 희망을 잃고 몇 평 되지 않는 땅이라도 팔아 농촌을 떠나야겠다며 환경운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농민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는 ‘지방의제21 전국대회’가 열렸습니다. 지방의제21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 국제연합(UN) 지구환경회의에서 채택한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의제21’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의제(Agenda)라고 하는 말은 회의의 주요한 안건, 토론을 위한 주제, 관심을 가지는 내용 등의 뜻으로, 브라질에서 채택한 의제21은 지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지구인이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사항을 분야별로 결정하고 채택한 것입니다. 즉,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행동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의제21의 28장에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각국의 지방정부가 지방의제21 추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96년 국가의제21을 채택하여 국제연합(UN)에 제출한 바 있고, 국가의제 21에 의해 지방정부 중의 92%가 지방의제21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방의제 추진을 위한 사무국이 있고 지방의제를 채택하여 실천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방의제 사무국을 만들고 지방의제를 수립하는 과정에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하였고,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교육·교류를 통해 차 없는 거리를 만들었으며 자전거 도로와 안전한 통학로를 확보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사이에서 거버넌스(Governance : 협치)의 형태로 노력하고 있는 지방의제21의 여덟번째 전국대회의 주제가 바로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와 농업”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회 둘째 날의 작은 토론회의 토론자로 초청을 받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우리 나라의 농업과 농촌문제를 고민하면서 지역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농업이 중요하고 농촌이 건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감격스러운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일부러 첫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순천대학교의 한 기념관의 커다란 회의장에서 열띤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날 주제는 지방의제21과 너무나 잘 어울리게도 “지역식량체계”였습니다. 누가 생산하는지, 어떻게 생산하는지, 혹은 누가 먹을 것인지, 어떻게 유통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세계식량체계나 국가식량체계는 농민·소비자 모두에게 해로운 것이며 결국 지구를 망가뜨릴 것이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하며 지역과 지역이 대등하게 식량을 교환하고자 하는 지역식량체계가 토론회의 주제였고, 평소 존경하던 경남대의 김종덕 교수님의 발표와 미국·캐나다·일본에서 초청된 전문가의 소중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로 이어진 토론에서 도시지역은 도시답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소비자운동을, 농촌지역은 농촌답게 농촌공동체 등의 주제를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을 벌였습니다.
지방의 제21이 정부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어중간한 단체이어서 어중간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듣는 듯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고, 오히려 우리 사회를 차근차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방의제21의 활동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번 전국대회를 계기로 도시에 있는 지방의제21은 도시의 나름대로, 농촌에 있는 지방의제21은 지방의 나름대로 이 땅의 농업과 농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랍니다.
* 월간 이장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임경수 「이장」대표, 공학박사, 지역재단 자문위원
예전에 『이래서 나는 농사를 선택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중에 전국귀농본부의 제1기 귀농학교를 다녔고, 박사학위 공부를 끝내고 보니 귀농학교의 동기와 후배들이 이미 귀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묶어 보았습니다. 1999년에 쓴 그 책의 서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이 앞으로 귀농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먼저 그들이 농사짓는 일을 선택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기 바라고 치열하게 농촌에 적응하고 있는 선배 귀농인의 이야기가 농사를 시작하는 데, 시골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나는 사회운동가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귀농운동이 당당하게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귀농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다양하고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특히 환경운동가들은 귀농이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인식해 주기를 소망한다.
환경문제를 공부하다가 농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전공을 바꾼 나로서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농업·농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 책의 서문에 그런 이야기를 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에게 있어서 농업과 농촌문제는 그다지 관심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했던 많은 문제들의 근원에는 농업·농촌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환경 파괴와 생태계 훼손을 자행하는 개발 행위의 근저에는 ‘농업으로는 더 이상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뒤떨어진 곳이다’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만금 갯벌을 잃었고 천성산에 터널을 뚫어야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서천의 장항 갯벌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를 더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농업에서 희망을 잃고 몇 평 되지 않는 땅이라도 팔아 농촌을 떠나야겠다며 환경운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농민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는 ‘지방의제21 전국대회’가 열렸습니다. 지방의제21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 국제연합(UN) 지구환경회의에서 채택한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의제21’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의제(Agenda)라고 하는 말은 회의의 주요한 안건, 토론을 위한 주제, 관심을 가지는 내용 등의 뜻으로, 브라질에서 채택한 의제21은 지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지구인이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사항을 분야별로 결정하고 채택한 것입니다. 즉,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행동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의제21의 28장에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각국의 지방정부가 지방의제21 추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96년 국가의제21을 채택하여 국제연합(UN)에 제출한 바 있고, 국가의제 21에 의해 지방정부 중의 92%가 지방의제21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방의제 추진을 위한 사무국이 있고 지방의제를 채택하여 실천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방의제 사무국을 만들고 지방의제를 수립하는 과정에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하였고,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교육·교류를 통해 차 없는 거리를 만들었으며 자전거 도로와 안전한 통학로를 확보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지역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 사이에서 거버넌스(Governance : 협치)의 형태로 노력하고 있는 지방의제21의 여덟번째 전국대회의 주제가 바로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와 농업”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회 둘째 날의 작은 토론회의 토론자로 초청을 받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우리 나라의 농업과 농촌문제를 고민하면서 지역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농업이 중요하고 농촌이 건강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감격스러운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일부러 첫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순천대학교의 한 기념관의 커다란 회의장에서 열띤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날 주제는 지방의제21과 너무나 잘 어울리게도 “지역식량체계”였습니다. 누가 생산하는지, 어떻게 생산하는지, 혹은 누가 먹을 것인지, 어떻게 유통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세계식량체계나 국가식량체계는 농민·소비자 모두에게 해로운 것이며 결국 지구를 망가뜨릴 것이기 때문에, 지역 내에서 식량을 생산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하며 지역과 지역이 대등하게 식량을 교환하고자 하는 지역식량체계가 토론회의 주제였고, 평소 존경하던 경남대의 김종덕 교수님의 발표와 미국·캐나다·일본에서 초청된 전문가의 소중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로 이어진 토론에서 도시지역은 도시답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소비자운동을, 농촌지역은 농촌답게 농촌공동체 등의 주제를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을 벌였습니다.
지방의 제21이 정부도 아니고 시민단체도 아닌 어중간한 단체이어서 어중간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듣는 듯합니다. 하지만 거꾸로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고, 오히려 우리 사회를 차근차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방의제21의 활동에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번 전국대회를 계기로 도시에 있는 지방의제21은 도시의 나름대로, 농촌에 있는 지방의제21은 지방의 나름대로 이 땅의 농업과 농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랍니다.
* 월간 이장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