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차 지역리더포럼 - 사회적경제의 이상과 현실(2011년 2월)
- 작성일2020/03/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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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2월 24일(목)에 지역재단 제17차 지역리더포럼이 지역재단 1층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사회적 기업의 사상적 기반인 ‘사회적 경제’에 대해 그 이상과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맥락과 사상적 함의, 실천적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발표는 「사회적경제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주제로 김신양 성공회대 외래교수가 담당해 주었다.
<주제발표 주요내용>
사회적 경제의 의미
- 사회적 경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함. 역사적으로 학문과 사상, 실천과 부문으로 변천해 왔으며, 유사한 개념으로는 연대의 경제, 민중경제 등이 있음. 이에 앞서 사회적 경제 선구자들의 사상과 실험+학문+선구자들의 영감을 받은 협동조합, 공제조합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함.
사회적 경제의 핵심
-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사한 개인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조직으로 개인의 이익을 공동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임.
사회적 경제의 이상
- 사회적 경제의 이상은 이에 대한 열망을 가진 집단이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 이에 대한 논의의 출발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에 대한 ‘다른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있음. 또한 시장관계, 상품화의 지배에 맞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함.
사회적 경제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
- 사회적 경제의 이상이 진정한 대안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기에 대처할 만한 수준의 정책을 제출해야 할 것이며, 그 정책은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실현가능해야 함.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론적 토대가 구축되어야 하며, 시민사회, 지식인, 사회적 경제 조직의 연대가 필요
사회적 경제 활동의 전망
- 사회적 경제의 실천은 경제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음. 사회적 경제조직 구축이 사회적 경제의 구축은 아니며, 사회적 경제 조직의 유지가 사회적 경제의 발전과 직결된다고 볼 수 없음. 정치 프로그램으로서의 전망이 절실
- 사회적 경제 활동의 기본 방향은 사회적 권리 보장을 위한 새로운 경제 활동이여야 함
<토론 주요내용>
◎ 최혁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정책기획위원장)
- 이윤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위한 사회경제조직을 실현하려는 사회적 경제의 문제제기는 현 한국사회에서 매우 유의미하며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 하지만 보다 나은 미래, 모두가 안심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실현이 사회적 경제의 궁극적 이상이라며,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의 혁신이 필요.
◎ 임동완 ((사)사회적기업 청람 사무국장)
- 사회적 경제를 지역에서 실현하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협력사업의 지침이나 매뉴얼이 없다는 점임. 이는 이론적 토대 구축과 실천적인 연구가 전개되어야 함을 의미함. 이와 아울러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가 실현되고 사회적 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사회적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가져야 함
◎ 김병혁 (대구경북지역먹거리연대 사무국장)
- 사회적 경제는 사람과 사람의 연계, 사람과 자연의 공생,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제체제라고 생각함. 하지만 현재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일반인의 지배적인 생각은 자본주의의 장식품, 약간의 보완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쉬움. 예고되어 있는 세계적인 식량위기사태와 농촌공동체의 복원과 지지를 위해서는 이제 농업과 식량의 문제를 사회적 경제 즉 사회적 관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함. 그래서 오늘 사회적 경제의 근본에 대한 논의는 매우 유익한 측면이 있음.
◎ 임준홍 (충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 시장경제와 사회적 경제의 차이는 자본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의 경제체제이냐에 달려 있음. 그리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경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사회적 경제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 주체가 참여하여 만들어낸 활동의 복합체로 봐야 함. 하지만 지금 정부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자본 중심의 경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가 경제 정책 전반에 침투되기는 어려울 것 같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가시적 효과가 중요함
◎ 김을식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기본적으로 사회적 경제는 남도 생각하는 경제라 생각함. 시장경제가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면 매우 가치 있음. 그래서 두 경제 체제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야하는 운명을 가짐.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회적 경제가 한국을 비롯한 중진국 및 선진국에서 대안 경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당위적인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 실험의 문제임
<마치며>
지정토론 후 모든 포럼 참가자들의 의견과 질문, 그리고 이에 대한 발제·토론자들의 설명 등 전체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후 저녁식사동안 참가자들의 교류 및 연대를 통해 사회적 경제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번 포럼을 빛내주신 발제자와 지정토론자 등에 감사드리며, 무엇보다도 지역의 발전을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주신 참가자 한 분, 한 분이 가장 큰 감사를 받아야 할 것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리 : 정회훈 지역재단 연구부장
<참조>
● 폴라니의 혜안으로 본 사회적 경제
경제 : 최적화 행위의 영역이 아닌 인간 살림살이의 영역
(이 글은 홍기빈 박사의 칼 폴라니와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라는 제목으로 진보 계간지 새‘새롭게 다르게’에 실린 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폴라니는 먼저 우리가 흔히 ‘경제’라고 부르며 쓰는 말에 두 가지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정의가 중첩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 둘을 분리할 수 있어야 혼동을 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정의는 단순히 인간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요구들(needs, wants)을 충족하는 데에 필요한 물적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로서의 경제이다. 사람은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필요 욕구들을 생성하게 되며, 삶이란 바로 이것들을 충족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 필요 욕구가 ‘천한 것’인지 ‘영적인 것’인지 등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종류의 욕구이건 그것을 충족하는 데에 유형무형의 수단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그것을 조달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게 되어 있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면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의 구체적인 삶과 생명 활동과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는 실체적 경제(substantive economy) 라고 폴라니는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제의 개념을 우리 고유어를 써서 표현한다면 ‘살림살이로서의 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의미의 경제는 이와 달리 순수하게 추상적이며 논리적으로 구성된 형식적 경제(formal economy)이다. 추상적 차원에서 본다면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고 가정할 수 있으며,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은 자명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희소성(scarcity)이라는 조건에서 볼 때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유한한 수단을 적절하게 배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택의 문제에 부닥치게 되며, 결국 가장 ‘알뜰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러한 ‘아낌(economize)‘, 즉 요즘의 경제학에서는 쓰는 용어로 ‘ 최적화(optimize)‘하려고 하는 행위를 모두 인간의 경제 행위로 보는 것이 이 정의에서의 경제이다.
폴라니가 직접 말하고 있지 않지만, 두 번째 의미의 경제는 필연적으로 ‘돈벌이 경제’로 귀결된다. 질적으로 상이한 여러 재화와 욕구들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 상이한 것들을 동질의 단위-‘효용’ 혹은 ‘노동 가치’등-로 환원하여 수적인 계산을 가능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선택의 최적화하는 행위는 투입-산출 혹은 화폐로 계산된 바의 비용-편익의 차이를 극대화하려는 행위로 귀결되므로, 이러한 원칙으로 구성되는 경제를 ‘돈벌이 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바이다. 이러한 ‘살림살이의 경제’와 ‘돈벌이 경제’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의미의 경제를 우리는 하나의 말로 섞어서 쓰고 있다는 것이 폴라니의 지적이다.
이 두 개의 경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끝없이 혼동되어 쓰인다. 그런데 이러한 혼동이 현실적으로 가져오는 귀결에 대한 연구가 폴라니의 경제 사상에서 극히 중요한 축이 된다.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최초로 성립한 시장 경제-자기 조정 시장(self-regulating market)은 ‘살림살이의 경제’를 ‘돈벌이 경제’로 완전히 환원하고 해소할 수 있다는 전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활동하는 인간은 ‘노동’이라는 상품으로 변해버리고, 태고로부터 종말까지 존재하며 우리를 낳아준 자연은 ‘토지’나 ‘자원’이라는 상품으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상품 허구’에 기초하여 인간 사회의 모든 존재들과 관계들을 ‘더 많은 화폐적 이익을 찾아가는 상품들의 운동’으로 환원하여 구성하지는 것이 바로 19세기의 경제적 자유주의의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이렇게 ‘살림살이의 경제’가 ‘돈벌이의 경제’로 환원⦁해소 당하게 되면, 인간의 집단적 삶 속에 묻어 들어가 있었던 경제라는 것이 튀어나오게 되며, 거꾸로 인간의 집단적 삶이 시장 경제에 묻어 들어가 버리는 사태가 벌이진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 많은 이들이 부닥쳤던 문제, 어째서 시장 경제나 일반 기업은 그 정체성과 구성을 단순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음에 반해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기업은 그것이 용이하지 않는가에 대한 일정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시장 경제나 일반 기업은 ‘돈벌이 경제’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들이므로 그 정의가 대단히 분명하다. 하지만 경제를 ‘돈벌이 경제’로만 이해하는 기존의 사고 편향을 벗어나지 못한 정의는 무릇 모든 경제는 오로지 시장경제에 수렴되고 모든 기업은 오로지 이익 추구 기업이며 이것이 유일의 준거점이요 표준이 될 수밖에 없고,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기업 또한 자꾸 그러한 준거점과 표준에 수렴시키고자 하는 편향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폴라니의 예를 따라서 ‘돈벌이 경제’와 확연하게 구별되는 의미의 ‘살림살이 경제’의 관점에 서서 그 각도로부터 사회적 경제에 대한 조명을 비춘다면 상당히 분명한 규정과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
사회적 경제란 ‘돈벌이’를 목표로 하는 인간 활동으로 구성되는 경제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종다기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인간들의 모든 구체적 활동으로 구성되는 경제하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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