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7일(월례회의)
- 작성일2021/04/08 09:16
- 조회 597
식목일을 아시나요?
정의 : 국민 식수(植樹)에 의한 애림(愛林) 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
내용 :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한 것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淸明) 무렵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날이자(677년 음력 2월 25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들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1343년 음력 3월 10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 바로 이날이기 때문이다. 한편,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0년 4월 5일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거행할 때, 손수 밭을 갈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나무를 심었던 데에 있다.
(중략)
식목일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매우 중요하게 간주된 국가기념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식목 관련 사업은 국가에 의해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해방 무렵 한반도의 산림 면적은 1,627만 헥타르, 축적(蓄積)은 2억 1,200만 입방미터였다. 1910년 당시의 축적이 7억 입방미터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제강점기에 무려 5억 입방미터의 축적이 감소된 셈이다. 여기에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산림에 아주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이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기 위해, 또 쌀과 일용품을 구하기 위해 산림을 마구 벌채하였다. 피난민들뿐만 아니라 물자공급이 부족한 군의 연료공급이나 후생사업을 위해서도 산림을 벌채하였으며,
작전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나무를 벌채하여 한반도의 산림파괴는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중략)
제1, 2차 치산녹화 10년 계획 기간 동안에 이룩한 성과는 212만 8천 헥타르의 인공조림, 20만 8천 헥타르의 연료림, 2만 6천 가구의 화전민 이주·정착과 8만 6천 헥타르의 화전지 정리, 12만 헥타르에 이르는 산지·해안 사방사업 실시였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과이다.
제3차 계획은 산림의 자원화를 목표로 하여 계획의 명칭을 제3차 산지자원화 계획(1988~1997)이라 정하고 산지의 소득을 개발하며 산림의 공익을 증대하는, 소위 경제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산지의 합리적 이용, 자원조성과 경영기반의 확충, 임산물 안전공급과 유통체계의 정비, 소득원의 개발, 생활환경 조성과 산림문화 창달을 기본목표로 하였다.
(중략)
해마다 산불 등에 의해 유실되는 산림의 면적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림에 대한 강조는 여전히 유지되어야 한다.
- 한국세시풍속사전 中 발췌
이제 곧 식목일입니다. 과거에는 휴일이기에 나무심기 활동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기에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날인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념일이 지정된 배경에는 그 숨은 의미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매년 지나가는 식목일이었지만,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그날을 이해하고 보니,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심겠다는 스피노자 어른의 말이 왜 중요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여건 상 큰 나무는 아니지만 작은 식물이라도 심어 생명을 소중하게 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4월을 맞이해보면 좋겠습니다.
-김진호 정책연구팀 팀장
정의 : 국민 식수(植樹)에 의한 애림(愛林) 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
내용 :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한 것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淸明) 무렵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날이자(677년 음력 2월 25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 조선 성종이 세자와 문무백관들과 함께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1343년 음력 3월 10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5일)이 바로 이날이기 때문이다. 한편,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0년 4월 5일 순종이 친경제(親耕祭)를 거행할 때, 손수 밭을 갈았을 뿐만 아니라 직접 나무를 심었던 데에 있다.
(중략)
식목일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매우 중요하게 간주된 국가기념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식목 관련 사업은 국가에 의해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해방 무렵 한반도의 산림 면적은 1,627만 헥타르, 축적(蓄積)은 2억 1,200만 입방미터였다. 1910년 당시의 축적이 7억 입방미터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제강점기에 무려 5억 입방미터의 축적이 감소된 셈이다. 여기에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산림에 아주 큰 상처를 남겼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들이 취사와 난방을 해결하기 위해, 또 쌀과 일용품을 구하기 위해 산림을 마구 벌채하였다. 피난민들뿐만 아니라 물자공급이 부족한 군의 연료공급이나 후생사업을 위해서도 산림을 벌채하였으며,
작전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나무를 벌채하여 한반도의 산림파괴는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중략)
제1, 2차 치산녹화 10년 계획 기간 동안에 이룩한 성과는 212만 8천 헥타르의 인공조림, 20만 8천 헥타르의 연료림, 2만 6천 가구의 화전민 이주·정착과 8만 6천 헥타르의 화전지 정리, 12만 헥타르에 이르는 산지·해안 사방사업 실시였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과이다.
제3차 계획은 산림의 자원화를 목표로 하여 계획의 명칭을 제3차 산지자원화 계획(1988~1997)이라 정하고 산지의 소득을 개발하며 산림의 공익을 증대하는, 소위 경제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산지의 합리적 이용, 자원조성과 경영기반의 확충, 임산물 안전공급과 유통체계의 정비, 소득원의 개발, 생활환경 조성과 산림문화 창달을 기본목표로 하였다.
(중략)
해마다 산불 등에 의해 유실되는 산림의 면적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림에 대한 강조는 여전히 유지되어야 한다.
- 한국세시풍속사전 中 발췌
이제 곧 식목일입니다. 과거에는 휴일이기에 나무심기 활동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기에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날인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기념일이 지정된 배경에는 그 숨은 의미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매년 지나가는 식목일이었지만,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그날을 이해하고 보니,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심겠다는 스피노자 어른의 말이 왜 중요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여건 상 큰 나무는 아니지만 작은 식물이라도 심어 생명을 소중하게 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4월을 맞이해보면 좋겠습니다.
-김진호 정책연구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