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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정개혁 없이 농정 예산 늘릴 수 없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1/03/07 09:31
    • 조회 711
    농정개혁 없이 농정 예산 늘릴 수 없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은 2014년에 국가 전체 예산의 3.8%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3%대로 떨어진 이후, 지난해까지 간신히 3%대를 유지했으나, 올해에는 2.9%에 그치면서, 7년 만에 3%선마저 붕괴됐다. 농림수산식품분야 전체로 보더라도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6.8%를 정점으로 계속 낮아져 올해에는 4.0%를 간신히 턱걸이했다. 농림수산식품분야의 예산 증가율이 국가 전체 예산의 증가율에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농림업의 예산 비중은 2%대 이하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 농업계는 ‘농업홀대’라고 비판하면서, 농업・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면 적어도 5% 수준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업계의 주장이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정 예산의 효과성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약은 잘 쓰면 보약이고 잘못 쓰면 독약이 되듯이, 돈이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농민과 농촌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돈은 많을수록 좋지만, 도움이 안 되는 돈은 혈세를 낭비할 뿐 아니라, 오히려 농업・농촌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현재 농정 예산은 과연 농업, 농촌 그리고 농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근대 재정이론의 창시자인 머스그레이브(Richard A. Musgrave, 1910~2007)는 재정학이론(The Theory of Public Finance, 1959)에서 재정의 3대 기능으로 경제안정 및 성장, 소득재분배, 자원배분을 제시했다. 경제안정 및 성장 기능이란 고용·물가·국제수지 등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기능이다.
    소득재분배와 자원배분 기능은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한 기능이다. 특히 소득재분배 기능은 시장에서의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며, 자원배분 기능은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막고, 시장에서 공급되지 않는 공공재 등 외부효과가 있는 재화를 국가 재정으로 공급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재정이론에 비춰 보면, 그동안 농정 재정은 제 기능을 했다고 하기 어렵다. 농정 재정은 경제안정 및 성장 기능을 중시한 반면에, 소득재분배 및 자원배분 기능은 소홀히 다뤘다. 우리나라는 국가 전체로 보더라도 재정이 경제성장에 치우쳐 있는데, 농정 재정은 그보다도 훨씬 성장 기능에 경도되어 왔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국제경쟁력 있는 농업을 육성하기 위한 생산주의 농정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농정은 생산성 향상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농촌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지방소멸’을 염려하게 되고, 식량자급률의 하락으로 식량안보가 위협받게 됐다는 점에서 안정화 기능조차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장실패’를 보완하기는커녕 소득분배와 자원배분을 왜곡하고 악화했다.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격차가 확대됐을 뿐 아니라, 농촌 내 양극화가 심화됐다. 생산성 제일주의는 농촌의 생태환경을 파괴하여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잠식했다.

    농정 예산, 소득재분배 및 자원배분에 소홀

    농정 재정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음에도 농정 예산을 늘려달라고 해봐야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우리는 농정 예산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농정 틀을 생산주의 농정으로부터 다원적 기능 농정으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공익기여지불(혹은 공익형 직불)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 T/F는 2018년에 농정 예산을 직불제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제안하고, 정책 명칭을 직접지불제에서 농업기여지불제로 변경하고, 농업기여지불의 예산규모를 2022년까지 농식품부 전체 예산 대비 약 30%인 5조2,000억원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기존 예산에서 5,000억원을 확보하고, 새로 늘어나는 예산 가운데 5,000억원을 확보해서 매년 1조원씩 직불금을 늘려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2020년의 농식품부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2019년 5월에 출범한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는 농정 재정 개혁을 제1과제로 설정하고, 연구용역(‘농식품 재정구조 개편 및 농정추진체계 재편 방안’)을 발주하고 토론회를 거듭했다. 연구용역결과보고서는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과 다원적 기능 강화를 위해서 ‘공익기여지불’과 ‘경제활동 다각화’, ‘환경 및 경관보전’(기후변화 대응 포함)’, ‘주체역량 강화’ 예산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농정 예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농특위가 공익형 직불제나 농업기여지불제라는 용어 대신 공익기여지불을 사용한 것은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지불’이란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직불금이 농민 소득보전을 위한 퍼주기라는 비난을 피하고, 농민들에게는 공익적 기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므로 농민의 의무(예, 생태환경 보전)를 다해야 함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위의 범주에 해당하는 예산의 규모는 2020년 기준으로 2.8조원(직불제 예산 2.4조원, 나머지가 0.4조원. 농식품부 예산의 17.6%)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2028년까지 7조원(농식품부 예산의 36.3%) 내지 10조원(농식품부 예산의 51.8%)까지 늘려갈 것을 제안했다. 10조원의 경우, 농식품부 예산이 매년 2.5%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기존의 생산주의 농정과 지역개발 예산 등으로부터 2023년까지 누적 약 1조원을 감액하고 그 후 5년간 다시 누적 약 2.7조원을 감액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농특위의 이러한 연구결과는 1년이 거의 다 지나도록 농식품부의 반대로 언론에 발표도 못한 채 캐비닛 속에서 잠자고 있다. 농식품부의 2021년 예산은 농정 틀 전환을 위한 농정 재정 개혁을 완전히 외면했고, 이른바 공익형 직불금은 5년 동안 2.4조원에 동결했다. 농식품부는 공익형 직불금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예산을 삭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농식품부는 그 이유를 기획재정부 탓으로 돌린다. 농특위 토론회에서 농식품부 담당자는 “우리도 농업 재정 개편의 필요성을 알고 있고, 다른 예산을 줄여서 공익형 직불금을 늘리고 싶지만, 기획재정부가 동의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깎는 것은 좋아하지만, 깎은 예산을 다른 부문에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잘못하면 예산만 깎인다”는 것이다.
    참으로 딱한 소리다. 과연 그럴까. 농특위 위원장으로서 기획재정부의 차관을 만나 농정 재정 개혁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다. 그는 “기재부가 농업예산 늘어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그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고, 농업의 공익적 가치 창출을 위한 공익기여지불 예산을 확대한다면 반대할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농정 틀 전환·재정 개혁에 정치권 나서야

    농식품부 관료에게 농정 재정 개혁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다.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선심성 농정 예산을 늘리는 데 열을 올릴 뿐이지(별로 성공도 못하지만) 예산의 효율성이나 효과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치권이 대오각성해서 농정 틀 전환과 농정 재정 개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과 공익적 가치를 실현할 공익기여지불이 다음 정부(2028년)까지 적어도 50% 수준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게 농정 관료와 농업 기득권의 반발로 가능하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스위스의 농정 개혁 과정을 말해주고 싶다. 스위스의 농정 예산에서 직불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20% 수준에서 1990년 29%, 1992년 37%, 1994년 50%로 10년 동안 2.5배가 됐고, 그 후에도 빠른 속도로 높아져 2018~2021년 예산에서는 82.7%를 차지하고 있다. 초기에는 새로 늘어나는 예산을 직불제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율이 증가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농정 예산 자체는 약간 감소했지만, 재정의 구조 개혁을 통해서 이룬 것이다.
    즉, ‘국내 판매와 가격지지’ 및 ‘생산조건 개선’ 등의 예산을 줄이고, 농민들에게 주는 직접지불금을 늘린 것이다. 이러한 개혁 과정에서 농업 기득권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치가 농민들을 설득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가능했다.
    농정 재정이 공익기여지불 중심으로 개편되기 위해서는 농정추진체계를 함께 개혁해야 한다. 그동안의 생산주의 농정은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 설계주의 농정(농식품부가 중앙 주도로 정책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방식의 농정)이었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밀어붙이다가 목표 수정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실패한 쌀 전업농 육성정책이다.
    2004년 정부는 ‘농업·농촌종합대책’을 수립하면서 6ha 수준의 쌀 전업농 7만호를 2013년까지 육성하여 전체 쌀 생산량의 50% 이상을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목표 시한이 4년 지난 2017년 기준으로 볼 때에도, 6ha 이상의 쌀 전업농은 1만6,253호로 목표의 23.2%에 지나지 않고, 생산량에서도 전체 생산량의 21.5%로 당초 50% 목표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산비를 대폭 절감한다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직접생산비 등의 증가로 전체 생산비가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이다.
    농업정책이 설계주의 방식으로 추진됐다면, 농촌지역개발정책은 설계주의에 더해 공모 방식으로 추진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다. 정부는 “농촌마을의 경관개선, 생활환경 정비, 주민 소득기반 확충 등을 통해 살고 싶고, 찾고 싶은 농촌을 조성, 농촌에 희망과 활력을 주기 위해” 2004~2013년에 1,000개의 선도적 권역을 선정하여 개소당 평균 70억원씩 지원하겠다고 했다(총 7조원 사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사업은 2013년까지 460개 권역에서 실행됐지만 가장 대표적인 농정 실패 사례로 꼽힌다.
    그 이유야 여럿이지만, 이 사업이 형식적인 상향식 접근인 공모주의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즉,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개발대상지역 선정 공모과정에서 예비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여 제출하고, 선정 이후에는 권역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하도록 했다. 말이 상향식이지 대상 마을의 대부분은 70억원짜리 사업의 예비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거나 시행할 역량이 없다. 결국 컨설팅업체들이 돈을 받고 멋진 계획을 세워 선정이 되는데, 정작 주민들은 무슨 사업인지조차 잘 모른다.
    마치 미인 선발대회에 나간 딸이 미장원에서 예쁘게 성형 시켜서 미인에 뽑히기는 했는데, 집에 돌아온 딸을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못 알아보는 것과 같다. 지자체는 중앙정부 사업이니 예산을 따와서 계획서대로 집행하면 그만이다. 권역에 속한 마을은 마을대로, 주민은 주민대로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면서 사이좋던 동네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농정 예산 확대 위해 국민 공감대 얻어야

    농정 틀 전환과 농정 재정 개혁을 위해서는 우선 현재 예산 가운데 농업・농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예산을 찾아서 줄여야 한다. 기존 사업을 그대로 두면서 새로운 예산을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농정 틀 전환이나 재정 개혁이 될 수 없다. 기존의 잘못된 농정을 고착화시킬 뿐이다.
    농정 재정을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와 다원적 기능 중심으로 재편하고, 농정추진체계를 중앙집권적 설계주의에서 지방분권적 자치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농정 예산을 늘려도 농업・농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해 농정 예산은 날로 쪼그라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것은 농정 예산이 좁은 의미에서는 농식품부나 해양수산부의 예산이지만,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가 농어촌에 대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사업과 예산규모가 대단히 포괄적이고 크다. 이 글에서는 일단 농식품부의 예산을 중심으로 다뤘으나, 농정 재정을 국가 전체 예산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노자 도덕경을 빌려 소빈(素牝)이란 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소는 소박함, 꾸밈없음이고, 빈은 대지, 뭇 생명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소빈은 조선인의 소복과도 같은 흙을 의미한다.” <가보세>는 “새야 새야”와 함께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널리 불러졌던 참요입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농어민이 행복하여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더 지체하지 말고 함께 가보자는 염원을 담아봅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기획-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3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