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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한꺼번에 죄다 이루려 말라  | 김성훈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 전 농림부 장관, 지역재단 고문 
    • 작성일2020/03/05 10:22
    • 조회 391
    한꺼번에 죄다 이루려 말라
    | 김성훈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전 농림부 장관/지역재단 고문 


    한꺼번에 죄다 이루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낭패(狼狽)가  다름아닌 성급하고 과도한 개혁의 실패 교훈이다. 이는 조선왕조 초기 개혁가 정도전(鄭道傳)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또는 중종 때의 성리학자 조광조(趙光祖)등 사림(士林)들의 개혁시도가 왜 무산됐는지를 곱씹어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혁명이 아닌, 개혁이 성공하려면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 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하고 공감하는 부분부터 착수하여 단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우군(友軍)을 계속 확보하면서 반대세력이 커지지 않도록 치밀하여야 개혁이 성공한다. 특히 민주적으로 개혁코자 할 때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철칙이다. 
    개(改)혁(革)이란 문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일이다. 피를 최소로 흘리면서 가죽을 벗겨 가는 과정에서 한꺼번에 죄다 이루려는 과욕이 발생하면 우군은 줄어들고 반군이 늘어난다. 죽은 척 숨을 죽이고 있던 기득권 세력들이 이 때다 하여 짐짓 다른 색깔의 반기를 들고 일어나 개혁을 뒤집어 버린다. 기득권층의 반동세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개혁세력의 과욕과 성급함이 그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

    과욕 버리고 치밀해야 개혁 성공

    최근의 제2단계 농협개혁 사태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실패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이명박 대통령의 호통 한마디로 발단이 된 농협개혁은 애당초 역대 농협 회장들의 잇단 비리행위가 지배구조의 경직성 때문이었다고 진단한 데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이것부터 고치고 볼 일이다. 그런 다음에 「국민의 정부」시절 못 다한 개혁과제들을 하나 둘 고쳐 나가야 할 일이다. 알다시피 오늘날 농협구조와 운영만 제대로 개혁해 냈어도 농업·농민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세계에서 제일 땅값이 비싼 영세 소규모 농업으로서는 탐욕투성이의 세계화 개방체제를 뛰어넘기가 지난(至難)하다. 그래서 협동을 통한 규모의 경제성(Economy of scale)을 키우기 위해 농협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개혁의제 가운데 하나가 비경제적인 중앙회의 비대화와 회장직의 권력화 해소이다. 그밖에도 지지부진한 유통사업 원인 제거, 단위조합 영세화와 난립 해결, 옥상 옥과 같은 중간단위 조직정비, 신용과 경제사업의 분리 또는 효율화 도모, 그리고 농정실패와 맞물려 있는 비농민화된 농협사업 개혁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과욕이 앞설 때 기득권층은 그에 비례하여 반개혁적인 반대 움직임을 눈덩이처럼 키운다.
    지금 농협에는 회장이 몇 명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수군대고들 있다. 분명히 회장은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농협을 개혁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음에도 딴전을 피우는 사람들이 사보타주하거나 반대의 불을 지핀다. 기십억원의 농민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국계 용역회사에 바치고 얻어 낸 용도 불명의 금융개혁보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전면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 농협개혁위원회에조차 원본 공개를 기피하고 요약 구두보고만 형식적으로 행하였다고 한다. 몇몇 딴전을 피우는 사람들만 그 내용을 알고 쉬쉬하며 뭉개고 있어서야 신·경분리 등 농협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2000년 7월1일, 당시 대통령 내외가 임석한 제1단계 농협개혁 완수 보고회 때 발표된 제2단계 농협개혁 구상 역시 오리무중이다. 제1단계 농협개혁은 세 개의 중앙회로 분리된 농업, 축산, 인삼협동조합 중앙회의 조직을 하나로 대폭 축소 통합하는데 그쳤지만, 제2단계 개혁에서는 농민조합원들이 피부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중앙회 조직을 개편하고 유통사업을 강화하고 일선조직을 통합하여 농민조합원이 실익을 최대로 키워 내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 1단계 개혁조치의 미흡함이 지금의 추가적인 개혁요구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그 반성의 토대 위에서 이 정부의 농협개혁안이 발단되었음에도 지금 그 개혁기조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득권층 사력을 다해 ‘반대로비’

    그것은 개혁방향과 내용, 그리고 단계별 실천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개혁해 내려는 과잉의욕에 대하여 기득권 세력이 사력을 다해 자기이익을 지키려고 반대로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말씀 따로이고, 회장과 임원들의 속셈이 따로이며, 개혁위 위원들 간의 이해가 따로 있고, 입법의원들의 이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관료들의 컴미트멘트(확고한 의지, commitments)가 부재하니 우왕좌왕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우군은 차츰 줄어들고 반군은 우후죽순처럼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번에는 또 누가 국회의사당에서 ‘배를 째는’ 영웅주의적 돌출행위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야금야금 FTA다,  WTO개방이다, 가격폭락이다 하여 농민들은 빚더미에 파묻혀 마냥 신음하고 있는데 고액의 월급을 받는 소위 협동조합 조직만 비대해진다고 농업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껍데기 버리고 알맹이만 골라야

    이쯤에서 농협개혁위는 잠시 멈추고 그 시작점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 자문자답부터 먼저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협동조합 개혁인가. 그리고 무엇을 위한 협동조합 개혁이어야 하는가. 사이비 관료, 사이비 농협간부, 사이비 농민지도자를 가려서 문제의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 껍데기들을 불어 내버리고 알맹이만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실천해 낼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제발 한꺼번에 모두를 해내려는 과욕을 버리고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슬기를 발휘하기 바란다. 잘못하면 용두사미, 태산명동에 출서일필격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