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인생 3모작의 소리 | 김성훈 환경정의시민연대 고문, 전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10:20
- 조회 372
워낭소리, 인생 3모작의 소리
| 김성훈 환경정의시민연대 고문, 전 농림부 장관
한창 혈기가 왕성했던 청년시절 나는 타이완(臺灣)의 두 농촌지방 창화(彰化)와 쟈이 (嘉義)라는 곳에서 3개월 동안 견습농민 생활을 체험한 적이 있다. 국제 농촌청소년교환계획(IFYE)에 따라 농가에서 현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 체험을 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 눈치와 몇 마디 한자(漢字)와 콩글리쉬가 의사소통 수단의 전부였다.
그래도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따뜻한 인정, 서로간의 애정(愛情)과 믿음이 언제나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국의 낯선 땅에서도 서로 간에 알아주고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현란한 말재주와 제스추어 그리고 돈과 물질과 기술보다도 더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였다. 사람살이(人生)에서 사랑과 믿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따뜻한 인정이 소망보다도, 더 중요하고, 사랑과 믿음이 웅장한 야심보다도 더 먼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랑과 믿음이 가장 소중한 자산
대만이 아열대지방이어서 2모작은 기본이고 농가에 따라서는 3모작, 4모작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을 보며 기후환경이 좋기 때문이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 근면성 그리고 기술과 경제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속된 말로 농사란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 여러 조건과 환경이 맞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수지(收支) 맞는 농업’이라는 이윤 개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 농촌에선 돈이 되지 않는 2모작 농사가 사라졌다. 겨울철 푸른 들판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농촌에서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대하던 친근한 작물과 가축들이 지금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워낭소리’도 뚝 끊긴 지 오래다.
요즘 저예산 독립영화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워낭소리’를 보았는가. “소 팔아, 팔아!”라고 다그치는 할머니의 성화에도 끄떡 않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너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40여년을 봉화 산골에서 한 마리, 부리는(일하는) 소에 의지해 농사지으며 아들, 딸 성가시키고, 그 소에게 맛있고 안전한 풀을 베어 먹이려 ‘손쉬운 농약 치는 농사’를 끝까지 거부한 8순 노인의 소 사랑이야기.
낭군이 농약치고 기계 쓰는 손쉬운 농사를 거부하며 사서하는 고통이 그 놈의 늙은 소 때문이라 믿고 있는 할머니는 “소 팔아, 팔아!”라고 성화를 댄다. 그 소리가 마치 사방에서 “논밭 팔아, 농사 그만둬, 농촌 떠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오해일까? 우리 농업을 가리켜 가격이 비싸 이익이 별로 나지 않느니, 국제경쟁력이 낮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느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니 하는 소리가 바로 그 성화소리가 아닌가.
8순 노인의 소 사랑이 준 깨달음
무릇 농업·농촌은 하늘과 통하고 땅과 물, 자연과 소통하며 두고두고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道理)이다. 천직이요, 생업(生業)인 것이다! 돈으로 따져 수지를 따지기만 할 바에야 국민을 모두 장사꾼이나 실업수당을 받는 실직자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농업·농촌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들이 하늘의 뜻에 따라 생명을 창조해 내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세계가 있다. 천직인 양 그 일을 묵묵히 행하는 사람들의 주름 잡힌 얼굴에 화사한 햇살이 따뜻이 찾아 들고 있다.
농업은 경제, 경영의 대상이기 이전에 삶의 한 방식이며 문화적 정신적 밑뿌리인 것이다. 농민을 땅에서 몰아내고 농업을 죽이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그건 바로 반환경·반생태·반인간적인 정책임을 알아야 한다. 천륜(天倫)을 어기는 행위이다. 그 대가가 다름 아닌 자연의 위대한 보복이다. 지금 전국의 대도시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아토피 천식 비염 당뇨병 등 각종 환경성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민초들을 보라! 아니 부자일수록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기 자신과 자손들이 입고 있고 입을 피해를 생각해 보라.
아직도 우리 농촌엔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생물학적으로 개량하여 생산성도 높이고 환경생태계도 살리며 먹는 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살피는 보살같은 농업인들이 수두룩하다. 화학농법을 거부하며 이윤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 순박한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친환경 유기농법에 전통적인 발효 가공식품으로 망외(望外)의 재미도 쏠쏠이 보는 농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벤처농업이니 신지식농민이니 뭐라고 명명하든 농업은 점점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요가 있고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와 정권의 호의에 매달리기보다 소비자를 감동시켜 국민을 움직이는 생명농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호남의 들판에도 봉화의 산골에도 이 땅의 착한 농민, 정직한 농업인들에게 하늘은 서서히 서광을 비쳐주고 있다.
농민은 생명을 보살피는 ‘보살들’
그동안 그만큼 배불리 먹고 잘 살았으면 이제 남은 인생을 생명살리기, 어려운 사람돌보기, 하늘과 자연의 뜻에 순종하기를 시늉이라도 시도할 때가 아닌가. 그것이 3모작 또는 4모작 인생이었으면 그 얼마나 좋을까! 아, 옛사람들은 어찌하여 인생 70을 고희(古稀)라 이름하였던가. 그만큼 오래 살았으면 그런 만큼은 세상에 돌려주고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생각하는 것이 3모작 인생의 시작이었으면 싶다. 살아가면서 뭇 생령들을 보살피지 못했으면 여생이라도 그들을 돌보며, 못다 한 책무를 이행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3모작 또는 4모작 인생이라고 감히 정의 내리고 싶다. 바로 이것이 워낭소리가 나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서로 인정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라고.
| 김성훈 환경정의시민연대 고문, 전 농림부 장관
한창 혈기가 왕성했던 청년시절 나는 타이완(臺灣)의 두 농촌지방 창화(彰化)와 쟈이 (嘉義)라는 곳에서 3개월 동안 견습농민 생활을 체험한 적이 있다. 국제 농촌청소년교환계획(IFYE)에 따라 농가에서 현지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장 체험을 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 눈치와 몇 마디 한자(漢字)와 콩글리쉬가 의사소통 수단의 전부였다.
그래도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따뜻한 인정, 서로간의 애정(愛情)과 믿음이 언제나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국의 낯선 땅에서도 서로 간에 알아주고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것이 현란한 말재주와 제스추어 그리고 돈과 물질과 기술보다도 더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하였다. 사람살이(人生)에서 사랑과 믿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하여튼 따뜻한 인정이 소망보다도, 더 중요하고, 사랑과 믿음이 웅장한 야심보다도 더 먼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랑과 믿음이 가장 소중한 자산
대만이 아열대지방이어서 2모작은 기본이고 농가에 따라서는 3모작, 4모작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을 보며 기후환경이 좋기 때문이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지, 근면성 그리고 기술과 경제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속된 말로 농사란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 여러 조건과 환경이 맞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수지(收支) 맞는 농업’이라는 이윤 개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 농촌에선 돈이 되지 않는 2모작 농사가 사라졌다. 겨울철 푸른 들판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농촌에서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 대하던 친근한 작물과 가축들이 지금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워낭소리’도 뚝 끊긴 지 오래다.
요즘 저예산 독립영화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워낭소리’를 보았는가. “소 팔아, 팔아!”라고 다그치는 할머니의 성화에도 끄떡 않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너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40여년을 봉화 산골에서 한 마리, 부리는(일하는) 소에 의지해 농사지으며 아들, 딸 성가시키고, 그 소에게 맛있고 안전한 풀을 베어 먹이려 ‘손쉬운 농약 치는 농사’를 끝까지 거부한 8순 노인의 소 사랑이야기.
낭군이 농약치고 기계 쓰는 손쉬운 농사를 거부하며 사서하는 고통이 그 놈의 늙은 소 때문이라 믿고 있는 할머니는 “소 팔아, 팔아!”라고 성화를 댄다. 그 소리가 마치 사방에서 “논밭 팔아, 농사 그만둬, 농촌 떠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의 오해일까? 우리 농업을 가리켜 가격이 비싸 이익이 별로 나지 않느니, 국제경쟁력이 낮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느니, 밑빠진 독에 물붓기니 하는 소리가 바로 그 성화소리가 아닌가.
8순 노인의 소 사랑이 준 깨달음
무릇 농업·농촌은 하늘과 통하고 땅과 물, 자연과 소통하며 두고두고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道理)이다. 천직이요, 생업(生業)인 것이다! 돈으로 따져 수지를 따지기만 할 바에야 국민을 모두 장사꾼이나 실업수당을 받는 실직자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인가. 농업·농촌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들이 하늘의 뜻에 따라 생명을 창조해 내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세계가 있다. 천직인 양 그 일을 묵묵히 행하는 사람들의 주름 잡힌 얼굴에 화사한 햇살이 따뜻이 찾아 들고 있다.
농업은 경제, 경영의 대상이기 이전에 삶의 한 방식이며 문화적 정신적 밑뿌리인 것이다. 농민을 땅에서 몰아내고 농업을 죽이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그건 바로 반환경·반생태·반인간적인 정책임을 알아야 한다. 천륜(天倫)을 어기는 행위이다. 그 대가가 다름 아닌 자연의 위대한 보복이다. 지금 전국의 대도시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아토피 천식 비염 당뇨병 등 각종 환경성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민초들을 보라! 아니 부자일수록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기 자신과 자손들이 입고 있고 입을 피해를 생각해 보라.
아직도 우리 농촌엔 조상 대대로의 농법을 생물학적으로 개량하여 생산성도 높이고 환경생태계도 살리며 먹는 이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살피는 보살같은 농업인들이 수두룩하다. 화학농법을 거부하며 이윤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 순박한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친환경 유기농법에 전통적인 발효 가공식품으로 망외(望外)의 재미도 쏠쏠이 보는 농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벤처농업이니 신지식농민이니 뭐라고 명명하든 농업은 점점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요가 있고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젠 정부와 정권의 호의에 매달리기보다 소비자를 감동시켜 국민을 움직이는 생명농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호남의 들판에도 봉화의 산골에도 이 땅의 착한 농민, 정직한 농업인들에게 하늘은 서서히 서광을 비쳐주고 있다.
농민은 생명을 보살피는 ‘보살들’
그동안 그만큼 배불리 먹고 잘 살았으면 이제 남은 인생을 생명살리기, 어려운 사람돌보기, 하늘과 자연의 뜻에 순종하기를 시늉이라도 시도할 때가 아닌가. 그것이 3모작 또는 4모작 인생이었으면 그 얼마나 좋을까! 아, 옛사람들은 어찌하여 인생 70을 고희(古稀)라 이름하였던가. 그만큼 오래 살았으면 그런 만큼은 세상에 돌려주고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생각하는 것이 3모작 인생의 시작이었으면 싶다. 살아가면서 뭇 생령들을 보살피지 못했으면 여생이라도 그들을 돌보며, 못다 한 책무를 이행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3모작 또는 4모작 인생이라고 감히 정의 내리고 싶다. 바로 이것이 워낭소리가 나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서로 인정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