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나를 처벌해달라 | 김성훈 상지대 총장, 지역재단 고문
- 작성일2020/03/05 10:16
- 조회 399
차라리 나를 처벌해달라
| 김성훈 상지대 총장, 지역재단 고문
지난해 연말 국무총리실로부터 내려온 지시에 따라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2004년 ‘쌀소득보전 직불제’를 설계한 당시 김모 과장과 최모 사무관을 직위해제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한다.
쌀직불금 설계자 징계 ‘쓴웃음’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조치가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책 실패 결과에 대하여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책임을 물은 적이 없던 이 정부가 이미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시효가 훨씬 지난 쌀 직불금 사안에 대하여만 눈을 부릅뜨고 짐짓 화난 채 하는 것은 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치 한 여름밤 열대야(熱帶夜)현상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나릿님께서 모기님을 보고 시퍼런 칼을 뽑아 드는(見蚊拔劍)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징계의 당위성을 논하려면 이 제도가 어떻게 우리나라 농정에 도입됐는지 그 전말과 목적, 그리고 그 성격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쌀직불금제도는 1999년 국민의 정부시절 당시 농림부장관이 내각에서 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해 채택되었다. 상당한 우여곡절과 심한 진통 끝에 마침내 그해 국무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2002년부터 실시하겠다는 예산관계 장관의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1995년 발족한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국들로 하여금 농산물 가격보조와 생산비 지원을 하지 않도록 하는 대신 농가소득을 직접 보상하는 직접지불(Direct Payment)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EU, 미국 등 선진국들은 WTO가 발족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종래의 가격 및 생산비 보조금액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여 소득직불제도방식으로 농가지원을 강화하고 나섰다. 심지어 미국 등 일부 국가는 합법이 아닌 방식으로 수출진흥금액마저 오히려 늘려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농가소득보상 성격의 직불금제도는 국제규범상 공인된 표준제도로 정착되었다. 그런대도 유독 대한민국 정부들만이 WTO 의무이행(가격 및 생산비 보조 중단)은 신속하고 성실히 이행했으나, 권리행사(직불제 도입)는 차일피일 미뤄왔던 터였다. 그 이유는 뻔했다. WTO를 핑계로 깡그리 농업보조예산을 삭감할 수 있게 된 마당에 다시 소득직불금으로 농업지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농림부는 전략상 논농업직접지불금제도를 먼저 주장하기 전에 예산지원 규모가 훨씬 적은 친환경농업지원 직불금제도를 제안하여 일단 1999년부터 실시하였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논농업직불제를 도입하는데는 WTO와 예산 당국을 설복시킬 논리가 필요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논농업의 공익적 기능’이었다. 최근 창녕·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총회에서도 재확인된 논과 습지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나아가서 농약과 비료 등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환경보호와 소비자 및 농민의 공익을 배가하자는 목적이 쌀 직불제도의 도입 이유로 제시되었다. 제일 먼저 이 취지에 공감하신 분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반대하던 경제수석과 예산 및 경제관계 장관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단 시행 준비관계로 1년을 늦춰 2002년부터 실시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와는 직불제 품목만 다를 뿐 100% WTO 규범에 합치되는 국제표준제도가 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농지의 투기화’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4년 기왕의 ‘논농업직불제’에 추가하여 쌀 가격의 변동폭을 교정하고자 변동가격직불제를 보탠 것이 다름아닌 ‘쌀소득보전 직불제’인 것이다. 즉 쌀소득보전직불제는 당초의 논농업직불제를 한층 강화해 더욱 알차게 보완한 것이다. 문제는 대선을 치른 후 급격히 악화된 농지제도의 문란과 투기성 논거래의 성행으로 직불금을 수령할 대상자가 모호해졌을 뿐만 아니라 도회지에 사는 불법 농지소유주들 위주로 편의를 봐주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양도세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불법 수령자가 양산되었다.
요컨대 불법적인 직불금 수령행위 발생은 쌀 직불제도의 모순 때문이라기보다는 투기적 소유를 부추긴 논을 비롯한 농지제도의 해이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농지투기자들이 대부분 우리나라의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말 국회는 쌀 직불금 불법수령에 관한 국정조사 특위까지 구성해 놓고서도 그들을 옹호하는 여야간의 정쟁 때문에 불법수령공무원의 명단마저 공개하지 못하고 청문회도 개최하지 못했다.
애꿎은 희생양 만들어선 안돼
근본적으로 쌀직불금 불법 행위를 막으려면 헌법정신에 따라 농지제도를 바로 잡는 것이 그 첫째이다. 불법 직불금 수령행위를 발본색원하는 정답(正答)은 문란해진 농지제도를 선진국형으로 고쳐 공익성을 갖는 농지에 대하여서는 철저히 투기적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2004년 재개정된 쌀소득보전직불제를 누가 설계했느냐고 징계하겠다면 먼저 쌀직불금제도를 어느 정부에서 누가 주도하여 관철시켰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1999년 DJ 정부의 당시 농림장관이었던 바로 이 사람이다.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어느 때부터 누가 농지제도를 공직자를 비롯한 투기꾼들이 양산되도록 풀어 주었는지를 따지든지 해아지 애꿎게 상관 지시에 순응하여 WTO가 허용하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기안한 공무원들을 문책하려해서는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정부와 국회가 정답을 알면서도 구태여 발뺌을 할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세월을 거슬러 이 제도의 법률적 원조격인 이 사람부터 처벌해야 한다.
다음 달에 두명의 선량한 공무원을 희생양을 만들고자 열릴 예정인 징계위원회에 대하여 감히 부탁한다. 제발 이 사람을 불러 쌀직불제의 시시비비를 떳떳이 물어 달라. 그리고 처벌하고 싶으면 공개적으로 나를 처벌해 달라.
*2009년 글
[출 처 : 한국농정신문]
| 김성훈 상지대 총장, 지역재단 고문
지난해 연말 국무총리실로부터 내려온 지시에 따라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2004년 ‘쌀소득보전 직불제’를 설계한 당시 김모 과장과 최모 사무관을 직위해제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한다.
쌀직불금 설계자 징계 ‘쓴웃음’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조치가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책 실패 결과에 대하여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책임을 물은 적이 없던 이 정부가 이미 국가공무원법상 징계시효가 훨씬 지난 쌀 직불금 사안에 대하여만 눈을 부릅뜨고 짐짓 화난 채 하는 것은 딴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마치 한 여름밤 열대야(熱帶夜)현상 때문에 잠을 못 이룬 나릿님께서 모기님을 보고 시퍼런 칼을 뽑아 드는(見蚊拔劍)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징계의 당위성을 논하려면 이 제도가 어떻게 우리나라 농정에 도입됐는지 그 전말과 목적, 그리고 그 성격이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쌀직불금제도는 1999년 국민의 정부시절 당시 농림부장관이 내각에서 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해 채택되었다. 상당한 우여곡절과 심한 진통 끝에 마침내 그해 국무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2002년부터 실시하겠다는 예산관계 장관의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1995년 발족한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국들로 하여금 농산물 가격보조와 생산비 지원을 하지 않도록 하는 대신 농가소득을 직접 보상하는 직접지불(Direct Payment)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EU, 미국 등 선진국들은 WTO가 발족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종래의 가격 및 생산비 보조금액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여 소득직불제도방식으로 농가지원을 강화하고 나섰다. 심지어 미국 등 일부 국가는 합법이 아닌 방식으로 수출진흥금액마저 오히려 늘려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농가소득보상 성격의 직불금제도는 국제규범상 공인된 표준제도로 정착되었다. 그런대도 유독 대한민국 정부들만이 WTO 의무이행(가격 및 생산비 보조 중단)은 신속하고 성실히 이행했으나, 권리행사(직불제 도입)는 차일피일 미뤄왔던 터였다. 그 이유는 뻔했다. WTO를 핑계로 깡그리 농업보조예산을 삭감할 수 있게 된 마당에 다시 소득직불금으로 농업지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농림부는 전략상 논농업직접지불금제도를 먼저 주장하기 전에 예산지원 규모가 훨씬 적은 친환경농업지원 직불금제도를 제안하여 일단 1999년부터 실시하였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논농업직불제를 도입하는데는 WTO와 예산 당국을 설복시킬 논리가 필요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논농업의 공익적 기능’이었다. 최근 창녕·창원에서 열린 람사르 총회에서도 재확인된 논과 습지의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고 나아가서 농약과 비료 등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환경보호와 소비자 및 농민의 공익을 배가하자는 목적이 쌀 직불제도의 도입 이유로 제시되었다. 제일 먼저 이 취지에 공감하신 분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그토록 반대하던 경제수석과 예산 및 경제관계 장관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단 시행 준비관계로 1년을 늦춰 2002년부터 실시하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와는 직불제 품목만 다를 뿐 100% WTO 규범에 합치되는 국제표준제도가 되었다.
문제의 본질은 ‘농지의 투기화’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04년 기왕의 ‘논농업직불제’에 추가하여 쌀 가격의 변동폭을 교정하고자 변동가격직불제를 보탠 것이 다름아닌 ‘쌀소득보전 직불제’인 것이다. 즉 쌀소득보전직불제는 당초의 논농업직불제를 한층 강화해 더욱 알차게 보완한 것이다. 문제는 대선을 치른 후 급격히 악화된 농지제도의 문란과 투기성 논거래의 성행으로 직불금을 수령할 대상자가 모호해졌을 뿐만 아니라 도회지에 사는 불법 농지소유주들 위주로 편의를 봐주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양도세 감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면서 불법 수령자가 양산되었다.
요컨대 불법적인 직불금 수령행위 발생은 쌀 직불제도의 모순 때문이라기보다는 투기적 소유를 부추긴 논을 비롯한 농지제도의 해이현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농지투기자들이 대부분 우리나라의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과 가진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말 국회는 쌀 직불금 불법수령에 관한 국정조사 특위까지 구성해 놓고서도 그들을 옹호하는 여야간의 정쟁 때문에 불법수령공무원의 명단마저 공개하지 못하고 청문회도 개최하지 못했다.
애꿎은 희생양 만들어선 안돼
근본적으로 쌀직불금 불법 행위를 막으려면 헌법정신에 따라 농지제도를 바로 잡는 것이 그 첫째이다. 불법 직불금 수령행위를 발본색원하는 정답(正答)은 문란해진 농지제도를 선진국형으로 고쳐 공익성을 갖는 농지에 대하여서는 철저히 투기적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2004년 재개정된 쌀소득보전직불제를 누가 설계했느냐고 징계하겠다면 먼저 쌀직불금제도를 어느 정부에서 누가 주도하여 관철시켰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1999년 DJ 정부의 당시 농림장관이었던 바로 이 사람이다.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려면 어느 때부터 누가 농지제도를 공직자를 비롯한 투기꾼들이 양산되도록 풀어 주었는지를 따지든지 해아지 애꿎게 상관 지시에 순응하여 WTO가 허용하는 쌀소득보전직불제를 기안한 공무원들을 문책하려해서는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정부와 국회가 정답을 알면서도 구태여 발뺌을 할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세월을 거슬러 이 제도의 법률적 원조격인 이 사람부터 처벌해야 한다.
다음 달에 두명의 선량한 공무원을 희생양을 만들고자 열릴 예정인 징계위원회에 대하여 감히 부탁한다. 제발 이 사람을 불러 쌀직불제의 시시비비를 떳떳이 물어 달라. 그리고 처벌하고 싶으면 공개적으로 나를 처벌해 달라.
*2009년 글
[출 처 : 한국농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