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개혁문제의 본질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 , 지역재단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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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개혁문제의 본질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이사장
1988년의 중앙회장 및 조합장직선제도입 이후 정권교체 때마다 통과의례로 반복되어온 농협개혁문제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사안이 한층 심각하고 강도가 높아진 특징이지만 그 성공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전임 중앙회장의 현대차관련사건 확정판결로 새 회장이 들어서면서 농협주도 개혁안이 나왔고 정부의 농협법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공청회에 부쳐지는 과정에서 거의 알맹이가 빠져버린 전례를 답습했던 것이 불과 두달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종증권 인수와 자회사 휴켐스 매각을 둘러싼 대규모 비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호된 질책이 나왔던 12월 4일 이후 정부는 또다시 2월 임시국회에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신,경분리)문제를 제외한 농협법개정을 마무리한다는 일정아래 12월 9일부터 민관합동 농협개혁위원회를 가동한 지 꼭
한달만인 지난 8일 사실상 정부안인 위원회안을 발표한데에 이어 오는 2월말까지 신,경분리관련 논의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정부 위원회안이 나오기 하루 전인 7일에는 농협중앙회장의 조합원과 국민에 대한 사죄와 함께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자체개혁안의 골격이 발표되었으며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2~3월 중에 짜여진다고 한다. 정부안 발표 직전에 거의 비슷한 내용의 농협자체개혁방안이 나온데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급한대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숨은 계산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의 질책으로 꺼져가던 개혁불씨를 되살려 놓은 형국인 최근 한 달 남짓 사이에 정부와 농협 양쪽이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① 중앙회장의 권한축소와 이사회기능의 활성화 ② 회원조합의 합병촉진과 농업인의 조합선택권 부여 ③ 품목별조합 육성과 조합공동사업법인의 활성화 등 경제사업 강화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회 및 회원조합의 지배구조 개선, 영세․적자구조의 회원조합 규모화와 전문화, 신용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제사업의 강화 등이 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농협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데 있어 중요한 개혁과제에 속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이들 몇가지 아젠다를 담은 법개정만으로 정책사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태생적 한계, ‘공룡’ 중앙회가 ‘약체’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는 ‘농협관료주의’, 조합원의 주인의식 결여에서 오는 ‘임직원을 위한 조합’ 이라는 농협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그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1907년 통감부 시절 지방금융조합에서 출발한 우리 농협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제도개편과정에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정부-중앙회-회원조합-조합원’ 간의 관계가 재조정되어왔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간에는 각종정책사업과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농정하부기구의 역할에 따른 과도한 정부의존적 체질이 온존되어왔으며, 중앙회와 회원조합 사이에는 중앙회의 거대한 권한과 조직이 회원조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관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합의 주인인 농민조합원들은 낮은 의식수준과 조합사업참여유인의 결여로 조합운영에 무관심한 채 조합은 ‘임직원을 위한 신이 내린 직장’ 으로 일컬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로 전락하고 있다.
농협개혁이 참으로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질책으로 한달 사이에 몇가지 과제를 담은 개혁안을 서둘러 마련하여 불과 두달사이에 법개정을 완료하는 식의 성급한 접근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체계적,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진지한 설득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21세기 한국 농업,농촌의 도약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농협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기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농협이 센지 내가 센지’ 두고 보자고 했던 전임대통령의 처참한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1990년대 이래 3대에 걸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한결같이 이루지 못한 농협개혁에 사활을 건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어 벼랑에 선 우리 농업․농촌을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을 포함해서 개혁과정에 가로놓여있는 수많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에 스스로 앞장서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09년 1월
출 처 : 서울신문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이사장
1988년의 중앙회장 및 조합장직선제도입 이후 정권교체 때마다 통과의례로 반복되어온 농협개혁문제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사안이 한층 심각하고 강도가 높아진 특징이지만 그 성공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전임 중앙회장의 현대차관련사건 확정판결로 새 회장이 들어서면서 농협주도 개혁안이 나왔고 정부의 농협법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공청회에 부쳐지는 과정에서 거의 알맹이가 빠져버린 전례를 답습했던 것이 불과 두달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종증권 인수와 자회사 휴켐스 매각을 둘러싼 대규모 비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호된 질책이 나왔던 12월 4일 이후 정부는 또다시 2월 임시국회에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신,경분리)문제를 제외한 농협법개정을 마무리한다는 일정아래 12월 9일부터 민관합동 농협개혁위원회를 가동한 지 꼭
한달만인 지난 8일 사실상 정부안인 위원회안을 발표한데에 이어 오는 2월말까지 신,경분리관련 논의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정부 위원회안이 나오기 하루 전인 7일에는 농협중앙회장의 조합원과 국민에 대한 사죄와 함께 ‘농협을 농업인에게 돌려주기 위한’ 자체개혁안의 골격이 발표되었으며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2~3월 중에 짜여진다고 한다. 정부안 발표 직전에 거의 비슷한 내용의 농협자체개혁방안이 나온데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급한대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숨은 계산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의 질책으로 꺼져가던 개혁불씨를 되살려 놓은 형국인 최근 한 달 남짓 사이에 정부와 농협 양쪽이 내놓은 개혁안의 핵심은 ① 중앙회장의 권한축소와 이사회기능의 활성화 ② 회원조합의 합병촉진과 농업인의 조합선택권 부여 ③ 품목별조합 육성과 조합공동사업법인의 활성화 등 경제사업 강화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회 및 회원조합의 지배구조 개선, 영세․적자구조의 회원조합 규모화와 전문화, 신용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제사업의 강화 등이 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농협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데 있어 중요한 개혁과제에 속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이들 몇가지 아젠다를 담은 법개정만으로 정책사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태생적 한계, ‘공룡’ 중앙회가 ‘약체’ 회원조합 위에 군림하는 ‘농협관료주의’, 조합원의 주인의식 결여에서 오는 ‘임직원을 위한 조합’ 이라는 농협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그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1907년 통감부 시절 지방금융조합에서 출발한 우리 농협은 지난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제도개편과정에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정부-중앙회-회원조합-조합원’ 간의 관계가 재조정되어왔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간에는 각종정책사업과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농정하부기구의 역할에 따른 과도한 정부의존적 체질이 온존되어왔으며, 중앙회와 회원조합 사이에는 중앙회의 거대한 권한과 조직이 회원조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관료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합의 주인인 농민조합원들은 낮은 의식수준과 조합사업참여유인의 결여로 조합운영에 무관심한 채 조합은 ‘임직원을 위한 신이 내린 직장’ 으로 일컬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로 전락하고 있다.
농협개혁이 참으로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질책으로 한달 사이에 몇가지 과제를 담은 개혁안을 서둘러 마련하여 불과 두달사이에 법개정을 완료하는 식의 성급한 접근이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체계적,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진지한 설득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21세기 한국 농업,농촌의 도약에 순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농협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기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농협이 센지 내가 센지’ 두고 보자고 했던 전임대통령의 처참한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고 1990년대 이래 3대에 걸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한결같이 이루지 못한 농협개혁에 사활을 건 관심과 노력을 쏟아부어 벼랑에 선 우리 농업․농촌을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하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을 포함해서 개혁과정에 가로놓여있는 수많은 걸림돌을 제거하는 작업에 스스로 앞장서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2009년 1월
출 처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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