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 ‘제2의 녹색혁명’이 필요하다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4 18:51
- 조회 414
식량안보, ‘제2의 녹색혁명’이 필요하다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작년 이래 세계경제에 해일처럼 밀어닥친 곡물파동으로 지구촌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동남아의 필리핀, 중남미의 아이티 등 16개 나라에서는 식료품값 폭등으로 소요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네 서민들도 치솟는 밀가루 값과 자장면 값 앞에서 가슴을 졸이다가 쌀값까지 걱정하며, 배고팠던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비추면 거기에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이른바 ‘녹색혁명’의 성공으로 오랜 염원이었던 주곡자급을 달성했던 해가 1977년이니, 그로부터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끼니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새삼 돌이켜 보면 5,000년 우리 역사에서 보릿고개를 겪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불과 최근 한 세대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통계수치로 보면 1960년대 우리나라 쌀농사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이 10a당 309kg에 머물렀던 것이 통일계 다수확 신품종의 보급으로 1977년에는 무려 62%가 늘어난 494kg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에 전국 쌀 생산량은 364만톤에서 596만톤까지 크게 증가했다. 1970년대에 이룩한 한국의 녹색혁명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성공사례로 들어지며 만성적인 쌀부족을 탈피함으로써 국민적 자부심과 국민경제 운영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다수확 신품종의 개발보급을 통한 쌀 증산의 효과는 단순히 주곡자급을 달성한 데에 그치지 않았다. 농기계, 비닐 등 전후방 연관산업의 발전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 사계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즐길 수 있게 한 ‘백색혁명’의 시발점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쌀에 뒤이은 다른 농작물의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우리 농업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성취는 한편으로는 식량증산을 위한 1970년대 초중반의 고미가정책을 통한 경제적 유인의 제공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1960년대 초반의 농촌진흥청 발족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연구개발 투자와 육종학을 중심으로 한 농업과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그후 한 세대가 경과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7%내외에 불과하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외의 식량 생산과 소비 환경이 3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소요되는 곡물을 공급할 수 있는 벼 품종과 생산기술이 절실하였다. 기본적으로 국내의 쌀 증산문제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식량문제는 다양한 국제적 요인이 얽히고 설켜있어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치솟는 곡물가격과 식품가격의 불안은 국제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국내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식인 쌀은 물론 밀, 보리, 콩, 옥수수 및 사료작물까지 포함한 모든 곡물의 안정공급뿐 아니라 지혜로운 소비생활과 비축을 포함한 수요관리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제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식량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우리 농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의 정책노력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먼저, 농산업은 민간기업의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특성을 지니므로 국가차원의 연구개발 투자확대를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우리 농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데 필수요인을 이루는 원천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전문연구인력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현대의 농산업은 지식기반산업의 첨단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선 국내생산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정책지원을 확충하는 동시에 식량자원의 안정공급 확대를 위한 해외 식량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급변하는 시장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품질향상과 더불어 웰빙 추세에 걸맞는 기능성, 친환경 식품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시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녹색혁명’ 성공 이후 30년을 지난 오늘날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식량위기의 와중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안정적인 유지ㆍ발전을 위해서는 ‘제2의 녹색혁명’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이제야말로 法古創新(법고창신), 옛 것을 다시 살피고 익혀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지혜를 가꾸어가야 하겠다. 앞날이 불투명하거나 걱정될수록 가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지난날을 돌이켜 볼 일이다.
*2008년 글입니다.
[출 처 : 농정연구센터]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작년 이래 세계경제에 해일처럼 밀어닥친 곡물파동으로 지구촌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동남아의 필리핀, 중남미의 아이티 등 16개 나라에서는 식료품값 폭등으로 소요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네 서민들도 치솟는 밀가루 값과 자장면 값 앞에서 가슴을 졸이다가 쌀값까지 걱정하며, 배고팠던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비추면 거기에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이른바 ‘녹색혁명’의 성공으로 오랜 염원이었던 주곡자급을 달성했던 해가 1977년이니, 그로부터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끼니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새삼 돌이켜 보면 5,000년 우리 역사에서 보릿고개를 겪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불과 최근 한 세대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통계수치로 보면 1960년대 우리나라 쌀농사의 단위면적당 평균수확량이 10a당 309kg에 머물렀던 것이 통일계 다수확 신품종의 보급으로 1977년에는 무려 62%가 늘어난 494kg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에 전국 쌀 생산량은 364만톤에서 596만톤까지 크게 증가했다. 1970년대에 이룩한 한국의 녹색혁명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성공사례로 들어지며 만성적인 쌀부족을 탈피함으로써 국민적 자부심과 국민경제 운영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다수확 신품종의 개발보급을 통한 쌀 증산의 효과는 단순히 주곡자급을 달성한 데에 그치지 않았다. 농기계, 비닐 등 전후방 연관산업의 발전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 사계절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즐길 수 있게 한 ‘백색혁명’의 시발점을 이루기도 하였다. 또한 쌀에 뒤이은 다른 농작물의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우리 농업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성취는 한편으로는 식량증산을 위한 1970년대 초중반의 고미가정책을 통한 경제적 유인의 제공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1960년대 초반의 농촌진흥청 발족 이래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연구개발 투자와 육종학을 중심으로 한 농업과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그후 한 세대가 경과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7%내외에 불과하고,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5%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외의 식량 생산과 소비 환경이 3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소요되는 곡물을 공급할 수 있는 벼 품종과 생산기술이 절실하였다. 기본적으로 국내의 쌀 증산문제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식량문제는 다양한 국제적 요인이 얽히고 설켜있어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치솟는 곡물가격과 식품가격의 불안은 국제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국내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식인 쌀은 물론 밀, 보리, 콩, 옥수수 및 사료작물까지 포함한 모든 곡물의 안정공급뿐 아니라 지혜로운 소비생활과 비축을 포함한 수요관리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제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식량공급 기반을 확충하고 우리 농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의 정책노력에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먼저, 농산업은 민간기업의 수익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특성을 지니므로 국가차원의 연구개발 투자확대를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둘째, 우리 농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데 필수요인을 이루는 원천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전문연구인력이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현대의 농산업은 지식기반산업의 첨단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선 국내생산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연구개발과 정책지원을 확충하는 동시에 식량자원의 안정공급 확대를 위한 해외 식량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급변하는 시장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품질향상과 더불어 웰빙 추세에 걸맞는 기능성, 친환경 식품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시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녹색혁명’ 성공 이후 30년을 지난 오늘날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식량위기의 와중에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안정적인 유지ㆍ발전을 위해서는 ‘제2의 녹색혁명’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 이제야말로 法古創新(법고창신), 옛 것을 다시 살피고 익혀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지혜를 가꾸어가야 하겠다. 앞날이 불투명하거나 걱정될수록 가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지난날을 돌이켜 볼 일이다.
*2008년 글입니다.
[출 처 : 농정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