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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소멸 대응과 읍·면의 자치권 l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4/09/09 11:24
    • 조회 61
    주민 직선으로 읍·면장을 뽑는다면, 그 역할은 지역의 다양한 조직들과 소통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해서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농촌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이 나왔다. 보도자료를 보니, ‘농촌공간계획에 따라 농촌지역을 재구조화하는 농촌 공간정비를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128개소에 1045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촌지역 내 빈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빈집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주민공동이용 시설로 재활용한다는 내용도 눈에 띈다. 그런데 3군데를 선정해서 3년간 19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농촌 생활인구 유치를 위해 주거, 영농체험공간 및 지역주민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갖춘 체류형 복합단지도 신규로 조성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3군데를 선정해서 3년간 45억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필요한 사업을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어느 세월에 농촌의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농촌공간을 보다 살기 좋고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업추진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의 면이 1137개, 읍이 234개이다. 그런데 지금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으로는 그 중 극히 일부에서만 농촌공간 정비사업이나 빈집 리모델링 사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농촌공간 정비사업이든 빈집 리모델링 사업이든 1개 면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웬만한 면의 면적은 서울의 자치구 하나 보다도 넓다. 그러니 1개 면에서도 몇 개의 행정리만 사업대상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국의 행정리 숫자는 3만7890개에 달한다. 이렇게 광범위한 농촌지역 중에서 일부 지역만 선별적으로 지원해서 농촌공간을 정비하고 빈집을 재활용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사업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사업이고, 모델을 만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모델을 확산하려면, 그에 맞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보편적으로 농촌의 공간정비와 지역 활성화, 생활인프라 개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에 공간정비를 하든 빈집을 재활용하든 생활인프라를 개선하려고 하든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단위는 농촌의 경우 읍·면일 수밖에 없다. 군(郡)은 너무 넓고, 군 내부의 읍·면끼리도 여건과 상황이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군 단위로는 농촌지역 주민들이 참여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읍·면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읍·면을 당장 지방자치단체로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읍장·면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하고 읍·면에 일정한 공간계획권·자율예산권을 부여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작하기 어렵다면, 주민자치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진 지역부터 시범실시를 하고, 이를 확산해나가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제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의 소관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는 아무래도 인구가 쏠려 있는 도시지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읍·면 자치 문제를 풀려면, 국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국회는 행정부처보다는 종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논의가 가능한 곳이다. 그리고 어차피 읍·면장 직선제를 시범실시하려고 해도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시범실시의 근거를 마련하면 될 것이다. 현재 주민자치회도 이 법률에 의해 시범실시를 하고 있다. 만약 국회 차원에서 공론화를 서두른다면,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소수의 지역에서라도 읍·면장 직선제를 시범실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그동안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같은 시도를 해 왔기 때문에, 읍·면장 직선제가 완전히 낯선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1961년 5. 16.쿠데타가 일어나기 이전에는 우리도 읍·면자치를 했고, 읍·면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했었다. 미국, 유럽, 일본도 기본적으로 농촌지역의 지방자치는 읍·면 정도 단위에서 하고 있다.

    만약 주민 직선으로 읍·면장을 뽑는다면, 그 역할은 지역의 다양한 조직들과 소통하고 주민의견을 수렴해서 생활인프라를 개선하고 농촌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모델이 정착되고 확산되면, 현재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사업도 보다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역의 주체가 굳건하게 서야 일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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