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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일본 농촌 지역운영조직(RMO) 연수에서 배운 점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4/08/20 13:38
    • 조회 129
    지역자주조직으로 주민자치 잘 작동
    민간-행정 협력해 생활서비스 생산·공급
    지방·주민자치 성장해야 농촌재생 가능


    일본에서 농촌 지역운영조직(RMO, Regional Management Organization, 이하 농촌RMO)이란 “농촌의 생활 및 삶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고, 지역과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조직”(총무성)을 의미한다.

    주로 초등학교 혹은 공민관 단위로 조직되는데, 우리나라 읍면보다 더 작은, 1914년 부군현(府郡縣) 통폐합 이전의 면(面) 단위가 주된 활동범위가 된다. 여기에 있는 거점공간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생활서비스를 공급하고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한다.

    최근 진행된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농촌RMO 연수에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전국적 논의는 주로 문헌을 참고하여 학습하였고, 농촌RMO의 발상지라고도 불리는 운난시(雲南市)의 8개 사례를 집중적으로 견학하였다. 운난시는 2004년 11월에 6개 정(町)·촌(村) 지자체 합병을 계기로 지역자주조직이라 부르는 농촌RMO를 단계적으로 설립하기 시작하여 2007년에는 30개 지구 모두 완료했다.

    지역자주조직은 ‘소규모 다기능 자치’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소지역 단위로 생활과 생업의 모든 영역에 걸친 종합적 자치조직이다. 조직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지구별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기반하여 다양한 마을만들기 활동이 전개된다.

    예를 들어, 자연재난에 대비한 방재 활동, 구매 난민을 위한 쇼핑 서비스(배달 혹은 상점 운영), 복지시설로의 송영 서비스(차량 운행), 폐교나 온천 등 공유재산의 관리 운영 등은 공통적이다. 공민관은 모두 교류센터로 전환하여 평생학습만이 아니라 지역복지와 지역진흥의 거점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농촌에서 자주 목격하는 선진사례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운영되는 셈이다.

    방문지의 발표자들은 모두 “주민 한 명이라도 살고 있는 한”, “한 명 한 명이 끝까지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고 가능한 범위에서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겁게”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조금은 비장해 보이고, 어쩌면 체념한 것처럼 비치기도 하였다. ‘인구늘리기’ 같은 허황된 목표가 아니라 ‘축소하는 마을’을 당연한 것처럼 예상하며 현재에 충실하려는 낙관적 자세로도 이해되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확인되었던 것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과 다른 역사와 구조 속에 있다는 점이었다. 일본 선진지 견학의 방문기를 접하면 이런 측면을 대체로 무시하고, 활동 자체의 선진성에만 주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무슨 사업 아이템이나 주제만 주목하고, 그것이 가능했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가능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본의 농촌RMO(운난시 지역자주조직)는 차이점이 분명히 확인된다.

    첫째, 농촌RMO는 우리의 읍면(邑面)에 해당하는 정촌(町村) 이하 규모에서 조직되어 활동한다. 운난시는 역사적으로 보면 메이지(1888년경)부터 쇼와(1955년 전후), 헤이세이(2004년 전후)의 대합병을 단계적으로 거쳐 현재처럼 인구 규모가 3만3749명(2024.2.1. 기준)인 지자체가 되었다.

    한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읍과 면이 생긴 이래로 자치단체 스스로 통폐합의 과정을 거친 경험이 없고, 해방 이후 한때 자치단체였던 지위도 오히려 잃어버린 60년 역사였다. 일본은 3회의 대합병이 있을 때마다 상당한 진통과정을 거쳐 기존 지자체의 고유성과 자주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운난시의 30개 지역자주조직이 활동하는 지구 단위도 결국 쇼와 대합병 이전의 자치단체였던 셈이고, 공민관이 모두 설치되어 일상적인 교류거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래서 지역자주조직(공민관) 단위로 발전계획을 세워 공동으로 대응하는 주민자치도 상대적으로 잘 작동되는 셈이었다. 읍면 단위로 주민자치회 설립(전환)을 이제 고민하기 시작한 우리와는 크게 다른 셈이다.

    둘째, 농촌RMO는 활동내용 측면에서도 공유재산의 관리위탁(지정관리제 제도)과 사무위탁, 수익사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농촌 특성에 맞게끔 농지관리, 영농위탁, 농산물 공동생산, 농가공, 공동출하, 직불금 사무위탁 등 농업정책과의 연결성도 매우 강하다. 단순히 행정사업별 보조사업단체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설립한 조직인 만큼 ‘깔때기’ 방식으로 행정사업을 통합하여 수행한다.

    또 행정과 협약을 통해 사무위탁 방식으로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공적 활동을 수행한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관리위탁과 사무위탁이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상근인력을 유지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운난시는 2004년 11월의 대합병 과정에서 행정과 주민 사이에 이런 방향성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졌다.

    만약 이런 합의과정이 없었다면, 지역자주조직이 설립되지 않았다면, 또 관리위탁과 사무위탁 방식이 아니었다면 주변부 농촌은 더 빨리 쇠퇴하고 행정비용은 더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셋째, 농촌RMO는 주민자치조직이면서 정책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설립 초기부터 인정받고 있다. 운난시 행정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2008년 제정한 마을만들기 기본조례를 통해 정책의 공동생산과 공동집행을 위한 주체로서 농촌RMO를 존중하고 있다. 또 2015년 처음 체결한 “지역과 행정의 거버넌스 마을만들기 기본협정”을 통해 지역자주조직을 ‘갑’으로, 행정을 ‘을’로 명시하며 사무위탁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운난시는 우리보다 초고령화 상황이 훨씬 일찍 직면했지만 비교적 안정되게 운영되는 것도 이런 협력관계 덕분이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농촌신활력플러스와 농촌협약의 사업지침에서 민관협치 시스템을 강하게 요구했던 이유를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결국 지방자치가 성장하고 주민자치조직이 발전해야 농촌재생도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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