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8가지 이유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5:33
- 조회 479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8가지 이유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올 2월 정부가 느닷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해 온 나라를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정부가 왜 이렇게 군사 작전하듯이 한미 FTA를 서두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FTA 절차 규정’을 무시하고 공청회도 한 번 없이 협상개시를 선언하고, 6월 초에 협상을 시작해 내년 3월 말까지 끝내겠다고 한다.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는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내년 6월 말로 끝나고 그 3개월 전에 협상을 완료하여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이번에 못하면 한미 FTA를 언제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정부는 구걸하듯이 미국과 FTA를 서둘러 체결하려고 한다. 한미 FTA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미국이 내세운 네 가지 조건 즉 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배기가스 기준 완화, 의약품 가격인하 정책 중지 등을 일거에 들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선결조건들은 미 정부가 오랫동안 요구해왔지만 관계부처들이 합당한 이유를 내세워 거부해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한미 FTA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과 국민후생증대,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되고,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효과가 생길 것이라 한다. 정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기초해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 단기적으로는 별 효과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국민소득이 1.99% 증가하고, 일자리 10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계량경제모델에 의한 예측은 많은 가정에 의존하고, 어떤 가정을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장기예측은 잘 맞지 않는다. 정부 스스로도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비판이 일자, 앞선 계량경제모델에 이른바 생산성효과라는 것을 추가하여 불과 한 달 만에 한미 FTA 효과를 GDP 8% 성장, 일자리 55만개 창출로 뻥튀기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다르다. 우선 FTA가 반드시 거시경제 지표의 총량적 개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및 남미의 외환위기(경제위기)에서 보듯이 무분별한 개방과 자유화는 국민경제를 초토화하는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그리고 설사 FTA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과 효율성이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장 그 자체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반드시 국민 일반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명백하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일반의 생활이 더 나빠진 사례는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1970년대 초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장주의자들은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 이후 8년째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IMF 경제위기 이후 과거의 고도성장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과는 달리 꽤 높은 성장률을 실현해왔다. 2004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6천 달러를 넘어섰고 IMF 이전 환율로 따지면 2만 달러에 육박한다. 문제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의 삶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하지만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경제성장의 대가로 농민들이 빚더미에 허덕이고, 농촌이 피폐화되고,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고용불안을 느끼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수십조원의 대기업 현금 자산과 시중에 넘치는 수백조원의 유동자금은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국민 일반의 고통만 가중시킨다.
이제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한미 FTA는 국민주권에 반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사회의 정치지형 내지는 세력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우호적이던 사람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형성해왔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하는 형상이다. 사실 이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지금 한미 FTA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의 범위 내에서 국민들의 뜻을 따라 통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지배계층보다는 노동자, 농민, 서민, 지식인 등인데,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오랫동안의 성장제일주의로 인해 야기된 우리사회의 지역간, 산업간, 계층간 모순과 대립구조를 해소하고 우리사회가 좀더 평등한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한미 FTA의 추진은 국민들의 이런 바람과 정면 배치된다.
2. 한미 FTA는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국익을 증대시킨다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국제경쟁력을 지닌 초국적 대기업(예를 들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이익 극대화에 기여하는 것이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 혹은 계층에는 오히려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자유무역론자들은 FTA 피해의 최소화 내지는 보상을 말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형식적인 보상이나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FTA에는 이익 배분이나 비용부담에서 공정성을 보장할 메커니즘이 없고 국가의 개입에 의한 조정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익과 비용이 특정 산업이나 계급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한미 FTA의 추진으로 의료 및 교육 부문이 민영화되면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보험료 인상, 사교육비 인상 등으로 사회양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시청각 서비스 등 문화산업, 상․하수도 등 환경서비스, 전력 등 에너지서비스, 철도․체신․통신 등 공공서비스 일반의 질적 저하와 비용 상승을 가져와 서민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3. 한미 FTA로 우리나라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2004년 말 현재 증권거래소 주식 시가총액의 43%는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등 이른바 우량 대기업의 주식을 60~70% 소유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들은 직접투자보다는 증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에 치중해왔고, 외국인직접투자의 경우에도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공장설립형(Greenfield)보다는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IMF 이후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증권시장에서 거둬들인 평가차익이 2002년 말까지만 1,0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듯이, 미국의 대한 증권투자는 엄청난 국부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미국정부는 2004년 한미 투자협정 대상에 파생상품은 물론 국영기업과 국영기업에 적용되는 모든 규제, 공기업, 지자체까지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결국 모든 자본시장, 금융상품, 공기업 등 사실상 경제적 가치를 지닌 모든 유형, 무형가치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최근 론스타가 외환은행 불법적인 헐값 매입 및 매각을 통해서 엄청난 차익을 누린 것에 우리 정부의 관료들이 개입된 것에서 보듯이 일단 완전개방이 되면 정부가 우리의 국익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4. 한미 FTA는 노동, 환경, 여성의 권리를 약화시킬 것이다.
투자협정은 노동자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킬 것이고, 동시에 자본철수 위협을 통해 노동의 유연화, 고용과 임금의 유연화를 무한하게 요구할 것이다. 또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을 SOFA협정을 내세워 부담하지 않고 있듯이 투자협정의 투자자보호조항을 근거로 오염물질 및 유해폐기물로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한미 FTA로 예상되는 육아 등 사회복지서비스의 민영화, 임시직․파견 노동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사회안전망의 파괴, 여성노동보호를 위한 정부차원 지원의 폐지 등 여성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약화될 것이다.
5. 한미 FTA는 우리나라 농업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미국이 FTA를 체결하려는 가장 커다란 목적의 하나는 한국의 농산물시장을 전면 개방하여 미국의 농산물수출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FTA 협상은 상대방 나라의 농업개방을 겨냥한 것”이라는 미 무역대표부 포트먼 대표의 직설적인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농업생산액이 8조 9천억원 감소할 것이라 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 총생산액의 약 45%에 달하는 금액으로 한미 FTA를 통해 한국농업을 초토화하고 한국을 미국의 식량식민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을 제외한 경우 시나리오에 따라 농업생산액이 1조 1,552억원에서 2조 2,830억원 감소할 것이라 추정하였다.
그런데 한미 FTA의 농업부문에 미칠 영향을 계량모델에 의해 평가한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한미 FTA에 의해 농업생산액이 20~30% 줄어들 것이라는 계량 모델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우리 농업이 현재의 70~80%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농촌 내에 농업 이외에 마땅한 취업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도 턱없이 부족한 농가소득이 20~30% 줄어든다면 대부분의 농민은 농사를 계속할 수 없어 농촌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미 FTA로 농업고용이 12~15만명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계량분석 결과를 우리나라 농업분야 총취업자 187만명의 6~8%가 줄어드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미 FTA의 영향으로 농업을 그만 둘 농민들은 고령농민들이 아니라 대부분은 전직이 가능한 젊은 농민들이다. 결국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장래를 짊어질 30~40대의 40만명도 안 되는 농민 가운데 30~40%가 농촌을 떠난다면 우리 농업과 농촌의 기둥이 뽑히는 꼴이다.
6. 한미 FTA는 문화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협상개시에 앞서 스크린 쿼터 50% 축소(73일)를 기습 발표했다. 이는 북미 FTA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인정한 30%(106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멕시코는 북미 FTA 이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점차 스크린쿼터를 줄여 지금은 폐지하였다. 그 결과 멕시코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0% 대로 추락했다.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방송공사의 민영화, 지상파 및 케이블 TV 쿼터해제, 방송 산업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폐지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방송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문화 공공성과 문화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7. 한미 FTA는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다.
한미 FTA로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의료기관의 영리화가 허용되고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 이는 의료비의 폭등과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며, 공공의료보험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또한 미국은 FTA를 통해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앞세워 우리나라의 의약품정책, 의료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 결과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 제약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그만큼 국민의 건강권은 다국적 제약자본에게 종속되어 국민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의약품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의약품 접근권이 차단될 것이다.
8. 한미 FTA는 대미 종속적 체제를 가져올 것이다.
주한 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는 한미 FTA로 미국의 대한수출은 43~54% 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대미수출은 21~23% 증가하게 되어, FTA 발효 후 4~5년 후에는 한국의 대미무역흑자가 현재의 100억 달러에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한미 FTA로 무역흑자가 단기 40억 달러, 장기 50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의 공산품 평균 관세율이 1.5%이고, 우리나라는 7.2%이기 때문에 관세철폐에 따른 제조업 수출증대 효과는 미미한 반면에 수입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역흑자의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경제의 대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만은 아니라 금융․서비스․투자 등 경제 전분야에서 미국경제권에 종속적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통상 문제가 아닌 포괄적 한미동맹 속에서 논의되고 있고, 최근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서 보듯이 한미동맹의 군사적 재편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우리 정부의 대북, 대중국 정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잘못하면 동북아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
한미 FTA는 이처럼 한국사회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있는데도 충분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미 FTA에 관해 나온 검토 자료는 민관을 합쳐 10권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한일 FTA를 위해 정부 25권, 민간 100여권의 연구 자료가 있는데도 FTA 추진을 중단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무엇이, 누가, 왜 이토록 한미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가. 한미 FTA의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정부는 적어도 위에서 열거한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8가지 이유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할 의무가 있다.
* 이 글은 농정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계간 농정연구 2006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올 2월 정부가 느닷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선언해 온 나라를 커다란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정부가 왜 이렇게 군사 작전하듯이 한미 FTA를 서두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FTA 절차 규정’을 무시하고 공청회도 한 번 없이 협상개시를 선언하고, 6월 초에 협상을 시작해 내년 3월 말까지 끝내겠다고 한다. 이처럼 서두르는 이유는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내년 6월 말로 끝나고 그 3개월 전에 협상을 완료하여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데, 이번에 못하면 한미 FTA를 언제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정부는 구걸하듯이 미국과 FTA를 서둘러 체결하려고 한다. 한미 FTA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미국이 내세운 네 가지 조건 즉 쇠고기 수입재개, 스크린쿼터 축소, 자동차배기가스 기준 완화, 의약품 가격인하 정책 중지 등을 일거에 들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선결조건들은 미 정부가 오랫동안 요구해왔지만 관계부처들이 합당한 이유를 내세워 거부해온 것들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한미 FTA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는 한미 FTA를 추진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과 국민후생증대,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되고, 서비스업의 경쟁력 강화효과가 생길 것이라 한다. 정부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기초해서 한미 FTA가 체결되면 단기적으로는 별 효과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국민소득이 1.99% 증가하고, 일자리 10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계량경제모델에 의한 예측은 많은 가정에 의존하고, 어떤 가정을 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장기예측은 잘 맞지 않는다. 정부 스스로도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비판이 일자, 앞선 계량경제모델에 이른바 생산성효과라는 것을 추가하여 불과 한 달 만에 한미 FTA 효과를 GDP 8% 성장, 일자리 55만개 창출로 뻥튀기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다르다. 우선 FTA가 반드시 거시경제 지표의 총량적 개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및 남미의 외환위기(경제위기)에서 보듯이 무분별한 개방과 자유화는 국민경제를 초토화하는 심각한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그리고 설사 FTA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과 효율성이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에 성장 그 자체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반드시 국민 일반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명백하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일반의 생활이 더 나빠진 사례는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1970년대 초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장주의자들은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 이후 8년째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IMF 경제위기 이후 과거의 고도성장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과는 달리 꽤 높은 성장률을 실현해왔다. 2004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6천 달러를 넘어섰고 IMF 이전 환율로 따지면 2만 달러에 육박한다. 문제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의 삶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장은 하지만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고, 경제성장의 대가로 농민들이 빚더미에 허덕이고, 농촌이 피폐화되고,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저임금에 고용불안을 느끼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어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수십조원의 대기업 현금 자산과 시중에 넘치는 수백조원의 유동자금은 부동산가격의 상승으로 국민 일반의 고통만 가중시킨다.
이제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한미 FTA는 국민주권에 반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은 우리사회의 정치지형 내지는 세력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우호적이던 사람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형성해왔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하는 형상이다. 사실 이는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지금 한미 FTA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의 범위 내에서 국민들의 뜻을 따라 통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지배계층보다는 노동자, 농민, 서민, 지식인 등인데,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오랫동안의 성장제일주의로 인해 야기된 우리사회의 지역간, 산업간, 계층간 모순과 대립구조를 해소하고 우리사회가 좀더 평등한 공동체로 발전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한미 FTA의 추진은 국민들의 이런 바람과 정면 배치된다.
2. 한미 FTA는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자유무역론자들은 FTA가 국익을 증대시킨다고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국제경쟁력을 지닌 초국적 대기업(예를 들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이익 극대화에 기여하는 것이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 혹은 계층에는 오히려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자유무역론자들은 FTA 피해의 최소화 내지는 보상을 말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형식적인 보상이나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FTA에는 이익 배분이나 비용부담에서 공정성을 보장할 메커니즘이 없고 국가의 개입에 의한 조정에도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익과 비용이 특정 산업이나 계급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한미 FTA의 추진으로 의료 및 교육 부문이 민영화되면 공공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보험료 인상, 사교육비 인상 등으로 사회양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시청각 서비스 등 문화산업, 상․하수도 등 환경서비스, 전력 등 에너지서비스, 철도․체신․통신 등 공공서비스 일반의 질적 저하와 비용 상승을 가져와 서민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3. 한미 FTA로 우리나라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2004년 말 현재 증권거래소 주식 시가총액의 43%는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등 이른바 우량 대기업의 주식을 60~70% 소유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들은 직접투자보다는 증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에 치중해왔고, 외국인직접투자의 경우에도 IMF 경제위기 이후에는 공장설립형(Greenfield)보다는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고 있다. IMF 이후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증권시장에서 거둬들인 평가차익이 2002년 말까지만 1,0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듯이, 미국의 대한 증권투자는 엄청난 국부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미국정부는 2004년 한미 투자협정 대상에 파생상품은 물론 국영기업과 국영기업에 적용되는 모든 규제, 공기업, 지자체까지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결국 모든 자본시장, 금융상품, 공기업 등 사실상 경제적 가치를 지닌 모든 유형, 무형가치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최근 론스타가 외환은행 불법적인 헐값 매입 및 매각을 통해서 엄청난 차익을 누린 것에 우리 정부의 관료들이 개입된 것에서 보듯이 일단 완전개방이 되면 정부가 우리의 국익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4. 한미 FTA는 노동, 환경, 여성의 권리를 약화시킬 것이다.
투자협정은 노동자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킬 것이고, 동시에 자본철수 위협을 통해 노동의 유연화, 고용과 임금의 유연화를 무한하게 요구할 것이다. 또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을 SOFA협정을 내세워 부담하지 않고 있듯이 투자협정의 투자자보호조항을 근거로 오염물질 및 유해폐기물로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다. 한미 FTA로 예상되는 육아 등 사회복지서비스의 민영화, 임시직․파견 노동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사회안전망의 파괴, 여성노동보호를 위한 정부차원 지원의 폐지 등 여성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약화될 것이다.
5. 한미 FTA는 우리나라 농업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미국이 FTA를 체결하려는 가장 커다란 목적의 하나는 한국의 농산물시장을 전면 개방하여 미국의 농산물수출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FTA 협상은 상대방 나라의 농업개방을 겨냥한 것”이라는 미 무역대표부 포트먼 대표의 직설적인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한국의 농업생산액이 8조 9천억원 감소할 것이라 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 총생산액의 약 45%에 달하는 금액으로 한미 FTA를 통해 한국농업을 초토화하고 한국을 미국의 식량식민지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을 제외한 경우 시나리오에 따라 농업생산액이 1조 1,552억원에서 2조 2,830억원 감소할 것이라 추정하였다.
그런데 한미 FTA의 농업부문에 미칠 영향을 계량모델에 의해 평가한다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한미 FTA에 의해 농업생산액이 20~30% 줄어들 것이라는 계량 모델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우리 농업이 현재의 70~80%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농촌 내에 농업 이외에 마땅한 취업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지금도 턱없이 부족한 농가소득이 20~30% 줄어든다면 대부분의 농민은 농사를 계속할 수 없어 농촌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미 FTA로 농업고용이 12~15만명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계량분석 결과를 우리나라 농업분야 총취업자 187만명의 6~8%가 줄어드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한미 FTA의 영향으로 농업을 그만 둘 농민들은 고령농민들이 아니라 대부분은 전직이 가능한 젊은 농민들이다. 결국 우리 농업과 농촌의 장래를 짊어질 30~40대의 40만명도 안 되는 농민 가운데 30~40%가 농촌을 떠난다면 우리 농업과 농촌의 기둥이 뽑히는 꼴이다.
6. 한미 FTA는 문화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협상개시에 앞서 스크린 쿼터 50% 축소(73일)를 기습 발표했다. 이는 북미 FTA 당시 미국이 멕시코에 인정한 30%(106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멕시코는 북미 FTA 이후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점차 스크린쿼터를 줄여 지금은 폐지하였다. 그 결과 멕시코 영화의 시장점유율은 10% 대로 추락했다. 스크린 쿼터의 축소는 비단 영화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는 한국방송공사의 민영화, 지상파 및 케이블 TV 쿼터해제, 방송 산업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폐지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방송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문화 공공성과 문화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7. 한미 FTA는 국민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다.
한미 FTA로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의료기관의 영리화가 허용되고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 이는 의료비의 폭등과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며, 공공의료보험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또한 미국은 FTA를 통해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앞세워 우리나라의 의약품정책, 의료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 결과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 제약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그만큼 국민의 건강권은 다국적 제약자본에게 종속되어 국민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의약품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의약품 접근권이 차단될 것이다.
8. 한미 FTA는 대미 종속적 체제를 가져올 것이다.
주한 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는 한미 FTA로 미국의 대한수출은 43~54% 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대미수출은 21~23% 증가하게 되어, FTA 발효 후 4~5년 후에는 한국의 대미무역흑자가 현재의 100억 달러에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한미 FTA로 무역흑자가 단기 40억 달러, 장기 50억 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의 공산품 평균 관세율이 1.5%이고, 우리나라는 7.2%이기 때문에 관세철폐에 따른 제조업 수출증대 효과는 미미한 반면에 수입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역흑자의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경제의 대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만은 아니라 금융․서비스․투자 등 경제 전분야에서 미국경제권에 종속적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한미 FTA는 단순한 경제통상 문제가 아닌 포괄적 한미동맹 속에서 논의되고 있고, 최근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서 보듯이 한미동맹의 군사적 재편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FTA는 우리 정부의 대북, 대중국 정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잘못하면 동북아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
한미 FTA는 이처럼 한국사회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위험이 있는데도 충분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미 FTA에 관해 나온 검토 자료는 민관을 합쳐 10권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한일 FTA를 위해 정부 25권, 민간 100여권의 연구 자료가 있는데도 FTA 추진을 중단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무엇이, 누가, 왜 이토록 한미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가. 한미 FTA의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정부는 적어도 위에서 열거한 한미 FTA를 해서는 안 되는 8가지 이유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할 의무가 있다.
* 이 글은 농정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계간 농정연구 2006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