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과 거리 먼 새정부 농정 | 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
- 작성일2020/03/04 18:39
- 조회 396
‘실용’과 거리 먼 새정부 농정
|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
지난 3월18일 발표된 새정부 농정의 핵심기조는 생산단계에 머물러 있는 농업을 2·3차의 유통 가공산업으로 확대·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시군별 유통회사를 설립하여 시·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판매를 책임지게 하고, 주요 품목별 전국대표조직을 만들어 수급조절과 시장개척 등 해당품목을 스스로 책임지게 하고, 간척지에 대규모 농업회사를 만들어 수출 전진기지로 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식품과 외식산업을 발전시켜 우리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부가가치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농어촌 뉴타운을 조성하여 고령농업인의 출향 자녀를 농업으로 유인하고, 농업계 외부의 대기업 임원을 유통회사의 CEO로 영입하고, 중견 전문인력도 공모하는 등 농업·농어촌의 성장을 주도할 핵심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새정부 농정의 핵심기조와 전략은 참신하게 보인다. 그러나 기대하는 시간 내에,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핵심기조·전략 참신해 보이지만…
새정부의 농정 중에서도 핵심전략은 시군별 유통회사를 설립하여 농산물 유통을 혁신하는 것이다. 농민과 지자체, 농협, 기업이 출자하여 자본금 100억원,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고, 외부의 전문경영인과 중견 전문인력을 공모하여 책임 경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시군 연합판매사업단의 판매사업은 지지부진한데, 새로 만든 시군별 유통회사는 어떤 점이 특별해서 이보다 몇 배의 매출을 올리고, 돈도 번다는 것인가? 정부의 핵심전략은 농업계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CEO로 영입하고, 중견 전문인력을 공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여건과 생활여건이 열악한 농촌의 농산물 유통회사에 대기업의 `탁월한` 임원과 유능한 전문인력이 선뜻 오려고 할 것인가? 온다고 하더라도 아직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 CEO와 회사를 믿고 출하해줄 농민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또한 기업과 농민의 투자를 의무화한다고 하지만, 정부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들이 유통회사에 투자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군단위 종합유통회사가 `돈 버는` 경쟁력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역 내의 모든 농산물에 대해 뛰어난 생산지도와 마케팅능력을 확보할 수 없고,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대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상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
시군별 유통회사를 당초의 구상대로 설립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당초의 성과를 거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의 다른 핵심정책도 상당한 문제점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품목별 대표조직을 만들어 수급조절, 연구개발, 교육 등 해당 품목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구상이지만, 판매 유통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농기업과 농민이 공동 투자하여 대규모 농업회사를 설립하여 수출 전진기지로 하겠다는 구상도 간척지를 싼 가격에 임대할 경우, 특혜의 시비가 있을 수 있고, 추후에 다른 농민의 가입을 어렵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식품산업의 발전으로 농가소득을 증대시킨다는 구상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가진 수단이라곤 극히 일부의 식품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정도인데, 그들이 국내산 농산물을 사든 안 사든, 얼마에 사든 간섭할 수가 없다. 기업은 항상 전체적으로 보아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영농후계자 사업을 줄이는 정부가 소수의 출향 자녀를 유치하기 위해 농어촌 뉴타운을 조성하는 것은 처음부터 영농을 하고자 하는, 또는 하고 있는 젊은 농업인을 역차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농촌과 젊은이를 떼어놓는 것도 보통문제가 아니다.
축적된 인적·물적자산부터 활용을
새정부의 핵심농정의 효과는 기대하는 것보다 더디게 일어나고, 그 효과의 범위도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시군별 유통회사의 경우, 회사의 설립이 쉽지 않을 것이며, 상당수가 설립되더라도 당초 목적대로 농산물 마케팅을 주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국 대표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품목도 한정적이지만, 진정한 대표성을 띠고 사업을 할 수 있는 품목은 더욱 한정적일 것이다. 대규모 농업회사를 만든다 해도 `카길`의 지부·지점의 힘을 발휘하기에도 벅찰 것이다. 이처럼 정책적으로 새로운 농업시스템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정상 작동시키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어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방대한 조직과 유통인프라를 가진 농협을 방치하고, 효과가 제한적인 새로운 유통채널을 만드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농협에는 그래도 `훈련된` 막대한 인력과 사용에 익숙한 시설과 충분한 가용재원과 실패의 교훈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농정이 참신한 것을 추구한 나머지 그동안에 축적한 농업분야의 인적, 물적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실용`적인 비전과 대책이 부족하다. 시야가 좁고, 대상이 너무 좁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위 칼럼은 한국농어민신문 2008년3월27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
지난 3월18일 발표된 새정부 농정의 핵심기조는 생산단계에 머물러 있는 농업을 2·3차의 유통 가공산업으로 확대·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시군별 유통회사를 설립하여 시·군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판매를 책임지게 하고, 주요 품목별 전국대표조직을 만들어 수급조절과 시장개척 등 해당품목을 스스로 책임지게 하고, 간척지에 대규모 농업회사를 만들어 수출 전진기지로 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식품과 외식산업을 발전시켜 우리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부가가치도 높이겠다는 것이다. 농어촌 뉴타운을 조성하여 고령농업인의 출향 자녀를 농업으로 유인하고, 농업계 외부의 대기업 임원을 유통회사의 CEO로 영입하고, 중견 전문인력도 공모하는 등 농업·농어촌의 성장을 주도할 핵심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새정부 농정의 핵심기조와 전략은 참신하게 보인다. 그러나 기대하는 시간 내에,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핵심기조·전략 참신해 보이지만…
새정부의 농정 중에서도 핵심전략은 시군별 유통회사를 설립하여 농산물 유통을 혁신하는 것이다. 농민과 지자체, 농협, 기업이 출자하여 자본금 100억원,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고, 외부의 전문경영인과 중견 전문인력을 공모하여 책임 경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온 시군 연합판매사업단의 판매사업은 지지부진한데, 새로 만든 시군별 유통회사는 어떤 점이 특별해서 이보다 몇 배의 매출을 올리고, 돈도 번다는 것인가? 정부의 핵심전략은 농업계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CEO로 영입하고, 중견 전문인력을 공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여건과 생활여건이 열악한 농촌의 농산물 유통회사에 대기업의 `탁월한` 임원과 유능한 전문인력이 선뜻 오려고 할 것인가? 온다고 하더라도 아직 실적을 보여주지 못한 CEO와 회사를 믿고 출하해줄 농민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또한 기업과 농민의 투자를 의무화한다고 하지만, 정부지원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들이 유통회사에 투자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군단위 종합유통회사가 `돈 버는` 경쟁력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역 내의 모든 농산물에 대해 뛰어난 생산지도와 마케팅능력을 확보할 수 없고,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대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상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
시군별 유통회사를 당초의 구상대로 설립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당초의 성과를 거양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새 정부의 다른 핵심정책도 상당한 문제점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품목별 대표조직을 만들어 수급조절, 연구개발, 교육 등 해당 품목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한다는 구상이지만, 판매 유통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농기업과 농민이 공동 투자하여 대규모 농업회사를 설립하여 수출 전진기지로 하겠다는 구상도 간척지를 싼 가격에 임대할 경우, 특혜의 시비가 있을 수 있고, 추후에 다른 농민의 가입을 어렵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식품산업의 발전으로 농가소득을 증대시킨다는 구상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가진 수단이라곤 극히 일부의 식품기업에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정도인데, 그들이 국내산 농산물을 사든 안 사든, 얼마에 사든 간섭할 수가 없다. 기업은 항상 전체적으로 보아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영농후계자 사업을 줄이는 정부가 소수의 출향 자녀를 유치하기 위해 농어촌 뉴타운을 조성하는 것은 처음부터 영농을 하고자 하는, 또는 하고 있는 젊은 농업인을 역차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농촌과 젊은이를 떼어놓는 것도 보통문제가 아니다.
축적된 인적·물적자산부터 활용을
새정부의 핵심농정의 효과는 기대하는 것보다 더디게 일어나고, 그 효과의 범위도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시군별 유통회사의 경우, 회사의 설립이 쉽지 않을 것이며, 상당수가 설립되더라도 당초 목적대로 농산물 마케팅을 주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국 대표조직을 구성할 수 있는 품목도 한정적이지만, 진정한 대표성을 띠고 사업을 할 수 있는 품목은 더욱 한정적일 것이다. 대규모 농업회사를 만든다 해도 `카길`의 지부·지점의 힘을 발휘하기에도 벅찰 것이다. 이처럼 정책적으로 새로운 농업시스템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정상 작동시키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어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방대한 조직과 유통인프라를 가진 농협을 방치하고, 효과가 제한적인 새로운 유통채널을 만드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농협에는 그래도 `훈련된` 막대한 인력과 사용에 익숙한 시설과 충분한 가용재원과 실패의 교훈도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농정이 참신한 것을 추구한 나머지 그동안에 축적한 농업분야의 인적, 물적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실용`적인 비전과 대책이 부족하다. 시야가 좁고, 대상이 너무 좁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위 칼럼은 한국농어민신문 2008년3월27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