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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공간계획법의 마을보호지구와 주민협정 제도가 성공하려면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3/04/14 13:24
    • 조회 244
    기존 공모방식 보조사업 한계 뛰어넘어
    시군·읍면 단위 ‘민관협치’ 정착 필수
    다양한 이해관계자 모여 숙의 거쳐야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농촌공간계획법)’ 제12조에 규정된 농촌특화지구 유형 7개 중의 하나로 마을보호지구란 것이 있다. “농촌주민 등의 거주 환경을 보호하고 생활서비스시설의 입지를 촉진하는 등 정주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지구”를 말하고, 제15조 주민제안을 통해 제22조 주민협정이란 과정을 거쳐 지자체장이 인가를 하는 방식이다. 주민협정 체결과정과 이행에 필요한 비용은 지자체가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한다(제25조).

    농촌공간계획법 자체가 농촌의 난개발을 예방하고, 토지를 계획적으로 관리하며, 농촌다움을 보전하여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정 취지에 해당한다. 그래서 마을보호지구 지정을 통해 그동안 공장이나 축사, 태양광 등 위해시설로부터 쾌적한 정주환경을 지킬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다. 제정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법률 문구를 여러 번 읽어봐도 여전히 의문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내년 3월까지 제정해야 할 시행령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되리라 기대한다. 다만 이번 법률 제정의 취지를 살리고, 마을보호지구와 주민협정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시군 단위에도 읍면 단위에도 민관협치의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책 시스템을 정비하는 과정 자체가 농촌 발전이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꽃 피울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조건과 보완장치가 촘촘하게 갖추어져야 농촌(정책)의 밝은 미래도 기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농촌정책의 실패 경험을 반성하면서 큰 틀에서 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예전처럼 공모방식으로 마을보호지구 몇 개 지정하고, 또 인센티브로 보조사업을 지원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법률 제정 취지를 실현하기 어렵다. 이런 공모 방식의 보조사업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대담한 발상이 있어야 농촌재생이란 꿈도 꿀 수 있다. 주민제안이란 ‘신청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별 행정리의 한계를 넘어 농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기 위한 정책 방향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정답은 없겠지만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숙의 절차가 꼭 필요하다. 계획가들이 바라보듯이 농촌 현장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의 1400여 개의 읍면으로 이번 법률 제정 취지를 빠르게 확산하자면 다음과 같은 방향도 꼭 검토해보기를 제안한다.

    먼저, 마을보호지구의 지정 범위를 읍이나 면 하나로 과감하게 확장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기존의 용도지역지구제와 충돌도 피하면서 빠른 속도로 난개발 예방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에서 읍과 면이 차지하는 위상과 실체를 인정하고, 또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지역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존중하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행정리 마을로 지나치게 좁히면 기존 정책의 실패를 되풀이하기 쉽고 농촌다움 실현도 어렵다.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 특구에 관한 규제 특례법”(2004년 도입)에 규정된 지역특구제도(규제강화 및 규제완화)와 병행하는 방안도 있다. 읍면 하나를 통째로 마을보호지구로 지정하되, 그 내부에 나머지 농촌특화지구를 일정 범위에 걸쳐 지정하는 방식이 법률 제정 취지를 빠르게 확산하는 방향이라 본다.

    둘째, 주민협정도 지금처럼 주민끼리만(이해관계자 포함)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과 행정 사이의 협정(협약)도 병행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읍면 지역사회는① 주민자치회 산하에 특별위원회처럼 주민협의회(제23조) 설치·운영, ② 주민자치회 주도로 중장기 발전계획(토지이용계획 포함) 수립, ③ 주민총회를 통해 주민협정의 내용 의결, ④ 주민참여예산제와 농촌협약 등으로 필요 예산 지원, 그리고 ⑤ 주민협정 이행과 모니터링 등의 순서로 필요한 절차를 거치면서 합의수준과 자치역량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앞의 ②~③번 과정에서 농촌특화지구 및 주민협정에 대해 주민 스스로 학습과 토론, 합의 등을 거쳐 협정 내용을 확정하고, 여기에 대해 행정(군+읍면)과도 민-관 협정(협약)을 체결하면 훨씬 높은 수준의 이행을 기대할 수 있다. 농촌다움 보전이란 가치는 이런 과정에서 공감대도 형성되고 자율적 규제 장치도 자연스레 마련될 것이다. 이런 과정 자체를 농촌협약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포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셋째, 주민총회를 통한 주민제안(주민협정)에 대해 행정에서는 적절한 인센티브가 꼭 필요하다. 스스로의 재산권과 권리 행사를 억제하는 것에 따른 당연한 공적 행위인 셈이다. 다만 기존의 단년도 보조사업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고, 또 농촌공간정비사업처럼 대규모 예산일 필요도 없다. 면 단위 전체 행정리(대개 20~30개) 대상으로 협약기간 동안 매년 정액(500만원 내외)을 수당 방식으로 지원하는(사업계획서 제출과 정산이 불필요한) ‘마을공동체 활성화 수당(가칭)’ 제도가 훨씬 효과적이다. 이와 더불어 읍면 주민자치회 대상의 기본예산으로 매년 정액 사업비(1.5억원 내외)를 동시에 지원한다면 해당 읍면 전체 분위기가 빠르게 전환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적절한 견제와 협력을 통해 농촌공간의 계획적 관리도 지역공동체의 힘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런 예산 규모 자체는 기존 하드웨어 사업에 비하면 아주 작은 셈이고, 이런 인센티브 자체를 농촌협약 속에 포함할 수도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대안이란 결국 이런 지혜를 모아 현실에 맞게끔 타협하며 도출되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틈새를 메우며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시행령에 너무 구체적인 것을 명시할 필요는 없고, 큰 원칙과 방향만 제시하는 것이 좋다. 지자체 조례로 위임할 것은 위임하고, 아주 구체적인 부분은 주민협정에서 명시하여 좋은 사례가 많이 도출되도록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사업지침은 이런 방향성을 제시하며 주민들에게 농촌다움 보전과 난개발 예방 의지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미 그동안의 시행착오 경험이 적은 것도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므로 공론장을 확대하고 정책 칸막이만 극복한다면 길은 우리 앞에 명확하게 열려 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움직이고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뜻이 있는 사람부터 먼저 검토해보기를 기대한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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