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관리법과 미움 받을 용기 | 김태연 단국대학교 교수,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3/04/11 13:22
- 조회 235
근본적 쌀산업 구조조정 정책 시급
쌀농가에 새로운 변화 요구 쉽지 않아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결단 필요
“양곡관리법이 뭐예요?”, “양곡관리법이 통과되면 왜 안 돼요?”
지난 몇 주간 필자와 만나는 지인들이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발동에 대한 보도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그동안 여야간의 대립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던 농업분야에서 극한적인 대결의 모습이 보이니, 일견,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책을 두고 여야간에 대립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고, 특정 직업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위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이렇게 국가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뭔가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의 찬반논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좀 이례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4항의 개정이 관건이다. 개정안은 “...미곡의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되어 미곡 가격의...하락이 예상되는 경우..(5년 평균)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미곡에 대한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을 수확기에 매입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수치가 없으면 시장 상황에 따라서 농식품부가 대응하면 되는데, 법적으로 특정한 수치가 제시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생산량, 수요량, 가격의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수요량과 가격은 품종별, 지역별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면 쌀 생산의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즉, 규정 개정 이전에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농업과 농촌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유일한 공공연구기관이다. 여기서 쌀 생산량, 수요량, 가격변화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농경연에서 작년에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개정안이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지 못하고, 수매에 따른 예산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것은 전문가의 연구결과이다.
그럼, 이에 대한 반론은 전문가들 간의 논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맘에 들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연구한 또 다른 결과를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 해석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동료 연구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논의는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연구자들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쌀 산업의 발전을 위한 논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농식품부가 ‘쌀 산업 발전과 중장기 수급 균형 방안’을 발표했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쌀 가격 수준을 조정하거나 소비를 증가시키는 방안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쌀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정책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전략작물직불제와 가루쌀 생산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쌀 산업의 종자와 각종 투입재 생산에서 유통, 가공, 외식, 푸드테크, 수출, 가계소비에 이르는 일련의 쌀 산업 가치사슬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를 추진할 필요가 있고, 각 단계의 사업체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쌀 산업 관련 연구체계의 총체적인 혁신이 긴급하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이었던 쌀 생산농가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책 추진과정에서의 반발에 대응하기 어렵고,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상도 쉽지 않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이런 쌀 산업 정책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인 결과와 일정하게 연계되어 있는 정부에서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고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 미뤄왔던 일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나 변화에 대한 불안을 넘어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을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379
쌀농가에 새로운 변화 요구 쉽지 않아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결단 필요
“양곡관리법이 뭐예요?”, “양곡관리법이 통과되면 왜 안 돼요?”
지난 몇 주간 필자와 만나는 지인들이 자주 물었던 질문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발동에 대한 보도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그동안 여야간의 대립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던 농업분야에서 극한적인 대결의 모습이 보이니, 일견,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책을 두고 여야간에 대립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고, 특정 직업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위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이렇게 국가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뭔가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의 찬반논의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좀 이례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양곡관리법 제16조 제4항의 개정이 관건이다. 개정안은 “...미곡의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되어 미곡 가격의...하락이 예상되는 경우..(5년 평균)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미곡에 대한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을 수확기에 매입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수치가 없으면 시장 상황에 따라서 농식품부가 대응하면 되는데, 법적으로 특정한 수치가 제시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생산량, 수요량, 가격의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수요량과 가격은 품종별, 지역별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면 쌀 생산의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즉, 규정 개정 이전에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농업과 농촌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유일한 공공연구기관이다. 여기서 쌀 생산량, 수요량, 가격변화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농경연에서 작년에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개정안이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지 못하고, 수매에 따른 예산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이것은 전문가의 연구결과이다.
그럼, 이에 대한 반론은 전문가들 간의 논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맘에 들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연구한 또 다른 결과를 제시하면 된다. 이러한 연구결과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 해석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동료 연구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논의는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하도록 해야 할 것이고, 연구자들의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쌀 산업의 발전을 위한 논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농식품부가 ‘쌀 산업 발전과 중장기 수급 균형 방안’을 발표했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쌀 가격 수준을 조정하거나 소비를 증가시키는 방안을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쌀 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정책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전략작물직불제와 가루쌀 생산 등이 제시되고 있지만, 쌀 산업의 종자와 각종 투입재 생산에서 유통, 가공, 외식, 푸드테크, 수출, 가계소비에 이르는 일련의 쌀 산업 가치사슬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를 추진할 필요가 있고, 각 단계의 사업체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쌀 산업 관련 연구체계의 총체적인 혁신이 긴급하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이었던 쌀 생산농가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책 추진과정에서의 반발에 대응하기 어렵고,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상도 쉽지 않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이런 쌀 산업 정책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인 결과와 일정하게 연계되어 있는 정부에서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고 지난 20여 년 동안 계속 미뤄왔던 일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이나 변화에 대한 불안을 넘어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을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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