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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서울의 도농살생ㅣ정은정 농촌사회학자,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3/02/17 11:47
    • 조회 252
    사라져가는 말들은 사라져가는 관계다. ‘시골 할머니댁’이 그렇다. 지금 어린이들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 세대도 농촌 출신이 드물다. 농사짓는 친척도 거의 없고 농촌은 멀다. 그래도 농촌경제연구원의 ‘2022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추가 세금 부담 의향에 도시민 65.7%가 찬성했다. 희한하게도 부담 의향은 2020년 이후 증가 추세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농업농촌의 위기는 삶의 위기라는 것을 도시민들도 알았다는 뜻이다. 농민들에게 농업은 생계지만 도시민들에게 농업은 ‘생존’이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외국에서 농산물을 들여오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보았다. 농업은 시장에만 맡기기에는 워낙 불안정한 산업이라 사회가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속수무책 무너진다. 도시와 농촌은 서로 의지해야 살 수 있고 이를 ‘도농상생’이라 한다.

    서울은 농업 생산이 없고 소비만 하는 농산물 최대 소비처다. 서울이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한국 농업농촌은 출렁댄다.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을 쓰면서 학생들 건강도 친환경농업도 버티고 있듯 말이다. 더 나아가 2017년부터 서울시의 강동, 금천, 동북4구, 서대문, 동작, 은평, 중랑, 송파, 영등포구(동대문은 22년 종료)가 농촌 지방자치단체와 1 대 1 협약을 맺어 친환경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어린이집·지역아동센터·복지시설 등에 직거래로 식재료를 공급해왔다. 이것이 ‘도농상생 공공급식’이다. 학교급식을 넘어 미취학 아동들과 취약계층 아동들도 사회가 먹이자는 뜻에서 ‘공공급식’이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반반씩 예산을 써서 영·유아들 건강도, 농촌도 지키자는 상생 차원이다. 투명한 영수증처리와 직거래로 어린이집 급식의 투명성도 높여왔다. 소규모 친환경농민에게 귀한 판로였고, ‘당근 한 개’ ‘치즈 두 개’가 필요한 소규모 보육시설도 만족했다.

    초등 고학년의 음식과 영·유아의 음식은 엄연히 다르지만 그간 학교급식에서 세밀히 챙기지 못했던 유아들에게도 적합한 제도다. 더해서 ‘시골 할머니댁’이 없는 어린이들이 농촌에 가서 모내기와 수확까지 해보는 도농교류사업에 정성을 쏟았다. 고사리손으로 손모내기를 하면 모가 동동 떠도 어린이들에게 쌀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주려 살뜰하게 챙겼다. 그리하여 2018년 먹거리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 상인 ‘밀라노협약상’ 특별상까지 받아 ‘K급식’의 위상을 드높였고 말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도동상생급식 사업을 6월 말 종료하고 학교급식 업무를 보는 서울시친환경유통센터로 사업을 합치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서울시민의 세금을 농촌으로 퍼주는 일인 데다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즉 농촌 중심이라는 이유도 든다. 굳이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으나 시비는 끊겠다니 자치구로서는 미운털까지 박히면서 이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도농상생급식센터’를 선진적으로 운영했던 한 센터는 정치감사에 가까운 서울시 감사를 받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 밥을 부모가 먹여야지 왜 서울시가 먹이냐며 학교급식에 직을 걸었다가 시장직을 내놓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제 영·유아 이유식에 손을 대려는 모양새다. 설마 그때 구긴 자존심 회복차원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정책과 색깔을 입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순기능이 많았던 정책까지 뒤집으면서 농촌 퍼주기 세금 낭비를 들먹거리다니! 도시민 65.7%가 농촌농업에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 하지 않나. 농토 땅 한 뙈기 없는 서울이야말로 먹거리 취약지다. 서울이 먹고살자면 농촌도 살아야 한다. 농촌은 서울에 구걸한 것이 아니라 ‘상생’하자 했을 뿐인데, 서울시는 ‘도농상생’이 아니라 ‘도농살생’의 말로 농촌을 두 번 죽였다.

    출처: 경향신문 
    [세상읽기] 서울의 도농살생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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