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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마을기금 확보를 위한 ‘세 가지 제안’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3/02/14 11:43
    • 조회 279
    마을기금 확보해야 공동체 활동 지속
    공동 생산·판매로 재원 마련 모색
    수당 도입, 주민 자발적 납부 등 검토를

    전 세계 농촌과 비교하여 한국은 마을이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배산임수의 풍수에 논농사를 기본으로 하니 공동체 활동의 필요성이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남북분단, 기나긴 독재시기를 거치며 여전히 봉건적인 관습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 농업의 기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농촌 마을에도 개인주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공동체 기능이 상당부분 쇠퇴하였다. 농촌 주민조차도 일터와 주거지가 분리되는 직주분리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함께 모여 살아야 할 필연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농촌 마을에는 상부상조하던 오래된 전통이 남아 있고, 공동체 문화를 살리려는 마을만들기 운동도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뤄지고 있다. 행정에서 지원하는 200만원 정도의 적은 재료비만으로 마을박물관 건물까지 짓고, 또 훨씬 더 적은 마을기금으로 큰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를 보면 마을공동체의 힘으로 상상 이상의 일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가지게 된다. 주민들이 힘을 합치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력이 공동체 속에 여전히 숨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마을 공동체는 농촌정책의 입구이자 출구에 해당한다. 정부의 모든 정책사업도 결국 마을로 향하고 공동체 활동의 작동 여부에 따라 성과가 좌우된다. 농민 개개인의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농정의 틀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행정리 단위의 마을자치회와 읍·면 단위의 주민자치회, 시·군 단위의 마을만들기협의회 등 ‘사람과 조직(공동체)’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문제는 행정리 마을 내부에 있다. 현대의 농촌 마을 현실에서는 공동체 활동을 주도할 지도자도, 지켜야 할 규칙도, 품앗이 문화도 빈곤하기 때문이다. 활동은 이래저래 계속 시도되지만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초고령화 상황을 고려하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분명하다. 각종 공과금을 농산물 현물로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농촌 마을도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몸으로(노력봉사로)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훨씬 늘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농업을 통한 소득 확보가 여전히 어렵고, 그래서 이웃을 돌볼 여유도 부족하다. 마음은 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행정의 보조사업에 자꾸 눈길을 돌리는 문제가 나타난다. 큰 돈이 아니더라도 마을기금을 안정되게 확보할 수 있다면 공동체 활동은 지속될 수 있다. 재원 확보의 방향으로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마을만들기 활동을 통해 공동소득을 확보하고 기금을 마련하는 방향이다. 마을의 유휴농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동생산과 공동판매로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이 가장 확실하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농사일이고, 출향인까지 고려하면 판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마을공동체농업 관점에서 전체 농지와 농기계를 공동으로 관리하고 생산된 농산물을 지자체 공공급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더욱 발전된 형태가 된다. 일부 농지는 전체 주민 합의를 전제로 태양광 사업도 검토해볼 수 있다. 충남연구원의 『지방소멸위기에 대응한 충남 농어촌 과소지역 활성화 전략』 연구(2022년)는 익산시 성당포구마을 사례를 분석하며 마을연금 제도 도입까지 제안하고 있다.

    둘째, 마을 공동체 활동의 공공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재원 투입도 좋은 방향이 될 수 있다. ‘주민 주도, 상향식’의 농촌개발 방법론 측면에서 기존의 행정 보조사업과 공모방식이 가진 한계를 빨리 극복하자면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방향에서 이미 마을공동체수당을 제안한 바가 있다(“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농촌정책, 마을공동체수당을 도입하자”, 농어민신문 2020.06.12.). 행정리 단위로 매년 300만원 정도를 포괄적으로 지원하여 경관관리(마을가꾸기)와 영농폐기물 수거, 반찬나눔(노인돌봄), 농번기 공동급식, 마을축제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행정 재원은 기존의 보조사업을 정비하여 통합적으로 지원하거나 신재생에너지 사업, 고향사랑기부금 등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정산도 필요없는 방식으로 지원하자면 제도적 측면에서 많은 검토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셋째, 농어민수당과 공익직불금을 받는 마을 주민이 10% 정도를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방향이다. 의무사항으로 마을공동체 공동활동과 영농폐기물의 적정 처리 등을 하도록 되어 있는 만큼 납부할 명분은 명확하다. 또 농민(농업인, 농업경영체)이 아닌 주민도 공동체 활동에 동등하게 참여하자면 이런 시도가 꼭 필요하다. 50명이 납부한다면 연간 500만원 정도의 마을기금이 확보될 수 있다. 주로 경관환경 보전 활동에 필요한 재원은 이렇게 확보할 수 있다. 다만 개인 주머니(통장)로 입금된 돈이 마을기금으로 다시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처음부터 개인분과 마을분을 구분하여 지급하는 제도개혁과 병행하여 농민운동과 마을만들기 차원에서 선도사례가 먼저 나타난다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방향이나 마을 내부의 높은 합의 수준과 자치역량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첫째 방향은 공동소득 확보에 기여하는 주민과 혜택을 받는 주민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는 숙제가 있다. 둘째 방향은 재원 배분의 민주성과 회계관리의 투명성이 요구된다. 셋째 방향은 기금 납부를 의무사항으로 강요하면 오히려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도 발생된다. 또 세 가지 방향은 마을협약 제도를 활용하여 서로 연결시켜 동시에 검토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둘째 방향의 행정 지원액수는 첫째와 셋째 방향을 통해 마을에서 스스로 확보한 금액에 매칭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마을기금으로 민주주의 훈련을 반복하며 역량이 성장한 마을에 소득사업이나 시설정비사업을 지원하면 효과가 더 높을 것이다.

    행정 입장에서는 시범사업으로 공모 방식을 적용하여 도입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특정 면을 정해 인근 마을과 동시에 시행하는 것이 상호작용이 일어나 효과가 더 높을 것이다. 행정 재원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철 농한기에 이런 방향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하반기에 내년도 시범사업으로 도입하는 일정을 제안해본다. 도입 필요성에는 많이 공감할 것인데 어디서 어떻게 시행하게 될지 궁금하다. 뜻이 있는 사람이 나서서 논의를 먼저 시작하고 시행착오를 함께 수정하며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