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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도시농업을 다시 생각한다 | 윤호창 생태유아공동체전국협의회 정책위원장
    • 작성일2020/03/04 18:36
    • 조회 373
    도시농업을 다시 생각한다
    |윤호창 생태유아공동체전국협의회 정책위원장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농업을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도시를 떠나 농사를 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지난해부터 도시농업을 생각하고 실천해보기로 했다. 도시농업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실천해보았다. 우선 도시 인근에서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다. 마침 농촌관련 활동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분이 생태농업을 해보라며 일산 부근의 땅을 빌려주었다. 다음으로 생태텃밭을 일구어 볼 생각으로 전부터 함께 일하고 있던 생태적인 유치원, 어린이집 회원기관들의 옥상을 중심으로 진행해 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집에서 아이들과 베란다 농업을 해보는 것이었다. 

    우선 고양의 대장동에 있는 400여평을 텃밭을 일구기 위해 30여 가족들과 함께 지난 4월부터 5~10평씩 나눠 생태적인 경작원칙을 세우고 도시농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그러들기는 했지만, 봄날 꽃처럼 일어난 경작본능으로 다들 열심히 텃밭을 일구었다. 

    그리고 생태적인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시범사업으로 5곳의 유아교육기관을 선정해 귀농운동본부의 도시농업센터와 함께 1년짜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상자텃밭을 하나씩 구해 함께 토마토 모종을 심고 키우기 시작했다. 아직 농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실패하고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서 도시농업의 가능성과 의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도시 농업의 이점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먼저 자기가 농사지어서 먹으니 가계비 절약은 물론 식품 안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도시생활의 문제점인 음식물, 분뇨와 같은 유기성 폐기물을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다. 공동텃밭을 처음 시작할 때 집에서 발생한 오줌은 삭여서 사용하자고 했더니 일부는 주일마다 가져왔고, 텃밭 강사 선생님의 오줌이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말에 아이들은 몇 번 오줌을 받아서 텃밭 베란다 토마토에 주었다. 

    무엇보다 주말마다 도시탈출을 하는 대신에 가족들과 함께 야외로 나와 함께 땀을 흘리고 들판에 앉아 새참을 먹는 모습을 보기 좋았다. 일년 가야 흙을 밟을 기회가 몇 번 없는 어린아이들은 왼종일 흙바닥에 뒹굴면서 땅강아지, 개미들과 친구가 되었다. 각자 자기들에게 주어진 땅을 일구는 일이었지만 함께 땅을 일구다보니 이웃하는 이들과 금방 친해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태농업의 어려움을 알게 되니 농사의 소중함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생각건대, 질 높은 삶을 위해 생태적인 도시농업이 우리에게 주는 불이익은 거의 없을 듯 하다. 표현하자면, 백익무해한 일이 도시농업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도시농업에 대한 개념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고,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인 시스템은 없기에 소수의 외로운 행동으로 그치는 수가 많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농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대다수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음을 생각하고 도시농업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도시 농업이 활성화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의 밴쿠버 같은 도시는 시민의 44%가 도시농업에 관여하고 있으며,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시유지에 마련된 컴뮤너티 농장에 8만명이 농사를 짓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대도시 중의 하나인 상하이는 채소의 80%이상을 도시농업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홍콩과 같은 도시국가에서도 채소의 45%, 닭고기의 68%를 도시농업으로 조달하고 있다. 전형적인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채소의 25%를 시내에서 생산해 공급하고 있으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은 완전 자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농업은 생태농업, 순환농업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높다. 인구가 밀집된 공간에서 농약을 뿌리는 것은 시민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생태적인 농업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도시 농업이 생태농업으로 정착한다는 것은 생태농업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지지층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농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도시소비자들은 상품으로서의 농산물만 고집하고, 생명의 결정체로서 농산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생태농업, 지역순환농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국제농업자본과 다국적 농기업으로 우리농업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수호천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고령화시대에 농업은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고령화된 노인들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거의 소용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노인들이 평생을 통해 축적된 지식은 지식정보사회를 통해 무력화 되었으며, 드러난 공간에서 혹은 숨겨진 공간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최고의 노인 자살율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낮아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노인복지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겠지만, 도시의 생태농업이야 말로 노인들의 경험을 발휘하며,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여름은 지구온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날들이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비와 한참이나 올라간 수종과 어류는 우리나라가 이미 아열대성기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2080년에 지구 평균온도가 3도 이상 올라가 지구생물 대부분이 멸종할 것이라 하고, 기후변화에 따라 작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식량난과 기근에 직면할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서 2050년에 기온이 3도 오르고, 5도 이상 오를 경우 한반도에 서식하고 산림생물들은 대부분 멸종할 것이라고 한다. 이른바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명 뿐 아니라 모든 지구생명을 위협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지구의 생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겠지만, 도시농업 또한 유력한 하나의 방안이다. 도시 안에 식물의 식생을 늘림으로써 도시열섬효과를 어느 정도 방지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의 주변 도심보다 3도 이상 온도를 내리고, 창덕궁 창경궁의 온도는 600M 정도 떨어져 있는 혜화동 로타리보다 3도 이상 낮다고 한다. 물과 숲의 형성이야말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기차의 속도의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한여름 온도가 30도를 넘으면 옥상콘크리트의 온도는 50도를 넘게 되면서 집안을 후끈하게 달구게 된다. 하지만 옥상에서 도시농업을 하게 되면 지표면의 온도가 30도를 넘지 않게 되고 도시와 기온을 낮추는 동시에 냉방비를 줄임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시농업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문제는 농사지을 땅의 문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다. 도시농업의 틈새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모색이 필요하다. 대부분 놀고 있는 옥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표 중심에서 공중농업으로, 수평농업에서 수직농업으로(담벼락 등을 활용한), 실외농업에서 실내농업으로 공간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 

    도시농업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농지를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과 건물옥상을 생태농장으로 전환해 청소년들에게 생명체험의 공간으로 만든다든지, 도시공원을 시민생태농원으로 전환한다던지, 하천부지를 활용해 농지를 조성한다든지, 다양한 방식과 모색을 통해 도시민들의 참된 휴식과 노동의 의미를 느끼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의 이런 시도들이 미래 세대들에게 주는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생태적인 농사경험을 통해 먹을거리의 문제와 학교급식문제를 살아있는 현장을 통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며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서 만드는 문화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태체험은 풀과 나무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생명과 자연을 느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농업은 주는 이로움은 많은 많지만, 도시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를 위해 생태적 전환이다. 무엇을 파괴하고 새롭게 건설하는 혁명적 전환이 아니라, 삶을 양적인 기준에서 질적인 기준으로 전환하는 생태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3만불, 4만불의 GNP와 자동차 대수가 아니라 질적으로 삶으로 이행할 수 있는 노력일 것이다. 

    이런 생태적 전환의 문제에 있어서는 농업, 농민, 농촌의 문제도 다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년간 농민들은 여의도로 달려와 힘들게 싸웠으나, 점차 농민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변화고 있으며, 90년대 수입개방을 반대할 때 지지하고 응원하던 국민과 지지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에 시민들은 시큰둥해가고 있으며, 무감각해지고 있다. 농업이 생명산업이라면 좀더 생명스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바깥의 것들과 싸우면서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며 조화를 이뤄가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농업이 우리에게 다시금 돌아오려면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생명과 경작본능을 일깨우고, 모래에 스며드는 물처럼 생명을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죽어가는 농업의 부활가능성이 있고 희망을 말할 수 있다. 도시농업은 그 한 가운데에 있다. 

    /윤호창 (생태유아공동체전국협의회 정책위원장) 
    *2007년 글입니다.
    출 처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