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태원 참사, 우리에겐 정부가 없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2/11/06 10:07
- 조회 341
백성을 사랑하고 존경받는 부탄 국왕의 리더십
히말라야 고산에 위치한 인구 80만명의 작은 왕국 부탄이 지난 9월부터 국경을 완전히 개방했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후 거의 3년 만이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 회원들과 함께 부탄을 방문하기로 했다. 10여명의 회원이 신청하여 부탄 여행을 준비하던 중, 부탄 정부로부터 ‘지속가능발전 요금(Sustainable Development Fee, SDF)’으로 하루 200달러(약 49만원)를 매일 지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1974년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관광을 허용한 부탄은 “높은 가치, 낮은 영향(High Value, Low Impact)”을 표방하며, 하루 65달러의 관광세를 부과했다. 관광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되, 환경과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제·사회문화·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관광을 추구한 것이다.
하루 65달러의 관광세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탄밖에 없는 제도라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SDF라고 이름을 바꿔 하루 200달러를 부과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일만 여행해도 SDF를 1,000달러 지불해야 하고, 여기에 숙식비 등 관광비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니, 그 비용이 웬만한 유럽 국가를 방문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부탄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관광정책을 “높은 가치, 적은 양(High Value, Low Volume)”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관광객 수가 줄더라도 정부의 관광세입은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루 200달러의 SDF 통보를 받고 필자는 이번 부탄 여행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부탄 여행을 신청한 회원들 대부분이 그 돈을 지불하더라도 부탄을 가겠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부탄으로 이끄는가. 그들은 “행복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부탄 사람, 정말 행복한가요. 눈으로 확인해보고 나도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10여년 전 컬럼비아대학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의 글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을 알고 맹목적으로 부탄 여행을 떠난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는 부탄 사람의 얼굴에서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찾기 위해 애썼고, 심지어 부탄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무례하게 묻기도 했다. 너무도 진지한 내 질문에 당황해하던 부탄 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부탄, 국민총행복 증진 위해 최선
이번을 포함해 부탄을 여섯 번 방문했다. 필자의 결론은 부탄은 가난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부탄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 부탄은 유엔이 정한 최빈국 48개국 중 하나다. 부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200~3,400달러로 우리나라의 대략 10분의 1 수준이다. 생활수준이 낮으며 여전히 해외원조에 적지 않게 의존하고 있다. 나는 <부탄 행복의 비밀>(2017년 한울)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까지 성장하여 ‘부탄의 행복’이 증진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부탄은 ‘가난한 나라’이다.
그렇지만 부탄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거지를 찾아볼 수 없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이고, 대학교육도 무상이다. 의료는 부탄 사람뿐 아니라 외국 여행객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한다. 교육과 의료를 위한 시설과 질이 선진국에 비하면 현저히 낮지만, 공부를 잘하는데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가거나 몸이 아픈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부탄 사람들에게서는 가난한 사람의 비굴함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와 국가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다.
부탄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부탄의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는 것은 근거 없는 뜬소문이다. 어떤 조사에서 부탄 사람의 97%가 ‘행복하다’고 답한 것이 그 근거인데 큰 의미는 없다. 오히려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GNH) 조사(2015년)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43.4%에 지나지 않고, 56.6%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숫자도 큰 의미가 없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부탄 정부가 국민 행복의 기준을 상당히 높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탄 정부가 ‘행복 문턱(happiness threshold)’을 조금만 낮춘다면, 부탄 국민의 90% 이상이 행복한 것으로 조사될 것이다. 그렇지만 부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부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인지 혹은 부탄 사람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매우 분명한 사실은 부탄 정부가 국민총행복의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점이다. 그 중심에 국왕이 있다. 부탄의 4대 국왕은 정치체제를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2006년 불과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 민주헌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도록 했다.
절대군주제에 익숙해 있던 부탄 국민들의 반대에 대해 “미래의 부탄 왕들이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좋지 못한 왕이 내린 결단은 나라를 한순간에 붕괴시킬지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측정돼야 한다.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국민총행복(GNH)이 더 중요하다”는 국정철학을 제시하고, GDP 대신 GNH를 국정지표로 채택했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국왕
현 5대 국왕은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서했다. “나의 통치기간 동안 나는 절대로 왕으로서 국민들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국민들을 부모처럼 지킬 것이고, 형제처럼 보살필 것이며, 아들처럼 섬기겠습니다. 나는 국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무엇도 취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좋은 인간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나에게 국민들의 희망과 열망을 채우는 일 이외에 개인적인 소망은 없습니다. 나는 호의(kindness), 정의(justice) 그리고 평등(equality)이라는 가치 아래 언제나 변함없이 국민들을 섬길 것입니다.”
부탄의 모든 가정에는 4대 왕과 5대 왕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탄 국민이 진정으로 왕을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탄 왕이 백성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이유는 생활이 검소하고 대중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기 때문이다. 부탄 왕은 백성들과 꾸준히 소통하기 위해 1년 중 몇 차례 지방을 순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필자는 2015년 5월 부탄에서 2개월간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 무렵 텔레비전을 통해 국왕의 놀라운 행보를 봤다. 국왕은 그 무렵 며칠간 야영을 하면서 부탄 동쪽 끝 야생동물보호구역인 메락-삭텡(Merak-Sakteng)을 방문했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수도 팀푸에서 메락이 속한 타시강 종카그(우리나라의 도)까지 험한 산길 600km를 달려야 한다. 자동차로 적어도 이틀은 쉬지 않고 달려야 갈 수 있다.
메락은 타시강에서 비포장도로 농도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3시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메락에서 이틀을 지낸 왕은 삭텡을 갔다. 메락에서 삭텡을 가기 위해서는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 하루 종일 걸어야 갈 수 있다. 때마침 비가 와서 왕과 왕비가 무려 14시간을 걸으며 산골을 방문했는데 그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됐다. 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귀한 헬리콥터는 긴급용이기 때문에 왕의 시찰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부탄 국왕의 리더십, 위기에 빛나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이번 부탄 여행 목적의 하나는 메락-삭텡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보다 교통이 많이 편리해졌다. 우선 타시강까지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파로(Paro) 공항(해발 2,195m)에서 타시강의 용풀라(Yongphulla) 공항(해발 2,743m)까지 경비행기로 4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리고 타시강에서 삭텡까지의 자동차도로가 5년간(2014~2019)에 걸쳐 완성됐다. 자동차도로라고 하지만 굽이굽이 산길에 비포장이라 60여km를 가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 왕복 10시간이다.
1박 2일의 삭텡 여행만으로도 완전히 몸살이 난 필자는 메락 방문을 포기했다. 삭텡에서 메락까지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 10km를 걷거나 비포장도로로 8시간 자동차길이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박 2일의 메락-삭텡 여행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필자는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두 곳 모두 며칠 야영을 하면서 방문한 부탄 왕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탄의 왕실은 다른 나라의 왕실과 달리 왕실 소유 재산이 거의 없다. 반면에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 부탄 사람들은 이를 키두(Kidu)라고 한다. 토지 없는 농민 혹은 토지가 적은 농민은 왕에게 토지를 나눠줄 것을 청원할 수 있고 왕은 이에 응해야 한다. 왕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학생들에게 연간 일정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해야 하고,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
5대 국왕의 리더십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빛을 발휘했다. 국왕은 전 재산을 털어 키두 펀드에 기증하고, 코로나로 인한 국가 봉쇄 상태에서 실직하거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일일이 지원했다. 일시적인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기초 생계가 될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매월 정기적으로 입금해줬다. 국왕은 평소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힘든 지역, 고립된 마을을 찾아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헬기는 이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헬기는 백신 나르는 데 사용하고, 헬기도 못 가는 오지에는 사람들과 직접 걸어서 백신을 운반했다. 부탄이 해외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 국민의 85%에게 1차 접종을 마치고, 2차 접종 때는 단 2주 만에 성인의 95%에게 백신 접종을 마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국왕의 리더십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엄중한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민생은 제쳐두고, 긴급하지도 않은 대통령 궁 놀이에 천문학적인 돈과 국력을 낭비하고, 권력투쟁과 정쟁에 몰두하는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부탄 국민이 한없이 부럽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좋은 관광지’
삭텡에서 부탄 국민총행복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삭텡에는 330세대 2,126명이 살고 있었다. 부탄도 오늘날 이농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척박한 비탈 농지에서 맨손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부탄 정부의 무상의무교육정책에 의해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젊은이들이 마땅한 직업도 없는 산골에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삭텡에서는 인구가 줄지 않고 있고 더욱이 자동차도로가 생긴 이후로는 인구가 조금 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외부와 오랜 단절 속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있고, 가족 간, 이웃 간의 유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동체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다. 삭텡의 주된 소득원은 야크를 키워서 치즈와 버터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야크는 높은 산에서만 살기 때문에 주민들은 봄에서 가을까지 야크를 데리고 깊은 산 속에서 야영을 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산에 가는 경우가 많아 결석이 잦다. 교육을 가장 중시하는 부탄 정부로서는 이를 방치할 수 없다. 부모를 떠나 남겨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아침을 제공한다. 나아가 남겨진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돌보기 위한 기숙사를 한참 건설하고 있었다.
삭텡에는 예비학교부터 8학년까지의 학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약 280명이나 된다. 18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사들은 전국을 순회하기 때문에 결코 도시의 교사에 비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8학년을 졸업하면 이웃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2019년부터 학생 수가 조금 늘었다고 한다. 교육문제로 인해 이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역정책의 핵심은 지역을 개발해서 외지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메락-삭텡은 야크 사육 이외에 생태관광을 중요한 소득원으로 육성하고 있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좋은 관광지다.’
이태원 참사, 우린 정부가 있는가
부탄의 국민총행복정책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것인가. 국왕의 선의에만 의존한다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부탄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혁명이나 전쟁 없이 국왕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나라다. 그럼에도 헌법에 명시된 국왕의 권한은 막강하지만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
국왕도 정년이 있다. 65세가 되면 왕위를 반드시 후계자에게 양위해야 한다. 통치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헌법기관이 맡고 있다. 부탄 의회는 상·하원으로 구성되는데 5년 임기다. 2008년 헌법이 도입된 이후 세 번의 선거를 통해 모두 집권 정당이 교체됐다. 민주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내년 4~5월경에 네 번째 총선거가 있는데, 다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부탄의 민주주의와 국민총행복정책의 발전을 마냥 부러워만 할 수 없다. 부탄의 오랜 지인은 나에게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그만하면 됐으니 경제성장보다는 국민 행복을 챙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부탄 1729년 법전).” 아~ 이태원 참사. 우리에겐 정부가 없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998
히말라야 고산에 위치한 인구 80만명의 작은 왕국 부탄이 지난 9월부터 국경을 완전히 개방했다. 코로나 팬데믹 발생 이후 거의 3년 만이다. 국민총행복전환포럼 회원들과 함께 부탄을 방문하기로 했다. 10여명의 회원이 신청하여 부탄 여행을 준비하던 중, 부탄 정부로부터 ‘지속가능발전 요금(Sustainable Development Fee, SDF)’으로 하루 200달러(약 49만원)를 매일 지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1974년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관광을 허용한 부탄은 “높은 가치, 낮은 영향(High Value, Low Impact)”을 표방하며, 하루 65달러의 관광세를 부과했다. 관광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되, 환경과 문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제·사회문화·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관광을 추구한 것이다.
하루 65달러의 관광세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부탄밖에 없는 제도라고 이런저런 말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SDF라고 이름을 바꿔 하루 200달러를 부과한다고 하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일만 여행해도 SDF를 1,000달러 지불해야 하고, 여기에 숙식비 등 관광비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니, 그 비용이 웬만한 유럽 국가를 방문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부탄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관광정책을 “높은 가치, 적은 양(High Value, Low Volume)”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관광객 수가 줄더라도 정부의 관광세입은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루 200달러의 SDF 통보를 받고 필자는 이번 부탄 여행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부탄 여행을 신청한 회원들 대부분이 그 돈을 지불하더라도 부탄을 가겠다는 것이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부탄으로 이끄는가. 그들은 “행복한 나라는 어떠한 나라인가. 부탄 사람, 정말 행복한가요. 눈으로 확인해보고 나도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10여년 전 컬럼비아대학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의 글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을 알고 맹목적으로 부탄 여행을 떠난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는 부탄 사람의 얼굴에서 ‘행복한 사람’의 표정을 찾기 위해 애썼고, 심지어 부탄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무례하게 묻기도 했다. 너무도 진지한 내 질문에 당황해하던 부탄 사람들을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부탄, 국민총행복 증진 위해 최선
이번을 포함해 부탄을 여섯 번 방문했다. 필자의 결론은 부탄은 가난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부탄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 부탄은 유엔이 정한 최빈국 48개국 중 하나다. 부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200~3,400달러로 우리나라의 대략 10분의 1 수준이다. 생활수준이 낮으며 여전히 해외원조에 적지 않게 의존하고 있다. 나는 <부탄 행복의 비밀>(2017년 한울)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까지 성장하여 ‘부탄의 행복’이 증진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부탄은 ‘가난한 나라’이다.
그렇지만 부탄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거지를 찾아볼 수 없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 의무교육이고, 대학교육도 무상이다. 의료는 부탄 사람뿐 아니라 외국 여행객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한다. 교육과 의료를 위한 시설과 질이 선진국에 비하면 현저히 낮지만, 공부를 잘하는데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가거나 몸이 아픈데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부탄 사람들에게서는 가난한 사람의 비굴함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와 국가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다.
부탄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부탄의 행복지수가 세계 1위라는 것은 근거 없는 뜬소문이다. 어떤 조사에서 부탄 사람의 97%가 ‘행복하다’고 답한 것이 그 근거인데 큰 의미는 없다. 오히려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GNH) 조사(2015년)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43.4%에 지나지 않고, 56.6%는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 숫자도 큰 의미가 없다.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부탄 정부가 국민 행복의 기준을 상당히 높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부탄 정부가 ‘행복 문턱(happiness threshold)’을 조금만 낮춘다면, 부탄 국민의 90% 이상이 행복한 것으로 조사될 것이다. 그렇지만 부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 높은 수준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부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인지 혹은 부탄 사람이 행복한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매우 분명한 사실은 부탄 정부가 국민총행복의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점이다. 그 중심에 국왕이 있다. 부탄의 4대 국왕은 정치체제를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2006년 불과 51세라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 민주헌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도록 했다.
절대군주제에 익숙해 있던 부탄 국민들의 반대에 대해 “미래의 부탄 왕들이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좋지 못한 왕이 내린 결단은 나라를 한순간에 붕괴시킬지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측정돼야 한다.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국민총행복(GNH)이 더 중요하다”는 국정철학을 제시하고, GDP 대신 GNH를 국정지표로 채택했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국왕
현 5대 국왕은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서했다. “나의 통치기간 동안 나는 절대로 왕으로서 국민들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국민들을 부모처럼 지킬 것이고, 형제처럼 보살필 것이며, 아들처럼 섬기겠습니다. 나는 국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무엇도 취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좋은 인간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나에게 국민들의 희망과 열망을 채우는 일 이외에 개인적인 소망은 없습니다. 나는 호의(kindness), 정의(justice) 그리고 평등(equality)이라는 가치 아래 언제나 변함없이 국민들을 섬길 것입니다.”
부탄의 모든 가정에는 4대 왕과 5대 왕의 사진이 걸린 것을 볼 수 있다.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탄 국민이 진정으로 왕을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탄 왕이 백성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이유는 생활이 검소하고 대중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기 때문이다. 부탄 왕은 백성들과 꾸준히 소통하기 위해 1년 중 몇 차례 지방을 순시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필자는 2015년 5월 부탄에서 2개월간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 무렵 텔레비전을 통해 국왕의 놀라운 행보를 봤다. 국왕은 그 무렵 며칠간 야영을 하면서 부탄 동쪽 끝 야생동물보호구역인 메락-삭텡(Merak-Sakteng)을 방문했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수도 팀푸에서 메락이 속한 타시강 종카그(우리나라의 도)까지 험한 산길 600km를 달려야 한다. 자동차로 적어도 이틀은 쉬지 않고 달려야 갈 수 있다.
메락은 타시강에서 비포장도로 농도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3시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메락에서 이틀을 지낸 왕은 삭텡을 갔다. 메락에서 삭텡을 가기 위해서는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 하루 종일 걸어야 갈 수 있다. 때마침 비가 와서 왕과 왕비가 무려 14시간을 걸으며 산골을 방문했는데 그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됐다. 필자는 큰 감동을 받았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귀한 헬리콥터는 긴급용이기 때문에 왕의 시찰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부탄 국왕의 리더십, 위기에 빛나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이번 부탄 여행 목적의 하나는 메락-삭텡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보다 교통이 많이 편리해졌다. 우선 타시강까지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 파로(Paro) 공항(해발 2,195m)에서 타시강의 용풀라(Yongphulla) 공항(해발 2,743m)까지 경비행기로 4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리고 타시강에서 삭텡까지의 자동차도로가 5년간(2014~2019)에 걸쳐 완성됐다. 자동차도로라고 하지만 굽이굽이 산길에 비포장이라 60여km를 가는데 4시간 반이 걸렸다. 왕복 10시간이다.
1박 2일의 삭텡 여행만으로도 완전히 몸살이 난 필자는 메락 방문을 포기했다. 삭텡에서 메락까지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 10km를 걷거나 비포장도로로 8시간 자동차길이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박 2일의 메락-삭텡 여행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필자는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두 곳 모두 며칠 야영을 하면서 방문한 부탄 왕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탄의 왕실은 다른 나라의 왕실과 달리 왕실 소유 재산이 거의 없다. 반면에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 부탄 사람들은 이를 키두(Kidu)라고 한다. 토지 없는 농민 혹은 토지가 적은 농민은 왕에게 토지를 나눠줄 것을 청원할 수 있고 왕은 이에 응해야 한다. 왕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학생들에게 연간 일정 금액의 장학금을 지급해야 하고,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
5대 국왕의 리더십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빛을 발휘했다. 국왕은 전 재산을 털어 키두 펀드에 기증하고, 코로나로 인한 국가 봉쇄 상태에서 실직하거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일일이 지원했다. 일시적인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기초 생계가 될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매월 정기적으로 입금해줬다. 국왕은 평소보다 더 많이 더 열심히 힘든 지역, 고립된 마을을 찾아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헬기는 이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헬기는 백신 나르는 데 사용하고, 헬기도 못 가는 오지에는 사람들과 직접 걸어서 백신을 운반했다. 부탄이 해외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 국민의 85%에게 1차 접종을 마치고, 2차 접종 때는 단 2주 만에 성인의 95%에게 백신 접종을 마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국왕의 리더십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의 엄중한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민생은 제쳐두고, 긴급하지도 않은 대통령 궁 놀이에 천문학적인 돈과 국력을 낭비하고, 권력투쟁과 정쟁에 몰두하는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부탄 국민이 한없이 부럽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좋은 관광지’
삭텡에서 부탄 국민총행복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삭텡에는 330세대 2,126명이 살고 있었다. 부탄도 오늘날 이농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척박한 비탈 농지에서 맨손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부탄 정부의 무상의무교육정책에 의해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젊은이들이 마땅한 직업도 없는 산골에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삭텡에서는 인구가 줄지 않고 있고 더욱이 자동차도로가 생긴 이후로는 인구가 조금 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외부와 오랜 단절 속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있고, 가족 간, 이웃 간의 유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동체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다. 삭텡의 주된 소득원은 야크를 키워서 치즈와 버터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야크는 높은 산에서만 살기 때문에 주민들은 봄에서 가을까지 야크를 데리고 깊은 산 속에서 야영을 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산에 가는 경우가 많아 결석이 잦다. 교육을 가장 중시하는 부탄 정부로서는 이를 방치할 수 없다. 부모를 떠나 남겨진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아침을 제공한다. 나아가 남겨진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돌보기 위한 기숙사를 한참 건설하고 있었다.
삭텡에는 예비학교부터 8학년까지의 학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약 280명이나 된다. 18명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교사들은 전국을 순회하기 때문에 결코 도시의 교사에 비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8학년을 졸업하면 이웃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2019년부터 학생 수가 조금 늘었다고 한다. 교육문제로 인해 이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역정책의 핵심은 지역을 개발해서 외지의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메락-삭텡은 야크 사육 이외에 생태관광을 중요한 소득원으로 육성하고 있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 가장 좋은 관광지다.’
이태원 참사, 우린 정부가 있는가
부탄의 국민총행복정책이 얼마나 지속가능할 것인가. 국왕의 선의에만 의존한다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부탄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혁명이나 전쟁 없이 국왕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나라다. 그럼에도 헌법에 명시된 국왕의 권한은 막강하지만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
국왕도 정년이 있다. 65세가 되면 왕위를 반드시 후계자에게 양위해야 한다. 통치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헌법기관이 맡고 있다. 부탄 의회는 상·하원으로 구성되는데 5년 임기다. 2008년 헌법이 도입된 이후 세 번의 선거를 통해 모두 집권 정당이 교체됐다. 민주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내년 4~5월경에 네 번째 총선거가 있는데, 다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부탄의 민주주의와 국민총행복정책의 발전을 마냥 부러워만 할 수 없다. 부탄의 오랜 지인은 나에게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는 그만하면 됐으니 경제성장보다는 국민 행복을 챙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부탄 1729년 법전).” 아~ 이태원 참사. 우리에겐 정부가 없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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