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농정’ 너머 식량자급률 제고 농정 펼쳐야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2/08/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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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농정’ 너머 식량자급률 제고 농정 펼쳐야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최근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45년 만의 대폭락이라고 한다. 쌀값은 지난 1년 사이 전국적으로 평균 20%가량 폭락했고 유명 쌀 산지에서는 30% 가까이 폭락한 곳도 있다. 세 차례의 쌀 시장격리에도 쌀값 하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풍년으로 저온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수확한 벼 보관에도 창고가 부족한 상황이니 올해 벼를 수확하게 되면 보관 문제부터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밀가루값이 급등해도, 쌀값은 하락하고 소비는 늘지 않는다. 우선 당장 쌀 재고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지만, 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쌀, 우리 민족의 정체성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이(李)씨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그 쌀밥을 이(李)밥이라 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이래 백성들은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게 평생소원이라 했다.
최근 소설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파친코>는 일제 식민지하 조선인의 고단한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선자의 모친은 막 결혼을 하고 오사카로 떠나는 딸 내외를 위해 쌀을 사러 간다. 팔 게 없다는 쌀집 주인에게 “신랑 신부한테 고향 떠나기 전에 저녁으로 흰쌀밥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라니까네 고만큼만 있으면 되예”라며 눈물을 훔친다.
황금찬 시인은 보릿고개는 “에베레스트, 몽블랑, 와이키키, 킬리만자로보다 높아 넘기 어렵다”고 노래했다. 보릿고개는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모두 떨어지고 하곡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음력 3∼4월의 춘궁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기에 가난한 농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언제 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197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독성이 있는 나무뿌리를 잘못 먹어 생사를 헤맨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도시락 검사의 웃픈 추억도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분식 장려를 강제적으로 시행했다. 모든 식당에서는 밥에는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도록 했고, ‘분식의날(無米日)’을 지정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에 일정 비율 이상의 잡곡을 쓰도록 단속하고 검사를 해서 순쌀밥 도시락이 걸리면 체벌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TV에서는 혼·분식 장려를 넘어 쌀은 건강에 나쁘다고 광고했다. 혼·분식 장려시책은 1978년 6월 19일에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나서도 한동안 지속됐다.
3,0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쌀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후, 쌀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문화를 일군 터전이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그 답을 ‘쌀’에서 찾는다.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벼농사 생산체제는 우리의 인식(집단주의), 정치(중앙집권적 권위주의), 노동 시스템(연공제)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까지 규정한다(<쌀 재난 국가>).
쌀을 빼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쌀에 대한 집착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이주한 한인이나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카레이스키(고려인)’가 밭을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지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 “생쌀을 먹으면 어머니가 죽는다”, “쌀을 씻을 때 흘리면 유산한다”, “키질할 때 쌀알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난다”고 했다. 이처럼 귀한 존재이자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쌀이 언제부턴가 외면당하고 있다.
‘쌀 농정’ 지속가능하지 않다
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되풀이되는 쌀 과잉과 쌀값 폭락에 대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쌀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이다. 시장원리에 맡기면 과잉공급은 가격하락을 가져와 수급 균형이 회복된다. 그러나 쌀은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쌀은 농민의 주된 소득원이며 식량안보의 보루이다. 쌀은 대부분의 농가가 생산하며 소득이 가장 안정적인 작목이다. 말하자면 농가경제 안정의 보루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데, 그나마 쌀 자급률이 90%를 넘기 때문에,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도 참을 만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그동안 우리는 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지금과 같은 쌀 정책이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쌀이 처한 현실을 조금 냉정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쌀을 과도한 정치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농정은 한마디로 ‘쌀 농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이 부족했던 1970년대 말까지 정부는 쌀 증산에 채찍과 당근을 동원하여 총력을 다 했다. 쌀 생산량에 따라 농림부 장관 자리가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연이은 대풍으로 쌀 자급자족이 실현되자 1977년 말 정부는 ‘분식의날(無米日)’을 폐지하고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등 쌀 소비를 자유화했다.
1980년 냉해 피해로 쌀 생산이 30%나 감소하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쌀을 긴급 수입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80년대 이후 쌀은 남아돌아도 여전히 다른 작목에 비해 두터운 보호를 받았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쌀 시장개방
쌀이 시장논리를 벗어나 정치논리에 휘둘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트(GATT) 우루과이 라운드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포괄적 관세화를 통해 관세 이외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여 농산물시장에 대한 전면적 개방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농가의 85%가 쌀을 재배하고 국내 쌀도 과잉인 상태에서 쌀 시장을 개방할 수 없었다.
“쌀만은 안 된다”는 쌀 예외주의가 등장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쌀 한 톨이라도 개방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식언이 되고 말았지만 이후 쌀은 경제재가 아닌 정치재가 되었다.
당시 나는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협상과 농산물 시장개방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쌀만은 안 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TV 토론에서 “우리 국민이 쌀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쌀을 빼고 나머지를 다 개방하면 농업생산 기반이 붕괴되고 그 주름살이 쌀에도 미쳐 쌀마저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쌀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1995~2004년까지 10년간 기준연도인 1986~88년 평균 국내 소비량의 1~4%까지의 의무수입을 약속했다. 쌀 관세화 유예와 부분개방을 대가로 나머지 모든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화를 받아들였다.
이후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협상과 자유무역협정의 양자간 협정에서도 쌀은 특별한 대우를 받은 반면 나머지 농산물은 글로벌 시장의 한파에 보호막 없이 노출됐다. 쌀은 우리 농업의 최후의 보루로서 모든 짐을 짊어졌다. 그 결과, 쌀은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식량자급률은 낮아졌다.
가격 하락·소비 감소 … 쌀, 기펜재 되나
경제학에서는 상품을 정상재와 열등재로 구분한다. 정상재란 가격이 내리거나 소득이 오르면 수요(소비)가 늘고, 가격이 오르거나 소득이 줄면 수요가 주는 재화이다(이른바 수요의 법칙).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구매하고 소비하는 재화는 거의 대부분 정상재이다.
그런데 소득이 늘면 소비가 줄고, 소득이 줄면 소비가 늘어나는 재화가 있다. 이를 열등재라 한다. 열등재 가운데 수요의 법칙(시장원리)에 반해서 가격이 상승하면 오히려 소비가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주는 재화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기펜(Giffen)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19세기 중엽 대기근 시에 감자값이 상승하는 데 감자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리는 이상한 소비행태를 발견했다. 대기근으로 살기 어려워지자 아일랜드 사람들은 밀이나 고기 소비를 줄이고 주식인 감자 소비를 늘린 것이다. 이러한 재화를 그의 이름을 따서 기펜재라고 하는데, 기펜재는 그 역도 성립한다. 즉 가격이 하락하는데 수요가 줄어드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가 실제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나라 쌀은 단순한 경제재가 아니고 정치논리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논리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쌀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매매되는 재화이므로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른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63년 105.5kg에서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1979년 135.6kg까지 증가 추세였으나. 1980년 감소 추세로 돌아선 후 쌀 소비는 매년 일관되게 감소하여 2021년에 56.9kg까지 줄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한편 산지 쌀값은 2004년까지는 추세적으로 꾸준히 상승하였으나 2005년 이후에는 풍흉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하향 추세다.
1인당 국민소득이 오르고 쌀 소비도 증가한 1979년까지 쌀은 정상재였다. 1979년 이후 2004년까지 소득이 오르고 쌀값이 오르고 쌀 소비는 줄었다. 소득이 늘고 쌀값도 오르니 사람들은 쌀 소비를 줄이고 다른 농산물의 소비를 늘렸다. 쌀 소비는 1979년 135.6kg에서 2004년 82kg으로 급속히 줄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쌀은 열등재였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2005년 이후 소득은 늘고, 쌀값은 등락하면서 하락 경향을 보이는데,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가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만약 쌀의 처지가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량이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쌀값이 내려도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쌀값을 지지할 수 없다. 쌀 재고 과잉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쌀이 너무 흔하다. 흔하면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회복해 쌀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임시방편으로 무책임한 땜질식 대처를 해왔기 때문이다.
쌀, 면적당수확량 줄이고 고급화 필요
쌀 과잉문제로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면서 쌀 문제에 대한 근본대책을 고민해보자. 소비량은 급격히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산량을 줄이는 게 급하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매년 줄고 있다. 논 면적이 농지전용이나 휴경으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곡물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쌀(주식용)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쌀의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줄이고 고급화해야 한다. 일본 니카다현의 우오누마 고시히카리(魚沼コシヒカリ)는 보통 쌀의 2배 가까이 비싼 값을 받는 고급 쌀인데, 생산과정에서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제한한다. 친환경 쌀 생산을 전면화한다면 쌀 생산량을 줄이고 쌀값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소비가 줄고 있는 주식용 쌀 이외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재배를 장려하고, 논에 밭작물인 밀, 보리, 콩, 옥수수(사료용 포함), 전분원료용 고구마, 사탕무 등 다양한 전작(轉作)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2009~2021년에 논 면적은 유지하면서 주식용 쌀 재배면적은 2009년 159만 헥타르에서 2021년에는 130만 헥타르로 급속히 줄였다. 반면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콩, 밀 등 전략작물의 재배면적은 2009년 32만 헥타르에서 2021년에는 51.2만 헥타르로 크게 늘였다.
과거에 일본은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논 면적의 40% 정도를 휴경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은 휴경이 아니라 논 면적의 약 30%를 주식용 쌀 재배로부터 전략작물 재배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략작물에 대해 각종 직접지불로 수익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생산조정제)’을 실시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타작물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7%인 반면, 일본이 밀 자급률을 4%에서 17%까지 끌어올린 것은 적극적인 가격 및 소득지지정책으로 밀의 수익성을 보장한 덕분이다.
계층별·세대별·용도별 맞춤형 쌀 소비 정책 수립해야
그런데 문제는 쌀 생산량 감소보다 쌀 소비량이 더 빠르게 감소하는 점이다. 따라서 쌀 소비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쌀 소비에 대해 소득계층별, 세대별, 용도별 등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통해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 쌀이 남는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 하루 세끼 밥을 먹지 못하는 저소득 취약계층에게는 쌀을 무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일본의 최근 연구를 보면 쌀 소비 감소가 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젊은 세대의 쌀 소비는 큰 변화가 없는 반면에, 60~70대에서는 쌀 소비가 급감하고 빵이나 면, 파스타, 육류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중·노년 세대를 대상으로 쌀 소비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쌀을 이용한 다양한 가공품의 개발과 소비촉진을 지원하고, 고급 쌀을 생산하여 수출을 늘린다.
물가안정을 위해 국내 농업을 희생시키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물가안정을 핑계로 밀 수입가격을 낮추고, 농산물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하는 데 이런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쌀과 타작물 균형 통해 식량자급률 높여야
쌀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고, 생명이다. 그렇지만 시장에서의 위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제 쌀은 값이 떨어져도 소비가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쌀의 시장가치를 회복하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쌀만은’하는 쌀 예외주의 농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쌀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작목이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취급할 작목은 아니다. 쌀에 더이상 과도한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쌀과 다른 작물과의 균형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시장 상황에 맞도록 쌀의 수급균형을 회복하고, 그러한 전제 위에서 적정한 배려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박진도의 가보세(2022.8.7)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163&fbclid=IwAR1cdY2eIBkMO8_3ufKDJlDwvIbWUwkLD_ZdmtnlyzwPhxOSwSIVITiPyEk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최근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45년 만의 대폭락이라고 한다. 쌀값은 지난 1년 사이 전국적으로 평균 20%가량 폭락했고 유명 쌀 산지에서는 30% 가까이 폭락한 곳도 있다. 세 차례의 쌀 시장격리에도 쌀값 하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풍년으로 저온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수확한 벼 보관에도 창고가 부족한 상황이니 올해 벼를 수확하게 되면 보관 문제부터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밀가루값이 급등해도, 쌀값은 하락하고 소비는 늘지 않는다. 우선 당장 쌀 재고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지만, 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쌀, 우리 민족의 정체성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이(李)씨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해서 그 쌀밥을 이(李)밥이라 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이래 백성들은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게 평생소원이라 했다.
최근 소설과 드라마로 인기를 끈 <파친코>는 일제 식민지하 조선인의 고단한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선자의 모친은 막 결혼을 하고 오사카로 떠나는 딸 내외를 위해 쌀을 사러 간다. 팔 게 없다는 쌀집 주인에게 “신랑 신부한테 고향 떠나기 전에 저녁으로 흰쌀밥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라니까네 고만큼만 있으면 되예”라며 눈물을 훔친다.
황금찬 시인은 보릿고개는 “에베레스트, 몽블랑, 와이키키, 킬리만자로보다 높아 넘기 어렵다”고 노래했다. 보릿고개는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모두 떨어지고 하곡인 보리가 여물지 않은 음력 3∼4월의 춘궁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시기에 가난한 농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언제 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1970년대 이후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독성이 있는 나무뿌리를 잘못 먹어 생사를 헤맨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도시락 검사의 웃픈 추억도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분식 장려를 강제적으로 시행했다. 모든 식당에서는 밥에는 보리쌀이나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도록 했고, ‘분식의날(無米日)’을 지정해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에 일정 비율 이상의 잡곡을 쓰도록 단속하고 검사를 해서 순쌀밥 도시락이 걸리면 체벌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TV에서는 혼·분식 장려를 넘어 쌀은 건강에 나쁘다고 광고했다. 혼·분식 장려시책은 1978년 6월 19일에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나서도 한동안 지속됐다.
3,0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쌀을 재배하기 시작한 이후, 쌀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문화를 일군 터전이다. 사회학자 이철승은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고 그 답을 ‘쌀’에서 찾는다. 쌀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벼농사 생산체제는 우리의 인식(집단주의), 정치(중앙집권적 권위주의), 노동 시스템(연공제)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까지 규정한다(<쌀 재난 국가>).
쌀을 빼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쌀에 대한 집착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로 이주한 한인이나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한 ‘카레이스키(고려인)’가 밭을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지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 “생쌀을 먹으면 어머니가 죽는다”, “쌀을 씻을 때 흘리면 유산한다”, “키질할 때 쌀알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난다”고 했다. 이처럼 귀한 존재이자 우리 민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쌀이 언제부턴가 외면당하고 있다.
‘쌀 농정’ 지속가능하지 않다
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되풀이되는 쌀 과잉과 쌀값 폭락에 대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쌀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이다. 시장원리에 맡기면 과잉공급은 가격하락을 가져와 수급 균형이 회복된다. 그러나 쌀은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쌀은 농민의 주된 소득원이며 식량안보의 보루이다. 쌀은 대부분의 농가가 생산하며 소득이 가장 안정적인 작목이다. 말하자면 농가경제 안정의 보루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데, 그나마 쌀 자급률이 90%를 넘기 때문에,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밀가루 가격이 폭등해도 참을 만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그동안 우리는 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지금과 같은 쌀 정책이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쌀이 처한 현실을 조금 냉정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쌀을 과도한 정치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농정은 한마디로 ‘쌀 농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이 부족했던 1970년대 말까지 정부는 쌀 증산에 채찍과 당근을 동원하여 총력을 다 했다. 쌀 생산량에 따라 농림부 장관 자리가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연이은 대풍으로 쌀 자급자족이 실현되자 1977년 말 정부는 ‘분식의날(無米日)’을 폐지하고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등 쌀 소비를 자유화했다.
1980년 냉해 피해로 쌀 생산이 30%나 감소하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쌀을 긴급 수입하는 일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80년대 이후 쌀은 남아돌아도 여전히 다른 작목에 비해 두터운 보호를 받았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쌀 시장개방
쌀이 시장논리를 벗어나 정치논리에 휘둘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가트(GATT) 우루과이 라운드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포괄적 관세화를 통해 관세 이외의 모든 장벽을 제거하여 농산물시장에 대한 전면적 개방을 추진했다. 우리나라는 전체 농가의 85%가 쌀을 재배하고 국내 쌀도 과잉인 상태에서 쌀 시장을 개방할 수 없었다.
“쌀만은 안 된다”는 쌀 예외주의가 등장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쌀 한 톨이라도 개방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식언이 되고 말았지만 이후 쌀은 경제재가 아닌 정치재가 되었다.
당시 나는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협상과 농산물 시장개방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쌀만은 안 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했다. TV 토론에서 “우리 국민이 쌀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쌀을 빼고 나머지를 다 개방하면 농업생산 기반이 붕괴되고 그 주름살이 쌀에도 미쳐 쌀마저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쌀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1995~2004년까지 10년간 기준연도인 1986~88년 평균 국내 소비량의 1~4%까지의 의무수입을 약속했다. 쌀 관세화 유예와 부분개방을 대가로 나머지 모든 농산물에 대해서는 관세화를 받아들였다.
이후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협상과 자유무역협정의 양자간 협정에서도 쌀은 특별한 대우를 받은 반면 나머지 농산물은 글로벌 시장의 한파에 보호막 없이 노출됐다. 쌀은 우리 농업의 최후의 보루로서 모든 짐을 짊어졌다. 그 결과, 쌀은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식량자급률은 낮아졌다.
가격 하락·소비 감소 … 쌀, 기펜재 되나
경제학에서는 상품을 정상재와 열등재로 구분한다. 정상재란 가격이 내리거나 소득이 오르면 수요(소비)가 늘고, 가격이 오르거나 소득이 줄면 수요가 주는 재화이다(이른바 수요의 법칙).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구매하고 소비하는 재화는 거의 대부분 정상재이다.
그런데 소득이 늘면 소비가 줄고, 소득이 줄면 소비가 늘어나는 재화가 있다. 이를 열등재라 한다. 열등재 가운데 수요의 법칙(시장원리)에 반해서 가격이 상승하면 오히려 소비가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 소비가 주는 재화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기펜(Giffen)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19세기 중엽 대기근 시에 감자값이 상승하는 데 감자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리는 이상한 소비행태를 발견했다. 대기근으로 살기 어려워지자 아일랜드 사람들은 밀이나 고기 소비를 줄이고 주식인 감자 소비를 늘린 것이다. 이러한 재화를 그의 이름을 따서 기펜재라고 하는데, 기펜재는 그 역도 성립한다. 즉 가격이 하락하는데 수요가 줄어드는 경우다. 후자의 경우가 실제로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나라 쌀은 단순한 경제재가 아니고 정치논리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논리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쌀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매매되는 재화이므로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른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63년 105.5kg에서 약간의 기복은 있지만 1979년 135.6kg까지 증가 추세였으나. 1980년 감소 추세로 돌아선 후 쌀 소비는 매년 일관되게 감소하여 2021년에 56.9kg까지 줄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한편 산지 쌀값은 2004년까지는 추세적으로 꾸준히 상승하였으나 2005년 이후에는 풍흉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하향 추세다.
1인당 국민소득이 오르고 쌀 소비도 증가한 1979년까지 쌀은 정상재였다. 1979년 이후 2004년까지 소득이 오르고 쌀값이 오르고 쌀 소비는 줄었다. 소득이 늘고 쌀값도 오르니 사람들은 쌀 소비를 줄이고 다른 농산물의 소비를 늘렸다. 쌀 소비는 1979년 135.6kg에서 2004년 82kg으로 급속히 줄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쌀은 열등재였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2005년 이후 소득은 늘고, 쌀값은 등락하면서 하락 경향을 보이는데,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가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만약 쌀의 처지가 가격이 하락해도 소비량이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쌀값이 내려도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쌀값을 지지할 수 없다. 쌀 재고 과잉으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쌀이 너무 흔하다. 흔하면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회복해 쌀의 시장가치를 높이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이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임시방편으로 무책임한 땜질식 대처를 해왔기 때문이다.
쌀, 면적당수확량 줄이고 고급화 필요
쌀 과잉문제로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분투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하면서 쌀 문제에 대한 근본대책을 고민해보자. 소비량은 급격히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산량을 줄이는 게 급하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매년 줄고 있다. 논 면적이 농지전용이나 휴경으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곡물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쌀(주식용)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 쌀의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줄이고 고급화해야 한다. 일본 니카다현의 우오누마 고시히카리(魚沼コシヒカリ)는 보통 쌀의 2배 가까이 비싼 값을 받는 고급 쌀인데, 생산과정에서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제한한다. 친환경 쌀 생산을 전면화한다면 쌀 생산량을 줄이고 쌀값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논 면적을 유지하면서 소비가 줄고 있는 주식용 쌀 이외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재배를 장려하고, 논에 밭작물인 밀, 보리, 콩, 옥수수(사료용 포함), 전분원료용 고구마, 사탕무 등 다양한 전작(轉作)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2009~2021년에 논 면적은 유지하면서 주식용 쌀 재배면적은 2009년 159만 헥타르에서 2021년에는 130만 헥타르로 급속히 줄였다. 반면에 가공용 쌀, 사료용 쌀, 전분용 쌀, 콩, 밀 등 전략작물의 재배면적은 2009년 32만 헥타르에서 2021년에는 51.2만 헥타르로 크게 늘였다.
과거에 일본은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논 면적의 40% 정도를 휴경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은 휴경이 아니라 논 면적의 약 30%를 주식용 쌀 재배로부터 전략작물 재배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략작물에 대해 각종 직접지불로 수익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생산조정제)’을 실시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타작물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7%인 반면, 일본이 밀 자급률을 4%에서 17%까지 끌어올린 것은 적극적인 가격 및 소득지지정책으로 밀의 수익성을 보장한 덕분이다.
계층별·세대별·용도별 맞춤형 쌀 소비 정책 수립해야
그런데 문제는 쌀 생산량 감소보다 쌀 소비량이 더 빠르게 감소하는 점이다. 따라서 쌀 소비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쌀 소비에 대해 소득계층별, 세대별, 용도별 등 정확한 실태 파악을 통해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 쌀이 남는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 하루 세끼 밥을 먹지 못하는 저소득 취약계층에게는 쌀을 무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일본의 최근 연구를 보면 쌀 소비 감소가 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젊은 세대의 쌀 소비는 큰 변화가 없는 반면에, 60~70대에서는 쌀 소비가 급감하고 빵이나 면, 파스타, 육류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은 중·노년 세대를 대상으로 쌀 소비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쌀을 이용한 다양한 가공품의 개발과 소비촉진을 지원하고, 고급 쌀을 생산하여 수출을 늘린다.
물가안정을 위해 국내 농업을 희생시키는 일은 그만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물가안정을 핑계로 밀 수입가격을 낮추고, 농산물을 무차별적으로 수입하는 데 이런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쌀과 타작물 균형 통해 식량자급률 높여야
쌀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고, 생명이다. 그렇지만 시장에서의 위상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제 쌀은 값이 떨어져도 소비가 줄어드는 기펜재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쌀의 시장가치를 회복하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쌀만은’하는 쌀 예외주의 농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쌀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작목이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취급할 작목은 아니다. 쌀에 더이상 과도한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쌀과 다른 작물과의 균형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 시장 상황에 맞도록 쌀의 수급균형을 회복하고, 그러한 전제 위에서 적정한 배려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박진도의 가보세(2022.8.7)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163&fbclid=IwAR1cdY2eIBkMO8_3ufKDJlDwvIbWUwkLD_ZdmtnlyzwPhxOSwSIVITiPy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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