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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지방소멸’ 부추기는 지방소멸론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2/07/03 18:24
    • 조회 521
    ‘지방소멸’ 부추기는 지방소멸론
    지방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우리 동네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벌써 칠십이 넘었는데, 동네에서 막내다”, “지금 살고 있는 70~80대가 죽으면 10~20년 내로 우리 동네가 없어질 것 같다.” 시골 마을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다. 시골 마을의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하다. 경북 U군 S면의 김씨는 ‘자기 마을이 언젠가는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막연한 불안은 현실이 되는가 보다. 우리 동네가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찍혔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군(郡) 전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2016년 3월 한국고용정보원의 이상호 박사는 우리나라의 228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 가운데 79개가 ‘소멸위험지역’(2014년 현재)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소멸위험지역’은 매년 급속히 늘어나 2022년 3월 현재 113개로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의 절반(49.6%)에 이른다고 한다. 급기야 2021년 10월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에 대해 매년 1조원씩 10년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방소멸’이 정부 공식 문건에 등장한 것이다.

    ‘지방이 소멸한다’. 무슨 말인가. ‘지방’의 사전적 의미는 ‘한 나라의 수도 이외의 지역’이고 ‘소멸은 ‘사라져 없어짐’이니, ‘지방소멸’이란 ‘수도권 이외의 지역’이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이 된다. ‘지방소멸론’의 원조인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는 이것을 수도권 일극집중에 의한 ‘극점사회(極點社會)의 도래’라 표현했다. 인구감소(저출생)와 수도권 집중으로 수도권 이외의 지방은 사라지고 수도권만 남는다는 말이다.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은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도권 인구집중도는 우리나라가 50.24%로 일본 30.12%보다 훨씬 높다. 2021년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0.81명(일본은 1.3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대체출산율(한 나라의 인구수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이 대략 2.1명인 것을 고려하면, 이대로 가면 언젠가 우리나라 자체가 소멸할 것이다.

    서울의 출생률은 세계 역사상 가장 낮은 0.63명으로 전국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친다. 수도권 인구집중은 대한민국의 소멸을 가속화할 것이다. ‘지방소멸론’대로라면 지방이 소멸하고 대한민국이 소멸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구감소=지방소멸은 가짜뉴스

    일본 이와테현 지사와 총무대신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씨가 주축이 돼 작성한 ‘마스다 보고서’(2014년)는 전체 1,747개 시정촌(市町村: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절반이 넘는 896개가 2040년까지 향후 소멸할 가능성이 높은 ‘소멸가능성도시’라고 발표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방소멸론’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고용정보원의 이상호 박사가 마스다의 분석방법을 차용(변용)하여 <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2016년 3월)이란 보고서를 발표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방소멸’은 듣는 순간 섬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말이지만 그 논리는 매우 허술하다. 마스다 보고서의 ‘소멸가능성도시’는 2010~2040년에 20~39세의 젊은 여성인구가 50% 이상 감소할 시정촌을 말한다. 그리고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는 소멸위험지수(20~39세 가임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로 나눈 값)가 0.5 이하인 지역을 소멸위험지역으로 파악하고, 소멸위험지수가 낮을수록 소멸위험이 높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지방소멸론’은 모두 젊은 여성인구 감소에 주목하고 있다. 젊은 여성인구와 출생률이 감소하면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이유는 없고, 더욱이 지자체가 소멸한다고 지방이 소멸할 이유는 없다. 지방,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지방은 소멸하지 않는다. ‘인구감소=지방소멸’이라는 단순 논리에 사람들이 놀아나서는 안 된다.

    지방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마땅한 연구가 없으니, ‘지방소멸’의 원조인 일본의 조사 연구를 참조하자. 일본 국토성은 2015년에 ‘과소지역 등 조건불리지역 집락의 현황’을 조사했다. 817개 기초자치단체의 6만5,440집락이 조사대상이다. 이는 일본 전체 시정촌의 약 47%, 전체 인구의 약 9.3%에 해당한다. 이 조사에서 10년 이내에 소멸(무거주화) 가능성이 있는 집락은 515개(0.8%), 언젠가는 소멸할 가능성이 있는 집락은 2,697개(4.1%)로 조사됐다.

    흔히 감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과소지역 등에서조차 집락이 소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욱이 이렇게 조사된 집락 가운데서도 실제로 소멸하는 집락은 훨씬 적다. 예를 들어, 2010년 조사에서 10년 이내 무거주화 가능성이 있다고 한 452집락 가운데 5년 동안 실제로 무거주화한 집락은 41개로 9.1%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산간 마을을 가면 곧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 적지 않지만, 실제로 마을이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마을(집락)은 쉽게 소멸하지 않는 강인성을 보여준다. 하물며 기초지자체가 통째로 소멸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지방소멸’은 상식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소멸해서도 안 된다. 국민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서 도시민 가운데 농촌에 가서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 농업농촌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34.4%가 ‘은퇴 후 혹은 여건이 되면 귀농·귀촌할 생각이 있다’. 일본 내각부의 ‘농산어촌에 관한 여론조사’(2021년 6월)에 따르면 도시지역 거주자 가운데 26.6%가 농산어촌지역으로 이주하고 싶다고 했다.

    도시민의 귀농·귀촌 의향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약간 높다. 실제로 매년 50만명 가까운 사람이 귀농·귀촌하고 있다. 자연과 공생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게 가장 커다란 이유이다. 농촌의 여건이 나아지면 전원회귀(田園回歸)는 지금보다 더 활발해질 것이다.


    ‘마스다 보고서’, 아베 정권의 신자유주의 지역정책

    소멸할 수도 없고, 소멸해서도 안 되는데, 왜 ‘지방소멸’을 말하는가. 지방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방소멸론’은 과연 수도권 집중과 지방쇠퇴의 심각성을 일거에 사회적으로 이슈화해 지방을 살릴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일까.

    ‘지방소멸론’의 원조인 ‘마스다 보고서’는 정치적 산물이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베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지역정책(‘로컬 아베노믹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지방소멸’이란 폭력적 언어로 일종의 충격요법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4년 9월 지방창생담당 장관을 신설하고, 아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해서 ‘마을·사람·일 창생본부(まち·ひと·しごと創生本部)’를 발족했다. ‘창생본부’를 중심으로 아베 정부는 ‘마을·사람·일 창생 장기비전’(‘장기비전’)과 ‘마을·사람·일 창생 종합전략’(‘종합전략’)을 수립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 정부의 ‘지방창생’은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방과 지역주민의 삶의 관점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자본의 시각에서 작성된 것이란 점이다.

    이는 “첫째, 2060년에 1억명인 정도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도쿄일극집중’을 시정한다, 둘째, 2050년대에 실질 GDP 성장률은 1.5~2%대로 유지한다”고 하는 ‘장기비전’의 목적에서 잘 알 수 있다. 지방의 인구감소로 인해 지역민의 삶이 악화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구감소로 인한 일본 경제의 성장잠재력 하락을 막는 것이 ‘지방창생’의 목적이다.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속셈 또한 숨기지 않고 있다.


    ‘선택과 집중’의 지역정책, 성공 사례가 없다

    ‘지방소멸론’은 “언젠가는 소멸할 시정촌에 인프라 정비 등 공공투자를 하는 것은 세금 낭비다. 모든 시정촌을 구제할 수는 없다”는 여론을 유도하고 있다. 총무성의 지방제도조사회는 2013년 6월 제30차 답신에서 “시정촌이 일률적으로 주민의 일상생활에 필요불가결한 행정 서비스를 자기 완결적으로 풀세트로 제공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자주적인 시정촌 합병이나 기초지자체 간의 광역 연계를 추진하여, 향후 지방중추거점도시를 중핵으로 도시기능, 생활기능을 확보함과 동시에 집적과 네트워크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베 정권의 ‘지방창생’ 방안에 대해 많은 시정촌이 “‘소멸가능성도시’ 가운데 상당수를 중앙정부의 정책 대상에서 ‘잘라버리기’(切り捨てる) 위한 기민정책(棄民政策)”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일본의 ‘지방창생’ 전략의 핵심은 ‘거점(압축)과 연결(네트워크화)’이다. 그 논리는 이렇다. 지방인구 감소의 최대 원인은 젊은 인구의 유출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젊은이에게 매력 있는 거점도시’를 중핵으로 한 ‘새로운 집적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거점도시의 중심부에 ‘직·주·유·학’(職·住·遊·學)의 도시 기능을 집적(압축)한다. 지방거점중추도시의 육성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투자와 시책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거점도시’(중추도시)를 육성하고, 거점도시와 거점도시를 연결하고, 거점도시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거점(중추)도시의 육성과 네트워크화라는 개발방식은 제2차 전국종합개발계획(1969년) 이래 일본의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개발 정책의 중심 흐름이다. 이를 위해 2004~2006년에는 시정촌의 수를 3,170개에서 1,817개로 급격히 줄이는 대합병을 반강제적으로 추진했다(현재는 1,718개). 그러나 ‘선택과 집중’ 그리고 대합병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거점개발과 네트워크화’ 정책은 왜 실패할까. 거점도시가 거점으로서 역할하기 위해서는 주변 시정촌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선택과 집중’에서 소외된 시정촌은 인구유출이 가속화해 쇠퇴의 길을 걷는다. 거점도시도 일시적으로는 인구가 늘어날지 모르지만 주변 시정촌이 쇠퇴하면 거점도시 또한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 시대에 도시를 외연적으로 확장하기보다는 ‘자전거나 걸어서 생활할 수 있는 영역’(예, 파리시 ‘15분’ 구상)으로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광역지자체의 중심시가지에 투자를 집중하고, 주변 농산어촌으로부터 이주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시도한 이런 방식의 ‘압축도시’는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지방창생’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방인구 감소와 도쿄권 집중(‘지방소멸’)은 심화하고 있다. 2020년 국세조사에 의하면 도쿄권의 인구는 2015년 조사에 비해 4.1% 증가한 반면 도쿄권을 제외한 전국 42개 광역지자체 가운데 38개 광역지자체는 인구가 감소했다. 일본경제는 경제성장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악화일로에 있다. 수도권 일극집중과 경제성장이라는 아베 정부의 ‘지방창생’은 실패로 끝났다.


    ‘사업국가’에서 ‘인간국가’로

    지방의 문제를 인구감소대책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쿄대학 경제학부의 명예교수 진노 나오히코(神野直彦)는 “인구라는 말은 인간을 양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하는 사회가 되면 인간은 몰개성의 인구로 된다. 인구를 타깃으로 한 정책은 인간을 노동력, 병력이란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시장주의에 기초한 도시재생은 대실패로 끝났다. 자연환경과 지역문화를 재생해야 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보는 ‘사업국가’로부터 인간의 ‘삶’을 최상위에 두는 ‘인간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지방창생’에서 제시된 메가시티, 중핵도시, 압축도시 나아가서 행정조직 개편(합병) 그리고 규제완화(규제개혁 특구)가 별다른 비판 의식 없이 횡행하고 있다. “쇠퇴하는 모든 도시들을 살릴 수 없다”는 <지방도시 살생부>(마강래)까지 등장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압축과 연결(네트워크화)’ 논리에 기초한 메가시티와 거점도시의 육성(압축도시), 시·군 통합 등의 주장은 시장주의에 입각한 강자의 논리로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중앙과 자본을 위한 정책이다. 메가시티나 거점 중핵도시의 건설은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공항, 광역철도망과 도로 등 인프라 정비와 각종 시설의 건축에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고 지방이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 뿌리가 썩고 주변이 쇠퇴하는데, 압축하고 뭉치고 대도시 경제권을 형성해봐야 사상누각이다. 연결은 되지 않고, 집중은 <농산어촌의 몰락→지방중소도시 몰락→지방대도시의 쇠퇴>로 이어져 종국에는 수도권의 위기 그리고 국가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지역경제 실핏줄, 농산어촌이 살아야 한다

    지방소멸론자들에게 한마디 해 두자. 모든 사람이 대도시의 높은 빌딩과 현란한 네온사인에 현혹되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환경과 국토를 지키며 우리에게 먹을거리와 쉼터 일터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들이 있어야 거점도시(중핵도시)도 대도시도 광역경제권도 있다. ‘지방소멸’을 염려하는 척하면서 농산어촌의 급속한 쇠퇴를 초래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추진하는 기만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중앙과 자본의 관점에서 재정 부담 감축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주의 ‘지방창생’은 성공할 수 없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지방소멸 대응 시책은 지역 만들기의 기반이자 목표인 ‘지역의 자긍심’을 말살하고 지역의 자립 의지를 꺾는다. 어차피 사라질 ‘지역 만들기’가 무슨 소용이 있나. 두려운 것은 ‘인구의 과소화’가 아니라 ‘마음의 과소화’다. 인구증가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행복 증가를 목표로 해야 지방이 살고 나라가 산다.

    지역경제의 실핏줄인 농산어촌이 살아야 한다. 농산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의료, 교육, 교통, 주거, 돌봄 등)를 누리고, 기본적인 소득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국토·환경·문화·지역지킴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농사를 짓거나 다양한 일을 하면서 자연과 공생하는 삶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농산어촌에서 살길을 열어줘야 한다. 여기에 많은 재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지방소멸’을 빌미로 한 각종 지역개발정책에 사용되는 돈을 조정하면 된다.


    출처 : ‘지방소멸’ 부추기는 지방소멸론 - 한국농정신문 (ikpnews.net)
    '살생부'까지 등장.. 지방소멸론에 숨은 음모 (daum.net)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