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거짓말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2/05/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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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거짓말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윤석열 당선자가 곧 대통령에 취임한다. ‘촛불’은 꺼지고, 이제부터 윤석열의 시간이다. 그런데 국민 지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 정부가 출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과연 윤석열정부의 농정은 제대로 전개될 것인가. 그의 농정 공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약속한 것만이라도 잘 지킨다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대선 농정 공약(公約)이 빈 약속(空約)으로 끝나는 것을 늘 봐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공약했다.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의 실현을 위해 △중소 가족농 소득 안정 △농촌 인력난 해소 △농업의 디지털 생산·유통 혁신과 가격 안정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농업 직불금 확대 △식량주권 회복을 위한 농지 보전 강화 △탄소중립을 위한 저탄소 농업의 확산 △고령 농업인의 편안한 노후와 건강관리 △청년농 집중 육성 △농촌 주민 삶의 질 향상 △국민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제공 △환경친화적 축산업 구축과 가축 질병 예방 강화 등을 농정 공약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지난 2월 4일 대선 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
사람들은 이 정도의 공약이라도 정말 추진된다면 3농(농어업, 농어촌, 농어민)의 현실이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질 텐데 과연 잘 지키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를 의식한 듯 윤석열 후보는 “제가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농업·어업·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습니다”고 했다.
농업 문제 해결,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
그런데 잠깐.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한 것이 농정 분야 말고 또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쭉 자랐고, 대학시절 남들 다 간다는 농활 한 번 가봤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 한농연 농민대회에서의 연설 말고 평소 농업과 농촌, 지역에 대한 애정과 정책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 정말 3농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인가.
농민들이나 농업계 학자들은 입버릇처럼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3농의 불행은 농어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민이 겪고 있는 주거, 교통, 환경, 일자리, 교육 문제의 근원이 농산어촌의 붕괴와 수도권 집중에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성장 신화와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과 언론, 관료, 학자들은 눈·귀를 닫고 애써 외면한다. 3농은 우리사회에서 섬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농업계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고,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당선될 수만 있다면 과장된 공약을 남발해도 괜찮다. 유권자는 공약에 박수를 보낼 뿐 얼마나 지켰는지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농정 틀 전환’ 약속 안 지킨 문재인, 윤석열은?
과연 윤석열 당선자는 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국가 농정의 기본 틀을 바꾸겠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농정을 직접 챙기기 위해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집권 3년차에 법에 의해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설치되면서 간신히 실현됐지만 대통령은 농정을 직접 챙기지 않았다. 농특위는 ‘농정 틀 전환’이라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입담을 나누는 사랑방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초대 농특위원장으로서 내 책임이 제일 크다고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농업과 농민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애정은 있었지만 농정철학이 없었고,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에서 3농은 뒷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관료들이 지배한 문재인정부에서 3농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농업부문의 비중(2%)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농특위는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물으면 대답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묻지 않는다. 농특위는 자문(諮問)이 없으니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특위가 기득권의 반발을 뚫고 ‘농정 틀을 전환’한다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연목구어였다.
성장주의 아래 3농이 설자리는 없다
한마디로 국정철학과 농정 공약이 따로 논 것이다. 성장주의 국정철학에서 3농이 설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정부의 국정철학과 농정의 관계는 어떠할 것인가.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전두환 시기에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했다”고 하는 등 성장주의 철학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는 친기업적 행보를 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치철학으로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18~19세기에 신흥 부르주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영업의 자유)을 위해 탄생한 이데올로기다.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주의의 위협을 받았고, 1차 대전과 세계 대공황을 거치면서 부침하였으나, 1945년 이후 미‧소 냉전시대에 전체주의 계획경제체제에 맞서 미국과 그 우방(?)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쳤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선진국들은 ‘복지국가’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했다. 시장경제를 맹신한 선진국은 없었다.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발전했다. 신자유주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여 미국이 역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지위로 부상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쇠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회는 양극화돼 “우리 시대는 분열에 의한, 동시에 분열을 조장하는 분노의 시대”(판카지 미슈라)로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 탄생, 서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에서 보듯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철 지난 이데올로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불평등과 사회의 양극화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신자유주의)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는 기여했으나, 금융업자와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초래했고, 반복되는 팬데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후진 독재국가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는 나라가 있지만,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이를 표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러시아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실험한 결과, 세상을 몽땅 바꾸는 새로운 독재와 약탈체제가 생겨났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늘 상위 순번을 차지하는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윤석열 당선자가 ‘좌파’라고 비난한 문재인정부는 보수정부라고 하는 독일의 메르켈 정부보다 더 ‘우파’적이지 않은가.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demos(민)’가 ‘kratia(지배)’한다는 뜻이지만, 민이 직접 주체가 돼 다스린 역사는 거의 없다. 결국 소수가 민의 뜻을 앞세워 그들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의 독재(금권 과두정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역사에서 작동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한 시장경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서 칼 폴라니의 ‘사탄의 맷돌’처럼 공동체(사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지탱해온 가치를 갈아 없애버리며 자본가에 의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자유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정당화(미화)하기 위해 사용된 흑역사가 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질서’란 말이 처음 들어간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헌법이다.
전두환 5공 군사정부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명분으로 ‘북한 침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주의를 표방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직접 언급하지 못한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군사독재가 아닌 검찰독재를 할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이념 논쟁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성장주의 극복 못 하면 전 국민이 불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구시대적 성장주의를 국정철학으로 하는 한, “농업·어업·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은 거짓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당선자는 초대 총리로 ‘뼛속까지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라는 한덕수씨를 지명했다. 3농은 시장주의, 개방주의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임은 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경제장관들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사람들로 채워졌다.
당선자의 공약과는 달리 3농의 험난한 앞날이 우울하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발효에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Mega FTA)이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3농은 태풍에 휩싸일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관료들이 공익형직불금을 2배(2.4조원에서 5조원)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대표 농정 공약조차 과연 지킬 것인지 의심스럽다.
성장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3농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우리나라는 성장(소득)과 행복 사이의 괴리가 매우 큰 나라다. <2022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26위인데, 행복순위는 59위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인당 GDP는 2013년 2만7,178달러(43위)에서 2021년 3만4,743달러(25위)로 크게 증가했지만, 행복순위는 41위에서 59위로 하락했다.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2011년 24위에서 2020년 28위로 하락했다. 물론 행복순위가 낮아졌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 국민이 그동안 더 불행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우울증 1위,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산업재해율 1위 등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2년여 모든 인류를 고통에 빠트리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GDP를 왕좌에서 끌어내렸다’(Dethrone GDP). 코로나19는 인간의 무절제한 물질적 욕망을 무한자극하는 성장주의의 산물이며,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 중심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와 석학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핵심적 내용을 이룬다. OECD는 2020년 6월에『더 나은 재건』(Building Back Better)에서 코로나19 이후의 경제회복(재건)의 기본방향은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이라고 했다. 경제적 회복의 핵심목표는 “웰빙에 초점을 맞추며, 포용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사람 중심의 회복…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정부, 3농 더이상 희생시켜선 안 돼
세계의 흐름과 달리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로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제성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성장 중독에 편승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경제가 다시 성장해야 젊은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일자리, 저출산, 불평등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미 우리나라 경제는 국가가 경제(성장)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했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 무리한 성장 정책은 불평등을 심화해서 국민들을 더욱 불행하게 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성장과 행복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부문)’을 행복하게 하여 국민총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농은 우리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아직 행복하지 않은 부문(사람)’이다. 윤석열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퇴행적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3농을 더이상 희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정치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행복경제는 낙오되거나 소외되는 국민이 없는 경제”라고 했다.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2022. 5. 1.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7302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윤석열 당선자가 곧 대통령에 취임한다. ‘촛불’은 꺼지고, 이제부터 윤석열의 시간이다. 그런데 국민 지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 정부가 출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과연 윤석열정부의 농정은 제대로 전개될 것인가. 그의 농정 공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약속한 것만이라도 잘 지킨다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대선 농정 공약(公約)이 빈 약속(空約)으로 끝나는 것을 늘 봐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공약했다.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의 실현을 위해 △중소 가족농 소득 안정 △농촌 인력난 해소 △농업의 디지털 생산·유통 혁신과 가격 안정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농업 직불금 확대 △식량주권 회복을 위한 농지 보전 강화 △탄소중립을 위한 저탄소 농업의 확산 △고령 농업인의 편안한 노후와 건강관리 △청년농 집중 육성 △농촌 주민 삶의 질 향상 △국민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제공 △환경친화적 축산업 구축과 가축 질병 예방 강화 등을 농정 공약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지난 2월 4일 대선 후보 농정 비전 발표회).
사람들은 이 정도의 공약이라도 정말 추진된다면 3농(농어업, 농어촌, 농어민)의 현실이 지금보다는 조금 나아질 텐데 과연 잘 지키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를 의식한 듯 윤석열 후보는 “제가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농업·어업·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습니다”고 했다.
농업 문제 해결,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
그런데 잠깐.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한 것이 농정 분야 말고 또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쭉 자랐고, 대학시절 남들 다 간다는 농활 한 번 가봤다는 말을 들은 적 없다. 한농연 농민대회에서의 연설 말고 평소 농업과 농촌, 지역에 대한 애정과 정책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 정말 3농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질 것인가.
농민들이나 농업계 학자들은 입버릇처럼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3농의 불행은 농어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민이 겪고 있는 주거, 교통, 환경, 일자리, 교육 문제의 근원이 농산어촌의 붕괴와 수도권 집중에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성장 신화와 성장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인과 언론, 관료, 학자들은 눈·귀를 닫고 애써 외면한다. 3농은 우리사회에서 섬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농업계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고, 후보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심리>에서 “당선될 수만 있다면 과장된 공약을 남발해도 괜찮다. 유권자는 공약에 박수를 보낼 뿐 얼마나 지켰는지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농정 틀 전환’ 약속 안 지킨 문재인, 윤석열은?
과연 윤석열 당선자는 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인가.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 19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는 “국가 농정의 기본 틀을 바꾸겠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농정을 직접 챙기기 위해 대통령직속 농어업특별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집권 3년차에 법에 의해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설치되면서 간신히 실현됐지만 대통령은 농정을 직접 챙기지 않았다. 농특위는 ‘농정 틀 전환’이라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입담을 나누는 사랑방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초대 농특위원장으로서 내 책임이 제일 크다고 반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농업과 농민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농정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애정은 있었지만 농정철학이 없었고,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에서 3농은 뒷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관료들이 지배한 문재인정부에서 3농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농업부문의 비중(2%)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농특위는 대통령 소속 자문기구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물으면 대답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묻지 않는다. 농특위는 자문(諮問)이 없으니 자문자답(自問自答)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특위가 기득권의 반발을 뚫고 ‘농정 틀을 전환’한다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연목구어였다.
성장주의 아래 3농이 설자리는 없다
한마디로 국정철학과 농정 공약이 따로 논 것이다. 성장주의 국정철학에서 3농이 설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정부의 국정철학과 농정의 관계는 어떠할 것인가.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전두환 시기에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했다”고 하는 등 성장주의 철학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당선 이후에는 친기업적 행보를 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치철학으로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18~19세기에 신흥 부르주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영업의 자유)을 위해 탄생한 이데올로기다.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주의의 위협을 받았고, 1차 대전과 세계 대공황을 거치면서 부침하였으나, 1945년 이후 미‧소 냉전시대에 전체주의 계획경제체제에 맞서 미국과 그 우방(?)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쳤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도 선진국들은 ‘복지국가’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발달했다. 시장경제를 맹신한 선진국은 없었다.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발전했다. 신자유주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하여 미국이 역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지위로 부상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쇠퇴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사회는 양극화돼 “우리 시대는 분열에 의한, 동시에 분열을 조장하는 분노의 시대”(판카지 미슈라)로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 탄생, 서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에서 보듯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 엘리트들의 부패에 분노하는 젊은 세대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철 지난 이데올로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불평등과 사회의 양극화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신자유주의)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는 기여했으나, 금융업자와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초래했고, 반복되는 팬데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후진 독재국가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는 나라가 있지만,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 이를 표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러시아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실험한 결과, 세상을 몽땅 바꾸는 새로운 독재와 약탈체제가 생겨났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늘 상위 순번을 차지하는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윤석열 당선자가 ‘좌파’라고 비난한 문재인정부는 보수정부라고 하는 독일의 메르켈 정부보다 더 ‘우파’적이지 않은가.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demos(민)’가 ‘kratia(지배)’한다는 뜻이지만, 민이 직접 주체가 돼 다스린 역사는 거의 없다. 결국 소수가 민의 뜻을 앞세워 그들 뜻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앞세워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의 독재(금권 과두정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역사에서 작동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결합한 시장경제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로서 칼 폴라니의 ‘사탄의 맷돌’처럼 공동체(사회)를 파괴하고 사회를 지탱해온 가치를 갈아 없애버리며 자본가에 의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자유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정당화(미화)하기 위해 사용된 흑역사가 있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질서’란 말이 처음 들어간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헌법이다.
전두환 5공 군사정부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명분으로 ‘북한 침략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주의를 표방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조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직접 언급하지 못한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군사독재가 아닌 검찰독재를 할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이념 논쟁을 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성장주의 극복 못 하면 전 국민이 불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구시대적 성장주의를 국정철학으로 하는 한, “농업·어업·축산 정책과 그 예산을 대통령이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은 거짓말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당선자는 초대 총리로 ‘뼛속까지 시장주의자, 개방주의자’라는 한덕수씨를 지명했다. 3농은 시장주의, 개방주의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임은 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경제장관들은 이명박·박근혜 시절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사람들로 채워졌다.
당선자의 공약과는 달리 3농의 험난한 앞날이 우울하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발효에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Mega FTA)이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3농은 태풍에 휩싸일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관료들이 공익형직불금을 2배(2.4조원에서 5조원)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대표 농정 공약조차 과연 지킬 것인지 의심스럽다.
성장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3농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불행해진다. 우리나라는 성장(소득)과 행복 사이의 괴리가 매우 큰 나라다. <2022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26위인데, 행복순위는 59위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인당 GDP는 2013년 2만7,178달러(43위)에서 2021년 3만4,743달러(25위)로 크게 증가했지만, 행복순위는 41위에서 59위로 하락했다.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의 지수’(Better Life Index)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2011년 24위에서 2020년 28위로 하락했다. 물론 행복순위가 낮아졌다는 것이 반드시 우리 국민이 그동안 더 불행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우울증 1위,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산업재해율 1위 등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2년여 모든 인류를 고통에 빠트리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GDP를 왕좌에서 끌어내렸다’(Dethrone GDP). 코로나19는 인간의 무절제한 물질적 욕망을 무한자극하는 성장주의의 산물이며,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 중심의 시스템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와 석학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핵심적 내용을 이룬다. OECD는 2020년 6월에『더 나은 재건』(Building Back Better)에서 코로나19 이후의 경제회복(재건)의 기본방향은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이라고 했다. 경제적 회복의 핵심목표는 “웰빙에 초점을 맞추며, 포용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사람 중심의 회복…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배출 감축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정부, 3농 더이상 희생시켜선 안 돼
세계의 흐름과 달리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로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제성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성장 중독에 편승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경제가 다시 성장해야 젊은이들이 가장 고통받는 일자리, 저출산, 불평등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미 우리나라 경제는 국가가 경제(성장)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했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 무리한 성장 정책은 불평등을 심화해서 국민들을 더욱 불행하게 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성장과 행복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부문)’을 행복하게 하여 국민총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농은 우리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아직 행복하지 않은 부문(사람)’이다. 윤석열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퇴행적 성장주의에 사로잡혀 3농을 더이상 희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윤석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정치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행복경제는 낙오되거나 소외되는 국민이 없는 경제”라고 했다.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2022. 5. 1.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7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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