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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국가 정책과 농촌자치, 그리고 선거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2/03/11 13:50
    • 조회 569
    국가 정책과 농촌자치, 그리고 선거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정책 토론·합의가 생략되는 농촌 현실
    좋은 후보를 선택하지 못할 가능성 커
    민간단체 연대-협력 강화 지방선거 대응을


    국가의 정책은 농촌 마을 구석구석의 주민 살림살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장의 농산물 가격정책도 그러하고, 직불금 같은 공적 보조나 읍·면 단위 지역개발정책이 그러하다. 국가의 힘이 셀수록, 반면에 농촌의 자치역량이 떨어질수록 이런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중간에 끼어 있는 자치단체 행정의 역량이 부족하면 이 간극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지방자치제 부활 30년의 경험 속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국가가 주도하는 압축적인 경제성장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농업은 경쟁력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맡겨지고, 도시 중심의 거점개발을 통해 주변 농촌에는 낙수효과만 기대하는 정도였다. 경제학이란 학문에서는 과잉인구 운운하며 농촌을 농산물과 노동력 공급기지로 규정하였다. 농촌개발은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듯이 주민 주도의 자력 개발에 의존하고, 자재·장비를 지원하는 정도에 그쳤다.

    21세기에 들어와 중앙정부의 각종 보조사업도 늘고, 농촌개발사업도 확대되었다. 농업의 자생력, 농촌의 자치력이 약화된 빈 틈 사이로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적 개입이 강화된 셈이다. 농민단체들이 지원을 강하게 요청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농업문제가 심각해진 탓도 크다. 주민(농민)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자치역량이 훼손되고, 수도 없이 늘어난 각종 보조사업이 농촌사회를 간신히 지탱하는 꼴이 되었다. 일부 대농이나 스타 농업인, 특이 사례 등을 언론에서 부각시키며 그래도 농촌에 희망이 있다며, 국가가 농촌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선전하였다.

    문제는 쉽게 보였지만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와 맞물려 해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공직 선거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신규 보조사업이 대폭 늘어났고, 그만큼 공무원의 업무량도 농민들의 행정 의존도도 증가하였다. 농정의 시스템과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은 항상 큰 장벽에 부딪쳤다. 이런 시기를 20여년 다시 보내고 나니 이제는 지방소멸을 운운하기 시작하였다. 균형발전이란 정책도 메가시티(초광역도시) 논의로 넘어가버렸다. 수도권 초집중, 농촌 초초고령화, 소득 양극화, 공동체성 해체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듯이 새로운 정책(사업)이 출발할 당시의 문제의식에는 항상 등장하지만 정책 시스템 자체의 전환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농촌에서 마을만들기란 활동은 21세기 들어 앞에서 언급한 근본문제를 극복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등장하였다. 주민 주도성을 강조하고, 내발적 발전을 전면에 내세운 주민자치운동이었다. 농촌에 살고 있는 주민 당사자들이 지역발전의 주인공이 될 때 새로운 전략도 희망도 가능하리라는 문제의식이었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 시작하여 도농교류, 체험마을 사업을 매개로 전국 농촌으로 확대되어 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도시에서도 마을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제는 중간지원조직의 전국단체도 있고, 지방정부협의회도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운동으로서 마을만들기도 성장하였다.

    하지만 국가 정책과 주민자치운동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제도 개선은 더디며, 정책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명확했지만 정책과 운동 사이의 접점은 빗나가고 논의는 깊어지지 못했다. 지난 20여 년의 경험을 돌아보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고,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문제제기만 반복했던 셈이다. 긍정적으로는 농촌정책의 현장 주체가 성장하고, 지자체 농정의 민관협치 사례도 등장하고, 전국 조직도 설립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변화가 농촌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속도에 비해 구조적 장벽은 너무 강고하고 국가 정책은 변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신활력플러스처럼 새롭게 시도되는 몇몇 정책도 시행과정에서 쉽게 왜곡된다. 변화란 것이 더디게 나타나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전진한다면 좋겠지만, 10년, 20년 후의 희망을 품어보기에는 암울함이 짙어진다.

    이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일 수 있는 것은 민의(民意)를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농촌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명확하다. 특히 대통령처럼 선거 범위가 넓어질수록 더욱 그러하다. 수도권 인구가 이미 전국의 절반을 넘었고, 도시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농촌은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 그룹에서 전국을 돌며 좋은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하였지만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새로운 정부에서 얼마나 검토하고 반영할지는 선거 과정이나 공약 내용을 볼 때 의문일 수밖에 없다. 향후 5년간 적어도 농촌정책에서는 국가 정책과 현장 사이의 괴리를 더욱 심각하게 느낄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 있어 보인다. 농촌 현장 민의가 그나마 더 잘 반영될 수 있는 선거 범위라 하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의 지역별 결과를 본다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그만큼 농촌에는 풀뿌리 보수주의가 심각하고, 여전히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가 선거에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토양이야 긴 역사적 산물인 셈이고 보수주의란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다만 정책 토론과 합의 과정이 생략되는 농촌 현실에서는 선거를 통해 좋은 후보를 선택하지 못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 후보자 공약을 둘러싼 정책토론회조차 찾기 힘들고, 메니페스토(정책선거) 운동을 시도하는 사례도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어느 활동가 말처럼 전과(前科)가 적거나 남에게 피해주지 않은 사람을 뽑는 정도에 그친다.

    당연하게도 선거 상황에서는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 검토하고, 투표권자에게 제공해주는 시민운동, 주민운동이 농촌에서도 활발해야 한다. 정당에 대한 선호도와 다르게 후보자의 정책 공약은 당선 이후까지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제는 국가 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자치단체장에게 상당부분 있다. 오히려 주민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크다 할 수 있다. 동일한 국가 정책을 집행하더라도 지자체의 의지와 방식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메니페스토 운동도 행정보다 더 심각하다는 민간단체 칸막이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평상시에 연대와 협력의 네트워크 활동 경험이 축적되어야 지방선거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기에는 이번 지방선거가 준비기간이 너무 촉박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지역마다 뜻있는 단체들이 모여 지금이라도 논의를 시작해보면 좋겠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