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주민수당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1/11/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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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주민수당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이 지난달 26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봉화를 올리고 출발했다.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매주 1박 2일의 대장정이다. 26일 해남군, 27일에는 곡성군에서 민회를 개최했다. 기후위기, 먹을거리위기, 지역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우리가 주장하는 삼강오략(三綱五略)에 대한 현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달 칼럼에서는 첫째 강령인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촌을 위한 방략,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를 설명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셋째 강령인 지역위기에 대응하는 농촌을 위한 방략, ‘농촌주민수당 지급’을 다룬다.
농민수당,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 농촌기본소득, 농촌주민수당 등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이 논의되고 있다. 비슷비슷한 말의 향연에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나는 이것을 농업과 농민에 대해서는 ‘농민공익기여직불’, 그리고 농산어촌과 농산어촌주민에 대해서는 ‘농산어촌주민수당(농촌주민수당) 지급’으로 정리할 것을 제안한다.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둘째, 재정의 추가 부담이 최소화돼야 한다.
농촌주민수당, 국민적 공감대 형성·재정 부담 최소화해야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농민수당,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농민 소득보전이란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민공익기여직불’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권’이라 하지만, ‘왜 기본권이 농민에게만 혹은 왜 농민부터 주어져야 하는가?’ 농민이 다른 계층보다 가난해서? 농민이 그동안 경제성장에서 희생하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촌지역의 비농민들조차 동의하기 쉽지 않다. 결국 농업과 농민이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자체의 농민수당이나, 정부의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법안 등은 모두 농민에 대한 현금지불의 정당성을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면 조건 없이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이 국민총행복을 위한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공익기여직불을 하는 것이 국민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된다.
공익적 가치는 농산물의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국가)가 보상해야 한다. 생산주의 농정의 재정지출과 각종 조세감면을 조정하면, 추가적인 재정부담 없이 농민기본소득론자들이 주장하는 연 8조원(농민 1인당 평균 월 30만원 지급) 정도의 돈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설득도 가능하다.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 지급
우리는 농민공익기여직불과 함께 농촌주민에게는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농촌은 아기 울음이 끊긴 ‘자연양로원’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 ‘인구소멸위험지역’이란 무시무시한 말이 등장한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상황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역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일자리 부족이라고 한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과 농촌살리기란 미명으로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해왔고, 기업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란 명목으로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지역에 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을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외생적 개발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생적 개발은 본래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객을 불러올 매력이 있는 지역은 입지조건이 유리한 곳에 매우 제한돼 있다. 거의 대부분의 농촌지역은 외부자본을 유치할 매력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개발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기업 유치에 어렵게 성공한 지역에서조차 지역주민의 삶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역산업과의 연관성이 부족해 실제로 지역주민의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증대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 반면에, 자연 및 환경 파괴로 인해 오히려 농촌지역의 잠재력을 약화하고 있다.
지역발전 저해하는 농촌마을개발사업
정부는 직접 재정을 투입해 농어촌지역개발을 지원했다. 농촌종합개발, 어촌종합개발, 산촌종합개발사업을 비롯해 농림부뿐 아니라 각 정부부처가 앞다퉈 각종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들 개발사업에는 많게는 수십억원(예, 농촌마을개발사업은 최대 70억원)에서 적게는 수억원이 투자된다.
과연 이들 사업 가운데 얼마가 성공하여 지역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성공한 지역은 가뭄에 콩 나듯하고 대부분은 지역에 짐이 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 사업은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에게 떡고물을 남기고, 돈은 도시인이 운영하는 각종 업체를 통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지역에 남는 것은 주민 갈등과 관리운영비만 들어가는 각종 시설, 텅 빈 도로뿐이다. 자기가 소유한 땅 근처로 도로를 냈다는 비리 정치인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최근에 만난 전남 K군 K면의 마을활동가에게 정부가 K면에 벌이고 있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이 K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K면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돈이 덜 들어왔고, 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큰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라고 한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이웃 S면에선 “많은 개발사업이 들어와 땅값이 오르고,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 사람들이 땅과 집을 내놓지 않아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강원도 I군에 강의를 다녀왔다. 강의 장소가 멋져 물어봤더니 접경지역 지원사업으로 지은 것이란다. 운영이 잘 되느냐고 물었다.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이 곳은 형편이 나은 편이란다. “I군에는 접경지역 지원사업으로 29개의 마을에 도시민을 유치하기 위한 펜션 등 관광시설을 건설했다. 마을당 대략 3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 가운데 경상운영비라도 나오는 곳은 이곳 한 군데뿐이다. 시설 운영이 너무 힘들어 마을에 이장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I군만의 사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명칭을 바꿔 가면서 새로운 지역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기업유치 통한 일자리 창출은 허구
최근 지역재단에서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개발사업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36%(약간 만족 35%, 매우 만족 1%)가 만족한다고 대답한 반면에 56%(매우 불만 23%, 불만 33%)가 불만이라고 답했다. 농산어촌주민수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86%(매우 동의 65%, 동의 21%)가 동의한다고 했고, 7%(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1%, 동의하지 않는다 6%)가 반대했다. 농산어촌주민수당 재원 마련을 위해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 예산을 대폭 줄이는 방안에 대해, 78%(매우 찬성 52%, 약간 찬성 26%)가 찬성한다고 답변한 반면 20%(매우 반대 7%, 약간 반대 13%)는 반대한다고 했다.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거의 모든 농촌지역(인구소멸위험지역)에서 허구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조차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지역이 피폐해 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외부의 자본과 사람들이 들어가 농촌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갈등만 부추기는 농촌개발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농산어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여 농촌경제를 살리고 농촌주민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농산어촌을 살리고 지역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납세자인 일반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 농촌주민수당을 위해 추가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동의할 도시민이 얼마나 될까. 지역개발사업과 각종 SOC 사업을 최대한 줄이고, 그 돈으로 농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한다면 도시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주민수당 지급대상·재원 마련 어떻게?
나는 농촌주민수당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나라살림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농촌관련 지역개발 및 SOC 예산 등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농촌주민수당 지급대상과 금액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1970년에 1,537만명(전체 인구의 49.8%)에 달하던 우리나라의 면 지역 인구는 2012년 462만명(전체 인구의 9%)으로 감소했지만, 수도권 및 도농복합시의 일부 면은 인구수가 상당하다. 인구 1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면 지역 인구만 해도 65개 면에 111만명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대략 400만명 정도가 농촌주민수당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면 소요 재원은 14조4,000억원, 50만원을 지급한다면 24조원이 필요하다. 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일정 비율로 분담하면 된다.
중앙정부 예산 가운데 농촌관련 지역개발 및 SOC 예산 등(농림수산업 예산은 제외) 약 20조원 가운데 절반을 줄이면 10조원(2021년 국가 예산 558조원의 1.8%)의 재원이 가능하다. 지방정부의 경우에는 잉여금 및 기금을 활용하고, 재정지출구조조정, 지역상생발전기금, 지방소비세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중앙정부 이상의 재원 마련도 가능하다.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 증가율만큼만 증가시킨다면 재원 조달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 중앙정부 16대 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은 13.68%에 반해 농림수산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은 6.54%로, 전 분야 평균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의 연평균 증감률이 전 분야 평균에 준하는 13.68%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2023년의 예산은 지난 3년간의 연평균 증가율을 유지하는 예산액에 비해 7.6조원이 많다.
농촌주민수당을 반드시 도입할 의향이 있다면, 다양한 점진적인 추진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1,182개 면의 평균 인구는 3,923명인데, 인구소멸이란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인구 3,000명 이하 혹은 5,000명 이하의 면 지역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할 수 있다. 2021년 현재 3,000명이 안 되는 면의 전체 인구수는 645개 면에 123만명이고, 인구수 5,000명이 안 되는 960개 면 인구는 244만명이다(참고로 7,000명 미만의 1,053개면 인구는 299만명).
주민등록인구의 허수(대략 10~20%)를 제외하면 실 거주 인구는 훨씬 적을 것이다. 인구 유입을 고려하더라도 3,000명 미만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면, 소요재원은 5조원, 5,000명 미만이면 10조원이면 충분하다. 재정 여건을 고려해서 대상지역을 점차 확대하거나, 청년을 우대하거나(예, 50만원 이상 지급), 인구수에 따라 차등지급하거나(예, 3,000명 미만 지역은 1인당 월 50만원, 3,000~5,000명은 30만원, 5,000~7,000명은 10만원 등) 농촌주민수당을 연차적으로 늘려가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농촌주민수당, 농산어촌 개벽을 위한 토대
농촌주민수당을 면 지역 주민에게만 주는 것에 대해 읍 지역 주민이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상 읍·면을 농촌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읍 지역은 농촌이라기보다는 면의 중심지로서 도시적 기능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가 농촌주민수당의 일정 부분(예, 50%) 이상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해당 시·군에서 사용하게 하면, 군의 읍이나 도농복합시의 동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은 농촌기본소득과는 다르다. 모든 농촌주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지급대상 지역을 선별해야 하고, 무조건이 아니라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져 나름 마을 자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역량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주민수당의 10~20%는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돼 공동체 기금(예, 월 30만원을 인구 3,000명 면에 지급한다면 매년 10~20억원)을 마련해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식량주권을 지키고 친환경생태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에게 1인당 평균 월 30만원의 ‘농민공익기여직불’이 지급되고,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하는 모든 농촌주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의 농산어촌주민수당이 지급된다면, 농산어촌 지역에 ‘개벽’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킬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략 연간 20조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기존의 재정지출과 조세감면을 조정하면 국민들의 추가적인 부담 없이 시행이 가능하다. 당연히 기득권자들의 저항이 예상된다. 이런 저항을 이겨내고 개혁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농민공익기여직불’과 ‘농산어촌주민수당’이 다가오는 20대 대선에서 주요 의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11. 7 보도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5770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이 지난달 26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봉화를 올리고 출발했다.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매주 1박 2일의 대장정이다. 26일 해남군, 27일에는 곡성군에서 민회를 개최했다. 기후위기, 먹을거리위기, 지역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우리가 주장하는 삼강오략(三綱五略)에 대한 현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지난달 칼럼에서는 첫째 강령인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촌을 위한 방략,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를 설명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셋째 강령인 지역위기에 대응하는 농촌을 위한 방략, ‘농촌주민수당 지급’을 다룬다.
농민수당,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 농촌기본소득, 농촌주민수당 등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이 논의되고 있다. 비슷비슷한 말의 향연에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나는 이것을 농업과 농민에 대해서는 ‘농민공익기여직불’, 그리고 농산어촌과 농산어촌주민에 대해서는 ‘농산어촌주민수당(농촌주민수당) 지급’으로 정리할 것을 제안한다.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고, 둘째, 재정의 추가 부담이 최소화돼야 한다.
농촌주민수당, 국민적 공감대 형성·재정 부담 최소화해야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농민수당,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 실현과 농민 소득보전이란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민공익기여직불’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권’이라 하지만, ‘왜 기본권이 농민에게만 혹은 왜 농민부터 주어져야 하는가?’ 농민이 다른 계층보다 가난해서? 농민이 그동안 경제성장에서 희생하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촌지역의 비농민들조차 동의하기 쉽지 않다. 결국 농업과 농민이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자체의 농민수당이나, 정부의 공익형 직불, 농민기본소득법안 등은 모두 농민에 대한 현금지불의 정당성을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창출’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면 조건 없이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이 아니라, 농민이 국민총행복을 위한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공익기여직불을 하는 것이 국민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된다.
공익적 가치는 농산물의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국가)가 보상해야 한다. 생산주의 농정의 재정지출과 각종 조세감면을 조정하면, 추가적인 재정부담 없이 농민기본소득론자들이 주장하는 연 8조원(농민 1인당 평균 월 30만원 지급) 정도의 돈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 설득도 가능하다.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 지급
우리는 농민공익기여직불과 함께 농촌주민에게는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오늘날 농촌은 아기 울음이 끊긴 ‘자연양로원’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 ‘인구소멸위험지역’이란 무시무시한 말이 등장한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상황은 날로 나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역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일자리 부족이라고 한다. 정부는 지역균형발전과 농촌살리기란 미명으로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해왔고, 기업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란 명목으로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지역에 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을 활성화하여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외생적 개발전략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생적 개발은 본래 한계가 분명하다. 우선 기업이나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객을 불러올 매력이 있는 지역은 입지조건이 유리한 곳에 매우 제한돼 있다. 거의 대부분의 농촌지역은 외부자본을 유치할 매력이 없기 때문에 아예 개발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기업 유치에 어렵게 성공한 지역에서조차 지역주민의 삶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역산업과의 연관성이 부족해 실제로 지역주민의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증대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한 반면에, 자연 및 환경 파괴로 인해 오히려 농촌지역의 잠재력을 약화하고 있다.
지역발전 저해하는 농촌마을개발사업
정부는 직접 재정을 투입해 농어촌지역개발을 지원했다. 농촌종합개발, 어촌종합개발, 산촌종합개발사업을 비롯해 농림부뿐 아니라 각 정부부처가 앞다퉈 각종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이들 개발사업에는 많게는 수십억원(예, 농촌마을개발사업은 최대 70억원)에서 적게는 수억원이 투자된다.
과연 이들 사업 가운데 얼마가 성공하여 지역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성공한 지역은 가뭄에 콩 나듯하고 대부분은 지역에 짐이 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 사업은 지역 유지들과 공무원 그리고 정치인에게 떡고물을 남기고, 돈은 도시인이 운영하는 각종 업체를 통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지역에 남는 것은 주민 갈등과 관리운영비만 들어가는 각종 시설, 텅 빈 도로뿐이다. 자기가 소유한 땅 근처로 도로를 냈다는 비리 정치인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최근에 만난 전남 K군 K면의 마을활동가에게 정부가 K면에 벌이고 있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이 K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K면에는 다른 지역보다는 돈이 덜 들어왔고, 중심지 활성화 사업 같은 큰돈이 아직 안 들어와서 다행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라고 한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이웃 S면에선 “많은 개발사업이 들어와 땅값이 오르고,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은 땅을 팔아서 도시에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벌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 사람들이 땅과 집을 내놓지 않아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강원도 I군에 강의를 다녀왔다. 강의 장소가 멋져 물어봤더니 접경지역 지원사업으로 지은 것이란다. 운영이 잘 되느냐고 물었다.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이 곳은 형편이 나은 편이란다. “I군에는 접경지역 지원사업으로 29개의 마을에 도시민을 유치하기 위한 펜션 등 관광시설을 건설했다. 마을당 대략 3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그 가운데 경상운영비라도 나오는 곳은 이곳 한 군데뿐이다. 시설 운영이 너무 힘들어 마을에 이장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것은 I군만의 사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명칭을 바꿔 가면서 새로운 지역개발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기업유치 통한 일자리 창출은 허구
최근 지역재단에서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개발사업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36%(약간 만족 35%, 매우 만족 1%)가 만족한다고 대답한 반면에 56%(매우 불만 23%, 불만 33%)가 불만이라고 답했다. 농산어촌주민수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86%(매우 동의 65%, 동의 21%)가 동의한다고 했고, 7%(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1%, 동의하지 않는다 6%)가 반대했다. 농산어촌주민수당 재원 마련을 위해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 예산을 대폭 줄이는 방안에 대해, 78%(매우 찬성 52%, 약간 찬성 26%)가 찬성한다고 답변한 반면 20%(매우 반대 7%, 약간 반대 13%)는 반대한다고 했다.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은 거의 모든 농촌지역(인구소멸위험지역)에서 허구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조차 공급할 수 없을 정도로 농촌지역이 피폐해 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외부의 자본과 사람들이 들어가 농촌 환경과 문화를 파괴하고, 갈등만 부추기는 농촌개발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농산어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농촌주민수당)’을 지급하여 농촌경제를 살리고 농촌주민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농산어촌을 살리고 지역소멸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납세자인 일반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 농촌주민수당을 위해 추가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동의할 도시민이 얼마나 될까. 지역개발사업과 각종 SOC 사업을 최대한 줄이고, 그 돈으로 농촌주민에게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수당’을 지급한다면 도시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주민수당 지급대상·재원 마련 어떻게?
나는 농촌주민수당 지급 재원 마련을 위해 나라살림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농촌관련 지역개발 및 SOC 예산 등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농촌주민수당 지급대상과 금액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1970년에 1,537만명(전체 인구의 49.8%)에 달하던 우리나라의 면 지역 인구는 2012년 462만명(전체 인구의 9%)으로 감소했지만, 수도권 및 도농복합시의 일부 면은 인구수가 상당하다. 인구 1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면 지역 인구만 해도 65개 면에 111만명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대략 400만명 정도가 농촌주민수당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면 소요 재원은 14조4,000억원, 50만원을 지급한다면 24조원이 필요하다. 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일정 비율로 분담하면 된다.
중앙정부 예산 가운데 농촌관련 지역개발 및 SOC 예산 등(농림수산업 예산은 제외) 약 20조원 가운데 절반을 줄이면 10조원(2021년 국가 예산 558조원의 1.8%)의 재원이 가능하다. 지방정부의 경우에는 잉여금 및 기금을 활용하고, 재정지출구조조정, 지역상생발전기금, 지방소비세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중앙정부 이상의 재원 마련도 가능하다.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 증가율만큼만 증가시킨다면 재원 조달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 중앙정부 16대 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은 13.68%에 반해 농림수산분야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감률 평균은 6.54%로, 전 분야 평균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만약 농림수산분야 예산의 연평균 증감률이 전 분야 평균에 준하는 13.68%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2023년의 예산은 지난 3년간의 연평균 증가율을 유지하는 예산액에 비해 7.6조원이 많다.
농촌주민수당을 반드시 도입할 의향이 있다면, 다양한 점진적인 추진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1,182개 면의 평균 인구는 3,923명인데, 인구소멸이란 점에 초점을 맞추면 인구 3,000명 이하 혹은 5,000명 이하의 면 지역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할 수 있다. 2021년 현재 3,000명이 안 되는 면의 전체 인구수는 645개 면에 123만명이고, 인구수 5,000명이 안 되는 960개 면 인구는 244만명이다(참고로 7,000명 미만의 1,053개면 인구는 299만명).
주민등록인구의 허수(대략 10~20%)를 제외하면 실 거주 인구는 훨씬 적을 것이다. 인구 유입을 고려하더라도 3,000명 미만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면, 소요재원은 5조원, 5,000명 미만이면 10조원이면 충분하다. 재정 여건을 고려해서 대상지역을 점차 확대하거나, 청년을 우대하거나(예, 50만원 이상 지급), 인구수에 따라 차등지급하거나(예, 3,000명 미만 지역은 1인당 월 50만원, 3,000~5,000명은 30만원, 5,000~7,000명은 10만원 등) 농촌주민수당을 연차적으로 늘려가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농촌주민수당, 농산어촌 개벽을 위한 토대
농촌주민수당을 면 지역 주민에게만 주는 것에 대해 읍 지역 주민이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행정구역상 읍·면을 농촌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읍 지역은 농촌이라기보다는 면의 중심지로서 도시적 기능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가 농촌주민수당의 일정 부분(예, 50%) 이상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해당 시·군에서 사용하게 하면, 군의 읍이나 도농복합시의 동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농촌주민수당은 농촌기본소득과는 다르다. 모든 농촌주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지급대상 지역을 선별해야 하고, 무조건이 아니라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주민자치회가 만들어져 나름 마을 자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역량과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주민수당의 10~20%는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주민자치회가 중심이 돼 공동체 기금(예, 월 30만원을 인구 3,000명 면에 지급한다면 매년 10~20억원)을 마련해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식량주권을 지키고 친환경생태농업을 실천하는 농민에게 1인당 평균 월 30만원의 ‘농민공익기여직불’이 지급되고, ‘국토·환경·문화·지역 지킴이’ 활동을 하는 모든 농촌주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의 농산어촌주민수당이 지급된다면, 농산어촌 지역에 ‘개벽’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킬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략 연간 20조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기존의 재정지출과 조세감면을 조정하면 국민들의 추가적인 부담 없이 시행이 가능하다. 당연히 기득권자들의 저항이 예상된다. 이런 저항을 이겨내고 개혁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농민공익기여직불’과 ‘농산어촌주민수당’이 다가오는 20대 대선에서 주요 의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11. 7 보도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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