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푸드시스템정상회의 ‘유감’ | 윤병선 건국대 교수,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1/08/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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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푸드시스템정상회의 ‘유감’
| 윤병선 건국대 교수, 지역재단 이사
최근 10여년동안 UN은 기업 주도의 푸드시스템은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해 왔는데, 이번 정상회담은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빌미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뒤엎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부터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코로나 일상’의 시대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후위기 상황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마지막 기회라는 경고로 다가온다.
이런 중첩된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존속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먹거리를 화두로 ‘유엔 푸드시스템정상회의’가 9월 뉴욕에서 개최된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의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지만, 전환의 시대에 걸맞는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첫째, 회의 개최의 동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회의가 개최되는 시기는 2021년 가을이지만, 제안되었던 시기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어서 논의할 내용의 상당부분은 현재의 다급한 상황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기아종식이 이번 회의의 실천분야에 올라왔다. 그러나 기아의 종식을 ‘권리’가 아니라 ‘생산’의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현대의 기아문제는 먹거리의 절대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기아에 노출된 사람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주의 패러다임이 전면으로 나와 있다. 특히 과거의 식량정상회의는 정부간 협의를 거쳐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유엔사무총장이 녹색혁명이나 바이오혁명 등과도 연결되어 있는 거대기업들의 집단협의체인 세계경제포럼(WEF)과의 파트너십 협정에 서명한 직후 일방적으로 개최가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이 회의의 특사로 ‘아프리카 녹색혁명 동맹(AGRA)’ 회장이 임명되는 등 거대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 출발했다. ‘AGRA’가 “시장 주도 기술 채택" 모델을 통해 아프리카 푸드시스템을 상업화하고 산업화하는 것을 명시적 목표로 내걸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 맥락은 쉽게 이해된다. 과학기술과 자본이 뒤엉켜서 위기를 빌미로 농업과 먹거리를 농단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기에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 회의명칭에 들어간 ‘푸드시스템’이라는 용어가 퇴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먹거리 문제는 농업과 한 몸이 되어 나타나는 문제이고, 따라서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소비를 하나의 순환적 과정으로 파악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 도출된 개념이 ‘푸드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순환적 과정을 분절시키면서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을 주목하면서, 현대 먹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적 푸드시스템을 주장할 때 많이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정상회의는 최근 10여년 동안 유엔 내에서 논의되어 온 농민주도의 푸드시스템에 대한 옹호를 포기하고 있다. 2007~2008년의 식량위기를 계기로 유엔은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로 지정하면서 기업이 주도하는 푸드시스템의 취약성과 함께 가족농이 먹거리의 안정적인 생산뿐만 아니라, 지역을 살리고, 지구를 돌본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서 2019~2028년을 ‘가족농의 해 10년’으로 선언하면서 구체적인 행동계획 7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녹색혁명형 농업이 지속가능한 농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농생태: 옹호에서 실천’을 2018년에 발표, 농생태의 실천에서 고민해야 할 10가지 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욱이 2018년 UN 총회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농민권리선언은 농업과 먹거리와 관련된 결정권이 지역민과 농민, 국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농생태의 확립을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에 방점을 두었다.
이처럼 최근 10여년동안 UN은 기업 주도의 푸드시스템은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해 왔는데, 이번 정상회담은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빌미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뒤엎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
유엔이 이처럼 왜곡된 형태로 푸드시스템을 논의하는 점에 대해 한국정부가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식량계획안에 들어간 ‘글로벌 식량위기 대응 국제협력 강화’ 차원에서 거대 농기업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는 일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준비해 온 ‘국가먹거리종합전략’을 ‘국가식량계획’으로 변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진행 중인 회의 준비상황은 농경연의 홈페이지(https://food-systems-summit.krei.re.kr)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5차례의 회의가 진행되었다는 점과 몇몇 전문가나 소수의 단체대표들이 제한적으로 참여해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때 한국 정부는 푸드플랜이나 학교급식, 공공급식 등을 모범적 실천 사례로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전환을 요구하는 현재의 위기적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를 겨우 넘기는 곡물자급률로 대변되는 한국의 민낯을 통해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농민과 지역민이 주도하는 푸드시스템의 중요성을 알려내는 것이 훨씬 의미있지 않을까?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21.08.13 [윤병선 칼럼]
| 윤병선 건국대 교수, 지역재단 이사
최근 10여년동안 UN은 기업 주도의 푸드시스템은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해 왔는데, 이번 정상회담은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빌미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뒤엎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부터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코로나 일상’의 시대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후위기 상황은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마지막 기회라는 경고로 다가온다.
이런 중첩된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존속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먹거리를 화두로 ‘유엔 푸드시스템정상회의’가 9월 뉴욕에서 개최된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의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자리지만, 전환의 시대에 걸맞는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첫째, 회의 개최의 동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회의가 개최되는 시기는 2021년 가을이지만, 제안되었던 시기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어서 논의할 내용의 상당부분은 현재의 다급한 상황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기아종식이 이번 회의의 실천분야에 올라왔다. 그러나 기아의 종식을 ‘권리’가 아니라 ‘생산’의 관점으로 접근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현대의 기아문제는 먹거리의 절대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기아에 노출된 사람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주의 패러다임이 전면으로 나와 있다. 특히 과거의 식량정상회의는 정부간 협의를 거쳐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유엔사무총장이 녹색혁명이나 바이오혁명 등과도 연결되어 있는 거대기업들의 집단협의체인 세계경제포럼(WEF)과의 파트너십 협정에 서명한 직후 일방적으로 개최가 결정됐다. 뿐만 아니라 이 회의의 특사로 ‘아프리카 녹색혁명 동맹(AGRA)’ 회장이 임명되는 등 거대기업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 출발했다. ‘AGRA’가 “시장 주도 기술 채택" 모델을 통해 아프리카 푸드시스템을 상업화하고 산업화하는 것을 명시적 목표로 내걸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 맥락은 쉽게 이해된다. 과학기술과 자본이 뒤엉켜서 위기를 빌미로 농업과 먹거리를 농단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기에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둘째, 회의명칭에 들어간 ‘푸드시스템’이라는 용어가 퇴행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먹거리 문제는 농업과 한 몸이 되어 나타나는 문제이고, 따라서 먹거리의 생산-가공-유통-소비를 하나의 순환적 과정으로 파악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 도출된 개념이 ‘푸드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순환적 과정을 분절시키면서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을 주목하면서, 현대 먹거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적 푸드시스템을 주장할 때 많이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정상회의는 최근 10여년 동안 유엔 내에서 논의되어 온 농민주도의 푸드시스템에 대한 옹호를 포기하고 있다. 2007~2008년의 식량위기를 계기로 유엔은 2014년을 ‘세계 가족농의 해’로 지정하면서 기업이 주도하는 푸드시스템의 취약성과 함께 가족농이 먹거리의 안정적인 생산뿐만 아니라, 지역을 살리고, 지구를 돌본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서 2019~2028년을 ‘가족농의 해 10년’으로 선언하면서 구체적인 행동계획 7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녹색혁명형 농업이 지속가능한 농업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농생태: 옹호에서 실천’을 2018년에 발표, 농생태의 실천에서 고민해야 할 10가지 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더욱이 2018년 UN 총회는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농민권리선언은 농업과 먹거리와 관련된 결정권이 지역민과 농민, 국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농생태의 확립을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에 방점을 두었다.
이처럼 최근 10여년동안 UN은 기업 주도의 푸드시스템은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천명해 왔는데, 이번 정상회담은 코로나와 기후위기를 빌미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뒤엎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크다.
유엔이 이처럼 왜곡된 형태로 푸드시스템을 논의하는 점에 대해 한국정부가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가식량계획안에 들어간 ‘글로벌 식량위기 대응 국제협력 강화’ 차원에서 거대 농기업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는 일에 힘을 보탤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준비해 온 ‘국가먹거리종합전략’을 ‘국가식량계획’으로 변경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들린다. 진행 중인 회의 준비상황은 농경연의 홈페이지(https://food-systems-summit.krei.re.kr)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5차례의 회의가 진행되었다는 점과 몇몇 전문가나 소수의 단체대표들이 제한적으로 참여해 논의를 진행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때 한국 정부는 푸드플랜이나 학교급식, 공공급식 등을 모범적 실천 사례로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전환을 요구하는 현재의 위기적 상황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를 겨우 넘기는 곡물자급률로 대변되는 한국의 민낯을 통해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농민과 지역민이 주도하는 푸드시스템의 중요성을 알려내는 것이 훨씬 의미있지 않을까?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21.08.13 [윤병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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