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2)- 지역농협 개혁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1/06/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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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2)- 지역농협 개혁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3기 신도시 건설 예정지에 대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토지투기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 와중에 3기 신도시 지역의 농협 임직원이 가족 명의로 자기 농협에서 ‘셀프 대출’을 받아 투기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한 5월 25일자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3기 신도시 지역농협 34곳은 대출금액이 지난 2년 사이에 21.2% 급증하는 ‘공격적 대출’을 했다.
이는 전국 나머지 농협의 대출금액이 13% 늘어난 것에 비해 8.2%포인트나 높다. 한마디로 3기 신도시의 지역농협이 토지투기의 돈줄 역할을 했다는 거다. 농지를 지켜야 할 농협이 토지투기꾼을 대상으로 ‘돈장사’를 했으니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지역농협이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신용사업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지역농협 개혁의 중요성
지난달 칼럼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1)에서 나는 세 가지 주장을 했다. 첫째, 농협중앙회를 지주회사 체제(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로 개편한 것은 실패했다. 둘째, 농협중앙회를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의 이익에 복무하는 연합회 체제로 조속히 개혁해야 한다. 셋째, 이런 중요한 개혁과제가 실종됐으니, 이 정부에서 가망이 없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농민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농협중앙회 개혁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게 지역농협 개혁이라는 의견을 보내 줬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은 농민조합원과 전혀 상관없는 제1금융이고, 경제사업조차도 회원농협의 연합사업보다는 중앙회 독자사업 중심이기 때문에, 농협중앙회는 농민조합원에게는 너무도 먼 당신이다.
반면에 지역농협은 농민조합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이다. 따라서 농민조합원의 입장에서는 중앙회 개혁보다 자기 지역농협이 제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농협중앙회 개혁을 주장한 것도 중앙회 자체 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를 통해 지역농협 개혁의 동력을 찾고자 함이었다.
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와 회원농협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농협이 명색이 농민조합원의 자주조직인 협동조합인 한 국가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든 선거를 의식해 지역농협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한 적이 없다.
지역농협의 개혁을 위해서는 지역농협의 연합체인 농협중앙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회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행 농협중앙회의 세 개의 사업부문(지도사업, 신용사업, 경제사업)을 각각 독립적인 법인으로 분리해, 농협중앙회는 돈벌이에서 손을 떼고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교육・감독 및 연구・조사와 농정활동 등 지도사업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체로서 정부와 함께 지역농협의 근본적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지역농협이 본래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돈놀이’만 하는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라는 비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 지역농협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협법 제13조는 “지역농협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증대함을 목적”한다고 돼 있다.
다시 말해 농협은 ‘농업인의, 농업인에 의한, 농업인을 위한’ 협동 조직이고, 그 근본은 협동화를 통해 농민조합원의 농업생산 및 농산물 판매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경제사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민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신용사업을 하도록 했다.
농협법 정신에 어긋나는 지역농협 현실
그러나 우리 지역농협의 현실은 이러한 법 정신과는 크게 어긋난다. 농협은 그야말로 ‘돈장사’에 골몰하고,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농협은 신용사업의 수익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경제사업은 환원사업(간접비용사업)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농민조합원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농협의 현실을 임직원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종합농협 체제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종합농협은 매우 이질적인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역농협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조합원의 협동조직이 아니다. 현재의 종합농협 체제가 출범한 1960년대 초에는 농민들은 매우 동질적이었다. 농업의 상품화도 별로 진전되지 않았고, 농업경영규모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의 영세한 고령농가가 있는 반면에 소수의 대규모 전업농가가 존재하고, 농업을 겸업 또는 부업으로 하는 농가도 다수 존재한다. 서로 짓는 농사도 다르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우농가와 원예농가가 같은 조합원이다. 또한 조합원 내부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상위 20%의 평균 농가소득은 하위 20%의 평균 농가소득의 12배에 달한다. 도시가구가 6배인 것에 비하면 농가의 양극화가 훨씬 더 심각함을 보여준다.
둘째, 상업적인 전업농의 증대, 원예와 축산 전업농의 증가, 주산지의 형성 등으로 읍·면단위 지역 종합농협 체제의 한계가 심화하고 있다. 신용사업과 지도사업(환원사업) 중심의 농협 운영으로 특히 젊고 규모가 큰 농가들의 농협 이탈이 심각하다.
셋째, 농협이 신용사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의 모든 농협이 신용사업에서 수익을 내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 신용사업 이외에 모든 사업을 경제사업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지만, 경제사업도 그 내용을 보면 매우 상이하다. 경제사업 가운데 마트나 주유소, 장례식장 등은 지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생활서비스 사업이다.
농민조합원의 이해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농업관련사업(농자재 구매 및 농산물 판매사업과 가공사업 등)이다. 생활서비스 사업에 비해 농업관련사업이 훨씬 저조하다. 전체 조합원 가운데 판매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의 비율이 74%에 달하고, 농협이 본래의 역할(농업관련사업)을 제대로 못하자 전업농가들은 농협을 떠나고 있다.
넷째, 농협이 조합원이 아니라 준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원 210만명에 비해 준조합원 수는 1,815만명으로 준조합원이 조합원수의 8.6배인데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준조합원은 거주지 지역농협에 일정한 가입비(조합에 따라 가입비 1,000원 ~ 1만원)만 내면 누구라도 될 수 있는데, 3,000만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도시조합(2018년 149개)은 준조합원이 조합원의 31.5배에 달하니, 실질적으로 비농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다. 도시조합 이외 농협(약 1,000개)의 경우도 준조합원이 4.5배에 달한다. 우리 농협은 전체적으로 비농민을 대상으로 한 신용사업이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일본농협의 경우 준조합원이 624만명으로 조합원 425만명의 약 1.5배에 지나지 않음에도 농협이 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품목별 전문조합 체제로의 개혁
이와 같은 종합농협 체제로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농산물 생산과 가공 그리고 판매라는 농업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답은 명확하다. 종합농협의 각 사업부문을 분리해 농업관련사업부문을 품목별 전문조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신용사업부문은 지역신용협동조합으로, 생활물자의 구·판매나 생활서비스부문은 지역 생협으로 발전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권 및 경제권 단위의 광역합병이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뉴질랜드의 제스프리는 키위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미국의 선키스트는 감귤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네덜란드의 그리너리는 원예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덴마크의 대니쉬크라운은 양돈농가의 협동조합이다. 모두 품목별 전문조합이다.
종합농협 체제를 품목별 전문조합 체제로의 개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종합농협 체제를 분리·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종합농협 체제는 좋든 싫든 역사적 산물로서 현실적 존재이며, 지역협동조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준조합원 혹은 비조합원이 조합사업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합원을 위한 농업경제사업보다는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에 의한 신용사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지역농협의 각 사업부문을 단계적으로 완전 독립사업부제로 재편한다. 1단계는 구분경리를 도입해 사업을 정리한다. 종합농협의 사업을 크게 네 부문(농산물 판매와 자재 구매 및 가공 등 농업관련부문, 신용・공제 등 금융부문, 생활물자의 구매나 판매 등 생활서비스부문, 기획관리지도부문)으로 나눠 각각 회계를 분리해 채산성 확보에 노력한다.
2단계는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한다. 농협사업을 농업관련부문, 금융부문, 생활서비스부문, 기획관리지도부문으로 나눠 독립사업부제를 실시한다. 부문별로 지배구조를 달리하고, 예산 및 인사를 분리해야 한다. 금융부문에서 생긴 이익으로 종합농협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농업관련부문을 농업협동조합의 본체로 하고, 신용・공제부문과 생활서비스부문은 자회사 체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한다.
둘째, 지역농협은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지역협동조합으로 유지 발전하더라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농민들이 품목별 전문조합을 결성해 농산물 생산 및 가공・판매라는 농업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육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농협중앙회(지역농협 포함)의 견제와 정부의 차별이 품목별 전문조합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불만은 빨리 불식돼야 한다. 지역농협의 농업관련부문이 품목이나 사업영역에 따라서는 광역합병을 통해 품목별 전문조합으로 발전해가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셋째, 도시농협에 대한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농협이란 이름을 걸고, 도시민을 상대로 ‘돈장사’를 하는 체제는 오래갈 수 없다. 더욱이 준조합원에 대한 세금 혜택은 계속 연장할 수 없다. 도시농협이 농촌농협 혹은 품목별 전문조합이 생산한 농산물을 의무적으로(신용사업의 일정 비율로) 판매해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의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이름값 하는 ‘정명회’의 활동 중요
종합농협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농업협동조합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회원조합과 농민조합원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2014년 3월, 29명의 농협조합장이 참여해 논어의 ‘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에서 본떠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농협조합장 모임 ‘정명회’가 결성됐다. 나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명회는 창립취지문에서 “농협의 외형적 성장과 달리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조합원의 주인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을 운영과정에 구현함으로써 농업・농촌・농민이 처한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조합원이 진정한 주인으로 나서는 협동조합운동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정명회’는 설립 초기에는 농협중앙회의 방해공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중앙회의 시선은 곱지 않지만, 농민조합원의 이익과 농협 정체성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농협 개혁의 근본적 개혁과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선거 때문에 임직원이나 조합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도 하고, 우군역할을 해야 할 농민단체도 분발이 필요하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명회’는 농협이 ‘농민 조합원의, 농민 조합원에 의한, 농민조합원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선봉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명회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434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3기 신도시 건설 예정지에 대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토지투기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 와중에 3기 신도시 지역의 농협 임직원이 가족 명의로 자기 농협에서 ‘셀프 대출’을 받아 투기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한 5월 25일자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3기 신도시 지역농협 34곳은 대출금액이 지난 2년 사이에 21.2% 급증하는 ‘공격적 대출’을 했다.
이는 전국 나머지 농협의 대출금액이 13% 늘어난 것에 비해 8.2%포인트나 높다. 한마디로 3기 신도시의 지역농협이 토지투기의 돈줄 역할을 했다는 거다. 농지를 지켜야 할 농협이 토지투기꾼을 대상으로 ‘돈장사’를 했으니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지역농협이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신용사업으로 운영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지역농협 개혁의 중요성
지난달 칼럼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1)에서 나는 세 가지 주장을 했다. 첫째, 농협중앙회를 지주회사 체제(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로 개편한 것은 실패했다. 둘째, 농협중앙회를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의 이익에 복무하는 연합회 체제로 조속히 개혁해야 한다. 셋째, 이런 중요한 개혁과제가 실종됐으니, 이 정부에서 가망이 없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농민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농협중앙회 개혁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게 지역농협 개혁이라는 의견을 보내 줬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은 농민조합원과 전혀 상관없는 제1금융이고, 경제사업조차도 회원농협의 연합사업보다는 중앙회 독자사업 중심이기 때문에, 농협중앙회는 농민조합원에게는 너무도 먼 당신이다.
반면에 지역농협은 농민조합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이다. 따라서 농민조합원의 입장에서는 중앙회 개혁보다 자기 지역농협이 제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농협중앙회 개혁을 주장한 것도 중앙회 자체 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를 통해 지역농협 개혁의 동력을 찾고자 함이었다.
우리나라의 농협중앙회와 회원농협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농협이 명색이 농민조합원의 자주조직인 협동조합인 한 국가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든 선거를 의식해 지역농협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한 적이 없다.
지역농협의 개혁을 위해서는 지역농협의 연합체인 농협중앙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앙회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행 농협중앙회의 세 개의 사업부문(지도사업, 신용사업, 경제사업)을 각각 독립적인 법인으로 분리해, 농협중앙회는 돈벌이에서 손을 떼고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교육・감독 및 연구・조사와 농정활동 등 지도사업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체로서 정부와 함께 지역농협의 근본적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지역농협이 본래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돈놀이’만 하는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라는 비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 지역농협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협법 제13조는 “지역농협은 조합원의 농업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 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증대함을 목적”한다고 돼 있다.
다시 말해 농협은 ‘농업인의, 농업인에 의한, 농업인을 위한’ 협동 조직이고, 그 근본은 협동화를 통해 농민조합원의 농업생산 및 농산물 판매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경제사업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민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신용사업을 하도록 했다.
농협법 정신에 어긋나는 지역농협 현실
그러나 우리 지역농협의 현실은 이러한 법 정신과는 크게 어긋난다. 농협은 그야말로 ‘돈장사’에 골몰하고,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농협은 신용사업의 수익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경제사업은 환원사업(간접비용사업)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농민조합원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농협의 현실을 임직원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종합농협 체제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첫째, 종합농협은 매우 이질적인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역농협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조합원의 협동조직이 아니다. 현재의 종합농협 체제가 출범한 1960년대 초에는 농민들은 매우 동질적이었다. 농업의 상품화도 별로 진전되지 않았고, 농업경영규모에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의 영세한 고령농가가 있는 반면에 소수의 대규모 전업농가가 존재하고, 농업을 겸업 또는 부업으로 하는 농가도 다수 존재한다. 서로 짓는 농사도 다르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우농가와 원예농가가 같은 조합원이다. 또한 조합원 내부의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 상위 20%의 평균 농가소득은 하위 20%의 평균 농가소득의 12배에 달한다. 도시가구가 6배인 것에 비하면 농가의 양극화가 훨씬 더 심각함을 보여준다.
둘째, 상업적인 전업농의 증대, 원예와 축산 전업농의 증가, 주산지의 형성 등으로 읍·면단위 지역 종합농협 체제의 한계가 심화하고 있다. 신용사업과 지도사업(환원사업) 중심의 농협 운영으로 특히 젊고 규모가 큰 농가들의 농협 이탈이 심각하다.
셋째, 농협이 신용사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거의 모든 농협이 신용사업에서 수익을 내 경제사업과 지도사업의 적자를 메우고 있다. 신용사업 이외에 모든 사업을 경제사업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지만, 경제사업도 그 내용을 보면 매우 상이하다. 경제사업 가운데 마트나 주유소, 장례식장 등은 지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생활서비스 사업이다.
농민조합원의 이해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농업관련사업(농자재 구매 및 농산물 판매사업과 가공사업 등)이다. 생활서비스 사업에 비해 농업관련사업이 훨씬 저조하다. 전체 조합원 가운데 판매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의 비율이 74%에 달하고, 농협이 본래의 역할(농업관련사업)을 제대로 못하자 전업농가들은 농협을 떠나고 있다.
넷째, 농협이 조합원이 아니라 준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원 210만명에 비해 준조합원 수는 1,815만명으로 준조합원이 조합원수의 8.6배인데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준조합원은 거주지 지역농협에 일정한 가입비(조합에 따라 가입비 1,000원 ~ 1만원)만 내면 누구라도 될 수 있는데, 3,000만원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도시조합(2018년 149개)은 준조합원이 조합원의 31.5배에 달하니, 실질적으로 비농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다. 도시조합 이외 농협(약 1,000개)의 경우도 준조합원이 4.5배에 달한다. 우리 농협은 전체적으로 비농민을 대상으로 한 신용사업이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일본농협의 경우 준조합원이 624만명으로 조합원 425만명의 약 1.5배에 지나지 않음에도 농협이 정체성 논란에 휩싸인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품목별 전문조합 체제로의 개혁
이와 같은 종합농협 체제로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농산물 생산과 가공 그리고 판매라는 농업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답은 명확하다. 종합농협의 각 사업부문을 분리해 농업관련사업부문을 품목별 전문조합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신용사업부문은 지역신용협동조합으로, 생활물자의 구·판매나 생활서비스부문은 지역 생협으로 발전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권 및 경제권 단위의 광역합병이 불가피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뉴질랜드의 제스프리는 키위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미국의 선키스트는 감귤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네덜란드의 그리너리는 원예생산자 협동조합이고, 덴마크의 대니쉬크라운은 양돈농가의 협동조합이다. 모두 품목별 전문조합이다.
종합농협 체제를 품목별 전문조합 체제로의 개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렇지만 단기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종합농협 체제를 분리·발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종합농협 체제는 좋든 싫든 역사적 산물로서 현실적 존재이며, 지역협동조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준조합원 혹은 비조합원이 조합사업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합원을 위한 농업경제사업보다는 준조합원과 비조합원에 의한 신용사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지역농협의 각 사업부문을 단계적으로 완전 독립사업부제로 재편한다. 1단계는 구분경리를 도입해 사업을 정리한다. 종합농협의 사업을 크게 네 부문(농산물 판매와 자재 구매 및 가공 등 농업관련부문, 신용・공제 등 금융부문, 생활물자의 구매나 판매 등 생활서비스부문, 기획관리지도부문)으로 나눠 각각 회계를 분리해 채산성 확보에 노력한다.
2단계는 독립사업부제를 도입한다. 농협사업을 농업관련부문, 금융부문, 생활서비스부문, 기획관리지도부문으로 나눠 독립사업부제를 실시한다. 부문별로 지배구조를 달리하고, 예산 및 인사를 분리해야 한다. 금융부문에서 생긴 이익으로 종합농협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농업관련부문을 농업협동조합의 본체로 하고, 신용・공제부문과 생활서비스부문은 자회사 체제로 운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한다.
둘째, 지역농협은 지역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지역협동조합으로 유지 발전하더라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농민들이 품목별 전문조합을 결성해 농산물 생산 및 가공・판매라는 농업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육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농협중앙회(지역농협 포함)의 견제와 정부의 차별이 품목별 전문조합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불만은 빨리 불식돼야 한다. 지역농협의 농업관련부문이 품목이나 사업영역에 따라서는 광역합병을 통해 품목별 전문조합으로 발전해가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셋째, 도시농협에 대한 개혁적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농협이란 이름을 걸고, 도시민을 상대로 ‘돈장사’를 하는 체제는 오래갈 수 없다. 더욱이 준조합원에 대한 세금 혜택은 계속 연장할 수 없다. 도시농협이 농촌농협 혹은 품목별 전문조합이 생산한 농산물을 의무적으로(신용사업의 일정 비율로) 판매해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의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이름값 하는 ‘정명회’의 활동 중요
종합농협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농업협동조합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회원조합과 농민조합원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2014년 3월, 29명의 농협조합장이 참여해 논어의 ‘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에서 본떠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농협조합장 모임 ‘정명회’가 결성됐다. 나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명회는 창립취지문에서 “농협의 외형적 성장과 달리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조합원의 주인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을 운영과정에 구현함으로써 농업・농촌・농민이 처한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조합원이 진정한 주인으로 나서는 협동조합운동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정명회’는 설립 초기에는 농협중앙회의 방해공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중앙회의 시선은 곱지 않지만, 농민조합원의 이익과 농협 정체성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농협 개혁의 근본적 개혁과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선거 때문에 임직원이나 조합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도 하고, 우군역할을 해야 할 농민단체도 분발이 필요하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명회’는 농협이 ‘농민 조합원의, 농민 조합원에 의한, 농민조합원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선봉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명회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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