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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그 많던 목욕탕과 세탁소는 어디로 갔을까?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 작성일2021/05/18 15:03
    • 조회 564
    그 많던 목욕탕과 세탁소는 어디로 갔을까?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인구 감소·고령화로 시장이 떠난 자리
    ‘사회적 경제’ 도입하면 수익이 생길까
    주민 수요 제대로 반영되고 있나 점검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농촌지역 주민수요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목욕탕과 세탁소, 마트 등 생활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많다. 물론 문화체육시설이 없거나 부족한 지역도 많다. 이외에 노인돌봄, 영·유아돌봄, 청소년 쉼터 등 대상별 복지공간 역시 부족하다는 의견이 전국 공통이다. 한때 농촌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많은 지역에서 하드웨어사업으로 목욕탕과 찜질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욕탕과 찜질방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가끔 궁금하다. 

    최근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농촌지역에서 새로운 하드웨어 아이템으로 ‘빨래방’이 인기다. 면단위 대부분 농촌지역에서 세탁소가 사라지면서 농촌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사례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면지역 한 주민은 “가까운 친인척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양복을 입으려면, 읍내에 있는 세탁소까지 가서 드라이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귀농한 한 청년은 “큰 맘 먹고 산 오리털 패딩을 세탁하려면 군청 소재지에 있는 세탁소까지 가야 해서 불편하다“면서 가끔 함께 농사짓는 청년들끼리 “세탁소를 운영해 볼까”하는 농담을 한다고도 했다.

    최근 면단위 농촌지역 주민자치회 또는 봉사단체에서 발굴해 추진하는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인 이불빨래를 돕는 일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겨울이불을 빨아야 하는 노인들이 집에서 혼자는 힘에 부쳐 빨래를 포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주민단체들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각종 공모사업에 참여해 비용을 지원받아, 지역노인들의 이불을 수거하고, 이를 읍 소재지에 있는 세탁소에 맡겨 세탁 후 다시 노인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면 소재지에 빨래방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 보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배후마을 노인들은 이불빨래를 어떻게 가지고 나올 것인가? 주민들은 “가장 좋은 것은 면 순회버스를 마련해 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장이나 마을 젊은 사람들이 날짜나 요일을 정해 수거해 오면 되지 않겠냐”고 대답한다. 그럼, 빨래방 운영비는 어떻게 조달하는 것인가? “도시에서 운영하는 코인 빨래방처럼 비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누가 관리할 것이며 인건비는 확보가 가능한가? 주민 몇몇 분이 “돌아가며 봉사해야죠...” 

    최근 농산어촌 문화·복지·교육 등 주민들에게 부족한 사회서비스 공급을 보완하고, 농산어촌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중앙부처의 관심이 높다.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농촌진흥청·산림청은 지난 2019년 12월 5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적경제와 연계한 농·산·어촌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사회적경제조직을 통한 사회서비스 제공 활성화, 농산어촌에서의 사회적경제 저변 확대, 지역자원을 연계한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 지역활성화 사업의 지속가능성 제고, 전통적인 사회적경제조직의 지역사회 기여도 제고 등이 주요내용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농·산·어촌에 약 5000개 이상 사회적경제조직이 운영되고 있으며, 농림수산물 생산, 가공, 유통업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향후 이들 사회적경제조직이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대응해, 사회서비스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문화, 교통 등 관련정책 사업에 대한 참여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사회적경제 지원정책은 인건비 지원 등과 같은 직접적인 재정지원보다 프로그램 운영비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사회적경제조직의 자생적 생태계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면단위 농촌지역에 세탁소, 목욕탕, 이발소, 미장원, 식당과 마트까지 왜 문을 닫은 것일까?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관용적 표현으로 자리 잡은 면단위 농촌지역에서 ‘시장’이 떠난 자리를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채워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런데 사회적경제조직의 자생적 생태계는 어떻게 구축되는 것일까? 수익이 발생하지 않던 가게가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운영하면 갑자기 수익이 발생하여 자생력이 생기는 것인가? 사회적경제 역시 일부 주민들의 희생과 봉사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얼마 전 한 회의 참석자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농촌지역개발사업계획에 주민수요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인 어머니가 거주하는 면지역에서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면 소재지 주민 이외에 배후마을 주민들은 관심이 없다고 했다. 배후마을에 사시는 어머니 역시 버스를 타면 면소재지까지 10분이 소요되고, 10∼15분만 더 가면 읍소재지이고, 지금까지 읍 소재지 생활서비스를 이용해 왔는데 굳이 면소재지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농촌 사회적경제 역시 무엇보다도 주민 참여와 관심이 전제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읍 소재지에 더 좋은 세탁소와 찜질방이 있어도 우리 면 시설을 주민들이 우선 활용해야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데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소통과 의견수렴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생활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체득된 주민들의 생활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지나온 세월만큼 주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는 사전작업이 더 필요한 이유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