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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지역개발사업, 반성없는 도돌이표 안된다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1/05/14 15:02
    • 조회 531
    농촌지역개발사업, 반성없는 도돌이표 안된다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주민 필요 반영해 주민 주도성 발현
    현장 실정에 맞게 사업지침 설계를
    정책 칸막이 극복, 원활한 협업 필수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영역은 넓고 역사도 깊은데 2010년부터 시작된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내역사업들이 있었는데, 2019년에 재정분권 차원에서 대부분의 사업이 지자체 사무로 이관되었다. 농식품부 담당은 중심지활성화(150억원±알파)와 기초생활거점육성(40억원±알파), 신활력플러스(70억원), 그리고 시군 역량강화(3억원±알파) 등 4개 사업만 남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권역단위종합개발사업(약 20~70억원)은 2016년에 이미 일몰 처리되었다. 지방비를 포함하여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자될 정도로 대표적인 농촌지역개발사업 영역이다.

    권역단위종합개발사업은 그동안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어 왔고, 특히 권역이나 읍면소재지에 위치한 큰 시설물이 흉물처럼 방치되는 경우도 많아 더더욱 비판대상이 되었다. 감사원이 2019년 12월에 발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3212개 사업지구의 9505개 시설물 중에서 7091개(74.6%)가 3단계 평가에서 ‘하’로 판정되었다. 또 운영조차 되지 않거나(153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경우(43개), 그리고 운영이 아주 미흡한 경우(109개) 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로 편차는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매년 11월 국정감사가 시작될 때쯤이면 어김없이 신문과 방송에서 문제점이 제기되었고 농식품부와 지자체 담당자는 항상 긴장하게 된다.

    문제점은 눈에 잘 보이고 쉽게 파악되지만 그 원인은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 사업 준비와 선정과정의 부실이다. 총액을 먼저 정해놓고 시작하니 내용이 부실해도 개수를 채울 수밖에 없어 준비되지 않은 지역도 어렵지 않게 선정된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 이후의 노력으로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추진주체의 구성과 대표성 문제다. 소위 지역유지 중심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출발하다보니 실질적으로 시설을 활용해야 할 주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게다가 진행과정에서 상근하는 사람은 사무장 1명에 불과한 셈이니 모두가 회의에 ‘동원’되는 객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셋째, 사후관리 대책이 없거나 부실하다. 추진위원회를 법인으로 전환시키도록 유도하지만 수익사업을 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놓으니 주민공동시설(행정소유)을 제대로 운영할 수도 없다. 완공된 시설물이 활성화되는 경우는 희생 봉사하는 지역리더와 열심히 하는 공무원, 역량있는 용역사(전문가) 등 ‘운에 운이 겹친’ 예외적인 경우라 자조할 정도다. 결국은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문제가 심각한 만큼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하드웨어 사업에 대해 설계공모 방식을 적용하거나 역량단계별 지원체계 도입, 농촌개발 전문관 지정, 시설물 유지관리 조례 제정, 읍면 밀착 사회적경제조직 육성, 중간지원조직의 체계적인 설치 등 일부 지자체에서 있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사업지침 개선은 아주 미흡하고, 좋은 사례의 확산 속도는 너무 느릴 뿐이다. 새롭게 출발하자면 정책적 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책을 주관하는 농식품부와 농어촌공사가 먼저 반성해야 하고, 발상의 전환을 담은 정책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문제점을 계속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농촌협약제도에서 기존의 중심지활성화와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은 내역사업으로 그대로 지속될 예정이다. 전국 읍면의 약 3분의 2 정도에서 사업이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이라 조만간 일몰 처리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농촌협약제도를 통해 ‘화려하게’ 다시 부활한 셈이다. 지자체의 창의적인 사업이 새롭게 반영될 여지를 막으니 사업물량으로는 더 늘어난 셈이고, 이미 사업이 완료된(혹은 진행중인) 읍면에 중복적으로 투자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장 주민들의 필요를 잘 반영하여 주민주도성이 잘 발현되어야, 사업지침이 현장 실정에 맞게끔 세련되게 설계되어야, 또 정책 칸막이를 극복하고 협업이 원활해야 기존 농촌지역개발사업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 기존의 문제점을 다시 반복하는 방식의 농촌협약이라면 결국 ‘반성 없는 도돌이표’에 불과한 셈이다. 이번 달에 농촌협약 예비계획서를 접수 받고 다음 달부터 심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우리는 지난 역사적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떤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이번 농촌협약의 참신성과 혁신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충남에서는 지난 2월에 ‘농촌정책 협업 촉진과 주민자치 강화에 관한 조례(김명숙 의원 대표 발의)’를 제정했다. “중앙정부의 농촌정책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충남도 농촌정책의 협업을 촉진하고 읍면 단위 농촌주민이 주체가 되어 다부처 농촌 지원사업을 지역 특성에 맞게 원활히 연계·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 규정을 마련하여 자치분권에 기여하기 위함”이 제정 목적이다. 지자체 및 읍면 주민자치회의 의견을 반영하여 ‘농촌정책 협업 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함을 도지사의 책무로 규정(제3조)하고 있다. 또 부처별 농촌지원사업 연계·협력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여 추진할 전담부서(제4조)와 관련 부서 간 상호 협조하기 위한 행정협의회(제5조), 그리고 자치분권과 농촌협약 시대를 대비한 중간지원조직으로 농촌활력지원센터(제 6조, 7조)의 설치근거를 명확히 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지만 농촌정책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큰 조례라 할 수 있다. 올해는 도의회 연구모임을 작년에 이어 2년째 운영하고 있고, 기본계획 수립과 통합형 중간지원조직 설치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농촌지역개발사업에서 자치단체의 권한이 제약되어 있어 기존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광역 지자체가 자율성을 발휘하여 정책협업을 모색하고 주민들의 체계적인 정책 참여를 보장하는 등 크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런 움직임이 광역에서 기초지자체로, 또 읍면으로 빨리 전파되기를 바란다. 또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는 제도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주민생활권이라 할 수 있는 농촌 면 단위에서 정책협업이 활성화되고 주민자치회의 정책 역량이 성장한다면 기존의 농촌지역개발사업이 가진 한계도 단계적으로 극복될 것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1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