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1/05/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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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습니다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농협이 제 역할만 해도 농업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농협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에게도 농협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협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제구실을 하지 못해, 늘 농민 조합원의 원성의 대상이 돼 왔다.
“농협이 돈 장사에만 급급해 농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은 등한시한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이 아니라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다”, “농업과 농민은 쇠퇴하는데 농협만 번성한다”고 비판하는 농민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농협 개혁을 농정 개혁의 주요 과제로 다뤘다. 그 중심에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이른바 ‘신경분리’)가 있었다.
농협중앙회 신경분리의 이상한 결말, 지주회사 체제로의 사업구조 개편
문민정부의 ‘농어촌발전위원회’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1단계 완전독립사업부제 실시 준비, 2단계 완전독립사업부제 실시 및 협동조합은행 설립 준비, 3단계 협동조합은행으로의 완전한 독립을 제시했다. 그러나 1994년 농협법 개정 과정에서 교묘하게 왜곡돼 무산됐다.
국민의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에 농협 개혁을 설정하고, ‘협동조합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회의 신경분리를 논의했으나, 농협중앙회와 축협중앙회, 인삼협중앙회의 통합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협동조합개혁위원회는 농림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서 농협이 힘이 센지,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2003년 2월 4일 강원지역 토론회)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농협중앙회 내에 설치된 ‘농협개혁위원회’에 자율적 개혁을 맡겨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로 흐지부지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2008년) 12월 4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농협이 금융하고 뭐 해서 돈을 몇조씩 벌고 있는데 농협이 번 돈을 농민들에게 돌려줘라. 농협이 벌어 갖고 사고나 치고 말이야”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2009년 신년사에서 “농협을 농민에게, 수협을 어민에게 돌려주는 개혁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질타에 놀란 이명박정부의 농림부는 2008년 12월 농협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2009년 12월 농협중앙회를 두 개의 지주회사(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입법 예고안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거의 1년에 걸쳐 고생해 온 농협개혁위원회가 정부와 농협중앙회의 암묵적인 담합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2009년 10월 28일 성명서)고 비난했고, 농협개혁위원들은 정부의 들러리만 섰다고 비판하면서 위원회를 스스로 해체했다.
지루한 논쟁 끝에 2011년 3월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해 농협금융지주회사와 농협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방안의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20여 년간 지속해 온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2년 3월 중앙회의 금융사업은 금융지주회사로 완전 이관됐고, 경제사업은 2017년 2월까지 순차적으로 이관됐다.
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은 실패했다
농림부는 농협중앙회 개혁 요구를 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변질시켰다. 그렇다면 농림부의 사업구조 개편은 과연 목표를 달성했는가. 국회예산정책처는 ‘농협중앙회 경제사업활성화(2012~2020년)’의 종료를 앞두고 2020년 10월에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사업구조 개편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실적은 목표(기대효과)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요약하면, 첫째, 경제사업 물량 및 경제사업 투자 계획, 자본금 확충 계획 등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둘째, “경제사업활성화를 위한 핵심 성과지표인 산지유통 점유비와 중앙회 책임판매 비중 등에서 당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곤란할 것”(‘보고서’ 73쪽)이다. 사업구조 개편 전후 9년간 농가판매가격지수와 농가교역조건지수 등이 정체되고 농업소득이 감소하는 등 “농민조합원 체감 효과가 미흡”(99쪽)하다.
셋째, “금융 부문의 목적은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여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인데, 농협은행을 포함한 농업금융지주의 사업성과가 저조하였으며 당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111쪽). 넷째, “사업구조개편 이후 금융 · 경제부문 등 수익저하에 따른 농협중앙회 배당수입 감소는 차입금(금융부채) 증가 등 농협중앙회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115쪽).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사업 활성화(경제부문)와 금융지주 경쟁력 강화(신용부문)를 목표로 한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재편은 실패한 것이다. 이는 농협중앙회 임직원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애당초 사업구조 개편의 목표와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가 실패한 이유
국민의정부 ‘협동조합개혁위원회’부터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논쟁에서 최전선에 있었던 나는 2008~2010년에 지주회사 방식에 의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는 농협중앙회의 근본적 개혁이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사업합리화 방안으로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나의 이러한 비판이 정당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내가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에 반대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그 논거를 ‘보고서’에 비추어 논증해보자.
첫째, 농협중앙회 사업의 문제점은 그것이 회원조합이나 농민 조합원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중앙회 자체를 위한 사업이란 점이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중앙회 경제사업의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경쟁력 강화이지, 회원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조직으로의 개혁이 아니다.
신경분리의 직접적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여 중앙회 신용사업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한 것이다. 신용사업이 경제사업의 적자를 메워주는 방식의 중앙회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즉 신용사업의 합리화를 위한 신경분리가 목적이었다.
따라서 가령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서 지주회사 체제로 합리화(?)한다고 해도, 조합원 및 회원조합의 공동이익이 증진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의하면, 농협 경제사업 및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농민 조합원의 만족도는 56.7점이고, 회원조합의 만족도는 그보다 낮은 51.8점, 소비자 만족도도 60.3점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낙제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가의 평균 명목 농업소득이 1995년 1,047만원에서 2019년 1,026만원으로 정체돼 실질 농업소득은 크게 감소했다. 그리고 농가교역조건지수의 경우에도 2017년 106.6에서 2018년 105.8, 2019년 104.7로 하락하고 있다.
둘째,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지주회사-자회사라는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되면 사업을 둘러싸고 중앙회의 자회사와 회원조합의 갈등이 훨씬 증폭될 것이다. 중앙회는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거대 지주회사(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익극대화를 추구한다.
중앙회는 단독 주주로서 경제지주·금융지주를 비롯한 계열사로부터 받는 명칭사용료(‘농업지원사업비’로 바뀜)와 배당금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앙회의 자회사는 주식회사로서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지주회사 및 계열사와 회원조합 간에 이해충돌이 발생하면 지주회사 및 계열사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보고서’에 의하면 중앙회의 조합상호지원자금 가운데 회원조합의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액의 비중은 2013~2019년에 77%에서 62.4%로 감소했다. 반면에 중앙회의 회원조합 통제수단으로 비판받는 교육지원 사업비의 비중은 23%에서 37.6%로 크게 늘어났다.
셋째, 농협중앙회의 지배구조가 더 나빠질 것이다. 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연합회이고, 그 회원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인 구조이지만, 실제로는 농협중앙회가 농민 조합원과 회원조합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중앙회가 지주회사 및 계열사 체제로 전환되면, 중앙회와 회원조합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중앙회의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회의 자회사인 목우촌은 사업구조 개편 이후 지배구조가 농민(조합원)→회원조합→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회사(자회사)→목우촌(손자회사)으로 돼 조합원 혹은 회원조합 간의 거리가 멀어진다. 목우촌은 양돈농가나 양돈협동조합이 설립한 조직이 아니고, 농협경제지주의 자회사일 뿐이다.
넷째, 지금까지 경제사업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본부를 경제지주회사로 바꾸고 자회사를 신규 설립한다고 해서 갑자기 판매사업 능력이 제고될 리 없다. 오히려 자회사 설립을 통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것은 아닌가.
‘보고서’에 의하면 농협의 산지유통 비중(산지유통액 대비 농가의 농협 출하액 비중)은 2020년 61.5% 목표에 비해 실적(2019년 46.8%)이 훨씬 미치지 못한다. 2012년에 46.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성과가 없다. 경제사업 활성화의 핵심목표인 중앙회 책임판매 비중(농가의 농협 출하액 대비 경제지주의 사업량)은 2020년 50% 목표에 비해 2019년 실적은 30.5%에 지나지 않는다. 농협경제지주 직접도매사업 실적을 보면, 2020년 3조원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 실적은 1조2,944억원으로 목표 대비 달성도는 43.1%에 불과하다.
경제지주 4개 유통회사의 매출액은 2015년 1조9,955억원에서 2019년 1조8,314억원으로 1,641억원 감소했고, 4개 유통회사의 당기순이익은 2015년 141억원에서 2019년 16억원으로 125억원 감소했다.
경제지주의 손실(2018년 241억원, 2019년 1,148억원의 당기순손실)과 금융지주의 수익저하로 중앙회의 재무구조가 악화하여, 중앙회의 금융부채가 2012년 9조2,000억원에서 2019년 13조4,200억원으로 급증했다.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로의 사업구조 재편은 총체적으로 부실 혹은 실패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앞으로 나아질 것인가.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모 신문 기고에서 “저조한 성적표에 무거운 책임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솔직히 고백하면서, “추가 사업계획(2021년부터 5년)도 지난 사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전과 중장기목표, 세부추진 방식 등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지 못한 채 여전한 나열식 사업계획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연합회 체제로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정부 당국은 농협중앙회 개혁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농협 개혁을 위해 농특위 산하에 ‘좋은농협위원회’를 설치하여, 농협 개혁 논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농특위는 제1호 의결 안건인 농협중앙회장 직선제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로 국회에서 무산되면서 실질적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좋은농협위원회’의 논의는 농협중앙회의 개혁이 아니라,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활성화라는 식상한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앙회 개혁이 번번이 실패로 끝난 가장 커다란 책임은 농식품부에 있다. 역대 정부의 농림부는 농민 조합원으로부터 농협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면, ‘농협개혁위원회’를 들러리 세워 개혁을 할 것처럼 시늉을 했지만, 결말은 언제나 농협중앙회의 뜻이 잘 반영된 채 용두사미로 끝났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는 농협 개혁의 이런 시늉마저도 완전히 실종됐다.
농협중앙회가 농협법 제113조(“중앙회는 회원의 공동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에 정한 바와 같이 그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인 지주회사 체제로부터 회원조합과 조합원에 복무하는 명실상부한 연합회 체제로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 이 정부에서 가망이 없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농민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아야 한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109)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고문, 충남대 명예교수
농협이 제 역할만 해도 농업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농협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에게도 농협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협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제구실을 하지 못해, 늘 농민 조합원의 원성의 대상이 돼 왔다.
“농협이 돈 장사에만 급급해 농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은 등한시한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이 아니라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다”, “농업과 농민은 쇠퇴하는데 농협만 번성한다”고 비판하는 농민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역대 정부는 농협 개혁을 농정 개혁의 주요 과제로 다뤘다. 그 중심에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이른바 ‘신경분리’)가 있었다.
농협중앙회 신경분리의 이상한 결말, 지주회사 체제로의 사업구조 개편
문민정부의 ‘농어촌발전위원회’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1단계 완전독립사업부제 실시 준비, 2단계 완전독립사업부제 실시 및 협동조합은행 설립 준비, 3단계 협동조합은행으로의 완전한 독립을 제시했다. 그러나 1994년 농협법 개정 과정에서 교묘하게 왜곡돼 무산됐다.
국민의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에 농협 개혁을 설정하고, ‘협동조합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회의 신경분리를 논의했으나, 농협중앙회와 축협중앙회, 인삼협중앙회의 통합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협동조합개혁위원회는 농림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은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어서 농협이 힘이 센지,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2003년 2월 4일 강원지역 토론회)고 말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농협중앙회 내에 설치된 ‘농협개혁위원회’에 자율적 개혁을 맡겨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로 흐지부지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2008년) 12월 4일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해 “농협이 금융하고 뭐 해서 돈을 몇조씩 벌고 있는데 농협이 번 돈을 농민들에게 돌려줘라. 농협이 벌어 갖고 사고나 치고 말이야”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2009년 신년사에서 “농협을 농민에게, 수협을 어민에게 돌려주는 개혁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질타에 놀란 이명박정부의 농림부는 2008년 12월 농협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2009년 12월 농협중앙회를 두 개의 지주회사(농협경제지주회사와 농협금융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 입법 예고안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거의 1년에 걸쳐 고생해 온 농협개혁위원회가 정부와 농협중앙회의 암묵적인 담합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2009년 10월 28일 성명서)고 비난했고, 농협개혁위원들은 정부의 들러리만 섰다고 비판하면서 위원회를 스스로 해체했다.
지루한 논쟁 끝에 2011년 3월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해 농협금융지주회사와 농협경제지주회사를 설립하는 지주회사 방안의 농협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로써 20여 년간 지속해 온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2년 3월 중앙회의 금융사업은 금융지주회사로 완전 이관됐고, 경제사업은 2017년 2월까지 순차적으로 이관됐다.
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은 실패했다
농림부는 농협중앙회 개혁 요구를 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변질시켰다. 그렇다면 농림부의 사업구조 개편은 과연 목표를 달성했는가. 국회예산정책처는 ‘농협중앙회 경제사업활성화(2012~2020년)’의 종료를 앞두고 2020년 10월에 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사업구조 개편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실적은 목표(기대효과)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요약하면, 첫째, 경제사업 물량 및 경제사업 투자 계획, 자본금 확충 계획 등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둘째, “경제사업활성화를 위한 핵심 성과지표인 산지유통 점유비와 중앙회 책임판매 비중 등에서 당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곤란할 것”(‘보고서’ 73쪽)이다. 사업구조 개편 전후 9년간 농가판매가격지수와 농가교역조건지수 등이 정체되고 농업소득이 감소하는 등 “농민조합원 체감 효과가 미흡”(99쪽)하다.
셋째, “금융 부문의 목적은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여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것인데, 농협은행을 포함한 농업금융지주의 사업성과가 저조하였으며 당초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111쪽). 넷째, “사업구조개편 이후 금융 · 경제부문 등 수익저하에 따른 농협중앙회 배당수입 감소는 차입금(금융부채) 증가 등 농협중앙회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115쪽).
한마디로 말하면 경제사업 활성화(경제부문)와 금융지주 경쟁력 강화(신용부문)를 목표로 한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재편은 실패한 것이다. 이는 농협중앙회 임직원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애당초 사업구조 개편의 목표와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가 실패한 이유
국민의정부 ‘협동조합개혁위원회’부터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논쟁에서 최전선에 있었던 나는 2008~2010년에 지주회사 방식에 의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는 농협중앙회의 근본적 개혁이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사업합리화 방안으로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는 나의 이러한 비판이 정당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당시 내가 지주회사 방식의 신경분리에 반대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그 논거를 ‘보고서’에 비추어 논증해보자.
첫째, 농협중앙회 사업의 문제점은 그것이 회원조합이나 농민 조합원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중앙회 자체를 위한 사업이란 점이다.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중앙회 경제사업의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경쟁력 강화이지, 회원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연합조직으로의 개혁이 아니다.
신경분리의 직접적 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하여 중앙회 신용사업의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한 것이다. 신용사업이 경제사업의 적자를 메워주는 방식의 중앙회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즉 신용사업의 합리화를 위한 신경분리가 목적이었다.
따라서 가령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서 지주회사 체제로 합리화(?)한다고 해도, 조합원 및 회원조합의 공동이익이 증진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의하면, 농협 경제사업 및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농민 조합원의 만족도는 56.7점이고, 회원조합의 만족도는 그보다 낮은 51.8점, 소비자 만족도도 60.3점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낙제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가의 평균 명목 농업소득이 1995년 1,047만원에서 2019년 1,026만원으로 정체돼 실질 농업소득은 크게 감소했다. 그리고 농가교역조건지수의 경우에도 2017년 106.6에서 2018년 105.8, 2019년 104.7로 하락하고 있다.
둘째, 농협중앙회의 사업이 지주회사-자회사라는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되면 사업을 둘러싸고 중앙회의 자회사와 회원조합의 갈등이 훨씬 증폭될 것이다. 중앙회는 경제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거대 지주회사(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익극대화를 추구한다.
중앙회는 단독 주주로서 경제지주·금융지주를 비롯한 계열사로부터 받는 명칭사용료(‘농업지원사업비’로 바뀜)와 배당금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앙회의 자회사는 주식회사로서 이윤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지주회사 및 계열사와 회원조합 간에 이해충돌이 발생하면 지주회사 및 계열사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보고서’에 의하면 중앙회의 조합상호지원자금 가운데 회원조합의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액의 비중은 2013~2019년에 77%에서 62.4%로 감소했다. 반면에 중앙회의 회원조합 통제수단으로 비판받는 교육지원 사업비의 비중은 23%에서 37.6%로 크게 늘어났다.
셋째, 농협중앙회의 지배구조가 더 나빠질 것이다. 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연합회이고, 그 회원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인 구조이지만, 실제로는 농협중앙회가 농민 조합원과 회원조합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중앙회가 지주회사 및 계열사 체제로 전환되면, 중앙회와 회원조합 간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중앙회의 지배력이 강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회의 자회사인 목우촌은 사업구조 개편 이후 지배구조가 농민(조합원)→회원조합→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회사(자회사)→목우촌(손자회사)으로 돼 조합원 혹은 회원조합 간의 거리가 멀어진다. 목우촌은 양돈농가나 양돈협동조합이 설립한 조직이 아니고, 농협경제지주의 자회사일 뿐이다.
넷째, 지금까지 경제사업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본부를 경제지주회사로 바꾸고 자회사를 신규 설립한다고 해서 갑자기 판매사업 능력이 제고될 리 없다. 오히려 자회사 설립을 통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것은 아닌가.
‘보고서’에 의하면 농협의 산지유통 비중(산지유통액 대비 농가의 농협 출하액 비중)은 2020년 61.5% 목표에 비해 실적(2019년 46.8%)이 훨씬 미치지 못한다. 2012년에 46.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성과가 없다. 경제사업 활성화의 핵심목표인 중앙회 책임판매 비중(농가의 농협 출하액 대비 경제지주의 사업량)은 2020년 50% 목표에 비해 2019년 실적은 30.5%에 지나지 않는다. 농협경제지주 직접도매사업 실적을 보면, 2020년 3조원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 실적은 1조2,944억원으로 목표 대비 달성도는 43.1%에 불과하다.
경제지주 4개 유통회사의 매출액은 2015년 1조9,955억원에서 2019년 1조8,314억원으로 1,641억원 감소했고, 4개 유통회사의 당기순이익은 2015년 141억원에서 2019년 16억원으로 125억원 감소했다.
경제지주의 손실(2018년 241억원, 2019년 1,148억원의 당기순손실)과 금융지주의 수익저하로 중앙회의 재무구조가 악화하여, 중앙회의 금융부채가 2012년 9조2,000억원에서 2019년 13조4,200억원으로 급증했다.
농협중앙회의 지주회사로의 사업구조 재편은 총체적으로 부실 혹은 실패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럼 앞으로 나아질 것인가. 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모 신문 기고에서 “저조한 성적표에 무거운 책임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솔직히 고백하면서, “추가 사업계획(2021년부터 5년)도 지난 사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전과 중장기목표, 세부추진 방식 등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지 못한 채 여전한 나열식 사업계획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연합회 체제로
상황이 이 지경임에도 정부 당국은 농협중앙회 개혁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농협 개혁을 위해 농특위 산하에 ‘좋은농협위원회’를 설치하여, 농협 개혁 논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농특위는 제1호 의결 안건인 농협중앙회장 직선제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로 국회에서 무산되면서 실질적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좋은농협위원회’의 논의는 농협중앙회의 개혁이 아니라, 농협중앙회 경제사업 활성화라는 식상한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중앙회 개혁이 번번이 실패로 끝난 가장 커다란 책임은 농식품부에 있다. 역대 정부의 농림부는 농민 조합원으로부터 농협 개혁의 요구가 거세지면, ‘농협개혁위원회’를 들러리 세워 개혁을 할 것처럼 시늉을 했지만, 결말은 언제나 농협중앙회의 뜻이 잘 반영된 채 용두사미로 끝났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는 농협 개혁의 이런 시늉마저도 완전히 실종됐다.
농협중앙회가 농협법 제113조(“중앙회는 회원의 공동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에 정한 바와 같이 그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인 지주회사 체제로부터 회원조합과 조합원에 복무하는 명실상부한 연합회 체제로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 이 정부에서 가망이 없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농민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가 ‘집 나간 농협 개혁’을 찾아야 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노자 도덕경을 빌려 소빈(素牝)이란 호를 지어주셨습니다. “소는 소박함, 꾸밈없음이고, 빈은 대지, 뭇 생명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소빈은 조선인의 소복과도 같은 흙을 의미한다.” <가보세>는 “새야 새야”와 함께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널리 불러졌던 참요입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보리”. ‘농어민이 행복하여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더 지체하지 말고 함께 가보자는 염원을 담아봅니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 소빈 박진도의 가보세(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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