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되는 마을계획, 주민 체감도는 글쎄…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 작성일2021/03/17 13:16
- 조회 527
고도화되는 마을계획, 주민 체감도는 글쎄…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현란하고 고도화된 기교·기술 없지만
공동체 사업 결정권 주민들에 줘야
소박하지만 더 빛 나고, 지속가능해
얼마 전 면단위 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을 앞둔 한 장학사 선생님으로부터 농촌개발사업 관련 계획서를 하나 받아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보내드렸다. 며칠 뒤 장학사 선생님이 “이 계획을 주민들이 만드는 것이냐”고 물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용역사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더니, “그럼 이 계획내용을 주민들이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 스스로도 궁금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장학사 선생님은 “교육청에서 우리도 계획서 좀 만든다 하는 사람들인데, 이 계획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주민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충남도와 도교육청에서는 지역 초등학교와 공동체가 협력하여 방과후학교와 아동돌봄을 통합하여 추진하는 ‘온종일 돌봄’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돌봄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대상인원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에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개점휴업’상태인 커뮤니티센터 활성화를 고민하는 주민들이 있다. 농촌 현장에서 정책사업 간 ‘미스매칭’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농촌지역개발에서 주민주도 계획 수립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하에서 추진되던 정책은 사업내용, 사업방식, 추진일정, 사업지구 선정 등이 중앙정부의 획일적 계획 혹은 지침에 의존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방자치가 본격화되고 자치분권이 진전되면서 지자체의 특수성이나 창의성, 주민들의 개발수요 등을 정책사업에 반영하기 위해 주민 주도로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비단 농촌지역개발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범위의 공동체(행정리, 읍면동 등)를 대상으로 하는 중앙부처의 많은 사업이 주민참여를 통해 주민의견이 반영된 계획 수립을 요구하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계획’이란 사업의 주체가 장차 벌일 일에 대해 구체적인 절차나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구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계획’은 일정 범위(행정리, 읍면 등)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참여와 주도로 공동체가 안고 있는 과제를 발굴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을 주민합의를 통해 작성하고, 공동체(주민) 스스로가 계획의 추진주체가 되어 실행하는 계획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에는 ‘문당리 100년 계획’이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기는 하지만, 마을발전을 위한 큰 흐름과 방향을 주민들이 결정하여 세운 계획이다. 오리농법으로 잘 알려진 문당리는 친환경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마을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주민들의 생각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다.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마을입구에는 농산물무인판매대가 있다. 특별한 계획서가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작고 소박한 무인판매대이지만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옥천군 안남면에도 안남면발전계획이 있다. 주민들이 계획수립 비용을 마련하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전문가를 초청하여 자문을 받아 면지역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이 계획을 토대로 커뮤니티센터, 면내 순회버스, 로컬푸드와 농산물가공, 마을도서관, 작은목욕탕 등 필요한 정책사업들을 연계하여 면단위 생활권을 유지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광군 묘량면은 어떠한가. 여민동락공동체라는 주민조직이 1년여에 걸친 지역조사를 통해 지역의 주요과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주간보호센터를 건립하고, 노인들을 위한 공동농장 동락원과 할매손 가공센터를 설치하는가 하면, 폐교위기의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을 활성화하여 오히려 학생 수가 증가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홍성군 장곡면에서는 최근 주민주도의 마을계획 수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2019년 두 달간 7회에 걸쳐 ‘장곡면 2030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학습회’를 운영하여, 지역주민들의 개발수요를 정리하였다.
이들 마을계획에는 현란하고 고도화된 기교와 기술은 없지만, 농촌 현장에 대한 고민과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리된 사업과 그 사업들을 실행하기 위해 지역 내외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주체와 정책사업, 외부지원 등)들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함께 담겨 있다. 주민들은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와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할 영역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주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업을 구상하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더욱 빛이 나고 지속가능하다.
농촌 공동체가 안고 있는 복잡다기한 과제를 행정주도로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지역적 특성이나 조건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중앙 또는 행정주도(또는 용역사 주도)의 마을계획은 주민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든다. 주민 수요와 동떨어진 사업계획의 효과 저하와 행정의 유지관리 부담 가중 등 ‘주민참여 없는 사업계획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이제 공동체의 운명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주민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돌려줘야 한다. 주민 주도의 마을계획을 통해 계획의 주체로서 주민들은 마을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고민하고 동원 가능한 방법을 찾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주민역량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주민 간 이해 충돌로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공동체 내부 공론화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합의를 유도하고, 공동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더욱 공고해지기도 한다. 고도화된 기법으로 잘 포장된 마을계획들이 과연 농촌 생활권 기능 회복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683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현란하고 고도화된 기교·기술 없지만
공동체 사업 결정권 주민들에 줘야
소박하지만 더 빛 나고, 지속가능해
얼마 전 면단위 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을 앞둔 한 장학사 선생님으로부터 농촌개발사업 관련 계획서를 하나 받아보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보내드렸다. 며칠 뒤 장학사 선생님이 “이 계획을 주민들이 만드는 것이냐”고 물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여 용역사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더니, “그럼 이 계획내용을 주민들이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나 스스로도 궁금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장학사 선생님은 “교육청에서 우리도 계획서 좀 만든다 하는 사람들인데, 이 계획서는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주민들이 보기에는 어려울 듯하다”고 했다.
충남도와 도교육청에서는 지역 초등학교와 공동체가 협력하여 방과후학교와 아동돌봄을 통합하여 추진하는 ‘온종일 돌봄’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돌봄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대상인원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에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개점휴업’상태인 커뮤니티센터 활성화를 고민하는 주민들이 있다. 농촌 현장에서 정책사업 간 ‘미스매칭’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농촌지역개발에서 주민주도 계획 수립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하에서 추진되던 정책은 사업내용, 사업방식, 추진일정, 사업지구 선정 등이 중앙정부의 획일적 계획 혹은 지침에 의존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방자치가 본격화되고 자치분권이 진전되면서 지자체의 특수성이나 창의성, 주민들의 개발수요 등을 정책사업에 반영하기 위해 주민 주도로 ‘마을계획’을 수립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비단 농촌지역개발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범위의 공동체(행정리, 읍면동 등)를 대상으로 하는 중앙부처의 많은 사업이 주민참여를 통해 주민의견이 반영된 계획 수립을 요구하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계획’이란 사업의 주체가 장차 벌일 일에 대해 구체적인 절차나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헤아려 구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을계획’은 일정 범위(행정리, 읍면 등)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참여와 주도로 공동체가 안고 있는 과제를 발굴하고,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을 주민합의를 통해 작성하고, 공동체(주민) 스스로가 계획의 추진주체가 되어 실행하는 계획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에는 ‘문당리 100년 계획’이 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금씩 수정되기는 하지만, 마을발전을 위한 큰 흐름과 방향을 주민들이 결정하여 세운 계획이다. 오리농법으로 잘 알려진 문당리는 친환경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마을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주민들의 생각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다. 서천군 마산면 벽오리 마을입구에는 농산물무인판매대가 있다. 특별한 계획서가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작고 소박한 무인판매대이지만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옥천군 안남면에도 안남면발전계획이 있다. 주민들이 계획수립 비용을 마련하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전문가를 초청하여 자문을 받아 면지역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이 계획을 토대로 커뮤니티센터, 면내 순회버스, 로컬푸드와 농산물가공, 마을도서관, 작은목욕탕 등 필요한 정책사업들을 연계하여 면단위 생활권을 유지하고,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광군 묘량면은 어떠한가. 여민동락공동체라는 주민조직이 1년여에 걸친 지역조사를 통해 지역의 주요과제를 발굴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주간보호센터를 건립하고, 노인들을 위한 공동농장 동락원과 할매손 가공센터를 설치하는가 하면, 폐교위기의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을 활성화하여 오히려 학생 수가 증가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홍성군 장곡면에서는 최근 주민주도의 마을계획 수립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2019년 두 달간 7회에 걸쳐 ‘장곡면 2030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학습회’를 운영하여, 지역주민들의 개발수요를 정리하였다.
이들 마을계획에는 현란하고 고도화된 기교와 기술은 없지만, 농촌 현장에 대한 고민과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리된 사업과 그 사업들을 실행하기 위해 지역 내외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주체와 정책사업, 외부지원 등)들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함께 담겨 있다. 주민들은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와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할 영역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주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업을 구상하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더욱 빛이 나고 지속가능하다.
농촌 공동체가 안고 있는 복잡다기한 과제를 행정주도로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지역적 특성이나 조건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중앙 또는 행정주도(또는 용역사 주도)의 마을계획은 주민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든다. 주민 수요와 동떨어진 사업계획의 효과 저하와 행정의 유지관리 부담 가중 등 ‘주민참여 없는 사업계획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이제 공동체의 운명을 주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주민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돌려줘야 한다. 주민 주도의 마을계획을 통해 계획의 주체로서 주민들은 마을의 과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고민하고 동원 가능한 방법을 찾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주민역량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주민 간 이해 충돌로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공동체 내부 공론화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합의를 유도하고, 공동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더욱 공고해지기도 한다. 고도화된 기법으로 잘 포장된 마을계획들이 과연 농촌 생활권 기능 회복과 주민 삶의 질 향상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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