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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 마을에서 사라진 것, 자급과 자치의 힘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1/03/12 13:14
    • 조회 542
    농촌 마을에서 사라진 것, 자급과 자치의 힘
    | 구자인 마을연구소 일소공도협동조합 소장, 지역재단 자문위원

    농촌의 가장 큰 경쟁력인
    ‘자급과 자치의 힘’ 유지해야
    만농촌다움 복원 꿈꿀 수 있어


    농촌마을을 다니다보면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아이 울음소리 들은 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50대 분이 “내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이제 면단위에서조차 1년에 출생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등장한다. 농가 담벼락마다 있던 넝쿨식물도 이제 보이지 않는다. 뒷마당마다 자리잡고 있던 텃밭도 없어졌거나 이용되지 않는다. 소나 돼지, 닭 같은 가축 울음소리도 듣기 힘들다. 골짜기 곳곳에 있는 대형 축사에 감금되어 있고, 체험 농가에서만 간신히 얼굴 구경하는 정도다. 

    이외에도 품앗이 노동이 사라지고, 농번기 새참도 사라졌다. 면소재지의 약방도 사라지고, 이제는 중국집도 근대화마트도 사라질 판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것은 그냥 역사적 필연인가? 그렇게 바라보기에는 너무 소중하고 농촌 살림살이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농촌답다’라는 것이 사람따라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모습과 생활이 사라지니 도시와 다른 농촌만의 차별성도 불명확해졌다. 논밭이 있으니 겉모습만 농촌일 뿐이고, 돌아갈 고향이기에는 너무 멀어졌고, 이런 상황이 되니 농촌도 소위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소농, 가족농 시스템이 붕괴되고 농촌사회가 시장경제와 국가 정책에 종속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농업 근대화’란 명목으로 단작화, 기계화, 규모화, 화학화가 추진된 정책의 결과이고, 결국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농촌 주민이 이런 농촌을 꿈꾸며 이런 선택을 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처절한 반성이 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구호의 정책 슬로건을 내세워도 이러한 역사적 반성이 부족하면 ‘모래 위의 성’일 뿐이다.

    일본에서 만 6년 반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주로 농촌 사회가 전후(戰後)에 변해오는 역사적 과정과 내부 구조를 조사하였다. 그 중에서 오오사(大佐)지구라고 세 개 마을(행정리)이 모여 마을만들기 활동을 열심히 실천한 산촌 마을이 있었다. 목탄 생산이나 일소, 물레방아 등은 1970년대 중반이 되면 모두 사라졌다. 대신에 각종 농기계나 TV, 자동차 같은 생활수단은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농민들도 마트를 이용하는 횟수가 늘고 또 이동거리도 길어졌다. 그들 말로도 1970년 전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결과적으로 농업이 기계화되고, 생산자 농민이 소비자로 바뀌면서 농촌의 생활양식도 도시적으로 바뀌었다. 겉모습은 여전히 농촌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보고자 1980년대 중반에 경지정리를 계기로 ‘마을공화국’이란 기치도 내세우고 주민조직도 정비하며 전통 복원 활동도 열심히 전개하였다. 목탄 가마와 물레방아도 복원하고, 개별 축사를 모아 공동목장도 조성하였다. 농산물 가공장도 짓고 관공서가 있는 소재지에 직매장도 설치하며 고택을 보수하여 도농교류 활동도 시작하였다. 1990년대 10년간 정말 열심히 노력하였고 중앙정부에서 주는 상도 여럿 받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인구감소나 고령화를 막을 수도 없었다. 각종 활동은 정체(혹은 후퇴)하고, 주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문제는 한 마을에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고, 주민들의 실천을 가로막는 외부적 압력(제약)이 너무 컸다. 달리 말하면 활동만 열심히 했지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다른 농촌 마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한국 농촌도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훨씬 더 ‘압축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 농촌이 ‘고목나무에 링거를 꼽아 유지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은 여전히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렇다면 일본 농촌이 걸어온 역사적 경험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국 농촌의 마을만들기, 지역만들기에서 근본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화두는 무엇일까?무엇보다 농촌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자급과 자치의 힘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농촌 사회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확보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행정, 시장에 권한을 맡기거나 종속되면, 다른 말로 농촌다움을 해체시키려는 외부 압력과 의식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은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우리 실정에서 농촌다움을 복원하자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매우 당연하게 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그리 논쟁적이지도 않고 시급하게 도입해야 할 것들이다.

    현장 상황을 보면서 구조적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방향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좋은 사례가 정부 정책에 흡수되면서 왜곡되어 왔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무엇보다 농촌에 청년 후계자를 시급하게 확보해야 한다. 농사 짓는 농민도 필요하고 농촌을 지킬 리더도 필요하다. 작은 학교 살리기 차원으로 연결되고 마을교육공동체 운동과도 결합해야 한다. 농촌에는 일자리는 부족해도 일거리는 아주 많은 셈이니 그 빈틈을 공공정책이 잘 메워줘야 한다. 또 농가 단위로 마을 단위로 작은 텃밭을 유지하여 스스로의 먹거리를 자급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농가가 계절 농산물조차 마트에서 사먹는 것은 도무지 농민답지 않다.

    이러한 노력이 로컬푸드와 푸드플랜, 사회적농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소규모 축산을 복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민농업을 위한 먹거리 공급에 집중하다 보니 경축순환 농업은 구호로만 남고 농촌에 악취만 풍길 뿐이다. 노동자는 모두 외국인 근로자에게 맡기고, 축산농가 자신도 마을에 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의 축산업이 과연 농업인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자치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급력도 늘어난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온 경험이 너무 미약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안된다”는 자포자기도 너무 많다. 그러한 인식의 한계, 좌절감을 극복하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주민자치회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정부 정책이 이런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여 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해야만 ‘농촌다움’의 복원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3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