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직불제(또는 농민기본소득)와 공동체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 작성일2020/10/20 15:52
- 조회 589
공익직불제(또는 농민기본소득)와 공동체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마을연금’ 운영하는 태안 만수동어촌계
은퇴 어업인 위해 소득 일부 기꺼이 내놔
공익직불·농민소득도 사회적 공론화 필요
최근 농업·농촌의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은 단연 공익형 직불제와 농민수당 또는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직불제와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은 부족한 듯하다. 나는 이 논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농촌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농촌기본소득을 검토 중인 경기도에서 국내 자생적 기본소득 사례로 태안군 만수동어촌계가 소개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아닌 어촌계 자체재원으로 2016년부터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태안군 만수동어촌계의 ‘마을연금제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만수동어촌계 주 소득원은 바지락과 굴이다.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의 갯벌을 어촌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특성 때문에 어촌계에서는 귀어인들이 유입되는 것을 꺼린다. 갯벌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주민이 늘어날수록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촌 역시 주민들이 고령화되고 신규 유입인구가 줄어들면서 공동체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농촌과 큰 차이가 없다. 만수동어촌계는 기존 어촌계 주민 가운데 80세 이상 고령자, 장기입원환자 등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주민들에게 나머지 어촌계원 수입총액의 30%를 균등배분하고 있다. 수혜대상 주민은 21명이며 1인당 연간 약300만원이 연금형태로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만수동어촌계가 마을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연금 수혜대상이 아닌 주민 다수가 당장 자신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주민들이 어촌계를 떠나지 않는 이상 주민 모두가 결국 수혜대상이 되고, 그동안 어촌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80세 이상 노인들이 어촌계를 잘 이끌어 온 때문이라는 점을 설득했다.
만수동어촌계는 마을연금제도를 계기로 새로운 공동체 활성화를 준비한다. 어촌계의 특성 상 신규 계원의 진입을 막았던 진입장벽을 제거하여 20여명의 귀어인들을 유치하였다.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민 고령화로 부족한 어촌계 어업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돕고 있다. 우리는 만수동어촌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공익형 직불제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 것일까?
첫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의식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018년 72.2%, 2019년 64.2%로 연도별 편차는 있지만 매년 50% 이상 높은 지지도 유지). 반면, 농업·농촌의 부정적 기능에 대해서는 농촌지역 난개발로 농촌경관이 훼손된다(2019년 66.6%), 농업·농촌이 정부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55.7%)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부정적 의견은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과 상충되는 것으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농촌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공익형 직불제이든 농민수당이든 농민들에 대한 현금지원이 농촌공동체의 또 다른 갈등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올해 5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공익직불제’ 내용 가운데, 공익증진을 위한 농업인 실천 항목이 유독 눈에 띈다. 직불금을 받고자 하는 농업인은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을 위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준수사항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마을공동체 공동활동 실시와 영농폐기물의 적정처리가 포함된다. 농촌마을의 비농가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 공동활동에 정부로부터 직블금을 받는 농가와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비농가가 함께 참여하는 현실이 연출되게 된다. 농촌공동체는 미래로 나갈 것인가? 반목할 것인가?
농촌공동체의 주민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농과 소농, 은퇴농민, 고령농민과 청년농민, 여성농민, 귀농인, 여기에 비농가까지 농촌공동체는 매우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는 농촌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발현된다. 그럼,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농촌에 거주하는 비농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만수동어촌계 주민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수입의 일부를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은퇴 어업인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기 떄문에 공동체가 더욱 빛을 발한다. 정책은 주민들의 풀뿌리 활동을 더욱 촉진하고 공동체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농민 대다수는 만수동어촌계와 마찬가지로 농촌공동체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온 이웃들과 기꺼이 함께 할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공익직불금이든 농민기본소득이든 결국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농촌공동체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농촌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공익직불제 또는 농촌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출처- 한국농어민신문 2020. 10.20일자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290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마을연금’ 운영하는 태안 만수동어촌계
은퇴 어업인 위해 소득 일부 기꺼이 내놔
공익직불·농민소득도 사회적 공론화 필요
최근 농업·농촌의 모든 이슈를 흡수하고 있는 블랙홀은 단연 공익형 직불제와 농민수당 또는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직불제와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공감대 형성 노력은 부족한 듯하다. 나는 이 논의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농촌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농촌기본소득을 검토 중인 경기도에서 국내 자생적 기본소득 사례로 태안군 만수동어촌계가 소개되면서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아닌 어촌계 자체재원으로 2016년부터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태안군 만수동어촌계의 ‘마을연금제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만수동어촌계 주 소득원은 바지락과 굴이다. 개인소유가 아닌 국가 소유의 갯벌을 어촌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특성 때문에 어촌계에서는 귀어인들이 유입되는 것을 꺼린다. 갯벌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주민이 늘어날수록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촌 역시 주민들이 고령화되고 신규 유입인구가 줄어들면서 공동체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농촌과 큰 차이가 없다. 만수동어촌계는 기존 어촌계 주민 가운데 80세 이상 고령자, 장기입원환자 등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주민들에게 나머지 어촌계원 수입총액의 30%를 균등배분하고 있다. 수혜대상 주민은 21명이며 1인당 연간 약300만원이 연금형태로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만수동어촌계가 마을연금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연금 수혜대상이 아닌 주민 다수가 당장 자신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주민들이 어촌계를 떠나지 않는 이상 주민 모두가 결국 수혜대상이 되고, 그동안 어촌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80세 이상 노인들이 어촌계를 잘 이끌어 온 때문이라는 점을 설득했다.
만수동어촌계는 마을연금제도를 계기로 새로운 공동체 활성화를 준비한다. 어촌계의 특성 상 신규 계원의 진입을 막았던 진입장벽을 제거하여 20여명의 귀어인들을 유치하였다.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민 고령화로 부족한 어촌계 어업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돕고 있다. 우리는 만수동어촌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공익형 직불제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 것일까?
첫째,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고 있는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국민의식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018년 72.2%, 2019년 64.2%로 연도별 편차는 있지만 매년 50% 이상 높은 지지도 유지). 반면, 농업·농촌의 부정적 기능에 대해서는 농촌지역 난개발로 농촌경관이 훼손된다(2019년 66.6%), 농업·농촌이 정부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55.7%)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부정적 의견은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과 상충되는 것으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농촌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공익형 직불제이든 농민수당이든 농민들에 대한 현금지원이 농촌공동체의 또 다른 갈등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올해 5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공익직불제’ 내용 가운데, 공익증진을 위한 농업인 실천 항목이 유독 눈에 띈다. 직불금을 받고자 하는 농업인은 농업·농촌 공익기능 증진을 위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준수사항이 있는데, 그 가운데 마을공동체 공동활동 실시와 영농폐기물의 적정처리가 포함된다. 농촌마을의 비농가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체 공동활동에 정부로부터 직블금을 받는 농가와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비농가가 함께 참여하는 현실이 연출되게 된다. 농촌공동체는 미래로 나갈 것인가? 반목할 것인가?
농촌공동체의 주민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농과 소농, 은퇴농민, 고령농민과 청년농민, 여성농민, 귀농인, 여기에 비농가까지 농촌공동체는 매우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는 농촌공동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발현된다. 그럼,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않는 농촌에 거주하는 비농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만수동어촌계 주민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얻은 수입의 일부를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은퇴 어업인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기 떄문에 공동체가 더욱 빛을 발한다. 정책은 주민들의 풀뿌리 활동을 더욱 촉진하고 공동체를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농민 대다수는 만수동어촌계와 마찬가지로 농촌공동체를 지금까지 유지시켜 온 이웃들과 기꺼이 함께 할 마음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공익직불금이든 농민기본소득이든 결국 ‘돈’ 때문에 다시 한 번 농촌공동체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농촌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공익직불제 또는 농촌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출처- 한국농어민신문 2020. 10.20일자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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