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모범사례가 정책과 만나 탱자가 되지 않으려면···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 작성일2020/09/15 10:55
- 조회 599
풀뿌리 모범사례가 정책과 만나 탱자가 되지 않으려면···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다른 곳에서는 성과 낸 정책이라도
‘사람’ 간과하고 따라할 땐 실효 잃어
주민 자발적 참여·실행 잊지 말아야
귤화위지, 회남의 귤을 회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사물의 성질이 변했을 때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다. 농촌 현장에서 주민들의 삶의 지혜와 자발적 노력으로 일군 다양한 풀뿌리 모범사례들이 행정에서 차용하여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계획에서 농촌에 부족한 서비스를 공급·전달하는 분야별 “우수 사례를 발굴·모델화”하여 확산시킴으로써 사회서비스 사각지대 해소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농촌지역 생활SOC 시설에 사회적경제조직, 중간지원조직 등이 참여하여 행정과 함께 배후마을 곳곳으로 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중점분야는 보육, 교육, 문화, 체육, 복지, 보건의료, 교통, 주택 등 7개 분야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료분야 사례로 안성시 안성의료생협과 홍성군 홍동면의료생협, 문화분야 사례는 곡성군 죽곡도서관과 남양주시 별내작은말학교, 교통분야는 옥천군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 등을 참고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농촌 현장에서 주민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모범사례를 발굴, 전국에 전파하여 농촌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참고자료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의미 있다. 앞서 제시된 모범사례의 핵심은 바로 주민 참여와 자치역량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이나 용역사의 지원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당면과제를 주민 스스로 찾아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주민합의를 통해 실행 역시 주민주도의 사회적 경제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분야 사례로 소개된 홍동우리마을생협은 병·의원 하나 없는 면단위 농촌지역에서 2012년 주민 스스로 지역의원 설립을 목표로 의료생협을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2013년 자발적으로 참여한 주민 25명으로 구성된 준비모임을 통해 홍동면과 인근 장곡면을 포함하여 지역주민들과 순회모임을 갖고, 의료생협 설립을 위해 필요한 절차와 내용 등을 학습하였다. 2015년 8월 주민들의 참여로 조합원 407명, 6천5백여만원의 출자금을 모아 우리동네의원을 개원하였다. 2018년 기준 주민 조합원 563명, 출자금 1억원을 훌쩍 넘겼다. 지역 주민들은 지역의원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와 농촌의료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설득을 통해 의사를 지역의원의 첫 의사로 유치하게 된 것이다.
면단위 농촌교통의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는 어떠한가. 상수원 보호구역인 옥천군은 수자원공사로부터 매년 수변구역 주민지원금을 지원받아 9개 읍면에 지원하고 있다. 주민지원금을 받은 읍면 대부분은 관례적으로 마을별로 나눠 각자의 방식으로 지원금을 사용해 오고 있었다. 안남면 주민자치조직인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는 주민 공론화를 통해 주민지원금의 일부를 면지역 전체 주민을 위해 사용하는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업으로 배바우마을버스를 구입하였고, 옥천군은 마을버스 운영에 필요한 기사 인건비와 운영비 일부 등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현재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가 있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책을 설계할 때, 다른 나라의 선진사례 또는 타 지자체의 정책과 모범사례 등을 참고하여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곳에서는 훌륭한 성과를 낸 좋은 정책과 사업들이 막상 우리 농촌 현장에서 실효성을 잃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사람’, 즉, 주체의 문제를 간과하고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된 농촌 모범사례들은 지역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학습, 공론화, 그리고 직접 실행까지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사회적 경제방식에 기초한 농촌 서비스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중심지 마을 소수의 리더들을 주체로 행정과 용역사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정책 모델에 맞춰 시설과 프로그램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지원이 종료되는 순간 멈추고 행정과 주민, 용역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업을 반복하게 될 우려가 크다. 전국 농촌지역에 앞서 소개한 풀뿌리 모범사례가 확산되려면 지역과 주민의 관점에서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체계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20. 9. 15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669
| 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다른 곳에서는 성과 낸 정책이라도
‘사람’ 간과하고 따라할 땐 실효 잃어
주민 자발적 참여·실행 잊지 말아야
귤화위지, 회남의 귤을 회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사물의 성질이 변했을 때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다. 농촌 현장에서 주민들의 삶의 지혜와 자발적 노력으로 일군 다양한 풀뿌리 모범사례들이 행정에서 차용하여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계획에서 농촌에 부족한 서비스를 공급·전달하는 분야별 “우수 사례를 발굴·모델화”하여 확산시킴으로써 사회서비스 사각지대 해소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농촌지역 생활SOC 시설에 사회적경제조직, 중간지원조직 등이 참여하여 행정과 함께 배후마을 곳곳으로 서비스를 전달하는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중점분야는 보육, 교육, 문화, 체육, 복지, 보건의료, 교통, 주택 등 7개 분야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의료분야 사례로 안성시 안성의료생협과 홍성군 홍동면의료생협, 문화분야 사례는 곡성군 죽곡도서관과 남양주시 별내작은말학교, 교통분야는 옥천군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 등을 참고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농촌 현장에서 주민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모범사례를 발굴, 전국에 전파하여 농촌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참고자료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의미 있다. 앞서 제시된 모범사례의 핵심은 바로 주민 참여와 자치역량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이나 용역사의 지원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당면과제를 주민 스스로 찾아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주민합의를 통해 실행 역시 주민주도의 사회적 경제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분야 사례로 소개된 홍동우리마을생협은 병·의원 하나 없는 면단위 농촌지역에서 2012년 주민 스스로 지역의원 설립을 목표로 의료생협을 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2013년 자발적으로 참여한 주민 25명으로 구성된 준비모임을 통해 홍동면과 인근 장곡면을 포함하여 지역주민들과 순회모임을 갖고, 의료생협 설립을 위해 필요한 절차와 내용 등을 학습하였다. 2015년 8월 주민들의 참여로 조합원 407명, 6천5백여만원의 출자금을 모아 우리동네의원을 개원하였다. 2018년 기준 주민 조합원 563명, 출자금 1억원을 훌쩍 넘겼다. 지역 주민들은 지역의원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근무하던 공중보건의사와 농촌의료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설득을 통해 의사를 지역의원의 첫 의사로 유치하게 된 것이다.
면단위 농촌교통의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는 어떠한가. 상수원 보호구역인 옥천군은 수자원공사로부터 매년 수변구역 주민지원금을 지원받아 9개 읍면에 지원하고 있다. 주민지원금을 받은 읍면 대부분은 관례적으로 마을별로 나눠 각자의 방식으로 지원금을 사용해 오고 있었다. 안남면 주민자치조직인 안남면지역발전위원회는 주민 공론화를 통해 주민지원금의 일부를 면지역 전체 주민을 위해 사용하는데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업으로 배바우마을버스를 구입하였고, 옥천군은 마을버스 운영에 필요한 기사 인건비와 운영비 일부 등 행·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현재 안남면 배바우마을버스가 있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책을 설계할 때, 다른 나라의 선진사례 또는 타 지자체의 정책과 모범사례 등을 참고하여 모방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곳에서는 훌륭한 성과를 낸 좋은 정책과 사업들이 막상 우리 농촌 현장에서 실효성을 잃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사람’, 즉, 주체의 문제를 간과하고 정책을 설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된 농촌 모범사례들은 지역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학습, 공론화, 그리고 직접 실행까지 주민들의 자치역량이 기초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사회적 경제방식에 기초한 농촌 서비스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동안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중심지 마을 소수의 리더들을 주체로 행정과 용역사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 방식으로는 정책 모델에 맞춰 시설과 프로그램을 흉내 낼 수는 있겠지만, 지원이 종료되는 순간 멈추고 행정과 주민, 용역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업을 반복하게 될 우려가 크다. 전국 농촌지역에 앞서 소개한 풀뿌리 모범사례가 확산되려면 지역과 주민의 관점에서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추진체계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 2020. 9. 15 오피니언 http://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9669
- 첨부파일1 서정민센터장.jpg (용량 : 52.2K / 다운로드수 :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