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새마을운동 농업회의소 활성화 하자 |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 작성일2020/03/06 09:36
- 조회 619
21세기 새마을운동 농업회의소 활성화 하자
|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추석 연휴에 박근혜 대통령은 UN에서 새마을을 이야기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새마을운동이 세계적으로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새마을운동의 공과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새마을운동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50년이 돼 가고, 1980년을 맞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도 35년이 흘렀다. 이제야 말로 우리 농업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새로운 지역발전을 위해 살려야 할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객관적으로 되짚어 볼 때가 됐다.
생활권 커진 농촌 발전에 맞춰야
성공요인부터 말해 보자. 당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인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마을길도 넓히고 진입로에 시멘트 다리도 만드는 마을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열심히만 하면 시멘트와 철근을 국가가 공급해 주어, 더 큰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마을의 지도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대통령의 표창을 받을 때면 ‘국가가 우리를 인정해 주는 구나’라며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약속해 주면, 사람들은 열심히 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은 국가가 성과를 보증하는 아래로부터의 농촌주민 참여 운동이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당시 도시새마을운동, 공장새마을운동도 벌어졌지만 큰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이 농촌의 새마을운동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약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마을운동이 1980년대에 들어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10여년의 운동 속에서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토목사업은 거의 마무리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새마을운동은 주민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결정하게 됐다. 새마을 완장을 찬 공무원이 통일벼를 심지 않았다고 일반벼를 심은 논에 들어가 모를 발로 밟아 버리자 농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국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시작한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바꾸는 정비 사업이 70년대 중반에 들어가면 의무적인 일로 변해 100% 전환을 강요했다.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고역이 됐다. 늦게 시작하거나 공유자원이 적은 마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부가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아래로부터 열기가 식기 시작했고, 여기에 국가가 손을 떼면서 새마을운동은 초기의 뜨거운 열기가 무색하게 급작스럽게 중단되고 말았다.
농민 참여하고 의견 낼 통로 필요
지금 다시 새마을운동이 대통령의 UN연설로 화두가 됐다. 하지만 당시의 새마을운동의 공과 과, 성공요인과 실패요인을 충분히 분석하고 21세기의 현 시대에 맞게 정책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한 편의 코미디로 끝나고 말 것이다.
몇 가지 사실을 짚어보자. 첫째, 지금은 마을 단위만 가지고 농업농촌문제가 해결될 때가 아니다. 다수의 농촌주민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권은 시군으로 넓어졌다. 마을이 아니라 시군, 최소한 읍면 단위를 중심으로 농업농촌의 유기적인 지역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마을에 하드웨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농촌주민들의 의견이 지역의 특징을 잘 반영하며 수렴될 수 있도록, 말과 참여의 통로 즉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을마다 이어져 내려온 전통문화를 허례허식이나 미신으로 몰아 초가지붕 없애듯이 쓸어버렸기 때문에 농촌마을의 특색과 매력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유럽이나 일본 농촌의 다양한 지역특색의 축제를 우리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농촌주민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경험을 지금부터라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국가가 뒤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
젊은 지역지도자 육성 방안 설계를
끝으로 당시의 열정적인 농촌의 젊은이들을 지금 농촌에서 찾기는 어려워졌다. 지역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고,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지역사회를 개발할 젊은 인재를 육성하여 전국으로 파견하고 있다. 전업농으로 혼자 돈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귀농귀촌을 결심하는 지도자를 육성하는 방안을 국가가 설계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활동을 이미 하고 있는 곳이 있다. 거창과 남해, 나주, 봉화 등의 농업회의소는 이미 이런 활동들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다만 농업회의소의 위상과 역할을 충분히 정부의 정책에서 반영되지 않아 몇몇 시군의 일인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어 활성화되고 확산되는 시간이 느리다.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려 한다면 가야 할 방향은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다. 농업회의소를 전국적으로 활성화시키고, 그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래야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답습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농어민신문 2015-09-30 게재 글입니다.
|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추석 연휴에 박근혜 대통령은 UN에서 새마을을 이야기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새마을운동이 세계적으로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새마을운동의 공과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새마을운동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50년이 돼 가고, 1980년을 맞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도 35년이 흘렀다. 이제야 말로 우리 농업 농촌에서 새마을운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새로운 지역발전을 위해 살려야 할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객관적으로 되짚어 볼 때가 됐다.
생활권 커진 농촌 발전에 맞춰야
성공요인부터 말해 보자. 당시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인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마을길도 넓히고 진입로에 시멘트 다리도 만드는 마을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들이 열심히만 하면 시멘트와 철근을 국가가 공급해 주어, 더 큰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마을의 지도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대통령의 표창을 받을 때면 ‘국가가 우리를 인정해 주는 구나’라며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는 만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약속해 주면, 사람들은 열심히 하게 된다. 새마을운동은 국가가 성과를 보증하는 아래로부터의 농촌주민 참여 운동이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당시 도시새마을운동, 공장새마을운동도 벌어졌지만 큰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이 농촌의 새마을운동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를 약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마을운동이 1980년대에 들어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10여년의 운동 속에서 마을주민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토목사업은 거의 마무리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새마을운동은 주민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결정하게 됐다. 새마을 완장을 찬 공무원이 통일벼를 심지 않았다고 일반벼를 심은 논에 들어가 모를 발로 밟아 버리자 농민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국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했다.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시작한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바꾸는 정비 사업이 70년대 중반에 들어가면 의무적인 일로 변해 100% 전환을 강요했다.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고역이 됐다. 늦게 시작하거나 공유자원이 적은 마을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부가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아래로부터 열기가 식기 시작했고, 여기에 국가가 손을 떼면서 새마을운동은 초기의 뜨거운 열기가 무색하게 급작스럽게 중단되고 말았다.
농민 참여하고 의견 낼 통로 필요
지금 다시 새마을운동이 대통령의 UN연설로 화두가 됐다. 하지만 당시의 새마을운동의 공과 과, 성공요인과 실패요인을 충분히 분석하고 21세기의 현 시대에 맞게 정책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한 편의 코미디로 끝나고 말 것이다.
몇 가지 사실을 짚어보자. 첫째, 지금은 마을 단위만 가지고 농업농촌문제가 해결될 때가 아니다. 다수의 농촌주민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권은 시군으로 넓어졌다. 마을이 아니라 시군, 최소한 읍면 단위를 중심으로 농업농촌의 유기적인 지역발전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마을에 하드웨어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농촌주민들의 의견이 지역의 특징을 잘 반영하며 수렴될 수 있도록, 말과 참여의 통로 즉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을마다 이어져 내려온 전통문화를 허례허식이나 미신으로 몰아 초가지붕 없애듯이 쓸어버렸기 때문에 농촌마을의 특색과 매력이 함께 사라져 버렸다. 유럽이나 일본 농촌의 다양한 지역특색의 축제를 우리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농촌주민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경험을 지금부터라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국가가 뒤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
젊은 지역지도자 육성 방안 설계를
끝으로 당시의 열정적인 농촌의 젊은이들을 지금 농촌에서 찾기는 어려워졌다. 지역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고,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지역사회를 개발할 젊은 인재를 육성하여 전국으로 파견하고 있다. 전업농으로 혼자 돈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귀농귀촌을 결심하는 지도자를 육성하는 방안을 국가가 설계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활동을 이미 하고 있는 곳이 있다. 거창과 남해, 나주, 봉화 등의 농업회의소는 이미 이런 활동들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다만 농업회의소의 위상과 역할을 충분히 정부의 정책에서 반영되지 않아 몇몇 시군의 일인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어 활성화되고 확산되는 시간이 느리다.
21세기형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려 한다면 가야 할 방향은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다. 농업회의소를 전국적으로 활성화시키고, 그 의견을 잘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래야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답습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농어민신문 2015-09-30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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