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는 ‘골프장 정권’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8:23
- 조회 475
막가는 ‘골프장 정권’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하자. 나는 지금까지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골프가 매우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안다. 친구들 모임에 골프 치는 사람 두 사람 이상만 있으면 화제는 온통 골프 얘기이고, 갖은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도 공직자들이 골프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골프장 지어 ‘외화유출’ 막겠다?
나도 최경주나 박세리가 국제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나는 골프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골프는 정부가 나서서 권장할 스포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이나 기후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산지가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면 대규모로 환경을 파괴해야 하고 막대한 건설 비용이 들어간다. 더욱이 겨울이 길기 때문에 연중 골프장 사용일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비가 연중 고르게 오지 않아 골프장 유지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엄청난 농약 사용으로 수질 및 토양오염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뜬금 없이 유휴농지에 ‘반값 골프장’을 건설하여 골프 대중화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농지전용부담금과 법인세, 지방세 등을 감면해주고, 심지어 골프장 진입로 공사비 50%를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도 쓸모 없이 노는 땅이 많고, 무역자유화 시대에 농업구조조정으로 버려진 땅이 늘어날 텐데, 그 땅에 대중 골프장을 지으면 해외 원정 골프도 줄일 수 있고, 농민들의 수익도 올릴 수 있으니 모두 다 좋은 ‘윈-윈 정책’이라는 게다.
참으로 정신 나간 어이없는 발상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외에서 사용한 골프비가 약 12억 달러(1조1000억원)에 달하는데 ‘반값 골프장’을 건설해서 외화 유출을 막겠다고 한다. 입만 열면 세계화 시대를 부르짖는 경제 관료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다. 해외골프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우리는 올 상반기에만 동남아 지역에서 12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농축산물 무역적자부터 줄여야
우리의 비교우위가 있는 공산품을 동남아에 팔고, 그 돈으로 동남아의 비교우위가 있는 골프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해외 골프’는 환경파괴·공해산업을 해외에 수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정부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일은 ‘국민의 해외 골프’가 아니고, 식량자급률의 한없는 추락으로 인해 위협받는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이다. 기상이변과 수요증가로 인한 곡물가격의 폭등과 식량위기 가능성 때문에 각국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태연하게 농지에 골프장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아무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농민들을 강제로 농업에서 밀어내고, 이제는 그 땅을 골프장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막가자는 것이다’.
참으로 외화유출이 아깝다면, 정부는 농민들이 한 평의 땅이라도 아껴 농사짓도록 지원하여, 연간 100억 달러를 넘어선 농축산물 무역적자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국내 골프장을 늘리면 해외 골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해외 골프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골프를 할 수 없는 겨울철에 이루어지는데, 만약 ‘반값 골프장’으로 국내 골프인구가 늘어나면 자연히 겨울철 해외 골프인구도 늘어날 것이다.
‘반값 골프장’은 현실성도 없다. 이 정부 초기 130개였던 골프장이 현재 270개로 늘어났고, 지금 100여 개 골프장이 건설 중이고, 계획 중인 골프장도 수백 개에 이른다. 이미 골프장이 전국에 넘쳐나고, 지방 대부분의 골프장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값 골프장’을 수도권에 공급해야 하는데, 18홀 골프장 조성에 990만㎡(30만평) 이상의 부지가 필요하니 9홀 골프장이라 해도 최소 500만㎡(15만평)가 필요한데, 이만한 크기의 집단화된 유휴농지가 수도권에 얼마나 있나. 결국 멀쩡한 우량 농지까지 쓸모 없는 농지로 둔갑되는 난개발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의 농지는 대부분 외지인이 갖고 있기 때문에 농민의 소득증대 운운하는 것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농림부, ‘농지보호’ 적극 나서길
재경부의 ‘반값 골프장’ 정책이 농림부와 사전 조율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농림부는 한미 FTA협상 때처럼 변변한 반대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앞장서서 지지해준 잘못을 ‘반값 골프장’에서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지를 지키고 유휴농지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여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도시 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농림부가 할 일이다. ‘반값 골프장’에 대한 농림부의 대응을 주목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8월 0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개인적인 얘기로 시작하자. 나는 지금까지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골프가 매우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안다. 친구들 모임에 골프 치는 사람 두 사람 이상만 있으면 화제는 온통 골프 얘기이고, 갖은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도 공직자들이 골프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골프장 지어 ‘외화유출’ 막겠다?
나도 최경주나 박세리가 국제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 나는 골프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골프는 정부가 나서서 권장할 스포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자연조건이나 기후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산지가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면 대규모로 환경을 파괴해야 하고 막대한 건설 비용이 들어간다. 더욱이 겨울이 길기 때문에 연중 골프장 사용일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고, 비가 연중 고르게 오지 않아 골프장 유지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엄청난 농약 사용으로 수질 및 토양오염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그런데 정부가 최근 뜬금 없이 유휴농지에 ‘반값 골프장’을 건설하여 골프 대중화에 앞장서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위해 농지전용부담금과 법인세, 지방세 등을 감면해주고, 심지어 골프장 진입로 공사비 50%를 국고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지금도 쓸모 없이 노는 땅이 많고, 무역자유화 시대에 농업구조조정으로 버려진 땅이 늘어날 텐데, 그 땅에 대중 골프장을 지으면 해외 원정 골프도 줄일 수 있고, 농민들의 수익도 올릴 수 있으니 모두 다 좋은 ‘윈-윈 정책’이라는 게다.
참으로 정신 나간 어이없는 발상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외에서 사용한 골프비가 약 12억 달러(1조1000억원)에 달하는데 ‘반값 골프장’을 건설해서 외화 유출을 막겠다고 한다. 입만 열면 세계화 시대를 부르짖는 경제 관료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다. 해외골프는 주로 동남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우리는 올 상반기에만 동남아 지역에서 12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농축산물 무역적자부터 줄여야
우리의 비교우위가 있는 공산품을 동남아에 팔고, 그 돈으로 동남아의 비교우위가 있는 골프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해외 골프’는 환경파괴·공해산업을 해외에 수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정부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일은 ‘국민의 해외 골프’가 아니고, 식량자급률의 한없는 추락으로 인해 위협받는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이다. 기상이변과 수요증가로 인한 곡물가격의 폭등과 식량위기 가능성 때문에 각국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태연하게 농지에 골프장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아무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농민들을 강제로 농업에서 밀어내고, 이제는 그 땅을 골프장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막가자는 것이다’.
참으로 외화유출이 아깝다면, 정부는 농민들이 한 평의 땅이라도 아껴 농사짓도록 지원하여, 연간 100억 달러를 넘어선 농축산물 무역적자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국내 골프장을 늘리면 해외 골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해외 골프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골프를 할 수 없는 겨울철에 이루어지는데, 만약 ‘반값 골프장’으로 국내 골프인구가 늘어나면 자연히 겨울철 해외 골프인구도 늘어날 것이다.
‘반값 골프장’은 현실성도 없다. 이 정부 초기 130개였던 골프장이 현재 270개로 늘어났고, 지금 100여 개 골프장이 건설 중이고, 계획 중인 골프장도 수백 개에 이른다. 이미 골프장이 전국에 넘쳐나고, 지방 대부분의 골프장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값 골프장’을 수도권에 공급해야 하는데, 18홀 골프장 조성에 990만㎡(30만평) 이상의 부지가 필요하니 9홀 골프장이라 해도 최소 500만㎡(15만평)가 필요한데, 이만한 크기의 집단화된 유휴농지가 수도권에 얼마나 있나. 결국 멀쩡한 우량 농지까지 쓸모 없는 농지로 둔갑되는 난개발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의 농지는 대부분 외지인이 갖고 있기 때문에 농민의 소득증대 운운하는 것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농림부, ‘농지보호’ 적극 나서길
재경부의 ‘반값 골프장’ 정책이 농림부와 사전 조율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농림부는 한미 FTA협상 때처럼 변변한 반대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앞장서서 지지해준 잘못을 ‘반값 골프장’에서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지를 지키고 유휴농지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여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도시 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농림부가 할 일이다. ‘반값 골프장’에 대한 농림부의 대응을 주목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8월 0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