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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安南에서 ‘자치와 협동, 순환과 공생’을 배우다 |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 작성일2020/03/06 09:28
    • 조회 650
    安南에서 ‘자치와 협동, 순환과 공생’을 배우다
    |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2006년 말 출범한 충북 옥천군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면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집행하는 일종의 면단위 ‘주민평의회’다. 모두 36명의 주민대표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면의 주요 일을 논의하고 예산을 집행한다. 12개리 12명의 이장들, 12개리 주민들이 각 리에서 추천한 12명의 마을위원들, 그리고 이들 지역대표 24명이 뽑은 일종의 비례대표 12명(농민단체, 직능단체, 지역조직) 등 36명이 안남면의 주민평의회를 구성한다.

    안남은 대청호 상류지역이라 상수원보호규제가 심하다. 그래서 하류지역 주민의 물이용부담금 중 일부를 주민지원사업비로 받는 안남은 위원회 출범 전만 해도 지원비를 각 마을별로 나누어 허투루 써버리기 십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활동가들과 뜻 있는 분들이 주민 전체의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내어 위원회를 조직했고, 해서 위원회가 지금껏 매년 약 5억의 지원사업비 중 1억여 원을 면 전체 공동사업비로 기획하고 집행하는 일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출범 즉시 ‘지역농업네트워크’와 ‘이장‘의 도움을 얻어 안남면 중장기종합발전계획을 주민 워크숍과 연수를 통해 설계했다. 현재까지 면 발전의 큰 그림은 당시 그려진 디자인 위에 있다. 주민들은 ’배바우‘라는 면단위 농산물 브랜드를 만들고 ’살맛나는 지역공동체 안남‘이란 지역 브랜드도 만들어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위원회에서 주민들의 고충과 욕구를 전수 조사한 결과 0순위였던 마을순환버스(운수여객법상 문제로 작은도서관 셔틀버스로 운행 중)를 운영하고 있다. 자연마을의 정류장을 일요일 하루만 쉬고 매일 돌고 있는 마을순환버스는 면민들의 생활과 마음을 순환시키는, 이른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기름 구실을 한다. ‘13년 9월28일에는 이동필 농식품부장관이 8km 남짓 마을순환버스에 탑승해 보고, 일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농촌마을을 위한 커뮤니티 교통체계의 필요성과 공동체 주도형 사회서비스 활동에 대해 한 수 배워가기도 했다.

    그 덕에 전부터 주민 스스로 운영해오던 어머니학교(어르신들의 한글교육, 취미•문화생활 모임 등)가 할머니들의 등하교 보장으로 활성화되었다. 안남 어머니학교는 단순히 글을 깨친다는 데서 나아가 어르신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고 그로써 위원회나 여타 활동들 그리고 지역활동가들에 대한 신뢰와 자긍심을 주민들이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옆 면 안내면에서도 ‘행복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지역활동가들은 그동안 사용해온 정보화마을 센터건물이 농촌권역종합개발사업으로 지은 배바우도농교류센터 덕에 유휴공간이 됨에 따라 공동체형 복지 용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앞으로 지역 어르신들이 어머니학교만이 아니라 도시의 주간보호센터와 같이 매일 함께 활용하는 공동생활 홈, 공동급식시설, 작은 목욕탕을 운영할 꿈을 갖고 있다.

    2007년 7월 20일에는 누구도 쉬 엄두를 못 낼 도서관을 주민 손으로 건립한다. 도서관 입구 벽면에 신영복 선생의 ‘연대체’로 쓰인 ‘안남 배바우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의 열정으로 건립되었다. 이 도서관은 도서실, 동아리방, 다목적실, 사랑방, 주방, 다락방 등이 갖춰져 아이들의 방과후 공부방이자 놀이터로 그리고 텃밭체험장으로 애용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안남은 일찍부터 상수원보호규제로 인해 농민들 다수가 친환경농업에 집중했다. 한살림생산공동체, 아이쿱생산작목반 등 착실한 산지조직들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은 여기서 나아가기 위해, 오랜 검토와 준비 끝에 위원회라는 주민의회 아래 주민자치위원회-학교-작은도서관-정보화마을-어머니학교와 함께 <지속가능한 경제공동체의 튼튼한 물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래서 산수화권역이란 이름으로 2011년부터 5년간 농촌종합개발사업을 추진, 올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사업 대상권역은 5개리이나 사실상 전체 마을과 연관시키는 지역활성화사업으로, <지속가능한 경제공동체 형성>이 목표다.

    안남의 경제공동체 형성에서 그 핵심 비전은 <친환경 학교급식단지 조성과 도농교류 활성화를 통한 로컬푸드 네트워크 거점 조성>에 있다. 올해는 학교급식에 공급할 콩나물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특히 <배바우밥상> 꾸러미 사업도 벌이고 있고, 현재 옥천군 전체 학교급식사업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곧 복지급식 등 공공급식도 위탁 운영할 계획) <옥천살림협동조합>에 안내면, 청성면 생산자조직들과 같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그 중심 역할은, 옥천군농민회 안남면지회, 안내면지회 그리고 지난해 창립한 청성면지회와 이들이 결성한 사업조직으로서 안남 배바우공동체영농조합 등이 한다.) 앞으로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은 물론 옥천과 인근 대전권 등 대청호 하류지역과의 도농직거래를 맡을 지역먹거리 생산•공급 거점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안남 사람들이 요즘 신나해 하는 일 중 하나는 마을신문 복원(‘배바우마을신문’)과 30여 년 전 사라진 배바우장터 복원이다. 주민기자들이 직접 찍고 쓴 사진과 글들로 꾸며지는 마을신문은 면민들의 ‘말’과 생각들이 순환되는 공간이고, 묵사발에 막걸리에 부침개에 어르신들의 푸성귀며 산야초며 토종 잡곡들이 교환되는 장터는 면민들의 삶과 마음이 순환되는 공간이다.(요즘은 매월 4째주 토요일 직거래하는 장터로서 도시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한반도 모양 물돌이를 품은 둔주봉 산꾼들, 사진동호회원들, 지용 시인의 향수백리 자전거동호회원들, 트래킹 매니아들도 단골 고객이다.)

    안남의 지역발전위원회, 어머니학교, 주민자치위원회, 배바우작은도서관, 정보화마을, 배바우도농교류센터, 배바우마을신문, 배바우공동체영농조합, 배바우장터, 배바우꾸러미, 마을순환버스, 한살림잡곡공동체, 아이쿱작목반, 옥천살림협동조합, 옥천군 농업발전위원회, 옥천푸드 지역순환경제 만들기...... 안남과 옥천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이 중에서 안남의 지역발전위원회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드문 면단위 주민자치조직으로서 면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예산 집행을 하는 주민평의회다. 이를 골간으로 주민자치위원회 등 행정 조직과 배바우공동체영농조합(친환경 작목반과 가공 거점 포함) 등 경제공동체, 어머니학교와 작은도서관 등 문화복지 생활공동체 등이 어우러져가고 있는 것이다. 지역활동가들이 오랫동안 지향하고 실천해온 <자치와 협동,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 만들기>를 자기들 고장의 처지와 특성을 살려 실천하고 있다.

    지난 5월22일, 글쓴이는 몇 년 만에 안남면 배바우마을에 다녀왔다. 지역재단이 1박 작정으로 마련한 제34차 지역리더포럼(「분권과 자치의 시대, 지역농정 거버넌스 구축방안 : 옥천군 경험을 중심으로」)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지역활동조직과 공동주관하는 방식의 포럼인지라 특히 뜻 깊었다. 조례에 근거한 민관협치농정기구로 역할하며 사실상 지역농정과제를 합의 운영하고 있는 옥천군 농업발전위원회, 면단위 ‘주민평의회’로서 손색이 없는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의 사례는 참여 활동가들에게 많은 공감과 상상력, 활동의지를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나주, 거창, 음성, 남해, 봉화, 진안, 여주 등지의 지역활동가들이, 옥천과 안남의 사례 공유와 함께, 자기 지역에서의 거버넌스 사례와 과제 등을 공유하고 향후 방향을 모색한 것도, 참여 활동가 모두에게는 값진 상호학습의 장이 되었다.

    <사람이 살맛나는 안남> <생활공동체-경제공동체-정치공동체가 통합되는 안남> <학교급식과 로컬푸드의 거점으로서 지속가능한 경제공동체 안남> <자치와 협동으로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 안남>... 이런 화두와 비전은 글쓴이가 4,5년 전 안남을 출입하던 당시, 25년 여 주민 속에서 주민과 함께 지역활동을 해온 주교종 옥천살림협동조합 상임이사(옥천군 농업발전위원회 운영위원, 전 안남면 지역발전위원장)와 송윤섭 안남면 지역발전위원(어머니학교 교장, 배바우공동체영농조합 대표)에게서 실천적으로 배운 화두들이다. 이는 그분들이 농민운동, 지역운동을 해오면서 소중히 품고 일구어온 평생 미션이다.

    두 분은 물론, 안남 주민들의 삶과 꿈은 그때나 지금이나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주민의 눈높이에서 주민과 함께 공감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분투하고 있다. 그래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늘 진정을 다하고 헌신하는 모습들이 좋다. 그 어디서 그 누구나 바로 이식해도 좋은 농민운동•지역운동의 전범(典範)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고장의 처지와 특성을 살려 대중노선에 철저하려고 고민하고, 대중의 생산과 생활의 곤고함과 희망을 놓치지 않고 조직화•협동화•사업화하는 그 의지와 자세, 기획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분들의 그 진정과 헌신이야말로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글쓴이는 지금도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래서 만나는 게 늘 즐겁다.

    국민농업포럼의 귀한 지면에서 그분들의 진정과 헌신의 삶과 꿈, 고충과 보람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지면으로 어찌 다 나눌 것인가. 언제든 옥천 주변을 지나가실 때 바쁜 걸음 멈추고 잠시 안남을 들러 보시라. 면소재지 한복판 도로변 주막에서 옥천이 낳은 지용의 ‘향수’나 해월 최시형의 외손 정순철 작곡가의 ‘짝자꿍’을 안줏거리 삼아 주 상임이사와 송 대표에게 막걸리를 청해보시라. 특히나 요즘 같이 수상한 시절에는 안남 배바우장터에서 묵무침에 막걸리를 나눌 만하다. ‘옥천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작은 안남을 보신 적이 있나요’

    2015. 06. 08. 국민농업포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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