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연구기관, 대전환이 필요하다 | 전희식 (농민. ‘땅살림 시골살이’저자)
- 작성일2020/03/06 09:21
- 조회 613
농업연구기관, 대전환이 필요하다
| 전희식 (농민. ‘땅살림 시골살이’저자)
올 초에 아는 사람 한 분이 파산했는데 올 가을에는 또 한 이웃이 급히 농장을 팔아야겠으니 도와 달라고 찾아왔다. 그 분 농장을 사서 농사짓고 살 사람을 알선해 달라는 것인데 사연을 듣자니 안타까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둘 다 토박이 40대 중·후반이니 시골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농부들이고 규모 있게 농사를 짓던 분들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한 사람들이다. 농협에서 권장하는 작물을 심었고 지원과 보조가 되는 권장 시설을 갖추고 권하는 시스템으로 난방을 했다.
과제선정 등에 정치적 영향 많아
농업정책, 특히 농민 지원책은 그것이 중앙정부 차원이건 시·군 단위 지자체나 농협차원이건 그냥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그 전에 거의 다 농업관련 연구기관에서 검토되고 분석된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틈 날 때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물론이고 농촌진흥청이나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실에서 정기간행물과 함께 연구자료를 열람하는데, 연구원들이 연구 과제를 정하고 현장 답사를 통해 실증자료를 확보하는 동안 간단치 않은 수고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크게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연구기관의 완전한 독립이다.
과제선정이나 연구시점이 너무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용어는 물론이고 연구의 목표 자체가 바뀌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번에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자마자 나온 연구보고서와 각종 포럼 주제는 마치 협정이 정식 체결이라도 된 것처럼 전제하더라는 것이다.
여전히 쟁점이 남아있고 국회비준과 농업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이견이 팽팽한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연구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해법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연구했으면 한다. 소득이건, 건강이건, 노동이건, 복지건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한 것이다. 수단과 목표는 엄밀히 구분된다. 고소득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고 ‘삶의 질’이라는 미명하에 계량화 된 수치놀음에 매인다. 행복은 참으로 소박한 삶에서 나온다는 그 본질을 망각하는 연구들이 너무도 많다. 연구보고서들을 보다보면 수단과 목표가 뒤집혀 있는 경우들을 본다.
이견 팽팽한 현안 해법도달 미흡
농민 파산이란 개인의 부주의와 부실운영도 있다. 그러나 파산하지 않고 외형적 성장을 뜻대로 이룬 농민들이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시설, 생산, 돈, 농협, 판매의 노예가 된 성공농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점이 연구의 새로운 과제가 됐으면 한다.
완전한 자율연구원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했으면 한다. 연구 성과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연구를 보장하는 그런 연구원을 두라는 것이다. 정부의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 목매지 않는 연구원이 있다면 그 연구원은 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정부의 농업정책과 무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농민행복을 위한 연구 말이다.
연구보고서나 연구 자료들을 죽 읽다보면 외람된 얘기지만, 저런 연구를 연구랍시고 하는 연구원들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나 신명나게 연구를 했을까. 밥벌이라서 그냥 논문생산 기계처럼 오로지 막노동 하는 심정으로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자율 연구원은 성과와 효율, 업적과 승진에서 자유롭다. 이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생태환경, 생명, 평화, 모심과 살림, 공생, 상생과 헌신이라는 삶의 철학이 자신의 생활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가치가 농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연구과제와 연구과정이 연구자의 삶과 동떨어지면 그 연구원은 지식장사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 독립·자율 연구원제 운영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농부와 연구원을 교환근무 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마오쩌뚱의 중국혁명 시절에 하방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식인이나 군 간부들이 농민대중의 삶의 현장에 내려가서 일정기간 농부로 살다가 다시 원직으로 돌아오는 제도다. 물론 장치의 측면도 있었지만 본 취지는 그랬다.
우리 연구원들을 해외 교환연구원으로 보내는 것과 같이 2~3년 완전한 농부로 살게 해 보는 것이다. 농부랑 짝을 지어 교환근무를 하는 것이다. 평생 농사를 짓던 농부가 전적으로 1~2년 연구만 할 수 있다면 현장 경험을 토대로 엄청난 연구 과제를 뽑아내리라 본다.
*한국농어민신문 2014-12-12 게재 글입니다.
| 전희식 (농민. ‘땅살림 시골살이’저자)
올 초에 아는 사람 한 분이 파산했는데 올 가을에는 또 한 이웃이 급히 농장을 팔아야겠으니 도와 달라고 찾아왔다. 그 분 농장을 사서 농사짓고 살 사람을 알선해 달라는 것인데 사연을 듣자니 안타까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둘 다 토박이 40대 중·후반이니 시골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농부들이고 규모 있게 농사를 짓던 분들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한 사람들이다. 농협에서 권장하는 작물을 심었고 지원과 보조가 되는 권장 시설을 갖추고 권하는 시스템으로 난방을 했다.
과제선정 등에 정치적 영향 많아
농업정책, 특히 농민 지원책은 그것이 중앙정부 차원이건 시·군 단위 지자체나 농협차원이건 그냥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그 전에 거의 다 농업관련 연구기관에서 검토되고 분석된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틈 날 때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물론이고 농촌진흥청이나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실에서 정기간행물과 함께 연구자료를 열람하는데, 연구원들이 연구 과제를 정하고 현장 답사를 통해 실증자료를 확보하는 동안 간단치 않은 수고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크게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연구기관의 완전한 독립이다.
과제선정이나 연구시점이 너무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용어는 물론이고 연구의 목표 자체가 바뀌지 않나 싶을 정도다. 이번에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자마자 나온 연구보고서와 각종 포럼 주제는 마치 협정이 정식 체결이라도 된 것처럼 전제하더라는 것이다.
여전히 쟁점이 남아있고 국회비준과 농업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이견이 팽팽한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연구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해법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연구했으면 한다. 소득이건, 건강이건, 노동이건, 복지건 모든 것이 행복을 위한 것이다. 수단과 목표는 엄밀히 구분된다. 고소득이 최고의 가치로 등장하고 ‘삶의 질’이라는 미명하에 계량화 된 수치놀음에 매인다. 행복은 참으로 소박한 삶에서 나온다는 그 본질을 망각하는 연구들이 너무도 많다. 연구보고서들을 보다보면 수단과 목표가 뒤집혀 있는 경우들을 본다.
이견 팽팽한 현안 해법도달 미흡
농민 파산이란 개인의 부주의와 부실운영도 있다. 그러나 파산하지 않고 외형적 성장을 뜻대로 이룬 농민들이 행복하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시설, 생산, 돈, 농협, 판매의 노예가 된 성공농민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점이 연구의 새로운 과제가 됐으면 한다.
완전한 자율연구원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했으면 한다. 연구 성과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연구를 보장하는 그런 연구원을 두라는 것이다. 정부의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 목매지 않는 연구원이 있다면 그 연구원은 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정부의 농업정책과 무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농민행복을 위한 연구 말이다.
연구보고서나 연구 자료들을 죽 읽다보면 외람된 얘기지만, 저런 연구를 연구랍시고 하는 연구원들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나 신명나게 연구를 했을까. 밥벌이라서 그냥 논문생산 기계처럼 오로지 막노동 하는 심정으로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자율 연구원은 성과와 효율, 업적과 승진에서 자유롭다. 이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생태환경, 생명, 평화, 모심과 살림, 공생, 상생과 헌신이라는 삶의 철학이 자신의 생활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가치가 농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연구과제와 연구과정이 연구자의 삶과 동떨어지면 그 연구원은 지식장사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 독립·자율 연구원제 운영을
마지막으로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농부와 연구원을 교환근무 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마오쩌뚱의 중국혁명 시절에 하방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식인이나 군 간부들이 농민대중의 삶의 현장에 내려가서 일정기간 농부로 살다가 다시 원직으로 돌아오는 제도다. 물론 장치의 측면도 있었지만 본 취지는 그랬다.
우리 연구원들을 해외 교환연구원으로 보내는 것과 같이 2~3년 완전한 농부로 살게 해 보는 것이다. 농부랑 짝을 지어 교환근무를 하는 것이다. 평생 농사를 짓던 농부가 전적으로 1~2년 연구만 할 수 있다면 현장 경험을 토대로 엄청난 연구 과제를 뽑아내리라 본다.
*한국농어민신문 2014-12-12 게재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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