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 열풍과 농민 | 허남혁 (재)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
- 작성일2020/03/05 17:01
- 조회 595
치맥 열풍과 농민
| 허남혁 (재)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
한국 사회에 치맥, 즉 치킨에 맥주를 먹는 일이 열풍처럼 소개되고 있다. 한류의 중요한 아이템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 치맥이 소개되고, 언론에서도 다양한 치킨 프랜차이즈와 치킨 맛집들을 소개하기 바쁘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대한민국 치킨전」이 출간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치킨의 희비극에 초점을 맞춘 기사나 다큐가 줄을 잇고 있다. 해마다 8억마리의 닭을 먹는 한국에서 먹고 사는 일은 닭을 키우거나, 아니면 닭을 튀기는 일 밖에 없다는 자조가 터져나온다. 치킨 프랜차이즈에도 계급이 있고 그 속에서 전국의 치킨집 사장님들은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농촌에서 농민들에게도 치킨은 이제 그리 낯선 음식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치킨과 치맥열풍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들에서도 정작 치킨의 원료가 되는 닭을 생산하는 양계 농민에 관한 내용은 극히 보기가 어렵다. 과연 양계 농민들의 삶은 치맥 열풍만큼이나 활짝 펴고 있는 것일까? 평균 잡아 만 오천원 쯤 하는 치킨 한 마리 값 속에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닭 한 마리당 순수익은 400원이 채 안되니, 어림잡아도 3%도 안되는 수치다.
‘치킨화’ 현상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양계산업이 수직계열화, 즉 양계농민이 ‘타이슨’으로 대표되는 거대 닭 가공유통기업과 계약관계 하에서 닭을 키우는 방식이 발달한 미국에서 나온 말이다. 수직계열화가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이는 닭 산업이 다른 농업이나 산업 분야로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단어다. 즉, 닭 산업에서 보이는 농민의 기업 종속과 열악하고 환경파괴적인 사육 및 가공환경 등의 문제가 닭 외의 다른 분야에도 선진사례라고 도입,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거대 닭 가공유통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양계의 수직계열화 방식이 정부에 의해 선진화 모델로 장려되면서 점차 양돈이나 한우 분야에서도 확대일로에 있다. 참치로 돈을 번 사조나 동원 같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육가공부터 시작하더니 지금은 사료를 직접 만들어 계약농가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농가들을 유리한 계약조건과 일괄 수매방식으로 끌어들이지만, 점차 기업의 독점력이 커지고 설비규모가 커지게 되면 농가들은 빠져나오고 싶어도 기업의 늪 속으로 계속 끌려들어가게 된다. 하림의 농가 상대평가방식은 양계농가가 이웃 농가를 서로 적으로 돌려야 하는 무한경쟁의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양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럼 양계농가의 수는 줄고 규모는 계속 커진다. 지금은 10만수 정도는 키워야 기업형 양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실 그 정점에는 브라질이나 태국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닭을 키우고 가공하는 거대 글로벌기업들이 있다. 브라질에서는 닭다리가, 태국에서는 닭날개가 우리나라로 점점 더 많이 수입되어 순살치킨으로 판매된다. 가격 면에서, 그리고 소비자의 기호 면에서 앞으로 국내산 뼈있는 치킨보다 수입산 순살치킨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것이고, 국내 양계농가들의 수익하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글로벌한 치킨지옥도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식품가공유통 및 치킨프랜차이즈 대기업이 주도하는 공급사슬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속에 빠져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힌트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시장통닭의 인기요인이 신선한 생닭을 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닭가공-치킨 프랜차이즈의 긴 공급사슬을 거친 닭이 상대적으로 신선도와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또다른 힌트는 어렵더라도 농민이 주도가 되는 공급사슬을 만들지 못하면 농민이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 번째 힌트는 산란계 농가들이 최근 자연양계-국내산사료로 생산하는 계란이 유통자본이 지배하는 거대시장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힌트는 최근 치킨집 사장님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구매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지만 의미있는 틈새시장이 양계농가 협동조합과 치킨집 협동조합 간의 협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길 희망해본다.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 몰라도, 치킨지옥도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이기에.
2014. 9. 26 한국농정에 실린 허남혁 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의 글입니다.
| 허남혁 (재)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
한국 사회에 치맥, 즉 치킨에 맥주를 먹는 일이 열풍처럼 소개되고 있다. 한류의 중요한 아이템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에 치맥이 소개되고, 언론에서도 다양한 치킨 프랜차이즈와 치킨 맛집들을 소개하기 바쁘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대한민국 치킨전」이 출간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치킨의 희비극에 초점을 맞춘 기사나 다큐가 줄을 잇고 있다. 해마다 8억마리의 닭을 먹는 한국에서 먹고 사는 일은 닭을 키우거나, 아니면 닭을 튀기는 일 밖에 없다는 자조가 터져나온다. 치킨 프랜차이즈에도 계급이 있고 그 속에서 전국의 치킨집 사장님들은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농촌에서 농민들에게도 치킨은 이제 그리 낯선 음식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치킨과 치맥열풍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들에서도 정작 치킨의 원료가 되는 닭을 생산하는 양계 농민에 관한 내용은 극히 보기가 어렵다. 과연 양계 농민들의 삶은 치맥 열풍만큼이나 활짝 펴고 있는 것일까? 평균 잡아 만 오천원 쯤 하는 치킨 한 마리 값 속에서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닭 한 마리당 순수익은 400원이 채 안되니, 어림잡아도 3%도 안되는 수치다.
‘치킨화’ 현상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보다 먼저 양계산업이 수직계열화, 즉 양계농민이 ‘타이슨’으로 대표되는 거대 닭 가공유통기업과 계약관계 하에서 닭을 키우는 방식이 발달한 미국에서 나온 말이다. 수직계열화가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이는 닭 산업이 다른 농업이나 산업 분야로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의 단어다. 즉, 닭 산업에서 보이는 농민의 기업 종속과 열악하고 환경파괴적인 사육 및 가공환경 등의 문제가 닭 외의 다른 분야에도 선진사례라고 도입,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거대 닭 가공유통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양계의 수직계열화 방식이 정부에 의해 선진화 모델로 장려되면서 점차 양돈이나 한우 분야에서도 확대일로에 있다. 참치로 돈을 번 사조나 동원 같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육가공부터 시작하더니 지금은 사료를 직접 만들어 계약농가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농가들을 유리한 계약조건과 일괄 수매방식으로 끌어들이지만, 점차 기업의 독점력이 커지고 설비규모가 커지게 되면 농가들은 빠져나오고 싶어도 기업의 늪 속으로 계속 끌려들어가게 된다. 하림의 농가 상대평가방식은 양계농가가 이웃 농가를 서로 적으로 돌려야 하는 무한경쟁의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양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럼 양계농가의 수는 줄고 규모는 계속 커진다. 지금은 10만수 정도는 키워야 기업형 양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사실 그 정점에는 브라질이나 태국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닭을 키우고 가공하는 거대 글로벌기업들이 있다. 브라질에서는 닭다리가, 태국에서는 닭날개가 우리나라로 점점 더 많이 수입되어 순살치킨으로 판매된다. 가격 면에서, 그리고 소비자의 기호 면에서 앞으로 국내산 뼈있는 치킨보다 수입산 순살치킨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것이고, 국내 양계농가들의 수익하락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글로벌한 치킨지옥도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식품가공유통 및 치킨프랜차이즈 대기업이 주도하는 공급사슬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속에 빠져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여기서 한가지 힌트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시장통닭의 인기요인이 신선한 생닭을 쓴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닭가공-치킨 프랜차이즈의 긴 공급사슬을 거친 닭이 상대적으로 신선도와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또다른 힌트는 어렵더라도 농민이 주도가 되는 공급사슬을 만들지 못하면 농민이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세 번째 힌트는 산란계 농가들이 최근 자연양계-국내산사료로 생산하는 계란이 유통자본이 지배하는 거대시장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힌트는 최근 치킨집 사장님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구매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지만 의미있는 틈새시장이 양계농가 협동조합과 치킨집 협동조합 간의 협력관계를 통해 만들어지길 희망해본다. 비록 시작은 미약할지 몰라도, 치킨지옥도에서 벗어날 유일한 희망이기에.
2014. 9. 26 한국농정에 실린 허남혁 지역재단 정책기획위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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