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경제·농업‘으로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 작성일2020/03/05 16:58
- 조회 634
‘살아가는 경제·농업‘으로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은 2013년 기준으로 약 46조원에 달한다. 이는 농업취업자 약 148만명이 일년 내내 달라붙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국내 대표 기업의 하나인 삼성전자의 2013년 연간 매출액은 약 229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종업원 9만5000명으로 벌어들인 성과물이다. 단순 계산하면 국내 농업의 생산효율은 삼성전자의 약 77분의 1에 불과하다.
생산효율, 관점따라 의미달라
경쟁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업은 삼성전자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중요성이 떨어진다. 이런 관점에서는 삼성전자가 농업보다 77배나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을까? 농업의 경우 삼성전자보다 16배나 더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생과 공익을 우선 가치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농업이 삼성전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생산효율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공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것을 말하지만, 농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물론 공업화된 농업(관행화학 농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요소가 많다.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 즉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농업은 자연순환 속에서 자연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공업이나 공업화된 농업에서는 자연의 소비에 따른 폐기물이 발생하며, 환경에 부하를 주고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산’이라는 같은 용어가 제각기 사용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농업과 공업 간의,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과 공업화된 농업 간의 생산효율 차이는 ‘생산성’에 대한 본원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만약 공업이나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에서 배출되는 폐기물과 그 환경 부하량까지 포함한 ‘생산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업과 삼성전자 중에서 어느 쪽이 생산효율이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생산액과 매출액만으로 생산효율을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이처럼 생산효율이란 개념에는 큰 함정이 있다.
많은 이들 일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돈으로만 따지는 생산효율을 높여 일자리와 일하는 사람을 줄이는 것보다는 좀 떨어지더라도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터전을 확보하는 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산효율 일변도의 ‘돈 버는 경제·농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경제·농업’이 훨씬 중요하다. 이것은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의 의미와 가치는 돈을 버는데 있을까 아니면 살아가는데 있을까? 현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창조농업은 ‘돈 버는 경제·농업’이 아닌 ‘살아가는 경제·농업’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요즘 억대 농부 성공 스토리, 억대 부농 프로젝트 등으로 표현되는 ‘돈 버는 농업’이 사회이슈로 회자되고 있다. 억대 농부가 되려면 상대적으로 생산효율이 담보되지 않는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마 그 대부분이 생산효율을 제일 가치로 삼는 공업화된 대규모 농업, 즉 ‘돈 버는 농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농업은 장기적으로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돈 버는 농업’에 매달리는 농정 기조로는 소수의 정예 대농을 육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많은 가족소농들이 계속 남아 일하면서 ‘살아가는 농업’을 전망하기는 어렵다. ‘돈 버는 농업’은 오늘날과 같은 경제의 불확실성 점증, 개방경제의 지속적 확대,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의 불안정성 증대 시대에 지속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현 정부가 말하는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은 점점 더 멀어져갈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생산효율을 제일 가치로 삼는 공업화된 대규모 농업, 즉 ‘돈 버는 농업’에 올인하는 정책 기조를 서둘러 바꿔야 한다.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남아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공업화되지 않은 소규모 가족농업, 즉 ‘살아가는 농업’으로 과감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럴 때 국내 농업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일’의 의미와 가치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돈 버는 농업 올인 정책 바꿔야
아마 모두들 “요즘 같은 불황기에 그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모시고 살리면서,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농업’으로 서둘러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정부가 내건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도 한낱 구호에 머무를 것이다.
앞서 말한 ‘살아가는 농업’은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 생산만으로 농가경제생활이 성립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농업소득은 가구당 평균 1000만원으로 농가소득의 30%에도 못 미친다. 농업소득이 현 농가소득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돈 버는 농업’에서 ‘살아가는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농업이 생산효율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력을 찾고 미래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2014년 9월 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은 2013년 기준으로 약 46조원에 달한다. 이는 농업취업자 약 148만명이 일년 내내 달라붙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국내 대표 기업의 하나인 삼성전자의 2013년 연간 매출액은 약 229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종업원 9만5000명으로 벌어들인 성과물이다. 단순 계산하면 국내 농업의 생산효율은 삼성전자의 약 77분의 1에 불과하다.
생산효율, 관점따라 의미달라
경쟁과 효율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업은 삼성전자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중요성이 떨어진다. 이런 관점에서는 삼성전자가 농업보다 77배나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을까? 농업의 경우 삼성전자보다 16배나 더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공생과 공익을 우선 가치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농업이 삼성전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생산효율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공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것을 말하지만, 농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물론 공업화된 농업(관행화학 농업)에서의 생산은 자연을 소비하는 요소가 많다.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 즉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농업은 자연순환 속에서 자연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공업이나 공업화된 농업에서는 자연의 소비에 따른 폐기물이 발생하며, 환경에 부하를 주고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산’이라는 같은 용어가 제각기 사용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농업과 공업 간의,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과 공업화된 농업 간의 생산효율 차이는 ‘생산성’에 대한 본원적인 문제로 연결된다. 만약 공업이나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에서 배출되는 폐기물과 그 환경 부하량까지 포함한 ‘생산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농업과 삼성전자 중에서 어느 쪽이 생산효율이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단순히 외형적인 생산액과 매출액만으로 생산효율을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이처럼 생산효율이란 개념에는 큰 함정이 있다.
많은 이들 일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돈으로만 따지는 생산효율을 높여 일자리와 일하는 사람을 줄이는 것보다는 좀 떨어지더라도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터전을 확보하는 일이 더 소중하지 않을까? 생산효율 일변도의 ‘돈 버는 경제·농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경제·농업’이 훨씬 중요하다. 이것은 ‘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의 의미와 가치는 돈을 버는데 있을까 아니면 살아가는데 있을까? 현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창조농업은 ‘돈 버는 경제·농업’이 아닌 ‘살아가는 경제·농업’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요즘 억대 농부 성공 스토리, 억대 부농 프로젝트 등으로 표현되는 ‘돈 버는 농업’이 사회이슈로 회자되고 있다. 억대 농부가 되려면 상대적으로 생산효율이 담보되지 않는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마 그 대부분이 생산효율을 제일 가치로 삼는 공업화된 대규모 농업, 즉 ‘돈 버는 농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농업은 장기적으로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돈 버는 농업’에 매달리는 농정 기조로는 소수의 정예 대농을 육성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많은 가족소농들이 계속 남아 일하면서 ‘살아가는 농업’을 전망하기는 어렵다. ‘돈 버는 농업’은 오늘날과 같은 경제의 불확실성 점증, 개방경제의 지속적 확대,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의 불안정성 증대 시대에 지속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현 정부가 말하는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은 점점 더 멀어져갈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생산효율을 제일 가치로 삼는 공업화된 대규모 농업, 즉 ‘돈 버는 농업’에 올인하는 정책 기조를 서둘러 바꿔야 한다.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남아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공업화되지 않은 소규모 가족농업, 즉 ‘살아가는 농업’으로 과감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이럴 때 국내 농업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일’의 의미와 가치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으로 바뀌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돈 버는 농업 올인 정책 바꿔야
아마 모두들 “요즘 같은 불황기에 그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서로 모시고 살리면서, 많은 사람이 일하면서 ‘살아가는 농업’으로 서둘러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정부가 내건 ‘농업의 미래성장 산업화’도 한낱 구호에 머무를 것이다.
앞서 말한 ‘살아가는 농업’은 공업화되지 않은 농업 생산만으로 농가경제생활이 성립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농업소득은 가구당 평균 1000만원으로 농가소득의 30%에도 못 미친다. 농업소득이 현 농가소득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돈 버는 농업’에서 ‘살아가는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농업이 생산효율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력을 찾고 미래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2014년 9월 9일 한국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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