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계량모형의 허구 |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 작성일2020/03/04 18:21
- 조회 429
한·미FTA와 계량모형의 허구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에 대해 농민들이 크게 분노하여 국회 비준반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농민들을 격려(?)하는 연구자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출신의 전·현직 연구자들과 재벌 그룹 산하의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자들이다. 우선 농경연 그룹의 연구자들은 한·미 FTA의 피해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으니 농민들에게 미리 겁먹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리고 삼성 연구자 그룹은 한·미FTA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농업경영’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농업도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희망가를 부른다.
농업피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 두 그룹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시장개방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지만, 전자가 한·미FTA 대책으로서 소득 보전을, 후자가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 두 그룹의 연구자들은 어려운 시기에 농민들의 비난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농업의 발전을 위한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고 배울 바도 적지 않지만,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지면 관계상 농경연 연구자들의 주장을 검토하기로 하고, 삼성 연구자들의 주장에 대한 검토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농경연 연구자들은 한·미FTA의 농업협상은 우리 정부가 선방을 해서 관세철폐 기간을 장기화하고, 계절관세, 세이프가드 적용 등으로 충격을 완화했기 때문에 한·미FTA의 피해가 별로 크지 않다고 한다. 농경연은 자체 개발한 계량모형을 이용해, 우리나라 농산물 생산액이 한·미 FTA 발효 후 5년차에 4465억원(2005년 농업생산액의 1.3%), 15년차에 1조 361억원(동 3%)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계량모형에 의한 예측은 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계량모형은 수많은 가정에 기초하기 때문에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더욱이 15년 이후의 피해를 계량모형에 의해 예측한다는 것, 더욱이 품목별로 피해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농경연의 예측결과를 놓고 맞다 틀리다 혹은 많다 적다를 논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
15년후 농업피해 ‘괴멸적수준’
그런데 이처럼 근원적 한계를 지닌 계량모형의 예측 결과를 토대로 ‘한·미 FTA로 인한 국내농업생산액의 감소는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된 15년 이후에도 3%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농업분야의 피해가 적다’고 하거나, 그러한 숫자를 근거로 ‘한·미FTA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거나, ‘두려움이 적’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국민들을 호도하고 농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예상 피해액은 모형의 가정에 따라 고무줄처럼 얼마든지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한·미FTA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정부에서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피해액 추정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농경연의 예측대로라 하더라도 농업분야의 피해가 적은 것이 아니라 국내 농업이 거의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농경연의 피해액 추정은 실질가치가 아니라 명목가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물가가 현재처럼 매년 2∼3%씩 상승한다고 가정한다면, 농업 생산액이 명목가격으로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도 15년 후에 실질 가격으로는 적어도 30∼40%가 감소하게 된다.
국민여론 호도·농민 우롱 말길
하물며 농업 생산액이 명목가격으로 3% 감소한다면 그 피해가 ‘적은 것’이 아니라 ‘치명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떤 관변학자는 농경연의 계량모형에 의하면 ‘한·미FTA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농업 생산액은 실질가격으로 크게 줄게 되어 있고, 한·미FTA는 거기(이른바 베이스 라인)에 약간 더 영향을 줄 뿐’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엎어 치나 매치나 마찬가지다.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우리나라 농업이 치명적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6월 0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박진도 | 지역재단 상임이사,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에 대해 농민들이 크게 분노하여 국회 비준반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농민들을 격려(?)하는 연구자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출신의 전·현직 연구자들과 재벌 그룹 산하의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자들이다. 우선 농경연 그룹의 연구자들은 한·미 FTA의 피해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으니 농민들에게 미리 겁먹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리고 삼성 연구자 그룹은 한·미FTA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농업경영’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농업도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희망가를 부른다.
농업피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이 두 그룹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시장개방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지만, 전자가 한·미FTA 대책으로서 소득 보전을, 후자가 농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 두 그룹의 연구자들은 어려운 시기에 농민들의 비난을 의식하지 않고 한국농업의 발전을 위한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고 배울 바도 적지 않지만, 그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지면 관계상 농경연 연구자들의 주장을 검토하기로 하고, 삼성 연구자들의 주장에 대한 검토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농경연 연구자들은 한·미FTA의 농업협상은 우리 정부가 선방을 해서 관세철폐 기간을 장기화하고, 계절관세, 세이프가드 적용 등으로 충격을 완화했기 때문에 한·미FTA의 피해가 별로 크지 않다고 한다. 농경연은 자체 개발한 계량모형을 이용해, 우리나라 농산물 생산액이 한·미 FTA 발효 후 5년차에 4465억원(2005년 농업생산액의 1.3%), 15년차에 1조 361억원(동 3%)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계량모형에 의한 예측은 틀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계량모형은 수많은 가정에 기초하기 때문에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더욱이 15년 이후의 피해를 계량모형에 의해 예측한다는 것, 더욱이 품목별로 피해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농경연의 예측결과를 놓고 맞다 틀리다 혹은 많다 적다를 논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
15년후 농업피해 ‘괴멸적수준’
그런데 이처럼 근원적 한계를 지닌 계량모형의 예측 결과를 토대로 ‘한·미 FTA로 인한 국내농업생산액의 감소는 거의 모든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된 15년 이후에도 3%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농업분야의 피해가 적다’고 하거나, 그러한 숫자를 근거로 ‘한·미FTA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거나, ‘두려움이 적’이라고 홍보하는 것은 국민들을 호도하고 농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예상 피해액은 모형의 가정에 따라 고무줄처럼 얼마든지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한·미FTA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정부에서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피해액 추정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농경연의 예측대로라 하더라도 농업분야의 피해가 적은 것이 아니라 국내 농업이 거의 괴멸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농경연의 피해액 추정은 실질가치가 아니라 명목가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만약 물가가 현재처럼 매년 2∼3%씩 상승한다고 가정한다면, 농업 생산액이 명목가격으로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해도 15년 후에 실질 가격으로는 적어도 30∼40%가 감소하게 된다.
국민여론 호도·농민 우롱 말길
하물며 농업 생산액이 명목가격으로 3% 감소한다면 그 피해가 ‘적은 것’이 아니라 ‘치명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떤 관변학자는 농경연의 계량모형에 의하면 ‘한·미FTA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농업 생산액은 실질가격으로 크게 줄게 되어 있고, 한·미FTA는 거기(이른바 베이스 라인)에 약간 더 영향을 줄 뿐’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엎어 치나 매치나 마찬가지다.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우리나라 농업이 치명적 붕괴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농어민신문 2007년 6월 0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