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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쌀 해법’ 새로운 농업·농촌전략 수립에서 찾아야 |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5 16:48
    • 조회 562
    ‘쌀 해법’ 새로운 농업·농촌전략 수립에서 찾아야
    | 정영일 농정연구센터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올해 말 우리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2004년 쌀협상 결과에 따른 관세화냐’ 아니면 ‘WTO 설립협정에 근거를 둔 일시적 의무면제(웨이버) 방식의 관세화 유예 재연장이냐’ 하는 두 가지뿐이다.

    최근 필리핀 사례에서 보듯이 웨이버 신청을 통한 관세화 유예 재연장의 경우, 현행 40만 9000t 이외에 감내할 수 없는 규모의 의무수입물량 확대와 더불어 150여 WTO 회원국들로부터 제기될 다양한 요구들을 수용해낼 방법이 없을 것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은 가장 유리한 수준의 관세상당치(TE)를 WTO에 통보하고 검증에 대비하는 동시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에 따른 농촌사회의 활력저하 등 우리 농업·농촌의 지각변동을 몰고올 대내외 여건변화에 대응할 획기적인 대책수립에 국민적 지혜와 역량을 모아가는 것이다.

    정부는 9월 말 WTO 통보시한에 맞춰 이 문제에 대한 공식입장을 확정하고 10월 이후의 검증절차에 대응하는 한편 쌀농가의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한 ‘쌀산업발전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책에는 소득안정장치 강화, 쌀수급관리기준 마련, 국내산 쌀의 경쟁력 제고, 유통효율화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1990년대 이후 우리는 1993년 쌀산업종합대책, 1994년 쌀산업경쟁력제고대책, 1996년 쌀산업종합대책, 2004년 양정개혁, 그리고 2010년 쌀산업발전 및 논농업다양화대책 등 수많은 쌀대책을 되풀이해왔지만 쌀농가의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농산물소비 및 생산구조가 크게 다양화됨으로써 농가소득 중 쌀 비중이 10% 남짓으로 줄고, 농업소득 중 비중은 40% 수준으로 각각 크게 하락하면서 쌀 대책만으로는 농가경제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쌀관세화 관련 논의에서 드러난 농업인들의 가장 큰 불만은 농정의사결정구조의 폐쇄성이었으며 정보공개와 민관협의를 통한 개방적 정책결정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다.

    유임된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가개조작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에 정부와 함께 민간 각계가 폭넓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직혁신과 부패척결을 추진하고 안전혁신마스터플랜을 마련할 것이며, 또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점은 농정혁신 추진체계와 관련해서도 깊이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가 추진할 농정개혁의 방향과 관련해,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관련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일본 정부의 농림수산업·지역활력창조본부가 6월 내놓은 ‘농림수산업·지역의 활력창조플랜’은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

    5년 시한을 명시한 이 플랜에서는 정책전개방향으로, ⑴수요 중시의 접근 ②고부가가치 농업체계의 구축 ③농지이용 개선 및 영농주체 육성을 통한 농업구조개혁과 생산비 절감 ④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 발휘를 위한 일본형(型) 직불제의 창설 ⑤농협 및 농지위원회의 개혁 ⑥인구감소사회에서의 농촌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구체적인 제도설계에 있어서는 ①식량자급력 향상을 위한 논 활용도 제고 ②영농규모와 상관없이 인정 농업자, 집락영농, 인정 취농자만을 대상으로 한 경영소득안정대책의 시행 ③지역내 농업인의 공동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형 직불제 도입 ④쌀직불금의 2018년 폐지와 논활용직불의 확충을 포함한 쌀정책의 전환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지금은 당면한 쌀문제의 해법을 또 한번의 쌀대책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방식의 ‘열린 농정’을 통해 새로운 21세기 농업·농촌전략을 수립하는 근본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이 글은 2014년 7월 16일 농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