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사려 | 전희식 농민. 녹색당 농업먹거리 위원장
- 작성일2020/03/05 16:30
- 조회 571
감자 사려
| 전희식 농민. 녹색당 농업먹거리 위원장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는 농사짓는 사람도 포함된다. 봄놀이나 등산 가는 사람들이야 하루뿐이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은 늘 그런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그것대로 보지만 농부는 아침에 하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하루 일정을 확정한다.
엊그제가 그랬다. 잠깐! 이 대목에서 한번 외쳐야 한다. 감자 사려.
아침에 일어나니 어찌나 하늘이 맑은지 정말 날을 잘 잡았구나. 장수농민회 기막히게 날 잡았네. 영농발대식하기 딱이네 싶었다. 그런데 그건 잠시였다. 이리 날이 좋으면 안되는데. 일하기 좋아서 사람들이 모이겠나. 누가 한창 일하기 좋은 오전 11시에 군청 앞마당에 모이겠나 싶어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당장 나부터 그랬다. 10시가 좀 지나서 하던 일을 끝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세수할 시간도 놓치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쯤 소나기가 한 줄기 쏟아지고 행사 시작할 때 다시 개면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겠지만 하늘이 치매 걸리지 않고서야 그런 무리한 욕심을 들어줄 리 없다.
감자 사려.
작년에 워낙 날씨가 좋고 풍년 들어 좋아했지만 마른 고추 한 근에 고작 4000원에 거래되니까 고추농사한 사람들은 품삯도 못 건진 셈이다. 재작년에는 고추 값이 엄청 비쌌다. 근에 2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근데 팔 고추가 있어야지. 고추 흉년에 고추 값 좋으면 뭐하나. 날이 좋아도 걱정이요 궂어도 걱정이다. 풍년 들면 농산물 값 폭락이요 가격 좋으면 백발백중 흉년이라 시장에 내놓을 게 없다. 농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좀 유식한 말로 가격탄력성이 없다.
아차. 다시, 감자 사려.
영농발대식 행사장에는 농민회원 반, 6월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랑 그 운동원들이 반이었다. 나더러 격려사를 하라기에 마이크를 잡고는 후보들 뒤에 졸졸 줄 서지 말고 우리 농민들의 요구와 희망 앞에 후보들을 줄 세우자고 별 효험도 없을 말을 한마디 했다. 근데 연단에서 내려온 내게 다가온 사람이 분위기에 안 맞는 얘기를 했다. 감자 좀 팔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감자 사려.
장수에는 친환경영농조합이 하나 있는데 유기재배 농부들이 50명쯤 된다. 조합원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만 직접 판매하는 독특한 조직이다. 나도 초창기 창립조합원이었다. ‘장수꾸러미밥상’이라는 카페가 ‘다음’에 있기도 하다. 그곳 후배였는데 감자가 5t이나 남아서 난리라고 했다. 곧 햇감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감자가 싹이 날까봐 저온고에 넣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꾸러미 회원과 친환경 학교급식으로 꾸준히 나가지만 생산이 많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똘똘한 팀장이 생산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농사를 지었지만 기계처럼 되지 않는 게 농사다.
감자풍년이 이곳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감자재배 적지인 강원도는 더 심하다. 20㎏ 한 상자에 택배비 포함해서 9000원에 사 가라고 호객행위가 어지럽다. 감자뿐 아니다. 마늘과 양파도 그렇다.
햇농산물이 곧 나오는데 싹이 나는 감자나 마늘, 양파를 보면 가슴이 파랗게 질릴 것이다. 봄의 새싹이 희망과 설렘이 아니라 긴장과 초조가 되는 순간이다. 일본이나 유럽은 생산비 이하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그 차액을 보상해 준다. 우리나라는 요원한 꿈나라 얘기다. 작목별 협동조합이 튼튼하게 꾸려져서 농민들 자신이 생산량과 가격 형성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부는 대자본 유통회사 눈치 때문인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하늘에다 대고 외친다. 하늘 같은 분들 귀 기울여 달라고.
감자 사려
이 글은 경향신문 2014년 4월 29일에 실린 글입니다.
| 전희식 농민. 녹색당 농업먹거리 위원장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는 농사짓는 사람도 포함된다. 봄놀이나 등산 가는 사람들이야 하루뿐이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은 늘 그런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그것대로 보지만 농부는 아침에 하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하루 일정을 확정한다.
엊그제가 그랬다. 잠깐! 이 대목에서 한번 외쳐야 한다. 감자 사려.
아침에 일어나니 어찌나 하늘이 맑은지 정말 날을 잘 잡았구나. 장수농민회 기막히게 날 잡았네. 영농발대식하기 딱이네 싶었다. 그런데 그건 잠시였다. 이리 날이 좋으면 안되는데. 일하기 좋아서 사람들이 모이겠나. 누가 한창 일하기 좋은 오전 11시에 군청 앞마당에 모이겠나 싶어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당장 나부터 그랬다. 10시가 좀 지나서 하던 일을 끝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세수할 시간도 놓치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쯤 소나기가 한 줄기 쏟아지고 행사 시작할 때 다시 개면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겠지만 하늘이 치매 걸리지 않고서야 그런 무리한 욕심을 들어줄 리 없다.
감자 사려.
작년에 워낙 날씨가 좋고 풍년 들어 좋아했지만 마른 고추 한 근에 고작 4000원에 거래되니까 고추농사한 사람들은 품삯도 못 건진 셈이다. 재작년에는 고추 값이 엄청 비쌌다. 근에 2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근데 팔 고추가 있어야지. 고추 흉년에 고추 값 좋으면 뭐하나. 날이 좋아도 걱정이요 궂어도 걱정이다. 풍년 들면 농산물 값 폭락이요 가격 좋으면 백발백중 흉년이라 시장에 내놓을 게 없다. 농사라는 게 원래 그렇다. 좀 유식한 말로 가격탄력성이 없다.
아차. 다시, 감자 사려.
영농발대식 행사장에는 농민회원 반, 6월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랑 그 운동원들이 반이었다. 나더러 격려사를 하라기에 마이크를 잡고는 후보들 뒤에 졸졸 줄 서지 말고 우리 농민들의 요구와 희망 앞에 후보들을 줄 세우자고 별 효험도 없을 말을 한마디 했다. 근데 연단에서 내려온 내게 다가온 사람이 분위기에 안 맞는 얘기를 했다. 감자 좀 팔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감자 사려.
장수에는 친환경영농조합이 하나 있는데 유기재배 농부들이 50명쯤 된다. 조합원 농부들이 생산한 농산물만 직접 판매하는 독특한 조직이다. 나도 초창기 창립조합원이었다. ‘장수꾸러미밥상’이라는 카페가 ‘다음’에 있기도 하다. 그곳 후배였는데 감자가 5t이나 남아서 난리라고 했다. 곧 햇감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감자가 싹이 날까봐 저온고에 넣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꾸러미 회원과 친환경 학교급식으로 꾸준히 나가지만 생산이 많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똘똘한 팀장이 생산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농사를 지었지만 기계처럼 되지 않는 게 농사다.
감자풍년이 이곳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감자재배 적지인 강원도는 더 심하다. 20㎏ 한 상자에 택배비 포함해서 9000원에 사 가라고 호객행위가 어지럽다. 감자뿐 아니다. 마늘과 양파도 그렇다.
햇농산물이 곧 나오는데 싹이 나는 감자나 마늘, 양파를 보면 가슴이 파랗게 질릴 것이다. 봄의 새싹이 희망과 설렘이 아니라 긴장과 초조가 되는 순간이다. 일본이나 유럽은 생산비 이하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그 차액을 보상해 준다. 우리나라는 요원한 꿈나라 얘기다. 작목별 협동조합이 튼튼하게 꾸려져서 농민들 자신이 생산량과 가격 형성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부는 대자본 유통회사 눈치 때문인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라도 나서서 하늘에다 대고 외친다. 하늘 같은 분들 귀 기울여 달라고.
감자 사려
이 글은 경향신문 2014년 4월 29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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