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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선거철, 군민이‘갑’이다 |전희식 농민. 녹색당 농업먹거리 위원장 
    • 작성일2020/03/05 16:24
    • 조회 552
    선거철, 군민이‘갑’이다
    |전희식 농민. 녹색당 농업먹거리 위원장 


    요즘은 아예 문자신호음을 꺼 놨다. 군수 입후보자가 일곱인데다 군 의원과 도의원 후보자의 문자가 쏟아져서다. 더구나 우리 지역에 딱 두 개 있는 농협의 조합장이 둘 다 군수로 나서다 보니 조합장 보궐선거까지 겹쳤고, 다른 지역의 군수 후보자까지도 문자를 보내 수신문자 수는 곱으로 늘었다.

    선거철 앞두고 출판기념회 봇물

    얼마 전까지 문자메시지의 주 내용들은 출판기념회였다. 이는 선거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고 선거라는 방식의 민주주의를 농락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선거일 90일 전까지만 허용되다 보니 출판기념회는 2월 말과 3월 초순에 집중 되었다.
    내가 잘 아는 ‘그 분’은 컴퓨터를 전혀 못한다. 타이핑할 줄도 모를 뿐더러 간단한 메모 외에 글이라고는 한 문장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책을 낸 것이다. 선거철에 한 몫 챙기는 대필작가들이 써준 책이다. 두세 번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빠를 경우 보름 안에 책이 나오는 식이다. 꼭 4년 전 이맘때에 아는 분의 출판기념회에 갔는데 그 분이 사석에서 그랬다. 대필비로 700만원이나 줬다고. 편집과 인쇄는 별도라면서. 그 분은 군수에 당선이 되었고 이번에 또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얼마나 줬을까? 들리는 말로는 1500만원에서 2000만원쯤 된다고 한다.

    합법 가장한 정치자금 모금 행위

    보통은 책을 내면 저자는 비용을 대기는커녕, 책값의 10%쯤 인세를 받는데 선거철 출판기념회 책은 저자가 모든 비용을 다 댄다. 군수 25억, 조합장과 기초의원 5억이라는 선거비용이 헛말은 아닐성싶다. 서점에도 없고 선거 끝나면 사라질 책들, 참석하는 사람들도 얼굴도장만 찍지 읽지도 않는 책들은 출판시장을 어지럽히고 숲과 나무를 훼손 할 뿐이다.
    대필작가가 쓰다 보니 입후보자 책들은 이름과 지명만 다르고 대동소이하다. 꿈 많고 똘똘했던 어린 시절과 가난, 좌절과 도전, 굳센 의지와 성실, 간간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미담 등등.
    솔직히 말하자. 극히 일부를 제외 하고는 자기가 쓰지도 않은 책을 저서랍시고 내 놓고는 선거자금 걷는 것이 출판기념회 아닌가. 이는 선거활동으로 분류되지 않고 ‘경조사’이므로 정치자금법에 해당되지 않아 모금된 돈을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합법을 가장한 노골적인 정치자금 모금행위다. 군민의 호민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선거운동의 첫 걸음부터 사술에 가까운 편법으로 선거제도를 비트는 행위 아니겠는가. 현실이 이럴진대 어찌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런 풍토를 바꾸는 게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많은 지역만들기 활동가들의 고민이 클 것이다. 농민들이 지역의 신망 있는 단체와 개인을 축으로 가칭 ‘*** 유권자연대’라도 만들어서 선거철만 되면 제 각기 후보자를 중심으로 줄을 서는 현상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선거가 끝나도 개인은 물론 작목별 단체 간에 불화와 알력이 이어지는 후보자 중심으로 줄 서는 선거판을 바꾼다면 어떤 선거가 될까?
    지역에 필요한 사업과 활동을 제시하여 후보자 입을 열게 하는 것이다. 공개석상에서 말과 문서와 손 도장으로 약속을 하게 하는 것이다. 돈을 뿌리지 않겠다. 공약을 지키겠다고. 이것은 선거 뒤에도 지자체와의 관계에서 군민이 확실한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지역의 유권자연대가 뻔한 선거공약들의 허실을 헤아리고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선관위와 보조를 맞춰 신고센터도 운영 할 수 있을 것이다. 후보들을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해서 정책토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군민들이 군정의 속살과 예산이 어떻게 줄줄 새는지도 공부하게 될 것이다.

    고질적 선거풍토 개선 필요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정책선거니 공명선거니 하는 구호들은 후보자들이 뿌리는 돈 앞에 맥을 못 춘다는 게 정설이다. 몇 백표가 아니라 몇 십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농촌에서는 표를 쥐었다고 공언하는 작목별 단체나 토건세력 브로커들이 설치기 마련이고 애간장이 타는 입후보자는 돈과 이권을 달라는 그들의 손을 덥석 잡는다. 선거비용에 알파를 더해서 주고받는 막판 후보자간의 야합도 등장하는 것이다.
    당선자는 선거 때 쓴 비용을 긁어모으려 하는데 그게 다 알고 보면 군민들의 뒷 호주머니를 터는 게 된다. 선거법 위반으로 도중하차하는 당선자가 속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선거가 이렇게 되면 군민은 반짝 선거철 외에는 ‘을’의 위치로 추락할 것이다. 농민들의 지혜로운 처신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다. 

    이글은 2014년 3월13일 농어민신문에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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