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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2015년 이후로 눈을 돌리자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5 16:19
    • 조회 531
    2015년 이후로 눈을 돌리자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2013년의 우리 농정은 쌀 목표가격 변경 문제에 발목이 잡혀 새정부 출범기의 미래지향적 논의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해를 넘겨 새해 벽두에야 확정된 2013~2017년산 쌀 목표가격 18만8000원(80㎏ 기준)은 쌀산업 발전이나 생산농가에 주는 영향과 같은 정책논리는 실종된 채 정부 수정안(17만9686원)과 민주당 수정안(19만5901원)의 단순 평균값을 취한 여야 간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올해는 세계무역기구(WTO) 159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필리핀 두 나라에만 적용되는 쌀 관세화 유예조치의 마지막 해다. 우리나라는 국내 쌀산업 보호를 위해 WTO의 ‘예외없는 관세화’ 원칙의 적용을 유예받는 대가로 저율관세(5%)의 의무수입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려 주는 방식의 쌀협상 결과를 1995~2004년과 2005~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이행했고, 올해 의무수입물량은 40만9000t에 이른다.

    2004년 20만5000t이던 의무수입물량을 두배로 늘려 주면서까지 유예기간을 재차 연장했던 것은 관세화 전환에 따른 추가 수입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께부터 대부분의 전문가는 2014년 이전에 관세화로 전환하더라도 의무수입물량을 초과하는 쌀 수입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또 관세화를 통해 의무수입물량을 줄이는 게 농가경제와 국가이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유예기간 중 조기관세화 조치를 단행했던 이웃 일본과 대만의 경험을 보더라도 관세화 전환에 따른 대규모 추가 수입을 우려하는 일각의 주장은 지나친 기우로 보인다. 또한 세 번째 관세화 유예 연장을 추진해 왔던 필리핀도 이해당사국들의 강력한 반대로 관세화 유예 대신 WTO회원국 4분의 3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의무면제(웨이버)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현시점에서 우리 쌀산업 보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내년 이후의 의무수입물량을 올해 수준인 40만9000t으로 동결하고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 이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

    남는 문제는 9월 말 이전에 WTO에 관세화 전환 방침을 통고하고 필요한 대외적 절차를 진행하는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원만한 국민적 합의 도출과 보완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핵심적인 과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이해당사자 및 관심을 가진 일반국민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충분한 대화와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가 국민정서를 도외시한 한·미 간 협상의 강행에서 비롯된 사실을 직시하고 통과의례나 요식행위에 그치는 공청회나 설명회 방식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소통 방식으로 국민적 합의 도출에 노력해야 한다. 

    명심할 점은 관 주도 방식을 탈피해서 민관파트너십에 입각한 정책 추진 방식만이 문제 해결의 첩경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쌀 관세화 현안 이외에도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잇따른 경제 개방 일정에 따른 농민들의 경영·소득불안을 덜어 주고 국민 먹거리의 안정적 확보를 가능케 하는 국내보완대책 마련을 위해 폭넓은 이해당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논의기구를 구성·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 뒤이은 국내대책 수립을 위한 한시적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촌발전위원회의 경험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시간과 타이밍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반 년 남짓으로 얼마 남지 않았고, 정책이 의도하는 성과를 얻으려면 정책 집행의 시의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4년 1월 22일 농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