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농사, 한시가 급하다 | 최양부 농업통상대사, 부산대 석좌교수
- 작성일2020/03/04 18:13
- 조회 442
사람농사, 한시가 급하다
최양부 농업통상대사/부산대 석좌교수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가운데 하나는 농장관리사다. 농장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실시하는 20여 과목이 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토양에서 동식물의 재배와 사육은 물론, 품종과 기계, 시장가격과 판매, 경영, 회계 등에 이르기까지 농장설계와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현장경험을 갖춰야 한다.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농가나 농기업이 의뢰하는 농장을 맡아 파종에서 수확까지 농장 경영계획을 수립 자문하며 지도한다. 이에 대한 보수는 대체로 건당 월 1000-2000 US$ 정도가 되고 별도의 성과급으로 전체수확의 4∼5% 정도 계약에 따라 받는다. 농장관리사가 대체로 3∼5개의 농장을 맡고 있으니 열심히 하면 월 1만 US$ 대를 훨씬 넘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어 다른 어떤 전문 직종보다 인기가 높고 그래서 농대의 인기도 여전하다.
죽어가고 있는 우리 농업교육
그런데 우리의 농업교육은 지금 어떤가? 사립대학교의 경우 농대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문을 닫았다. 그나마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국립대학교의 경우에는 농대라는 간판으로는 학생을 모을 수가 없어서, 또는 농대에 다니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학생들을 위해서, 대학의 명칭을 대부분 생명과학대학 등으로 바꿔 달았다. 이름뿐인 농대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학과로 전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농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들은 전과를 하지 않고 남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해 대체로 손과 발과 옷에 흙을 묻히거나 소·돼지·닭똥을 만지는 농학이나 축산학의 기초가 되는 재배와 사육, 또는 농장실습 등은 폐지했다. 그 대신 취업에 필요한 영어공부, 또는 공무원채용시험준비를 위한 시간을 배려하는 등 대학교육이 마치 취업준비학원처럼 변한 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농전은 이미 오래 전에 이농, 탈농했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자영농고는 당장에라도 끊어질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어 보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 농업교육은 기초가 무너졌고 총체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교육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농업이 미래가 없는 직업으로 평가되면서 시작된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일부 농업교육혁신을 위해 노력해 오신 선생님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오히려 빠르게 진행돼온 농업환경변화에 대응한 자기혁신을 거부해온 농업계 교수들을 포함한 농업교육자들과 농업교육을 이 지경까지 방치해 온 교육정책당국의 안이함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식품산업 현장과 유리된 교수중심, 강의실중심의 농업교육이 불러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농식품산업으로 변화 발맞춰야
현대 농업은 소비자중심의 농식품산업으로 변모하였고, 농식품산업은 소득향상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성장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농업의 영역이 수확후관리 등 신유통분야로 확장되고 생산과 가공 유통이 통합되고, 바이오 에너지농업, 레저농업, 도시농업, 신물질자원농업 등 성장하는 신농업에서는 전문인력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한마디로 우리 농업교육의 붕괴는 적자생존의 차원을 넘은 혁자생존(革者生存)의 일반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업교육이 조금만 앞서서 산업사회, 지식사회, 시장시대, 소비자시대, 세계화시대의 농식품산업으로 변한 신농업의 새 비전을 세우고 그에 대응하는 유용한 인력을 키우기 위한 자기혁신에 나섰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교육은 이제 결단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스스로 파온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무너진 농업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위해 농업교육 혁파(革罷)에 나설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다. 우리 농업교육의 현실을 보면 스스로 자기혁신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농업교육기관의 거듭 태어남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농업에 맞는 새 비전 제시를
지금이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신농업에 알맞은 새 비전과 새 패러다임을 가진 새로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기관의 설립을 위한 ‘신농업교육운동’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지금은 정말 사람농사가 급하게 되었다. 전문 인력이 없어 농업을 접어야 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있어야 농업의 장래를 생각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2007년 글입니다.
최양부 농업통상대사/부산대 석좌교수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가운데 하나는 농장관리사다. 농장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실시하는 20여 과목이 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토양에서 동식물의 재배와 사육은 물론, 품종과 기계, 시장가격과 판매, 경영, 회계 등에 이르기까지 농장설계와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현장경험을 갖춰야 한다. 국가시험에 합격하면 농가나 농기업이 의뢰하는 농장을 맡아 파종에서 수확까지 농장 경영계획을 수립 자문하며 지도한다. 이에 대한 보수는 대체로 건당 월 1000-2000 US$ 정도가 되고 별도의 성과급으로 전체수확의 4∼5% 정도 계약에 따라 받는다. 농장관리사가 대체로 3∼5개의 농장을 맡고 있으니 열심히 하면 월 1만 US$ 대를 훨씬 넘는 고소득을 올릴 수 있어 다른 어떤 전문 직종보다 인기가 높고 그래서 농대의 인기도 여전하다.
죽어가고 있는 우리 농업교육
그런데 우리의 농업교육은 지금 어떤가? 사립대학교의 경우 농대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문을 닫았다. 그나마 명줄을 유지하고 있는 국립대학교의 경우에는 농대라는 간판으로는 학생을 모을 수가 없어서, 또는 농대에 다니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학생들을 위해서, 대학의 명칭을 대부분 생명과학대학 등으로 바꿔 달았다. 이름뿐인 농대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학과로 전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농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들은 전과를 하지 않고 남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해 대체로 손과 발과 옷에 흙을 묻히거나 소·돼지·닭똥을 만지는 농학이나 축산학의 기초가 되는 재배와 사육, 또는 농장실습 등은 폐지했다. 그 대신 취업에 필요한 영어공부, 또는 공무원채용시험준비를 위한 시간을 배려하는 등 대학교육이 마치 취업준비학원처럼 변한 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농전은 이미 오래 전에 이농, 탈농했고,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자영농고는 당장에라도 끊어질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어 보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 농업교육은 기초가 무너졌고 총체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교육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농업이 미래가 없는 직업으로 평가되면서 시작된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일부 농업교육혁신을 위해 노력해 오신 선생님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오히려 빠르게 진행돼온 농업환경변화에 대응한 자기혁신을 거부해온 농업계 교수들을 포함한 농업교육자들과 농업교육을 이 지경까지 방치해 온 교육정책당국의 안이함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농식품산업 현장과 유리된 교수중심, 강의실중심의 농업교육이 불러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농식품산업으로 변화 발맞춰야
현대 농업은 소비자중심의 농식품산업으로 변모하였고, 농식품산업은 소득향상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포함 세계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성장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농업의 영역이 수확후관리 등 신유통분야로 확장되고 생산과 가공 유통이 통합되고, 바이오 에너지농업, 레저농업, 도시농업, 신물질자원농업 등 성장하는 신농업에서는 전문인력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한마디로 우리 농업교육의 붕괴는 적자생존의 차원을 넘은 혁자생존(革者生存)의 일반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우리의 농업교육이 조금만 앞서서 산업사회, 지식사회, 시장시대, 소비자시대, 세계화시대의 농식품산업으로 변한 신농업의 새 비전을 세우고 그에 대응하는 유용한 인력을 키우기 위한 자기혁신에 나섰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농업교육은 이제 결단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스스로 파온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무너진 농업의 기초를 다시 세우기 위해 농업교육 혁파(革罷)에 나설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다. 우리 농업교육의 현실을 보면 스스로 자기혁신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농업교육기관의 거듭 태어남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농업에 맞는 새 비전 제시를
지금이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신농업에 알맞은 새 비전과 새 패러다임을 가진 새로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기관의 설립을 위한 ‘신농업교육운동’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지금은 정말 사람농사가 급하게 되었다. 전문 인력이 없어 농업을 접어야 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있어야 농업의 장래를 생각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2007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