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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자주적 농민운동사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5:03
    • 조회 462
    자주적 농민운동사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 장상환 경상대 교수 


    지난 8월 29일 1970~80년대 농민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분이었던 전남 함평의 노금노 동지가 63세의 이른 연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작년 5월에는 해남 농민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정광훈 동지가 교통사고 치료 도중 향년 72세로 타계했다. 1970년대 농민운동의 주역들이 이렇게 한분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노금노 선생 타계 후 우리의 숙제

    1974년 가톨릭농민회 교육과 1975년 크리스찬아카데미 활동가 교육을 계기로 사회와 농촌 현실에 눈을 뜬 고인은 1976 년 11월~78년 5월의 함평고구마피해보상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함평고구마투쟁은 장기간 농민들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관료적 부패와 행정에 의한 농민들의 피해를 보상받는데 성공했고, 대규모 투쟁 속에서 익힌 투쟁조직 구성과 운영의 경험은 광주민중항쟁에 계승됐다. 고인은 이후 1985년까지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전남 각 지역의 운동을 총괄했다.  

    그 당시 주역들 체험 소중히 해야

    고인은 1984년부터 “종교의 우산을 벗어난 자주적 농민회를 만들자”는 취지에 동의하는 각지의 농민 운동가들과 함께 전국농민협회를 결성했다. 1986년에는 함평농민회 결성을 주도하며 농민회 대중조직 결성의 첫 깃발을 올렸다. 자주적 농민회의 전국조직인 전국농민협회는 1990년 창립된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기틀이 됐다. 그러나 철저하게 농민들의 자주적 힘을 중요시했던 고인은 전농 창립을 전후해 농민회로 들어와 상근자 위치를 확보한 학생운동 출신자들의 힘에 점차 밀려나고 만다.
    고인은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고 스폰지처럼 왕성하게 지식을 흡수했다. 자신이 참가했던 회의나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 등을 메모 형식으로 빠짐없이 기록했다. 농민회 활동과정에서 입수한 자료도 잘 갈무리했다.
    고인이 지난 1986~87년에 펴낸 ‘땅의 아들’ 1, 2는 이러한 메모와 자료가 있었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땅의 아들은 광주항쟁까지를 다루고 있다. 2권 말미에 ‘3권에 계속’이라고 써뒀는데 3권을 내놓지 못한 채 노금노 동지는 고인이 되고 말았다. 고인은 2년에 걸쳐 후속편인 1980년대, 1990년대 농민운동사를 정리할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이제 이것은 뒤에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됐다.
    1980, 1990년대 농민운동은 많은 논점을 안고 있다. 학생운동 자주파 진영 활동가들이 전농의 실질적 내용을 지배하게 됐는데 이들은 협동조합 등 경제협동사업을 개량적인 운동이라면서 배척하고 주로 미국과 대항하는 외국농산물 수입반대 투쟁에만 주력했다. 그러나 세계 식량의 공급 루트를 장악한 초국적 농식품 기업의 힘은 경제활동으로 단결된 농민과 소비자의 힘이 없으면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친환경 농산물 소비와 생산 욕구도 개별화돼 있을 경우 초국적 농식품기업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뿐이다.
    현재 한국 농업은 백척간두에 놓여 있다. 일부 상류와 중산 계층의 수요에 힘입어 과일과 채소, 축산 분야에서 상층농이 일부 성장하고 있지만 계속된 수입개방 반대투쟁의 저항력은 크지 못했고, 농업의 위상은 계속 쪼그라 들었다. 2008년부터 연발하는 세계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농업의 가치와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워갈 농민의 단결된 경제력이 필요하다. 농민운동의 혁신에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 큰 도움이 된다.

    기록 남기거나 구술자료도 좋아

    해방 후 농민운동의 단절을 뛰어넘어 1970년대 자주적 농민운동이 시작된지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당시의 주역들은 노인이 돼 간다. 그들의 기억과 소지했던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모아야 할 것이다. 당시 성명서, 발표문, 회의록 등의 문서류와 활동가 자신의 일기나 구술자료 등이 1차 사료의 가치가 있다. 무안에서 1970, 1980년대 기독교농민회 활동과 1990년대 무안채소영농조합법인과 전남서남부채소농협 활동을 한 배종렬 동지께서 올해 팔순을 기념해 ‘한반도라는 감옥에서’를 펴냈다. 그 속에는 기억과 확인으로 힘들여 기록한 당신의 체험들이 소중하게 간직돼 있다.
    많은 분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일간지나 주간지에 짧은 글로 실어도 좋을 것이다. 기록하기가 힘들면 구술하면 된다. 사회과학자나 역사학자 또는 기자라면 이런 구술자료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니 협력을 요청하면 머뭇거리지 않고 달려와 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9월 제2463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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